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02화 (202/350)

제202화

41화. 평화로운 나날(이었던 것)

1.

미르가 개학한 지도 어느덧 1달, 슬슬 2학기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 왔다.

수업이 끝나고 난 마빡이와 함께(서예린은 탱자탱자 놀았다) 스터디카페 한구석에 앉아서 열심히 시험 예상 문제를 풀었다. 싸장님이 배워야 한다고 했던 ‘위상 수학’ 과목의 문제들인 만큼 대충 놀 수 없었다.

“다 풀었어요!”

힘겹게 푼 시험지를 맞은편에서 같이 시험공부 하고 있는 마빡 아가씨에게 내밀었다. 그에 아가씨는 자기 시험 과목 책을 내려놓고 빨간 펜을 들며 시험지를 받아든다. 그리고, 작문시험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빡빡한 글이 쓰여 있는 내 수학 시험지를 보더니-.

“어, 어어어?!”

빨간 폭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부…… 분명, 책과 수업에서 하란 대로 다 풀었는데?! 마빡이의 악의가 나를 덮치는 것인가?! 그렇게 순식간에 핏빛 비를 쏟아낸 마빡이는 테이블에 시험지를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뱉는다.

“개판이네.”

“아니, 왜?! 어째서!?”

“후우, 새벽아. 위상 수학은 물체를 단순화시켜서 본질을 파악하는 거야. 거기서 중요한 건, 충분조건과 필요충분조건이고, 그 조건 맞추기 위한 단방향, 양방향, 더 들어가면 3각과 4각 이상의 동치관계 화살표나 집합의 포함기호를 잘 써야지. 근데, 넌 다 틀렸어.”

혀를 차면서 마빡이는 내가 푼 시험지의 오답을 하나씩 짚어주며 해설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난 넋 나간 원숭이 새끼처럼 멍하니 그 설명과 내용을 들었다. 들어보니…… 확실히 책 내용과 일치하네. 그렇게 30분에 걸친 오답 해석을 듣고 난 뒤-.

“으윽, 으으으윽.”

난 좌절하며 머리를 붙잡았다. 그런 내 모습에 마빡이가 쓰게 웃는다.

“어렵냐?”

“네, 제가 멍청이로 생각될 정도로요.”

처음엔 자신 있었다. 남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유리한 조건(지성, 집착, 눈)이었으니까. 하지만, <게임 시스템>의 ‘조건부 초월적인 지성’은 공부에 작동하지 않았고…… 난 좀 특별한 눈을 가진 집착 쩌는 븅X 새끼였다. 미르 수업 내용도 감당 못 해서 떡실신이 되다니?

그런 내 좌절에 마빡 아가씨는 자기 몫의 코코아를 들곤 한 모금 마시며 어깰 으쓱였다.

“잘하고 있어.”

“네?”

“나라고 처음부터 이렇게 빠삭했겠냐?”

고갤 절레절레 저으며 아가씨는 쓰게 웃었다.

“처음엔 나도 더럽게 못 했어. 마력 각성자가 된 후, 3년 동안 개인 강사에게 착실히 실력을 쌓아서 이렇게 능숙하게 된 거지.”

“3년이요?”

“그래, 너도 시간 지나면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 넌 옛날의 나와 비슷…… 아니, 훨씬 낫거든.”

“흐음, 그렇군요…….”

공부면 공부, 싸움이면 싸움. 만능인 것 같은 마빡이도 사실은 이전부터 틈틈이 실력을 쌓은 거였구나. 하긴, 개인 트레이닝 룸에서 빡세게 운동도 조진다고 했을 정도…… 아니, 잠시만? 3년 전?

“그 말 듣고 갑자기 생각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뭔데?”

“3년 전에 마력 각성자가 되셨다고 하셨는데…… 그때부터 미르 입학하지 않고 왜 지금 편입했어요? 듣다 보니 좀 궁금하네.”

아가씨의 말을 듣다가 든 의문, 그에 마빡이는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갤 저었다.

“뭐, 약간 사정이 있었어! 아무튼, 천천히 포기하지 말고 해봐!”

“넵.”

“자, 일단 니가 틀린 문제들을 보니까 넌 지금 개념에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것 같아. 위상 수학에서의 공간(space)은 일종의 집합(set)이고, 공간상에 있는 하나의 점(point)은 집합 상에 있는 하나의 원소(element)로 해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공책에 한 글자 한 글자 예쁜 글씨로 써가며 내게 강의를 시작해주는 마빡이,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열심히 <게임 시스템>의 <메모장>에 강의를 베꼈다. 그렇게 즉석 강의가 다 끝나고 난 뒤-.

“휴우, 전 이만 가봐야겠네요. 시간이 돼서.”

공책을 덮었다.

“오늘은 빨리 가네?”

“넵, 오늘은 일이 좀 있어서…… 아, 고마워요, 진아 씨. 진짜 진아 씨 아니었으면 너무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으으.”

진짜 마빡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 X랄 맞은 수업-‘마법 형성 도형의 수학적 분석’의 진도도 못 뺐을 거야. 그런 내 감사인사에 마빡이는 검지로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웃는다.

“뭐, 주고받는 거지. 너에게 받은 게 많으니까. 니가 지금 일하러 가는 것도 어찌 보면 우릴 위해서고…… 아, 그러고 보니 나도 질문하나 해도 돼?”

“뭔데요?”

“이번에도 다른 기업들은 발주량의 60~70%만 받았다고 하는데, 우리 기업은 100%를 받았다고 하더라? 그거…….”

“제가 한 거죠.”

내가 싸장님의 보조로 들어간 지도 한 달가량, 현재 싸장님의 물약 생산량은 지상에서 있었을 때의 70~80% 수준으로 회복됐다. 내가 합류하기 전엔 30%였다고 하니 2배 이상 늘었지. 그래도 기업이 요구하는 발주량을 다 맞출 수는 없었지만…… 특별히 마빡 아가씨네 회사 거는 좀 신경 썼다.

내 대답에 ‘역시나’하는 표정의 아가씨에게 난 자랑하듯 우쭐대며 말을 이어나갔다.

“싸장님의 일을 도우니까 저도 발언권이 있거든요. 아가씨 얼굴도 있으니 DK그룹 발주는 그냥 다 하자고 했죠. 저야말로 받은 게 많으니까요. 양 목장에 파견한 회계사도 그렇고…….”

“하, 하하. 거, 고맙네. 생각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다 싸장님이 허락해서 한 거죠! 아, 그러고 보니 제가 아가씨네 회사 물량은 다 제공하고 싶다고 하니까 싸장님이 조언 같은 거 해주셨는데 말이죠?”

“조언?”

고갤 갸웃하는 마빡이를 향해 난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 분명히…….

“그, 그룹 내 파벌 싸움? 같은 거, 벌어지면 말해 달래요. DK그룹 발주량을 0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면서요.”

“……하, 그런 걸 해주시겠다고?”

“넵. 어차피, 수틀리면 일 때려치우면 되니까 부담 없이 을질 가능하다고 하던데요?”

“너, 강수영 사장님에게 어지간히 예쁨받나 보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짓은 사업가 입장에선 부담이 큰데…… 꼭 내정간섭처럼 보이거든.”

쓰게 웃는 마빡이,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기색으로 고갤 끄덕였다.

“하지만, 그런 거 필요 없어. 그냥 ‘이번 발주량의 100% 받는 게 내 덕분이다.’라는 것 정도로만 은근슬쩍 어필하는 것 정도로 충분해.”

“아무튼 수틀리면 말해요. 저도 나름 최대한 도울 테니까. 아, 늦겠다. 그럼 전 이만.”

좀 늦었네. 아가씨를 향해 작별 인사를 한 뒤, 난 재빨리 미르 북쪽의 뉴 송파구 입구 터미널을 향해 내달렸다.

2.

‘우그 타람’에서 싸장님의 지위는 ‘명예 최고 교수’다.

명예긴 한데, 나름 교수직에 올려둔 만큼 수업도 하신다. 다만, 그 대상은 일반 생도가 아니라 교수진-미국에서 이민 온 오크 출신 화학 석사와 마법사들이다. 싸장님이 교수들에게 화학과 결합된 마법 지식을 가르치면, 교수들은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생도들을 가르치는 방식이지.

그리고, 일종의 조교로 편성된 나는…….

“자, 지금 보여드릴 <연금술>은 71p의 유기분해입니다. 추가로 14p의 성질고정도 들어가고요. 일단, 유기물질을 분해하는 성질을 부여하는 연금술인 만큼 그 산물은 질소화합물과 이산화탄소겠죠?”

진짜 조교가 되었다.

내 곁에 빙 둘러 서 있는 오크들이 잘 느낄 수 있도록 난 연금술 장비를 붙잡으면서 ‘일부러 과장되게’ 마력흔을 남기며 <연금술>을 사용했다. 이런 마력흔을 남기는 것도 그 마법에 완전히 숙달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짓이라던데 난 쉽게 가능하다.

그런 내 시범에 마법사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각자 감각을 끌어올려 그 과정을 응시한다.

“자, 이게 완성품이랍니다!”

기묘한 연기가 뭉쳐서 꿈틀거리는 듯한 녹색 용액, 크리스탈 병 안에 담긴 그것을 난 옆에 테스트용으로 가져다 놓은 플라스틱 덩어리에 몇 방울 떨어트렸다. 그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플라스틱이 녹아내린다.

“플라스틱 같은 고분자 유기 용매를 녹이는 용액입니다. 이 유기분해 과정과 193p의 ‘신체의 물질을 이용한 변환’을 사용하면 몸 내부에 있는 물질들을 즉석에 녹여서 간의 치료물질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답니다.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진 만큼, <연금술> 변환 또한 매우 쉽고요!”

“……그거, 컨트롤을 잘못하면 몸이 통째로 녹아내릴 텐데? 내장을 잘못 녹여서 불구가 될 수도 있고.”

내 설명에 굳은 얼굴로 질문하는 한 오크, 그에 난 고갤 끄덕이며 옆에 둔 메스를 들고 힘차게 내 팔뚝을 그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연금술>을 일으키며 그 상처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그러자 녹아내린 피부가 절묘하게 달라붙는다.

“물론, 굉장히 섬세한 테크닉을 요구한답니다. 몸의 신체 구조 또한 빠삭하게 알아야죠!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어요. 매우 적은 마력만으로 체력의 회복이 가능하니까. 어느 정도 숙달되면 신경 쓰지도 않고 가능하고요!”

“흠.”

“자, 한번 해봅시다! 각자 테이블로 가셔서 이번에 배운 <연금술>을 써보세요.”

크게 한 번 박수를 치며 말하자 오크들은 각자 테이블로 돌아가서 이번에 배운 <연금술>을 시작한다. 싸장님이 직접 편집한 화학책과 마법책을 보며 수학 공식을 확인하거나, 조금 전에 느낀 ‘마력흔’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오크들의 주위를 난 천천히 돌아다녔다.

내가 <눈>으로 확인한 마법은 마력으로 ‘다른 차원과 공명하는 초월적인 형상’을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싸장님이 말하는 ‘그 과정’이 요구하는 것들은…… 대단히 복합적이다. 논리적으로 마력을 쌓는 이론인 동시에, 이성만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초월적인 영역을 느끼고 표현하는 예술이며, 동시에 부단히 연습하여 몸에 익혀야만 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단다. 나야, 뭐 날먹이지만.

어쨌든 그렇기에 마법의 전수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수학을 사용해서 고차원 형상의 룬어를 계산해 차근차근 마력을 조립하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감각적으로 다루는 것도 있다. 사실,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게 대세가 된 건 지상에 올라와서고 미궁에선 마력흔으로 감각적으로 전수하는 게 정석이었단다.

“잠시만요. 다시 <연금술>을 천천히 사용해보시겠어요? 최대한 자기가 쪼개서 사용할 수 있는 방식대로 써보세요.”

그리고, 난 수학적 논리는 부족해도 ‘감각’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 오크 마법사 앞에 멈춰 서서 말하자 마법사는 단숨에 할 수 있는 마법을 자기가 느끼는 대로 ‘뚝! 뚝!’ 끊어서 한다. 그에 난 천천히 그가 실수한 부분을 낚아챘다.

“멈추세요. 방금 그 부분! 제가 보여드릴게요!”

내 말에 오크가 진지한 표정으로 감각을 끌어올리고, 난 최대한 느리게 <연금술>을 펼치면서 오크가 실수한 부분의 마력의 유동-‘마력흔’을 과장되게 강하게 남겼다. 그렇게 시범을 보여준 뒤에 난 오크에게 해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음.”

긴장한 얼굴로 보여준 <연금술>을 따라 하는 오크. 여전히 룬의 형성과정에 틀린 부분이 많았지만…… 그래도 크게 잘못된 부분을 의식해서 신경 쓴 만큼 이전에 비하면 많이 개선되었고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름 쓸 만한 결과물이 나왔다.

“……놀랍군.”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들어 올리면서 감탄하는 오크 마법사를 향해 난 빙긋 웃었다.

“항상, 그쪽 부분을 신경 쓰세요. 다른 부분도 미진한 부분이 있지만 그쪽 부분만 다듬으면 팔만한 물건도 나올 겁니다.”

“그래, 알겠다. 그나저나…… 넌 참 대단하군.”

날 내려다보며 칭찬하는 오크, 그에 난 빙긋 웃으며 화답했다.

“하하, 별말씀을요.”

“아니, 진짜다. 나도 마법사야. 그리고 약물에 성질을 부여하는 <연금술>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 근데, 고작 두 달 만에 기초적이라지만 약물을 만들 수 있게 되다니…….”

그 오크의 칭찬에 난 어깰 으쓱였다.

잘할 수밖에 없지. 다른 사람들처럼 ‘현실의 단면’에 나타나는 현상만 보고 어디가 틀렸는지 대략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의 인지력으론 허락되지 않은 초월적인 차원을 직접 보니 정확히 어디가 틀렸으니 신경 쓰라고 지적할 수 있으니까.

어쨌든 계속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마법사 하나하나의 룬 문자를 수정해줬다.

지적해도 고치기 힘든 ‘섬세한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굵직굵직한 커다란 부분은 잡아줄 수 있었고 덕분에 오크들의 실력은 빠르게 나아졌다. 그렇게 대략적인 부분을 손봐주면서 수업이 끝난 뒤, 난 곧바로 지하층 싸장님의 공방에 들어섰다.

“싸장님~ 저 왔어요~ 밥 먹으러 가요~”

“왔냐? 쫌만 기다려라.”

내 말에 뒤도 안 돌아보고 대꾸하곤 작업에 열중하는 싸장님, 이전처럼 <부양> 마법이 걸린 로브를 입고 계시지만 두 발로 재빠르게 걸어 다니면서 이번에 출하할 약물의 세부 <연금술> 조정을 하시고 계셨다.

내가 싸장님 대신 실습 수업할 동안, 우리 싸장님은 이렇게 ‘공밀레공밀레’ 하면서 약물을 만든다.

어찌 보면 싸장님이 해야 할 일을 내게 짬 시키는 거지만…… 딱히 불만은 없다. 나는 수업 진행 자체가 일종의 ‘설명 실력’이 늘어나는 공부고, 오크들은 이론적인 부분에 치중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쉽게 <연금술>을 배우니 좋고, 싸장님은 일할 시간이 늘어나서 좋고.

그렇게 <연금술>을 가지고 테스트 중이신 싸장님은 이내 약물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끼신다.

“왜 그러세요?”

“으음, 니가 <눈>으로 알려준 룬 문자를 테스트 중이었지. 뭔가 감이 잡힐 것 같기도 한데…….”

장갑을 낀 손으로 턱을 매만지는 싸장님, 내 <눈>을 가지고 싸장님도 여러 개선점을 찾고 있었다. 나야 뭐 하란 대로 하란 거지. 그렇게 고민하던 싸장님은 이내 한숨을 내쉬며 손을 까닥인다. 그에 난 재빨리 작업실 구석에 둔 휠체어를 끌고 왔다.

“가자.”

휠체어에 탄 싸장님의 명령, 그에 난 곧바로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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