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04화 (204/350)

제204화

5.

그 순간, 폭발의 섬광과 함께 잠시 의식이 끊어졌다가 이어졌다.

어느새 난 뒤로 날아가 나뒹굴고 있었다. 귓가를 울리는 ‘삐이이-이!’하는 이명, 머리통엔 파편을 맞고 피가 철철 흐른다. 기어코 탑차 한 대가 폭발한 것, 고막이 찢어졌는지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그래도 <눈>의 기능이 청각을 대체해서 작동한다.

“끄으으응…….”

진짜, 방심하다간 ㅈ되는 순간이구나…… 다시 한 번 명심하며 깨진 머리통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내 몸을 대상으로 <연금술>을 사용했다. 뼈와 피의 성분을 분해해서 본드 같은 물질로 깨진 부분을 비스듬하게 묶고 출혈이 일어나는 부분은 틀어막았다.

천천히 일어서서 주위를 훑어봤다.

불타오르는 건물과 폭발에 휘말려 날아간 이들, 탑차에 접근하던 싸장님도 그 폭발에 튕겨 나갔지만 그리 다친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렇게 우그 타람의 모두가 폭발에 정신이 쏠린 가운데, 다른 탑차가 기숙사 방향을 향해 돌진한다.

-콰-앙!

터져나가는 폭발, 잔해가 맹렬하게 날아오지만 몸을 숙인 덕분에 많이 피할 수 있었다. 불타오르는 기숙사, 저기에 내 짐도 있는데…… 하지만, 그런 걸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쏴! 죽여!”

“반푼이 새끼들을 죽여라! 인간의 감언에 현혹당한 변절자들도 죽여라!”

“세로쉬를 위하여! 무르굴을 위하여! 모르칸쉬님을 위하여!”

생도나 경비병들보다 더 빨리 정신을 차린 침입자들은 기세를 타고 날뛰었다. 특히, 하프 오크 생도들에게 그 공격이 집중됐다. 게다가 놈들은 곱게 죽지 않았다.

“세로쉬님! 제가 갑니다!”

-콰-아-ㅇ!

작업복 안에 껴입은 두툼한 방어구 조끼의 정체는 폭탄이었다.

생도와 경비병들의 반격에 의해 죽을 것 같으면 폭발해 주위의 생도와 경비들을 끝장내버린다. 그 광경에 나도 <독침>을 날렸지만 눈을 꿰뚫고 뇌를 순식간에 곤죽으로 만들어도 몇몇 오크들은 기어코 기폭 장치를 누르고 폭사(爆死)했다.

“하…….”

그렇게 얼마 안 가 모든 침입자 오크들이 죽고 총성은 멎었다.

하지만, 잘 지어진 식물원도, 도서관도, 식당도, 교실도…… 모두 박살 나거나 불타오르고 있었다. 내가 살짝 넋이 나간 사이, 싸장님은 다른 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

“빨리 불 꺼! 그리고 잔해에 깔린 애들을 구해! 부상자를 빨리 운동장으로 모으고!”

“모…… 모아라! 부상자들을 옮겨!”

그제야 살짝 넋이 나가 있던 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움직인다. 내게도 가서 불이나 끄라는 듯이 손짓하는 싸장님, 하지만 고갤 저어 거절했다. 그 대신에 난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남아있는 오크들의 몸을 수색했고-.

-푸슛! 푸슛!

“크으으윽!”

“컥!”

<독침>을 날려 수상한 물건이나 혹은 폭탄을 몸에 매고 있는 놈들을 제압했다. 그런 내 모습에 오크 몇 놈이 비명을 지른다.

“이…… 인간이 우릴 죽인다!”

그 말에 아직까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있던 오크 생도와 경비병들이 날 향해 무기를 치켜드는 모습에 난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손을 뻗었다.

“확인해보세요! 폭탄을 매고 있거나 권총을 숨기고 있거나 하는 놈들입니다! 아직, 적이 남아있어요!”

“거짓말이다! 난…….”

어떻게 선동해보려고 하지만 내가 괜히 인맥작을 한 게 아니거든.

카드 게임 내기로 아슬아슬하게 이겨 치킨을 얻어먹었던 오크 경비병이 항변하려는 놈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날리고 그 몸을 뒤진다. 그리곤 보란 듯이 복부에 있는 폭탄을 발견한다. 이미 전선은 <독침>으로 끊어놔서 불발됐지.

“……망할!”

“낯선 얼굴을 경계하세요! 끝난 게 아니에요!”

그 말에 오크들의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이미 내 <독침>을 맞아서 반쯤 약화된 침입자들을 향해 생도와 경비병들이 다구리를 놓는 가운데 난 재빨리 무릎을 꿇고 환자를 돌보고 있는 싸장님의 곁으로 달려갔다.

“괜찮나요? 싸장님?”

“버틸만해. 하, 침입자 놈들이 생도복을 입고 있을 줄은 몰랐네. 야, 알겠으니까 불이나 꺼라!”

“괜찮겠어요?”

“그래, 괜찮으니까. 이거 받아라. 대충 응용할 줄 알지?”

품 안에서 ‘용숨결 물약’이 든 카트리지 서너 개를 던져주곤 가란 듯이 손짓하는 싸장님, 그리곤 부상한 오크들의 몸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치료하신다. 몸 내부의 성분을 조절해 억지로 상처를 지혈하고, 도파민 같은 호르몬의 효과를 대폭 강화해서 고통을 경감하는 거지.

그러면서도 민활하게 주위를 경계하시는 걸 보면…… 진짜 경계 안 해도 되겠네?

입맛을 다시며 전자 담배를 꺼내 카트리지를 넣고 불타오르는 건물 쪽을 향해 움직였다. 시커먼 연기를 뿜어내며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화학 관련 지식도 배우는 곳인 만큼 보관한 화학 약품들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불! 불 꺼! 불!”

“마법사 없어?!”

“안에 생도들 있어! 구해야 해!”

하지만, 오크들은 무력했다.

이 지하에 지어진 건물이 소방법을 제대로 준수할 리가 없지. 건물에 소화전도 없다. 대부분의 오크들이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 몇몇 <연금술>과 <대기 마법>을 익힌 교수진 마법사들이 움직이지만 불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스으으으으읍!”

그에 난 전자 담배의 버튼을 켜고 그 연무를 크게 빨아들였다.

동시에 혈액을 변환시키며 <연금술>을 사용했다. 내가 배운 용숨결은 <녹색용의 포효>밖에 없지만 그래도 응용하기 나름이지. 일단, 유지 시간은 최대한 낮게. 그리고 공기의 성질을 변환시키면…….

-푸화아아아아악!

내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든 흰색 숨결이 건물 전체를 휩쓴다.

공기 중 산소의 성질을 변환시키는 에너지 덩어리, 화재의 3요소 중 하나인 산소가 차단되자 불길이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솔직히, 내가 내뱉은 건 질식성 독 덩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불에 타죽는 것보단 낫겠지?

“이거 얼마 안 가니까 빨리 가서 구해욧!”

“가자!”

내 호통에 몸에 물을 끼얹고 허겁지겁 달려가는 생도들, 그 선두에는 날 호구로 얕보다가 발차기 한 방에 떡실신 됐던 오크 녀석이 있었다. 뒷모습을 보니 총에 맞았는데도 열심이네. 아주 나쁜 면만 있는 놈은 아니구만. 그렇게 나름 빠르게 진압했지만…….

“숨! 숨 쉬란 말이야!”

“여, 연금술사님! 여기 숨을 안 쉬어요!”

“포션! 포션 가져와! 교수님 죽는다!”

이미 상황은 아비규환이었다. 보이는 것만 수백 명은 죽은 것 같다.

“하아, 젠장.”

그 엿 된 풍경에 난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6.

테러에 가장 먼저 달려온 건, 터널 너머의 인간 측 군부대였다.

영역을 침범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오크들은 제지하지 못했다. 어찌 됐든 간에 인간 측 군병력이 테러의 위협을 들어 우그 타람의 입구를 봉쇄하면서 상황은 안정됐다.

“하아, 시잇X.”

군부대에서 가져온 구급 물자들이 풀리고 어느 정도 급한 불이 꺼진 가운데, 싸장님은 한구석 테이블에 앉아서 피에 젖은 팔로 전자 담배를 뻐끔거렸다. 그에 나도 싸장님의 옆에 조용히 함께 섰다.

“이게 뭘까요…….”

“낸들 아냐? 할 거 없으면 니도 앉아서 담배나 피워라.”

내 넋 나간 중얼거림에 어깰 으쓱이는 싸장님, 그렇게 싸장님의 허락 아래에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고 있는데 군 병력 쪽에서 소령 계급을 단 한 남자가 걸어왔다. 평범한 병사가 아닌 ‘마력 각성자’, 그는 우리 쪽에 와서 입을 열었다.

“강수영 연금술사님?”

“왜?”

“현재 이곳은 오크 테러리스트로 인해 위험합니다. 저들 중에서 테러리스트가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통로를 통해 군부대 쪽으로 자리를 옮기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만…….”

말하면서 싸장님의 다리를 지그시 보는 소령, 우그 타람 곳곳에 깔린 CCTV는 군부대 쪽에서도 볼 수 있는데 그걸로 싸장님이 멀쩡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본 듯했다. 그에 싸장님은 그 소령의 얼굴을 향해 연무를 뱉어내며 웃는다.

“싫은데?”

“…….”

“어떤 새끼가 이 X랄을 벌인 건지 모르겠다만…… 날 쫓아내거나 죽이려는 게 목적이겠지.”

대꾸와 함께 박살 난 우그 타람을 천천히 훑는 싸장님은 이내 이를 ‘으드득!’ 갈며 살벌한 어조로 중얼거린다.

“난, 날 엿 먹이려는 놈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아.”

“…….”

“계급이 좀 높은 걸 보니 알고 있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이 흰둥이도 만만찮은 괴물이란 것도. 우리 목숨은 우리가 스스로 챙길 수 있어.”

뜬금없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하는 싸장님, 그에 소령도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다. 아니, 진짜 알고 있는 거였어? 병사 아저씨들하고는 농담 따먹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렇게 싸장님이 이죽대는 가운데, 입구를 봉쇄하고 있는 군병력 쪽에서 소란이 벌어진다.

이동식 고사포를 배치한 상황, ‘누가 오든지 간에 갈아버려라.’는 말을 한 걸 들었는데…….

시선을 돌리니 오크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배치된 전사급 경비병들보다 더 큰 덩치들, 그 중심에 2m 15cm는 넘을 것 같은 거대한 오크가 있다. 웬만한 사람의 몸통보다 굵어 보이는 팔뚝과 두꺼운 목. 연녹색의 얼굴에 정장을 입었어도 느껴지는 위압적인 분위기…….

그리고, 내 <눈>에만 보이는 황금빛 ‘세로쉬의 가호’.

제롬, 새롭게 취임한 뉴 송파구의 시장이었다. 아무리 닥치는 대로 갈아버리고 명령했다고 한들, 진짜 저 양반을 쏘면 그날로 송파구에 전쟁이 일어날 거다. 그렇게 군병력들을 물리치면서 온 오크 병력은 부상자들에게 추가적인 포션을 건네거나 한다.

그 가운데, 전쟁 군주는 호위병력을 데리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에서 보니…… 오무혁, 그 양반보다 좀 차분해 보이는 인상이다. 아니, 냉정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주위의 군병력들에 가볍게 고갤 까닥인 그는 주위 사람을 물리치며 싸장님 앞에 섰다.

“괜찮으십니까? 강수영 연금술사?”

“이 정돈 별것 아니야. 지상에서도 많이 겪어봤거든.”

“죄송합니다. 안전에 대해 보장한다고 했건만…… 할 말이 없군요.”

깍듯하게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제롬, 그에 오크들 사이에서 놀람이 퍼져나간다.

사실, 당연한 것이긴 하다. 우리 싸장님이 이렇게 지하로 내려온 이유가 바깥에서의 납치 같은 것을 경계해서니까. 안전을 약속했는데 이렇게 뚫려버렸으니 할 말이 없겠지. 진짜, 하반신이 안 움직였으면…… 위험했을지도?

그에 싸장님은 피식 웃는다.

“괜찮아, 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저희는 불만이 많습니다.”

싸장님과는 달리 곧바로 불만을 제기하는 소령, 그에 오크 기사들이 살기를 뿜어낸다. 2m가량 되는 덩치들, 냉정하게 말해 소령은 저기 기사들 중 하나랑 붙어도 찢어질 거다. 하지만, 그는 기사들이 내뿜는 살기에도 당당했다.

“강수영 연금술사님은 대한민국의 소중한 인재입니다. 그리고, 뉴 송파구 측에선 그 인재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했고요. 저희 측으로선 불만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수영 연금술사님이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말이죠.”

“……할 말이 없군요. 전적으로 경비에 소홀했던 저희의 잘못입니다.”

“CCTV 확인 결과, 테러리스트들은 모르칸쉬의 이름을 울부짖었습니다. 뉴 송파구에선 대처할 수…….”

-쾅!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령의 말을 도중에 끊어버리는 싸장님, 그에 소령이 말을 멈추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뻐끔대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 내 앞에서 이러지 말고 정식으로 불만 있다고 공문을 보내.”

“하지만, 전 이곳의…….”

“계속 X같이 굴면 이곳에 더 머무를 거야.”

“…….”

“지금 내가 짜증이 치솟거든? 내 보금자리가 박살 났어. 책임자인 이 이쪽이랑 대화를 하고 싶은데…… 웬 소령 나부랭이가 X랄X랄을 해서 말도 못하고 있지. 내가 안 빡치겠어? 그러니까 좀 가.”

입을 다문 소령을 향해 가란 듯이 손짓하는 싸장님, 그에 소령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사라지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끄고 제롬 시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아무리 잘못이 있다지만 저런 햇병아리에게 지적당하는 것도 괴롭지. 참나, 여기에 있는 호위 한 명도 제대로 감당 못 하게 생겨서 말이야.”

“하하.”

그에 낮게 웃음을 흘리는 전쟁 군주, 호위를 맡은 오크 기사들도 살짝 콧김을 뿜으며 수긍한다. 이어서 싸장님은 탁자에 올린 두 손을 깍지 끼며 전쟁 군주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그 타람이 이 꼴이 난 걸 좀 설명을 들어야겠어. 도대체 어떤 개X끼가 이런 짓을 벌인 거야? 그쪽도 여기를 소중하게 여기는 거 아니었어? 철저하게 지키겠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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