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6화
막간. 라면 끓여 주시나요?
1.
전쟁 군주가 사라진 뒤, 싸장님은 우그 타람을 점거한 군인들을 내쫓았다.
소령은 추가 테러 위협을 언급하며 은연중에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고 어필했는데, ‘상’ 또라이인 우리 싸장님은 ‘그래? 그럼 일 때려치움. ㅅㄱ.’를 시전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휴대전화로 어딘가 전화해 소령의 명찰 이름을 언급하며 ‘이 새끼 때문에 이번 달 예정 못 낼 것 같다.’고 했지.
그 뒤에 벌어진 일이 참 익스트림했다.
전화를 꺼내 들 때부터 굳어진 채 막지도 못했던 불쌍한 군바리는 곧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쏟아지는 ‘별의 세례’에 박살 났다. 그러기에 왜 우리 싸장님에게 깝쳤을까? 나처럼 배를 발랑 까뒤집고 빠르게 복종의 표시를 했어야지!
그렇게 군병력이 물러난 뒤, 전쟁 군주가 보낸 병력에 의해 우그 타람이 수습되기 시작했다.
아직 멀쩡한 건물들은 부상자를 위한 병동이 됐으며, 싸장님은 요번 달 기업들 발주 물량 처리한다고 연금술 지하 공방(테러를 안 당해서 멀쩡했다)에 처박혔다.
그리고, 난 반쯤 유기됐다.
머리뼈가 깨지고 피가 철철 흐르는 부상을 입은(공산품 포션을 한 모금 먹어서 이미 회복됐지만) 내게 ‘알아서 퇴근해라.’ 하고 싸장님은 가셨다. 그에 멍하니 좀 쉬다가……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확실히, 튼튼하긴 해요.”
마빡 아가씨에게 받은 커스텀 스마트폰, 한 번 구르고 콘크리트 파편에 맞았는데도 액정까지 멀쩡하다. ‘연금강’에 미궁의 신소재로 보강된 물품이라고 하더니 진짜 튼튼하네. 유일한 흠이라면…… 비싸다는 거? 1,000만 원만 내라고 했을 땐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재룟값만 훌쩍 1,000만 원을 넘더라.
어쨌든 난 머리가 깨져서 피 흘리는 셀카를 찍고, 이어서 박살 난 우그 타람 풍경도 찍어서 이종족 문화 교류부 단톡방에 올렸다.
(사진)
[나] : 진짜 어질어질하다.
[마빡이] : ??? 머임?
[나] : 여기 폭탄 테러 일어남.
[마빡이] : 미X?! 어디 다쳤냐?
[미친 땅꼬마] : 돌았네; 저거 건물 박살 난 거 보면 TNT 100kg 정도는 터졌겠는데? 어떻게 된 거? 경계 삼엄하다고 했잖아?
[서예린] : 괜찮음?
[나] : 난 파편에 머리 좀 깨진 것 빼고 괜찮음. 포션으로 완치함. 그리고 테러는 보급으로 위장한 트럭 몇 대가 와서 터짐. 내부에 미리 잠입해 있던 놈도 있었고.
[혜영이] : 새벽 오빠, 우그 타람? 거기 애들 많이 다쳤어요? 어떻게 된 거? 다른 사진은 없나요?
[나] : 기달, 찍어서 보내줌.
두서없는 문자를 보내는 혜영이.
그러고 보니 혜영이는 여기에 있는 하프 오크 애들하고 잘 아는 사이다. 내가 여기서 일한다는 거 알자 놀라 하면서도 하프 오크 애들을 소개해줬고.
적당히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은 후, 혜영이만 초대한 톡방을 만들어서 올려줬다.
그냥 올리려고 했는데, 찍고 보니 혐짤이 많아서…… 그걸 본 혜영이의 질문이 쏟아진다. 몇 명이나 죽었냐? 누구누구는 살아있느냐? 테러를 일으킨 놈은 누구냐…… 그에 난 일일이 답하는 대신에 톡을 썼다.
[나] : 상황 터진 지 얼마 안 돼서 나도 정확히 몰라. 오늘 밖에서 잘 거니까, 그 전에 한번 만나자.
[혜영이] : 그럼 바로 미르 터미널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24시간 카페 있던 데로.
[나] : 그래, 궁금한 항목들 여기에 다 적어놔. 그에 대해서 알아보고 올라갈 테니까.
얼마나 달아올랐는지 시간도 물어보지 않고 미르의 뉴 송파구 출구의 카페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혜영이. 그에 한숨을 내쉰 뒤, 난 나가기 전에 혜영이가 물어본 항목들을 알아내기 위해 움직였다.
2.
우그 타람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일을 끝낸 뒤, 난 수면을 취하기 위해 지상으로 복귀했다.
다행히 군부대에서 ‘조사한다느니~’하면서 붙잡지는 않았다. 그렇게 지상으로 올라가니 밤 10시, 뉴 송파구 터미널 안쪽에 있는 24시간 카페에 추리닝 차림의 혜영이와 마빡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원래는 혜영이만 만나기로 했지만 톡을 하다 보니 마빡이도 함께하게 됐다.
기업가라서 그런지 이번 일에 궁금한 게 많으시더라고? 다만, 내가 다쳤는데 사업 관련 얘기를 잘 못 꺼내시는 것 같기에 물어보면 함께 답변해 주겠다고 했다. 평소의 활기차고 힘찬 모습과는 전혀 다른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테이블에 앉아있던 혜영이는 날 보자마자 달려온다. 이어서 마빡이도 굳은 얼굴로 따라온다.
“새벽 오빠, 어떻게 된 일임까? 테러?!”
“야, 너 다쳤다며. 괜찮아? 사진은 피 철철 흘리던데.”
“괜찮으니 진정해요. 일단, 이야기가 길어질 테니 뭐라도 마시면서 하죠.”
다급한 혜영이를 진정시킨 후, 난 따뜻한 코코아를 한 잔 시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코아를 받고 테이블에 앉아서 난 혜영이가 질문했던 항목들을 차근차근 대답했다.
사망자 120명에 부상자 140명가량, 주동자 오크 총 24명이며 전부 죽었음, 전소된 건물 2동, 혜영이가 언급한 친구의 생사…… 안타깝지만 혜영이의 친구는 많이 죽었다. 테러리스트들은 하프 오크들을 집중적으로 노렸거든. 살아난 애들도 몇 명은 불구가 됐고.
그렇게 대답을 듣고 난 혜영이가 살짝 넋이 나가 있을 때, 마빡 아가씨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강수영 연금술사님은?”
“싸장님도 괜찮아요. 테러 끝나고 기업들 발주 물량 만들러 가셨어요. 지하 공방은 피해가 없거든요.”
“허, 안 올라오셨어?”
“네.”
황당하다는 반응의 마빡이, 그사이에 생각에 잠겨 있던 혜영이는 날 보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제…… 우그 타람은 어떻게 되는 검까?”
“으음, 글쎄요?”
우그 타람에 대한 질문에 난 턱을 쓰다듬었다.
우그 타람은 하프 오크들의 등용문이나 다름없었다. 제롬 시장은 ‘공정’하게 공부 능력 위주로 뽑았다고 하지만…… 일반 오크보다 하프 오크가 엉덩이 붙이고 하는 면에선 더 낫거든. 혜영이도 엄청 좋아하는 눈치였고. 다만, 그냥 오크들은 하프도 취급해줘서 좀 뿔난 게 보였다.
“일단, 저희 싸장님이랑 시장님이랑 이야기 나눴답니다.”
“제롬 시장님 말임까?”
“네, 도중에 오셨거든요. 전,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들었죠. 일단, 저희 싸장님과 시장님은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으세요. 제롬 시장님은 자기의 숙원 사업이신 것 같고, 우리 싸장님은 성격이 좀 뒤틀려서 남에게 엿 먹으면 참질 못하거든요.”
내 대답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혜영이, 그런 애 앞에서 이러긴 싫지만…… 그래도 말해야겠지.
“하지만, 몰라요. 우그 타람이 유지될지 말지.”
“……모른다는 말임까? 주인이 가기 싫다는데!?”
“저희 싸장님이 지하로 온 이유는 ‘안전’이에요.”
반발하는 혜영이를 향해 난 부정적인 전망을 밝혔다.
“싸장님에 대해 조사해봤으면 알겠지만, 싸장님은 힘을 갖추기 전까지 납치 위협에 많이 시달렸어요. 심지어 대한민국의 정부 기관도 배신해서 넘겨버릴 뻔했죠. 그래서 ‘인간불신’에 ‘안전’에 대한 편집증에 가까운 집착이 있어요. 이번에 정부와 기업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오크를 믿겠다.’해서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고.”
“…….”
“근데, 이번 테러가 벌어졌어요. 사실상, ‘오크들을 믿겠다.’는 명분이 사라졌죠. 게다가 싸장님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면서 다리를 움직이는 걸 CCTV에 보여줬거든요? 아직 다 안 나았다는 빌미로 요청을 거스르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무는 혜영이를 향해 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싸장님은 대한민국의 거대 기업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엄청 중요한 중간 자원 공급처이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관리할 정도죠. 아무리 싸장님이 계속 머무르려고 해도 계속해서 정부와 기업의 압박이 들어오면…… 혹시 몰라요.”
내 말에 떨리는 눈으로 마빡이를 응시하는 혜영이, 그에 아가씨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새벽이 말이 전부 맞아.”
“…….”
“애초에 우그 타람과 연결되는 터널과 그곳을 지키는 새로운 군 병력 초소가 강수영 연금술사님 하나 때문에 생긴 거야. 그만큼, 그 물품들이 중요하단 거지. 단편적인 예로 지금 한국의 반도체가 세계에서 손꼽히는 이유가 강수영 연금술사님 덕분이야. 다른 국가의 연금술사들은 그 반도체 처리에 들어가는 초정밀 공정용 액체를 못 만들거든.”
“……그럼?”
“안 그래도 이종족 지구에 들어간다고 하셨을 때, 논란이 많았는데 이번 일로 엄청 압박할 게 뻔해.”
음, 싸장님의 발주 목록에 웬 반도체 기업이 있나 싶었는데 그런 이유가 있는 줄은 몰랐네. 어찌 됐든 간에 혜영이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는 가운데 난 더 부정적인 전망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테러의 배후가 심상찮아요.”
“배후…… 말임까?”
“네, 시장님-전쟁 군주의 명령을 어긴 오크가 있어요.”
내 말에 혜영이는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듯 얼굴을 굳힌다.
세로쉬의 세례를 받았기에 오크들에게 본능적으로 따르게 하는 아우라를 흩뿌리는 ‘오크 전쟁 군주’, 그런 전쟁 군주의 말을 어기면서까지 오크들이 테러를 저질렀다. 물론, 그러한 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건…….
“테러리스트 한 놈이 모르칸쉬라는 그 전쟁 군주 이름을 부르짖었어요. 그에 관해서 싸장님과 뉴 송파구 시장님도 언급했고요. 파견된 기사들의 말을 엿들어보니까……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 말임까?”
“그…… 자칫 잘못하면 뉴 송파구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혜영이가 질문한 것들에 대해 알아보면서 파견된 오크 기사들의 말도 엿들었다. 들어보니 ‘모르칸쉬 전쟁 군주께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건가?’, ‘하긴, 요즘 세력이 너무 커졌다.’, ‘상층에 유입된 놈들이 불만이 많다.’ 등…… 의미심장한 말이 많았지.
그에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긴 혜영이와 마빡이, 이내 혜영이는 고갤 끄덕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감사함다. 정말 많이 도움이 되었슴다. 고맙슴다. 새벽 오빠.”
“뭘요, 후후. 당연히 도와줘야죠.”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슴다. 해야 될 게 있어서…….”
“심란할 텐데, 빨리 가 보세요.”
내 웃음에 똑같이 웃는 혜영이, 이내 고갤 까닥하곤 재빨리 밖으로 걸어간다. 그 추리닝 차림의 뒷모습을 보며 코코아를 마시는데 마빡이가 입을 연다.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뭐가요?”
“아니, 지하에 출퇴근할 거냐고. 좀 위험하잖아? 테러도 벌어지고.”
나름 걱정해주시는 우리 아가씨. 음, 왠지 ‘위험해도 계속 출퇴근해서 공급에 차질 없게 해라! 이 하청 업자야!’로 들리는 건 내 착각일까? ……좀 꼴 받네? 콱! 안 하겠다고 해봐!?
하지만, 그럴 순 없지.
사실, 난 약물 공급에 있어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사람이니까. 안 가면 내가 없다고 공급에 차질이 없단 게 뽀록날 텐데…… 그럴 순 없잖아? 한 달에 1억 원이라는 ‘달콤한 불로소득’을 포기할 순 없지!
“하하, 계속 출퇴근해야죠!”
“……아니, 정말 괜찮겠어? 진짜 위험한 거 아니야? 전쟁 터질 수도 있다며? 테러에 머리에 피도 철철 흘렸고!”
“걱정 마세요! 싸장님이랑 함께하니까 그리 위험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도 꽤 실력이 있다고요? 무려 ‘특급 경계 대상’이에요!”
“…….”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해도 우리 아가씨 물량은 챙겨드려야죠!”
내 말에 뭔가 미묘한 표정을 짓는 마빡이, 하지만 이내 한숨을 푹 내뱉곤 자리에서 일어서서 날 내려다본다.
“오늘 잘 곳 알아놨어?”
“뭐, 기숙사 해지했으니 적당히 시내 호텔에서…….”
“예약한 곳 없으면 우리 집 가자. 재워줄게.”
내 말을 끊는 마빡 아가씨,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멀뚱히 바라보자 마빡이는 어서 일어서란 듯이 손짓한다. 헤헤,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
“헤헤, 아직 밥 못 먹었는데 라면이라도 끓여주시나-악!”
라면 드립을 치니 문답 무용으로 내 정수리에 꿀밤을 맥이는 마빡이, 어우 머리뼈 깨진 지 얼마 안 됐는데 후려치니 X나 아프네! 그렇게 탁자에 엎드려 정수리를 붙잡고 끙끙거리고 있는 날 향해-.
“따라와.”
그 말과 함께 마빡이는 앞장서서 카페 밖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