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07화 (207/350)

제207화

42화. 택배비는 포함이 안 됐습니다만……?

1.

아가씨의 비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우린 아가씨의 집으로 향했다.

스파이 아줌마를 털었을 때 방문했던 송파구의 고급 주거 단지인 리버 벨리,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오니 감동스럽게도…… 아가씨께서 직접 라면을 끓여주셨더라?! 그리곤 퉁명스럽게 ‘안방에 이불하고 요 사놨으니 먹고 자라.’고 하셨다. 아무리 노비라고 해도 위험한 곳에 보내니 양심에 찔리셨겠지.

그렇게 마님이 주신 라면을 먹고 난 곱게 수면제 섭취 후 잠들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이 밝았다.

“뭐야? 너 깨어있었어? 옷도 다 입었네?”

방문을 열고 등장한 마빡이, 손에 들린 커다란 쟁반 위엔 샌드위치와 우유 한 컵이 놓여 있었다. 그에 난 요 위에서 가부좌를 풀며 웃었다.

“일어나서 명상 좀 하고 있었죠.”

“……의외네. 그런 거 할 것처럼 안 보이는데.”

내 앞에 쟁반을 내려놓으면서 말하는 아가씨, 그에 난 샌드위치를 집으며 어깰 으쓱였다.

“제가 잠을 한 번에 몰아서 자잖아요? 월요일 이후론 항상 반쯤 멍해져 있는 상태인데, 이렇게 잠을 보충하고 난 뒤에 샤워하고 깨끗해진 정신으로 한번 되짚어보는 거죠. 내가 저번 주에 무얼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말이에요.”

“허…….”

“그동안 쌓은 지식도 한번 되돌아보고.”

내 루틴 중 하나다. 일어나자마자 화장실 가서 이틀간 쌓인 것들을 빼고 샤워한 뒤, 두 눈을 감고 <게임 시스템>의 ‘메모장’을 켜고 내용을 훑는 거. 그런 내 대답에 마빡이는 끔찍하다는 듯이 진저리친다.

“일주일 만에 수면이라니, 듣기만 해도 괴롭네. 그러고서 일상생활이 된다는 게 신기하다.”

“하하, 익숙해지면 할 만해요.”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리고 오늘 무슨 날인지 알지?”

“중간고사잖아요.”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으면서 대꾸하자, 아가씨는 쟁반 한쪽 위에 접어놓은 종이를 가리켰다.

“그거, 오늘 ‘룬 문자의 수학적 이해’ 과목의 예상 문제야. 작년 시험 문제랑 재작년 시험 문제를 뒤섞어서 내가 만들어봤어. 하나는 문제지고 또 하나는 해설지니까 풀어봐.”

“어이구, 이런 걸 다…….”

생각지도 못한 호의에 내가 굽실거리자 마빡이는 피식 웃곤 푸른 헤어밴드를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

“됐고,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일어났으니 같이 가자. 밑에 차 대기해 놨으니까.”

“넵!”

아가씨의 말에 난 샌드위치를 입에 욱여넣고 우유를 완샷했다.

2.

2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 반, 어느덧 미르는 중간고사 기간에 들어섰다.

오전 시간에 봐야 하는 학년 공통 과목은 <눈>을 이용한 커닝으로 때웠지만, 오후에 보는 선택수업인 ‘마력학’하고 ‘룬 문자의 수학적 이해’는 그럴 수 없었다. 둘 다 싸장님이 배우라고 하신 과목이거든. 내게 필요한 지식인만큼 진지하게 진검승부를 했다.

다행히, 둘 다 어렵지 않았다.

‘마력학’은 암기 과목에 가까워서 원래부터 잘하던 과목이었고, ‘룬 문자의 수학적 이해’ 과목도 쉬웠다. 마빡 아가씨가 내준 예상 문제보다 쉬웠으니 말 다했지. 해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만점일 것 같다.

“~♬”

그렇게 오늘의 과목 시험을 끝내고 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새로운 동아리 부실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출근하겠지만 싸장님이 ‘복구 문제로 안 와도 되니, 중간고사 기간 동안 시험이나 잘 봐라.’는 문자를 보내셨다. 그러니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렇게 부실 안쪽으로 들어서자 혼혈 애들이 먼저 와서 공부하고 있었다. 딱히 이상한 건 아니다. 중간고사 기간은 겹치거든.

……하지만, 분위기가 좀 요상했다.

애들이 그다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시험 기간임에도 오히려 평소에 간간이 보여주는 공부하는 태도보다 더 안 좋네. 그리고…… 항상 4명이 공부하는데 혜영이가 없네? 어쨌든 적당히 빈자리에 앉자마자 지아라가 입을 연다.

“야, 너 혜영이한테 도대체 뭔 이야기 했냐?”

“네?”

“혜영이가 오늘 안 왔어. 중간고사 기간인데, 무단결석이야.”

난데없는 혜영이의 무단결석 소식, 그에 난 잠시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말문이 막혔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하냐고 톡 보내 봐요.”

“걔, 토요일 아침에 뉴 송파구에 진입했어. 아직 안 나온 건지 연락 자체가 안 가.”

고갤 절레절레 젓는 지아라, 싸장님이 있는 우그 타람에선 정상적으로 인터넷과 전화가 작동되지만, 다른 뉴 송파구 지역에선 안 된다고 알고 있다. 북한처럼 통제 사회거든. 이어서 반귀쟁이-이경이 속삭이듯이 작게 덧붙인다.

“가끔 뉴 송파구 방문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닌데…… 그래도 월요일 아침엔 꼭 돌아왔어요.”

“이런 일 처음.”

과묵한 반깜귀-이영의 덧붙임, 그에 난 작게 신음을 흘렸다. 아무리 봐도 내가 전한 소식 때문에 그런 건 거의 확실해 보이긴 하는데…….

“전, 우그 타람의 테러 소식 정도밖에 말하지 않았는데요.”

“자세히 좀 말해봐. 도대체 뭔 말을 한 거야?”

“어, 일단…….”

<게임 시스템> ‘메모장’에 적어놨던 것들을 다시 띄우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크들의 테러, 그 숫자, 한 오크가 부르짖던 모르칸쉬라는 이름, 그에 대한 제롬 시장과 싸장님의 평가…… 난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듣는 혼혈 애들의 표정은 점점 썩어들어 간다.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자 지아라가 얼굴을 붙잡으며 한숨을 내뱉는다.

“……하, X나 심각한 이야기인데.”

“왜요?”

“전쟁 군주들끼리 싸울 것 같다잖아! 하긴, 요즘 아래쪽 분위기가 안 그래도 심상찮다고 하긴 했지. X발, 오랜만에 한번 내려가 봐야 하나?”

난 방관자라서 ‘전쟁이 날 수도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터전이 그곳에 있는 혼혈 애들에게는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른 것 같다. 내 말이 끝나자 지아라는 아예 시험공부는 제쳐놓고 반귀쟁이들과 앞으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내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뚱하게 있을 때-

-덜컥!

각자 선택과목시험을 마친 서예린과 마빡이가 들어왔다.

“……머임?”

시험공부와는 거리가 먼 동아리 분위기에 탁자에 앉으며 고갤 갸웃하는 서예린, 그에 지아라가 ‘뉴 송파구 분위기가 심상찮아서요.’라고 말하고 아가씨도 앉으며 의견을 꺼낸다.

“우그 타람 테러 때문에 그런 거야?”

“네, 언니. 그냥 테러도 아니고 오크가 그랬다는데…… 심상찮잖아요?”

“흠, 하긴. 이번 테러가 좀 심각하긴 하지. 인간 쪽도 함께 건드려버렸거든. 뉴스는 타지 않았지만 재계에선 꽤나 민감하게 반응 중이야.”

고갤 끄덕이며 말하는 마빡 아가씨, 혼혈 애들이 좀 말해달라는 듯이 애절하게 바라보자 아가씨는 천천히 썰을 풀었다.

재계와 정치권에서의 반응, 참고로 내 테러소식을 듣고 물량에 차질이 있을 것 같아서 토요일부터 뉴 송파구에서 재배되는 특수한 재료의 물량확보에 들어갔다고 첨언한다. 미궁 원자재 선물(先物) 거래도 빠르게 정리했다고…… 역시, 마빡 아가씨. 유능하시다니까?

어쨌든 갑자기 동아리는 공부는 뒷전이고 전쟁 이야기로 달아올랐다.

아니, 독서실엔 사람이 빡빡할 것 같아서 여기서 공부하자고 했더니 이렇게 되네. 상대적으로 아는 게 적은 나와 서예린이 멀뚱히 방관자가 된 가운데, 어느새 이야기는 ‘과연 전쟁이 날까?’에서 ‘전쟁이 나면 어떻게 될까?’로 바뀌었다.

“아마, 뉴 송파구의 오크 제외 이종족들은 전부 제롬 쪽에 붙어서 싸울 걸요?”

“하긴, 그는 최소한 이종족의 필요성을 알고 어느 정도 존중하니까. 그런 면에서 모르칸쉬는 답이 없지. 아마, 인간도 비슷할 것 같아.”

“인간이 제롬 쪽을 편들어준다면 게임은 뻔하겠네요. 뭐.”

아가씨의 대답에 피식 웃으며 어깰 으쓱이는 지아라, 하지만 마빡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갤 젓는다.

“아니, 그렇게 장담할 순 없어.”

“……네!? 왜요?”

“사실, 굳이 간섭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많아. 사실, 보신(保身)주의적 상향이 강한 정치권에선 이게 더 대세야. 오무혁이 일으킨 기적을 생각해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거지.”

“…….”

“게다가 모르칸쉬는 오크 근본주의자들 편이야. 극렬 세로쉬 주의자들. 함부로 제롬 측에게 힘을 실어주면 전 세계 각국의 오크들이 반발할 거야. 자칫 잘못하다간 불만은 품은 오크가 한국에 테러를 저지를지도 모르지. 과연 정부가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그에 다른 애들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오무혁이 일으킨 기적, 그로 인한 오크들의 관심. 대한민국 정부가 개입해서 모르칸쉬를 압박하기엔 너무 부담이 된다는 의견이었다. 그에 혼혈 애들은 이내 한숨을 내쉰다.

“일단, 킨한테 연락해야겠네요. X발, 난민신청이라도 하라고 해야 하나?”

“킨?”

“혈족 말이에요. 절 반푼이 취급하긴 하지만 그래도 계약은 계약이거든요.”

쓰게 웃는 지아라, 반귀쟁이들도 고갤 끄덕였다. 그렇게 살짝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우린 각자 공부를 이어나갔다. 서예린 빼고. 과자 먹고 기웃기웃 거리다가 놀이방에 처박혔거든. 진짜 공부라곤 안 하는구만. 쯧쯧…….

그리고 다음 날에도, 그 다음다음 날에도, 심지어 시험 기간이 다 끝난 일주일 뒤에도, 혜영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3.

중간고사가 끝난 뒤, 난 다시 싸장님의 사축이 되었다.

일주일 만에 복귀한 우그 타람 또한 어느 정도 복구가 되어있었다. 경계는 더 삼엄해졌고. 기사급 병력들이 더 보충되었다. 그렇게 살짝 삭막한 분위기에서 나는 다시 <연금술> 강의를 맡게 되었다.

“새꺄, 밥 먹는데 왜 이리 죽상이냐? 밥맛 떨어지잖아.”

저녁 시간, 싸장님의 공방 안에서 난 싸장님과 함께 식사했다.

테러 위협 이후, 싸장님을 향한 보안은 더더욱 강화됐다. 식당에서 애들과 함께 밥을 못 먹을 정도면 말 다했지. 심지어 밥도 내가 하게 됐어. 밖에서 사 온 재료들로 제육 잘 볶아왔지. 어쨌든 그런 싸장님의 타박에 난 수저를 내려놓고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싸장님.”

“왜?”

“여기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젓가락으로 제육볶음을 집으며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바라보는 싸장님, 그에 난 쌀밥을 깨작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애들에게 이번 테러를 말해주니까 뉴 송파구에서 전쟁 날 수도 있다고 다들 호들갑이던데요? 이곳에서도 그렇고, 밖의 기업들도 그렇고…….”

그 말에 멈칫하는 싸장님은 밥을 씹으며 생각하는 것 같다가 이내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어. 니가 말한 그 수상하단 놈 있지?”

“화학 석사님이요?”

그러고 보니 오늘 출근해서 그 오크를 보지 못했네? 내 대꾸에 싸장님은 마지막 밥을 입에 털어 넣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사납게 이죽거렸다.

“그놈이 테러리스트라는 증거를 확보했어. 그 X발 새끼, 감히 이곳의 설비로 <연금술>을 해서 폭약을 강화시켰더라? 그리고, 약물도 여기서 만들었고! 난데없이 우그 타람에서 등장한 생도복 차림의 테러리스트도 놈이 들여놓은 거야.”

“어쩐지, 오늘 안 보이더라니…… 그럼 잡혀갔나요?”

그에 싸장님은 물 한 컵을 완샷하고 고갤 저었다.

“아니, 잡히진 않았어. 수사망이 조여 오는 걸 눈치채고 탈출하려다가 자결했지. 그 여파에 쫓고 있던 비밀 요원 2명이 죽었고. 현장을 보니까 아예 폭사했더라. 오크 마법사들 의견으로는 <내면의 불씨>라는 마법에 몇 가지 <연금술>이 포함된 것 같다고 하더라고.”

“흠…….”

자결이라, 참 힘든 건데 그걸 픽픽 해내다니 누구 짓인지 궁금해지네. 살짝 질린다는 내 표정에 싸장님은 어깰 으쓱인다.

“심문은 하지 못해서 ‘누가 범인이다!’라고 100%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대충 분위기를 보아하니 모르칸쉬로 굳어지는 것 같더라.”

“그 또 다른 전쟁 군주라는 놈이요?”

“그래, 정황 증거가 많거든. 그 석사 녀석이 제롬이 직접 미국에서 불러온 사람이긴 한데…… 모르칸쉬의 조직과 꽤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밝혀졌어. 테러에 사용된 폭약도 모르칸쉬 휘하의 건축업자가 쓰는 발파용 폭약과 똑같고.”

팔짱을 끼면서 싸장님은 얼굴을 찡그렸다.

“어쩌면 충돌은 필연적인 걸지도 모르겠어. 두 세력 간에 점점 불만이 쌓여가는 걸 잘 모르는 제삼자인 나도 알 정도니까.”

“흐음.”

“뭐, 어쨌든 간에 전쟁 터지면 난 작정하고 제롬을 밀어줄 거야. 그때 되면 너도 생산라인에 투입할 거니 알아둬라.”

“케흑! 켁!”

싸장님의 돌발 선언에 밥 다 먹고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 아니, 나보고 생산라인에 들어가라고?

“저 제품 못 만드는 거 아시잖아요.”

“독극물은 잘 만들 수 있잖아? 오히려 더 끝내주지. 감히 날 건드린 새끼에게 ‘화학전’의 참맛을 보여줘야지, 크크.”

음침하게 웃음을 흘리며 손바닥을 비비는 싸장님, 전범이 따로 있는 게 아니구나…… 하지만, 확실히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긴 하다. 이 지하 공간이 마법적인 효과에 의해 서서히 환기가 된다곤 하지만 그래도 밖만큼은 아니니까. ‘르피너스의 장난감’에서도 사태 초기에 독가스로 한 번 청소했다고 나오고.

“끄응, 부디 전쟁 나기 전에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뭔 소리냐? 돌아왔으면 좋겠다니?”

“아, 저번에 말한 미르에 입학한 하프 오크-혜영이가 사라졌거든요.”

“사라져?”

“넵, 여기에 내려왔는데 이번 중간고사 기간에도 안 나타났어요.”

설거지하면서 난 썰을 풀었다. 우그 타람에 테러가 벌어졌을 때 카톡을 한 것, 내 썰을 듣고 혜영이가 뉴 송파구로 향한 것, 그 뒤에 일주일간 행방불명, 혼혈 애들이 확인한 결과 하층으로 향했다는 것…….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전담을 뻐끔거리며 내 이야기를 듣던 싸장님은-.

“지금쯤 죽었겠네.”

난데없이 사망선고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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