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3화
3.
다시 싸장님의 도비가 되면서 난 아예 이곳-우그 타람에 살림을 차렸다.
처음엔 지상의 기숙사를 왔다 갔다 했지만, 일주일도 되지 않아서 그냥 이곳에 정착했다. 처음엔 지하라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지내보니까…… 전혀 불편하지 않더라고? 전기와 하수도 같은 편의시설도 있고 식사도 잘 나왔다. 심지어 인터넷도 되더라?
미르와 비교하면 꿀리는 감이 있지만, 대한민국의 웬만한 기숙사 학교를 처바를 수준.
어차피 난 아싸찐따라서 밖에도 잘 안 나가거든! 거의 처박혀서 인터넷만 하지! 교수진용 기숙사도 몇 개 남았기에 출퇴근 시간도 아낄 겸 그냥 콕 박혔다.
“어? 저기 허접 조교님이다!”
“조교님, 치킨빵 내기 카드겜 함께 하…….”
“야! 교수님도 함께 가잖아!”
내 뒷모습을 보고 아는 척하려는 애들이 내가 휠체어 끌고 있단 걸 보곤 움찔하며 피한다. 처음엔 꺼렸는데, 다행히 내가 혜영이랑 친하다는 걸 알고 어떻게 안면을 텄다. 그렇게 하프 오크들과 안면 트면서 오크들과도 안면이 트이고.
어차피 돈 쓸 곳도 별로 없겠다 기숙사 애들에게 치킨을 계속 뿌린 것도 한몫했지.
“인기 좋다? 너?”
그런 애들의 목소리를 들은 듯, 싸장님이 날 올려다보며 웃고 나도 쓰게 웃었다.
“하하, 혜영이랑 아는 친구들이 있어서요. 덕분에 좀 빨리 친해졌죠.”
“혜영이? 아, 미르 다니는 하프 오크?”
“넵, 애들이 많이 배고파 보이길래 일부러 내기해서 져주면서 치킨 좀 뿌려줬죠. 조리사 오크 아저씨가 화내더라고요. 너무 많이 시키는 거 아니냐고.”
그런 내 대꾸에 싸장님은 살짝 미간을 찡그린다.
“그냥 무작정 퍼주기만 하면 안 된다. 그런 거 함부로 하면 오히려 얕보이기 마련이야.”
“당연하죠. 헤헤.”
나도 눈치가 있다. 어느 곳이 그렇듯이 이곳에도 좀 불량한 학생이 있었고, 진짜 날 호구로 얕본 애들은 아주 ‘탈탈!’ 털어줬다. 자고로 카드겜에선 <눈>이 사기거든!
그러다가 분해서 ‘쉬익! 쉬익!’ 거리다가 주먹을 휘두른 녀석도 있는데, 잽싸게 요리조리 피하면서 유린하다가 오버헤드킥으로 턱을 깔끔하게 날려 기절시켜줬다. 확실히, 그러니 애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지더라.
“어서 옵쇼!”
그렇게 싸장님이 탄 휠체어를 밀며 임직원용 구내식당에 들어서자 오크 조리사가 싸장님을 향해 고갤 까닥이며 인사한다. 적당히 고갤 까닥이는 싸장님, ‘치킨 마요 덮밥’ 반 인분 2개를 시킨 뒤 우린 적당히 구석진 곳에 앉았다.
“싸장님.”
“왜?”
“그 언제까지 그 로브 입고 휠체어까지 타면서 연기할 거예요?”
허리를 치료한 지도 어느덧 한 달, 싸장님은 아직 전부 회복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글쎄? 재활한다고 건물 꼭대기의 식물원을 닌자처럼 왔다 갔다 질주도 하시고, 허공에 점프해서 공중제비 4~5번을 돌면 말 다했지.
그런 내 질문에 싸장님은 물컵을 홀짝이며 날 바라보신다.
“당분간은 계속할 거야. 왜 불만 있냐?”
“헤헤, 아뇨. 근데, 그렇게 숨기는 게 불편하시거나 하지 않을까 해서…….”
물론, 휠체어 셔틀인 내가 쬐끔 불편함은 있지만…… 그런 걸 말할 정도로 병X은 아니거든. 어쨌든 내 걱정의 탈을 쓴 말에 싸장님은 어깰 으쓱였다.
“내가 처음에 이곳 이종족 지구에 내려오겠다고 한 이유가 신변보호 때문이야. 밖의 인간들을 믿느니 차라리 오크를 믿는다고 해서 내려왔지. 당연히, 정부나 기업 쪽에선 불편한 기색이 있었어. 지금만 하더라도 공급 물량이 줄어서 징징거리고 있고.”
“그렇긴 하죠.”
“어느 정도 다리가 회복된 걸 알면 밖에 나가자고 할 인간들이 많아. 인간관계란 게 참 오묘하거든? 관계를 맺은 이상, 그런 요구를 아예 무시하기도 힘들어요. 그럴 바엔 그냥 계속 아픈척하는 게 낫지. 아마, 하고 있는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쯤 되면 그만둬야지.”
고갤 젓는 싸장님, 마침 식당에서 받아가라는 외침이 들려오고 싸장님은 가져오라는 듯이 턱짓하신다. 흐음, 저게 묘하게 띠껍단 말이지. 어쨌든 배식대에 가서 시킨 치킨 마요 덮밥을 픽업했다. 오크식 반 인분, 하지만 사발 그릇에 수북이 담긴 양은 지상의 1인분보다 훨씬 많다.
“그럼 최소한 1~2년은 이 짓 해야겠네요.”
수저를 들며 내가 푸념하듯이 중얼거리자 싸장님은 슥슥 비빈 밥을 입에 밀어 넣고 우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빨리 끝날 것 같아.”
“네?”
“니가 있잖아.”
나? 뭔 소리지? 그런 내 기색에 싸장님은 입에서 뺀 수저를 까닥이며 말을 이어나가신다.
“폐플라스틱에서 ‘재생 경질유’를 뽑아내는 기술은 현대 화학에 더 많은 기반을 두고 있어. 마력이 없던 시절에도 충분히 해볼 만한 기술이었지. 당연히, <연금술>이 필요한 부분은 적고, 거기에 사용되는 <연금술> 수준도 기초적이야. 지금 네가 교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정도만 해도 다 끝나.”
“그런가요?”
“그래. 그리고 넌, 그 감각을 이용해 무지 빠르게 <연금술> 관련 마법을 전수하고 있지.”
내 얼굴을 바라보며 싸장님은 씨익 웃는다.
“니 말로는 룬 문자의 형성과정에서 좀 많이 틀린 부분을 지적하고 그냥 대략적인 형태와 유동을 보여주는 거라고 하지만…… 그것도 무지 대단한 거야.”
“헤헤.”
“니가 투입되고 나서 오크 마법사들의 진도가 빠르게 빠지기 시작했어. 덕분에 이제 학생들에게도 마법 전수 관련해서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 설비만 건설된다면 아마 반년 이내에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거야.”
생각보다 빨리 끝날 거라니 좋구만. 나름 만족하며 고갤 끄덕이고 있는데, 싸장님이 돌연 생각났다는 듯이 수저를 까닥인다.
“아참, 오늘 수업 다 끝나고 연구실로 와라.”
“왜요? 저 다음 주 시험 공부해야 하는데…….”
“제롬에게 내가 ‘혹시 돌연변이 물약이나 제거 물약이 있으면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거든? 이번에 돌연변이 물약이 들어왔더라.”
“오!”
내 영혼의 복구를 위한 연구, 내가 설명하는 영혼의 특징을 듣고 싸장님은 일단 마력으로 만들어진 영체(靈體)부터 접근하기로 했다. 아예 맨땅에서부터 헤딩할 수 없으니 말이다. ‘돌연변이 물약’은 그런 영체에 <마력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얼마 없는 물품이지!
반색하는 내 모습에 싸장님은 씨익 웃는다.
“영체에 영향을 끼치는 물약인 만큼, 영혼에도 뭔가 영향을 끼칠 거야. 아무튼 연구해보자고.”
“넵!”
좋은 소식에 싱글벙글 치킨마요를 퍼먹었다. 좋아, 앞으로 이대로만 계속됐으면 좋겠…….
-타다다다다당! 타당!
다고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총소리가 울린다.
그에 나는 물론이고 싸장님도 고개가 돌아간다. 밖의 잔디밭에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생도들, 그리고 입구 쪽에 쓰러진 경비병들이 보인다. 몇 대의 탑차가 입구에 있었는데…… 작업복을 입은 인부 오크가 소총을 들고 있다?
“습격이다!”
내부의 경계를 맡고 있던 오크 전사가 소리를 지르는 순간.
-부우우웅!
선두의 탑차가 우리가 있는 식당 쪽을 향해 돌진했다.
4.
달려오는 탑차의 좌석에 앉아있는 오크들.
평범한 노동자처럼 작업복을 입었지만 <눈>으로 파악하니 마력 각성자였다. 막무가내로 돌진하던 차량은 조수석에 앉은 오크가 우릴 발견하고 뭐라 외치자 우리 쪽으로 방향을 꺾는다. 딱 봐도 누굴 노리는지 알 수 있구만.
“쓰읍!”
조수석의 오크는 앞유리를 무시하며 소총을 겨누고, 그에 맞춰 싸장님이 움직인다. 내 멱살을 낚아채고 단숨에 자기 쪽으로 잡아당긴 후, 식탁을 엎으며 <연금술>을 사용하는 싸장님. 그와 함께 목제 식탁이 시커멓게 변한다.
-쨍그랑!
-타다다다당!
-텅! 텅! 텅터터텅텅!
우리가 있는 식당 쪽에 쏟아지는 탄환, 유리 벽이 깨지면서 흉흉한 총탄이 식당을 휩쓸지만 우리가 숨은 시커멓게 물든 탁자를 뚫지 못한다. 탄소 경화를 응용한 즉석 연금술 콤비네이션! 역시 싸장님! 나도 하지만 저렇게 빨리 즉흥적으론 못하는데 대단하시네.
-푸슈슈슛!
나도 놀고만 있진 않았다.
뭔가 일이 벌어졌다고 파악하자마자 <눈>을 쪼개서 배치해 상황을 인지했고, 싸장님에게 낚아채 져 날아가면서 <독침>을 만들어 흩뿌렸다. 왼손의 다섯 손가락 위에 떠오른 <독침>이 기괴한 궤도를 그리며 트럭의 앞 좌석에 앉아있는 오크들을 향해 날아가다가-.
-파파팡!
“!?”
끝부분이 터져나가며 급가속한다.
새롭게 배운 싸장님의 <연금술> 테크닉을 응용-개량한 <독침>, 마법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리소스 일부를 폭발력에 투자해서 총알처럼 급가속할 수 있게 개조했다. 당연히 독성 자체는 약해졌지만 속도는 더 빨라져서 대처하기 힘들다.
“크흑!”
“컥!”
예상대로 대처 못 하고 꿰뚫리는 오크들, 5개의 <독침>은 각각 눈을 꿰뚫고 뇌에 박힌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운전사 오크는 여전히 페달을 밟고 있다. 우리에게 꼴박하려는 건가? 그냥 도망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짐칸에 폭발물!”
“개-X!”
뭔가 이상해서 짐칸을 보니 심상찮은 짐칸에 뭔가 화학약품 냄새가 나는 것들이 실렸다.
내 경고에 쌍욕을 내뱉은 싸장님이 입에 전자 담배를 물며 건물 밖으로 튀어나간다. 이미 장애인 흉내는 내던진 상황, 싸장님의 전신에서 마력이 물결치며 5개의 룬 문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폐 부분의 혈액이 끓어오르며 다른 차원의 성질이 부여된다.
“BE-LI-AC!”
반응성 소멸의 포효 (Roar of Eliminated Reactivity)
레벨 5 독(연금술)/파괴/대기
시전 소음 : 25
주문 소음 : 25
대미지 공식 : 1d(5+Sp/4)
최대 SP : 200
사거리 : 시전자의 입을 기준으로 90도. 전방 45m.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5P + 체력 1P + 용숨결 물약
효과 : 어떤 물질의 급작스런 폭발이나 걷잡을 수 없는 폭주 현상을 진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강수영 연금술사의 오리지널 마법, 정밀하게 조작한 <연금술> 파동을 입으로 내뿜어낸다. 그 연금술 파동은 ‘분자의 전자 반응성’에 간섭한다.
그 파동에 휩쓸린 물체는 찰나 동안 18족 원소처럼 ‘안정된 상태’가 된다.
잠깐이지만 거의 모든 물질의 물성(物性)이 없어진다. 생명의 물질 활동 또한 정지되기에 마력 저항력이 없는 일반인은 직격당하는 순간 즉사하지만, 어느 정도 저항력이 있는 마력 각성자에겐 조금 괴로운 수준의 충격만 입힌다.
다른 포효류 마법처럼 엄청난 소음을 동반하며, 난해한 마력 운용과 신체에 대한 정교한 이해를 요구한다.
높이 도약하는 싸장님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하얀 광채가 섞인 충격파가 트럭을 직격한다. 순식간에 꺼져버리는 시동, 그래도 관성으로 굴러가는 트럭은 그대로 건물에 처박히고 싸장님은 지상에 착지한다. 그에 소란을 피우던 다른 오크 침입자들의 시선이 돌아간다.
“저기! 강수영이다!”
-쓰읍! 푸화아아아아악!
착지하기 무섭게 싸장님이 폭발적으로 연녹색의 숨결을 내뱉는다.
<독숨결 구체>를 응용한 연막, 저 쬐끄만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연녹색 가스를 흩뿌리며 트럭 쪽으로 엄폐한다. 그사이 나도 재빨리 달려가 싸장님의 옆에 달라붙었다. <연금술> 대처가 미흡한 이들이라면 몰라도 난 문제 없지.
-타다다다다다당!
확인되기 무섭게 쏟아지는 총탄, 게다가 싸장님의 연구실로 돌진하던 식료품 트럭이 이쪽으로 꺾는다. 그에 싸장님이 입엔 전자 담배를 문 채 트럭의 철판 골조를 <연금술>로 물성 변환해 뜯어내며 입을 여신다.
“하, X팔. 이제 연기도 못하겠네…… 도비야, 너 시가지 전투 잘하냐?”
“음, 저야 이 ‘감각’으로 보니 훨씬 유리하죠. 아, 근데 다른 탑차들도 낌새가 안 좋은데요?”
“쯧, 그럼 내가 다른 탑차들 무력화시킬 테니까 니가 제압해라?”
로브 위에 뜯어낸 금속으로 만든 후드를 걸친 후, 싸장님은 트럭 운전석의 테러리스트가 들고 있던 소총을 루팅하고 튀어나간다. 그에 나도 빙긋 웃으며 <눈>을 수십 개로 쪼개 반경 30m에 배치해 조망했다.
“죽여!”
-타타탕! 탕!
“작업복! 작업복 놈들부터!”
작업복을 입은 습격자 오크들과 이곳 오크 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여기에 있는 건 ‘나약한 민간인들’이 아니었다. 인간 아종(亞種)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근력과 호전성을 지녔다고 평가받는 오크, 경비뿐만 아니라 생도들도 움직인다.
-탕! 타타타타!
“우와아아아악!”
소총을 든 습격자를 향해 식판이나 손도끼가 날아들고 쓰러진 습격자의 무기를 빼앗아 반격한다. 지상의 인간 학교에선 절대로 볼 수 없는 호전성과 터프함, 보통 소총탄과는 다른 굵은 7.62mm 총탄에 맞고도 급소가 아니라면 꿋꿋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흐음, 역시 있네요.”
작업복을 입지 않았음에도 좀 수상한 느낌이 드는 오크들이 있었다.
한 걸음 떨어져서 위에서 여유롭게 조망하니 보이는 수상함,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 편 오크들은 그걸 모르는 것 같다. 흠, 학생만 수백 명이라서 전부 얼굴을 알고 있진 않지만…… 일단 제압하는 게 맞겠지?
거창한 파괴력은 필요 없다.
마력 각성자라고 해도 모두 괴물은 아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 죽이는 데는 ‘적절한 곳에 손가락만 한 구멍 하나’, 제압 정도는 추가로 독을 묻혀주면 거의 90% 확실하다!
-퓨슈슈슈슈슈슉!
트럭 뒤에 엄폐한 채, 양손을 하늘 위로 뻗으며 <독침>들을 만들었다.
싸장님이 만들어낸 짙은 연녹색의 독무를 뚫고 위로 솟구치는 손가락만 한 10개의 <독침>을 포착한 이는 별로 없었다. 게다가 앞에서 싸장님이 닌자처럼 움직이고 있는 순간이라면 더더욱.
-파파팡!
“크흑!”
“컥! 커허허억! 끄으으…….”
총 10개, 그리고 10명의 타깃. 급소 부근에 <독침>을 꽂았지만, 진짜 급소를 노리진 않았다. 일단, 제압이 목적이니까. 지독한 통증에 비틀거리는 오크들, 몇몇 근성 있는 놈은 일어서려고 하기에 한 발 더 쏴줬다.
“BE-LI-AC!”
그 사이, 싸장님이 다른 탑차에 접근, 똑같이 포효를 후려갈긴다. 그와 함께 엔진 소리가 꺼지고 힘없이 움직이다가 꺼지고. 그 안에서 운전하던 오크들은 측면에서 튀어나와 소총을 갈기는 싸장님에게 벌집이 되어 쓰러진다.
좋아, 이대로 계속…….
-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