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1화
2.
난 싸장님에게서 여러 살상 마법을 배웠다.
그렇게 배운 마법을 ‘어떻게 전투에 응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교육받았지. 하지만, 도장에서처럼 진짜 1:1로 치고받는 대련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사격을 배우는 곳에서 주먹질 같은 걸 배우지 않잖아? 대충 그런 느낌이었지.
하지만 오늘, 난데없이 싸장님과 1:1 대련을 하게 됐다.
“준비됐냐?”
지하 생활공간 한 층 아래, 지상의 물약 상점보단 규모는 좀 작은 콘크리트 공터에서 싸장님은 가볍게 ‘통! 통!’ 뛰며 몸을 풀었다. 130cm밖에 안 되는 작은 체형, 하지만 그 쬐끄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이 안 되는 위력은 이미 많이 보았다.
그에 난 옷걸이 봉을 가볍게 휘두르며 고갤 끄덕였다.
“네.”
-슈욱!
대답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싸장님이 거리를 좁히며 내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눈>이 아니었다면 포착하기도 힘들었을 잽(jab), 재빠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며 이어질 스트레이트(Straight) 연계를 막기 위해 옷걸이 봉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예상대로 스트레이트 연계가 이어졌지만 주먹이 아닌 봉을 낚아채려는 듯 손이 활짝 펴졌다.
-딱! 따닥! 깡!
봉의 상단을 당겨서 그 손아귀를 피하는 동시에 하단을 들어 올려 싸장님을 밀어냈다. 그 반격을 싸장님은 팔꿈치로 쳐내고 집요하게 달라붙어 마력 각성자 특유의 ‘현실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연계’를 쏟아낸다.
-휘릭! 휙휙휙! 깡!
그리고, 나 스스로가 놀랍게도 그 쏟아지는 연계를 힘겹게나마 피하거나 막아 냈다.
이전이었다면 <눈>으로 몇 번은 피하겠지만 결국 연이은 연계에 휘말려 결국엔 주먹 찜질을 당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싸장님이 ‘어떻게 움직일지’, 그리고 ‘동작의 의도’가 무엇인지 예상이 됐다. <무한의 눈>으로 몸 안의 신경 작용을 읽지도 않았는데도!
그렇게 30초가량 휘청휘청 쓰러질 것처럼 싸장님의 쏟아지는 주먹과 발길질을 막아 냈지만-.
-깡! 데구루루…….
싸장님의 발차기를 막다가 손에 힘이 풀려 봉을 놓쳐버렸다.
허리를 튕기며 회전, 뻗은 다리를 회수하는 동시에 무방비로 드러난 내 얼굴에 손을 뻗쳐오는 싸장님. 그걸 왼손으로 막으면서, 오른손으로 싸장님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려 했지만…… 그렇게 뻗은 손을 낚아채면서 작은 체구를 이용해 내 몸에 밀착해 관절기를-
“항복! 항보옥!”
거시기 전에 재빨리 소리쳤다. 그런 내 외침에 싸장님은 손을 떼며 놀랍다는 듯이 날 바라본다.
“와, 진짜 달라졌네?”
“하, 하하하. 저도 신기해요.”
싸장님의 감탄에 난 대련 중에 맞은 곳을 주무르며 대꾸했다. 쏟아지는 싸장님의 발길질과 주먹질을 전부 막거나 피하진 못했다. 적절히 몸으로도 때웠지. 하지만 버텨냈다는 게 중요한 거다. 그렇게 맞은 부위를 주무르며 난 조금 전 내 움직임에 대해 복기했다.
“……너무 막는 거에 치중했어요. 적당히 반격을 해서 상대의 기세를 꺾어야 했는데 못 했죠.”
“막판에 봉을 놓친 게 어떻게 반격을 해 보려다가 파국이 난 건데?”
내 평가에 고갤 삐딱하게 꺾으며 대꾸하는 싸장님, 그에 난 쓰게 웃었다.
“네, 맞아요. 오무혁의 경험인지라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 좀 많이 달라요. 물론, 그걸 느끼고 있어서 조심스럽게 대처했는데도 이렇게 밀리네요.”
“흐음, 진짜 대단하긴 하네. 역시, 머리통을 후려칠 때 괜히 이상하게 느껴진 게 아니었어.”
“헤헤.”
싸장님의 칭찬에 웃으며 난 바닥에 떨어진 옷걸이 봉에 다가가 허릴 숙여 주웠다.
“어떤가요? 이 정도면 그래도 아래 내려가서 몸 간수하기 충분치 않나요?”
“아니.”
하지만, 칭찬과는 별개로 싸장님은 단호하게 고갤 젓는다.
“이 정도론 부족해. 그냥 제롬에게 사람 찾아달라고 하자. 내가 부탁해서 찾는 게 아니라 우회해서 부탁해볼게. 미르 교장 아저씨랑 내가 친하거든? 부탁해서 이종족 생도가 출석 안 하는데 찾아달라고 포장하면…….”
“그럼 한 번 더 붙죠.”
말을 끊는 대꾸에 싸장님이 멈칫한 가운데, 난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봉을 꽉 움켜잡았다.
“한 번 더 싸장님과 붙는다면 더 잘 움직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어요.”
“하?”
“처음에는 육체와 경험의 괴리에 막기 급급했는데…… 후반엔 반격을 할 정도로 감을 잡았어요. 정말 무섭도록 빠르게 실력이 늘어나는 느낌. 계속 싸우면 제 방식의 전투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저의 성장 속도가 두.려.우.십.니.까? 싸장님?”
그런 내 도발에 빙긋 웃은 싸장님은 또다시 통상적인 물리법칙을 무시하는 움직임으로 날 향해 튀어 올랐다.
3.
도발의 대가로 밤새도록 복날의 개처럼 두들겨 맞은 후, 난 힘겹게 싸장님에게서 ‘진입 허락’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싸장님의 허락은 비유하자면 ‘몰래 소말리아로 들어가는 루트를 찾았다.’는 것 정도, 그 안에 들어가서 생존할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생각해보니 준비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더라. 그렇기에 일단 쉬운 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 못 나온다고?”
“넵, 강수영 싸장님이 일이 밀렸다고 해서…….”
다음 날 목요일, 두들겨 맞고 등교하자마자 난 김가트 양반에게 ‘싸장님의 요청서’-‘일이 밀렸으니 도비를 장기 대여하겠다.’라는 말을 우아하게 돌려 말한 종이를 내밀었다. 내려가서 며칠간 못 나올 텐데 통보는 해야지.
“……그래, 알겠다.”
그에 김가트 양반은 묘한 표정으로 날 훑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갤 끄덕인다. 그리고 방과 후에 톡으로 접촉해뒀던 서예린에게 접근했다.
“너, 먼 일 있었음?”
‘마빡이의 알바’ 건으로 방문했었던 미르 중앙 지역의 프랜차이즈 카페, 재개장하면서 이전과는 살짝 달라진 구석 자리 테이블에서 서예린은 이전처럼 벤티 사이즈 ‘초코 웨하스 쉐이크’를 쪽쪽 빨며 눈가를 좁히고 경계하듯 위아래를 훑는다.
“네?”
“너, 하룻밤 사이에 몸의 움직임이 변함. 훨씬 차분해진 느낌? 다른 사람이 가죽을 뒤집어쓴 것 같음. 김가트도 너 달라진 거 눈치챔.”
“…….”
“다만, 진짜 너란 걸 알고 말을 안 했을 뿐.”
서예린의 대답, 아무래도 어제 하루 동안 급상승한 ‘전투 기술’ 항목을 눈치챈 것 같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 주위 물리법칙을 자연스럽게 유리하게 바뀌니 분위기가 달라 보였을 수도 있겠네. 그에 쓰게 웃으며 내 몫의 버블티를 빨대로 저었다.
“뭐, 갑작스런 성장이 있었죠. 그 대신 살벌한 페널티를 얻었지만요.”
오늘 하고 온 목도리의 앞섶을 살짝 풀었다. 그와 함께 드러나는 칙칙한 흑색 사슬, 감이 좋은 서예린은 그걸 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왠지…… 오크스러운 느낌?”
“맞아요. 활성화되지 않은 ‘세로쉬의 낙인’이죠. 제 실력이 급성장한 것과도 관련이 있답니다.”
다시 목도리를 두르며 낙인을 숨긴 후, 난 음료를 마시며 서예린에게 썰을 풀었다.
미르가 유혈에 잠겼을 당시, 전쟁 군주에게 부탁해서 장비를 오크에게 맡겨놓았던 것. 이번에 그 장비를 되돌려받은 것, 메달을 쥐었을 때 본 오무혁의 환영, 그 딸-오혜영에게 메달을 전달하라는 퀘스트까지(이 대목에서 서예린은 입안에 있던 쉐이크를 주르륵 흘렸다).
“……그래서 이 힘을 얻었죠. 전쟁 군주의 경험 일부분을. 밤새도록 싸장님에게 지도 대련 받으면서 경험을 다듬었고요.”
“허, 그렇게 날로 먹음!? 부러움!”
“하하핳,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닌데…….”
일부러 페널티는 말 안 했기에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서예린, 하긴 실력 면에선 날로 먹는 게 맞지. 입에서 흘러나온 쉐이크를 닦으며 서예린은 어깰 으쓱인다.
“그래서 내게 이 말 하는 이유가 머임?”
“예린 씨의 도움이 필요해서죠.”
“내 도움?”
“알다시피 혜영이에게 이 목걸이를 전달해 줘야 하는데, 지금 뉴 송파구-이종족 지구에서 안 나오고 있으니까요. 직접 들어가야 할 텐데, 미궁이라는 ‘비슷한 경험’을 한 예린 씨가 조언을 많이 해줄 수 있겠죠.”
“흠.”
“아, 그 ‘반지’도 필요해요. 몰래 잠입하는데 그것만 한 게 없을 것 같아서.”
오른손에 껴있는 투명한 반지를 가리키자 얼굴을 찡그리는 서예린, 함부로 장비를 빌려달라는 것은 무례한 짓이라는 건 싸장님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뭐라 대꾸하기 전에 난 재빨리 호주머니에서 ‘밀수품’을 꺼내 탁자에 올려놓았다.
“……!”
커다란 붉은 루비가 박힌 ‘황금빛 반지’와 밋밋한 ‘철제 반지’, 심상찮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반지들의 모습에 서예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난 싱긋 웃었다.
“당연히, 공짜로 빌려달라는 건 아니에요. 담보를 맡길 거랍니다. 이번에 되돌려받은 반지들이죠.”
“…….”
“한번 껴보세요.”
먼저 황금 반지를 내밀었다.
윗부분이 평평한 두툼한 금가락지, 그 중심엔 아즈텍식 디자인으로 ‘심장 모양의 검붉은 루비’가 박혀있고 그 주위에는 야만인 사제들이 손에 쥔 푸른 영혼-깨알 푸른 사파이어를 바치는 형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수호 정령의 반지 (Ring of guardian spirits)
강력한 수호 정령이 깃들어 있는 반지, 이 반지를 착용한 자는 자신의 마력이 강제로 생명력과 뒤섞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강렬한 활력’은 착용자의 생명력 회복과 질병 회복 등 각종 신체적 회복 능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그가 받는 모든 충격과 타격의 일정 부분(MP/HP+MP)을 마력이 부담하도록 만든다.
반지
·재생+, 마나 쉴드, 상태 이상에서 빠르게 회복
·능력치 유지(각종 Drain 효과 보호), 생명 유지(만복도 소모 -50%)
“……부작용 없음?”
“제 감각에 걸리는 건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 딜을 하는 거죠.”
내 대답에 재빠르게 빈 왼손에 가락지를 끼는 서예린, 뭔가가 느껴지는 듯 끼자마자 몸을 부르르 떨며 두 눈을 감는다. 그에 난 <감정>으로 파악한 반지의 튤팁에 대해 말했다.
“마력으로 외부의 충격을 분산시켜주는 반지랍니다. 각종 질병과 상태 이상을 빠르게 치유해줘서 언제나 컨디션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주고, 먹는 양도 절반가량 줄어들어요!”
“흐음!”
“보호에 관련된 능력치만 있어서 좀 밋밋하긴 한데…… 공격적인 걸 원한다면 이 반지가 좋죠.”
밋밋한 철제 반지를 내밀었다.
평온하게 두 눈을 감고 있는 전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반지. 하지만, 살육을 이어 나가면 천천히 그 두 눈이 떠지며 붉은 광채를 흩뿌리는 핏빛 루비가 드러난다.
위대한 용사의 반지 (Ring of great hero)
잔혹한 야만인 제국에 저항했던 ‘전설적인 투사’의 영혼이 갇혀있는 반지, 하지만 그의 영혼은 결국 야만인들의 손에 들어가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착용자가 생명체를 죽일 때마다 반지 안에 갇혀있는 용사의 영혼이 깨어나며, 착용자에게 ‘모든 물리적 공격’의 위력을 강화하는 영적인 힘을 불어넣는다.
시간이 지나면 깨어난 용사의 영혼은 다시 잠들겠지만, 살육을 이어 나간다면 용사의 영혼은 계속 깨어있을 것이다.
반지
·살육에 따라 Slay 수치 +0 ~ +8
·마법 저항+, HP +15, 힘+3
꼈던 황금 반지를 빼고 내 철제 반지를 끼는 서예린, 이번에도 뭔가 쏘울을 느끼는 것처럼 두 눈을 감고 부르르 떤다.
“체력을 늘려 주고 마법 저항력을 상승시키며, 힘을 더 강하게 만들죠. 하지만, 반지의 진정한 힘은 반지를 낀 채로 살육을 행할 때 나와요.”
“……?”
“생명체를 죽일 때마다 물리적 공격력이 증대됩니다. 최대 8 중첩까지.”
양손에 쥔 반지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는 서예린의 두 눈은 명백하게 탐욕에 불타오른다. ‘유령의 반지’라는 <투명화>를 사용하게 해주는 반지도 좋지만 이건 깡스텟이 미쳤거든. 내가 준 두 반지를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그 모습에 난 피식 웃었다.
“예린 씨? 주는 게 아니라 빌리는 ‘담보’예요. 담보. 하나만 골라요.”
“아…….”
그제야 이게 담보물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 정신 차리는 서예린. 그리곤 날 향해 속삭인다.
“이 반지들, 팔 생각 있음?”
“기회가 되면 팔아야죠. 저에겐 유령의 반지 같은 게 더 낫거든요.”
전쟁 군주의 경험을 얻고, 어젯밤 동안 가다듬으면서 ‘오크 기사급’ 수준으로 근접전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내 힘과 체력은 미진하기 그지없다. 원거리도 가능한데 굳이 위험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있나? 피할 수 있는 전투는 피해야지.
그런 내 대답에 서예린은 두 눈을 빛낸다.
“그럼, 이거 주셈.”
‘위대한 용사의 반지’를 픽하며 이어서 오른손에 낀 ‘유령의 반지’를 빼서 건네는 서예린. 조심스럽게 그 반지를 받아들고 마력을 불어넣자, 의지대로 움직이는 투명한 기름막 같은 에너지가 흘러나온다. 손에 코팅하니 빛이 굴절돼서 기묘하게 꺾인 것처럼 보이네.
“그거 사용하는데, 좀 요령이 필요함.”
“확실히, 그래 보여요. 으음, 그냥 코팅만 하면 되는 게 아니네.”
“그건 그렇고…… 다른 전사용 장비들 있음? 장비 대 장비로 교환 가능?”
“교환할 거 있나요?”
“내게 쓸모없는 마법사 장비들 있음!”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서예린을 향해 난 반지를 손가락에 끼며 고갤 저었다.
“있긴 한데, 안 좋아요. 사용하면 때때로 <광폭화>에 빠지는 장갑하고, 머리에 쓰면 식인 충동이 일어나는 투구. 지하에서라면 써도 되겠지만 지상에서 쓰기엔 별로죠.”
“으음, 그건 힘듦.”
“네, 그 반지밖에 쓸 만한 게 없어요.”
내 대답에 입맛을 다시는 서예린, 어쨌든 반지는 구했으니 난 조심스럽게 지혜를 청했다.
“그나저나 뉴 송파구로 들어가려면 뭘 준비해야 할까요? 그리고 주의해야 할 게 뭐가 있을까요?”
“일단, 들어가면 그 반지부터 끼셈.”
내 손에 있는 ‘수호 정령의 반지’를 가리키는 서예린, 그러면서 그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미궁에선 밥이 제일 중요함. 굶으면 얄짤없음. 그 반지가 이 반지보다 훨씬 더 가치 있음. 목숨은 하나. 그래서 그거 남겨 준 거임.”
“넵.”
타당한 말이다. 하지만 지상에선 너무 눈에 튀는 디자인이니 끼는 건 자제해야지. 이어서 서예린은 말을 하지 않고 고민하다가 다 마신 쉐이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냥, 오늘 우리 집으로 오셈.”
“네?”
“말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빠름. 그리고, 보관 중인 마법사 물품도 보여 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