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15화 (215/350)

제215화

“대답이 없네요?”

대꾸가 없기에 오무혁의 경험대로 오크들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봤다.

내 의지에 마력이 감응하고, 그 감정에서 비롯된 기세가 퍼져나간다. 그 ‘살기의 강도’를 보아하니…… 음,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럽네. 아직 내 전투 실력은 오무혁의 열화(劣化) 복제품이지만 이 살기만큼은 그 양반에 비견될 것 같아. 허장성세에 쓰면 딱 좋겠는걸?

어쨌든 내 살기에 오크들은 대답도-혼절도 못 하고 넋이 나갔다.

“그러면 안 돼요. 아셨나요?”

“네…… 네네네!”

너무 심한 것 같기에 재빨리 살기를 거두고 타이르자 고장 난 카세트처럼 말을 반복하는 어린 오크들, 기절한 대장을 두드리며 데리고 가란 제스쳐를 하자 허겁지겁 놈을 업고 사라진다. 그 뒤, 난 무릎을 꿇으며 맞고 있던 오크를 살피니……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구만.

위에 덮인 가죽점퍼를 거두고 난 그 중년 오크를 향해 빙긋 웃었다.

“괜찮나요?”

“…….”

그렇게 구해준 내 얼굴을 보며 중년의 오크는 매우 재미있는 표정 변화를 보였다. 경악, 놀람, 공포, 체념. 어떻게 몇 초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에 이런 반응들이 나올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뭐, 그래도 이건 확실했다.

“음, 제가 잘못한 건가요?”

내가 구해준 게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내 말에 오크는 ‘퉷!’ 하고 피가래를 바닥에 뱉곤 한숨을 내뱉는다.

“고맙긴 하지만…… 솔직히,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았어.”

“하하, 그런가요?”

“…….”

“폐를 끼쳤다면 죄송합니다.”

내 정중한 사과에 묘한 표정을 지은 오크는 옆의 건물 벽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고른다. 한쪽 광대뼈가 무너지고 쌍코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 챙겨온 포션을 꺼내야 하나? 유통기한 임박물품이긴 하지만 그래도 억 단위 물품을 쓰기엔 타격이 큰데…….

“그럼 이만 난 가보겠…….”

다행히 오크는 잠시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딘가로 가려는 모습에 재빨리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살짝 체념하듯이 날 바라보는 오크를 향해-.

“잠시, 질문 좀 해도 될까요?”

칼날을 세운 황금빛 봉을 목덜미에 들이대며 정중히 요청했다.

6.

다행히 내가 구한 오크는 ‘좀 나이가 드신 분’이었다.

미궁의 법칙-‘강자의 심기를 함부로 거스르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계신다는 거였지.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게 한몫한 걸지도 모르겠다만, 오크 아저씨는 건물 벽을 등진 채 앉아서 내 질문에 아주 순순히 답변해주셨다.

“유입 오크 때문이라고요?”

“그렇소.”

도시가 왜 이 꼴이냐는 내 질문의 답변, 쌍코피를 닦으며 오크 아저씨는 덤덤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성자가 강림한 땅을 밟기 위한 ‘성지 순례자들’, 처음에는 오크들도 이들을 환영했지만, 그들은 광신도들이었다. 당연히, 세로쉬 교단의 기본 이념을 충실히 따라갔고 그들이 대량으로 무리에 섞이면서 뉴 송파구의 질서가 급속도로 망가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무법자였소, 수틀리면 이종족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고, 때문에 이종족 사업가들이 도망치거나 죽으면서 경제 또한 쇠퇴했지.”

“사업가요?”

“왜 그러시오?”

“아니, ‘사업’이라니 좀 신기해서요. 어떤 게 있는지 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이 지하에도 사업이란 게 있단 것이 신기해서 물어봤다.

내 요청에 오크 아저씨는 대략적으로 말했는데, 드워프들은 ‘광산업’과 ‘제조업’을 꽉 잡고 있었고, 엘프들은 특수한 미궁 식물을 키우는 ‘원예업’을 하며, 오크들은 물자들을 운반하는 ‘운송업’과 힘쓰는 ‘건설업’에 종사했다. 다른 약소 종족들도 각자 할 일을 맡았다고.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은 오크요. 오크들을 고용하지 않으려고 해도 억지로 일정비율 이상 고용하게 만들지. 누가 뭐라고 하든 간에 뉴 송파구를 만들고 지배하는 건, 우리 오크의 높으신 분들이니까.”

“흠.”

“하지만, 사업가들이 죽어 나가면서 대량으로 실직자들이 생겼소. 심지어 같은 오크도 이종족과 일하면 이단이라면서 두들겨 패기 일쑤였고.”

“설마, 아까 젊은 애들에게 두들겨 맞은 이유가…….”

내 물음에 그는 어깰 으쓱였다.

“먹여 살려야 할 마누라와 4명의 자식이 있소. 당연히, 어떤 일이든 해서 돈을 벌어야지.”

“가장의 무게란…… 고생하시네요.”

“흐, 고생은. 미궁에서의 삶에 비하면 아주 쉽고 편하지.”

“그나저나 이렇게 피해가 크면 어떻게 유입자들을 막아야 하지 않나요?”

“어떻게 말이오?”

내 질문에 그는 쓰게 웃으며 높디높은 단절의 도시 천장을 응시했다.

“그놈들 미궁을 돌파해서 이 땅을 밟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실력에 자신이 있는 놈들이요. 괜히, 우리가 반긴 게 아니오. 마력을 각성한 전사들이 수두룩하고 보기 힘든 기사급에 세로쉬의 고위 사제와 마도사까지 있었소.”

“…….”

“물론, 진짜로 막으려고 했다면 죽여서라도 막았겠지.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오. 전쟁 군주 모르칸쉬가 그들을 비호했고, 무엇보다…… 이곳의 토박이 오크들도 상당수 그들에 동조하고 있거든.”

“동조를 한다고요? 직장을 박살 낸 깡패들을?”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 그런 당황스럽다는 내 반응에 오크 아저씨는 쓰게 웃는다.

“성자가 강림한 땅이오. 당연히 세로쉬 님의 신앙이 충만하게 되었지.”

“허…….”

“난 밥 벌어먹기 바쁘지만…… 젊은 놈들이나 몇몇 녀석들은 다르더군. 밥보다 더 소중한 게 있다면서 말이야. 대부분 가진 게 없는 빈민들이지. 사회에 불만이 많은 놈들.”

“갈등이 많을 것 같군요.”

“흐, 이런 꼴을 당할 정도지.”

부러진 이를 ‘퉷!’ 뱉은 오크 아저씨, 어쩐지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야. 여기보다 더 낮은 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이곳 꼬라지를 보아하니 쉽지 않을 것 같네. 작게 한숨을 내뱉은 후, 난 내 앞의 오크 아저씨를 바라보며 다른 질문을 꺼냈다.

“혹시, 하프 오크 마을로 가는 방법을 아시나요?”

“하프 오크 마을?”

“네, 지하 5~6km 부근에 있는 곳인데 제가 그곳에 가려고 하거든요.”

내 질문에 오크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고갤 젓는다.

“난 모르오. 그리고, 아마 내려가지도 못할 거요.”

“내려가지 못한다고요?”

“점점 불안해하는 치안에 단절의 도시는 외부와의 출입을 봉쇄하고 있소. 위에서 내려오는 생존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트럭 차량이 빠져나가긴 하지만…… 그것 외에는 출입 불가하오. 그쪽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겠지만 터널을 뚫지는 못할 거요.”

내 질문에 대답해주는 오크 아저씨, 되는 게 없구만. 일단, 여기서 어떻게 하면 아래로 내려갈 수 있을지 알아봐야겠다. 더 궁금한 거 있느냐는 듯이 바라보는 오크 아저씨를 보며 난 등에 멘 가방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꺼낸 물품을 내밀었다.

“이건……?”

“대답해주신 사례입니다. 저 때문에 곤란하셨는데 보답은 해야죠.”

고무줄로 돌돌 말린 황금빛의 지폐 20장, 지하에서도 돈이 통용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챙겨온 거다. 내 피 같은 돈이라는 게 심히 가슴이 아프지만…… 나 때문에 곤욕을 더 치를 것 같은데 두둑하게 챙겨드려야지.

그렇게 내가 내민 돈뭉치를 받아든 오크 아저씨는 이내 한숨을 푹 내뱉는다.

“역시, 그쪽은 지상 쪽 인간인가?”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내 정체를 묻는 말에 살짝 움찔했지만 다행히 악귀 두개골을 쓰고 있어서 그다지 티가 나진 않았기에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런 내 대꾸에 오크 아저씨는 빙긋 웃는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한국어를 잘하오. 웬만한 상층민들보다 더.]”

“…….”

“[뉴 송파구에서 이종족과 말하기 위한 일종의 ‘공용어’니까. 아주 열심히 배웠지. 그 덕분에 이종족에게서 신임을 받고 취직도 할 수 있는 거고.]”

지상에서 만나는 이종족들과 비슷한 수준의 한국어, 내가 아무런 말을 못하자 오크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그쪽의 오크어 발음에서 한국어 억양이 짙게 묻어나오. 그것뿐만이 아니오. 이곳 지하나 미궁 출신이라고 보기엔 행동이 좀 어리숙하오.”

“…….”

“당신이 준 돈만 봐도 알 수 있소. 이건, 여기서 거의 안 쓰이는 돈이오.”

“안 쓰이는 돈이라고요?”

허리띠를 풀고 복대 안쪽에서 지폐를 꺼낸 오크 아저씨가 보란 듯이 내게 내민다. 한국 돈이 아닌…… 요상하게 생긴 ‘조악한 지폐’, 거기엔 오무혁 양반의 얼굴이 박혀있다. ‘돈표’? 라는 한국어가 박혀있네.

“이게 지하의 돈이오. 지상의 돈을 여기 ‘뉴 송파구 은행’에 맡기고 받는 거지. 지상의 돈과 1:1로 대응되고, 여기서 거래는 대부분 이 지하 돈으로 치러지오.”

“……호오.”

“윗선은 그렇게 모은 지상의 돈으로 대량으로 물품을 구입하거나, 오크를 위한 사업을 한다던데…… 나도 사실 잘 모르오. 사업가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옆에서 훔쳐 들은 거라서. 아무튼 지상의 돈은 지하의 돈보다 더 귀중하오. 말은 1:1 대응이지만 혼란스런 요즘은 거의 2~3배 가까이 더 쳐준다고 하더군.”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그냥 우그 타람에서 지상 돈을 쓸 수 있기에 가져왔는데 말이지. 어쨌든 아저씨는 그 돈을 다시 복대에 집어넣으며 바지춤을 추스른다.

“굳이 지상 출신의 티를 내지 않으려면 지하의 돈을 쓰고 말투도 단답형으로 하시오.”

“네, 조언 감사합니다.”

고갤 꾸벅 숙이자 아저씨는 피가 몰려서 퉁퉁 붓기 시작한 얼굴로 푸근하게 웃는다.

“아니지, 고마운 건 나요. 이걸로 위로 올라갈 수 있겠어.”

“위로 올라가요?”

“그렇소.”

내 질문에 아저씨는 자신만만하게 고갤 끄덕인다.

“상층으로 밀입국하는 브로커가 있소. 상층과 중층을 오가는 승강기 설비를 통해 몰래 위로 갈 수 있다더군. 올라가 봤자 그곳에서 일하기 힘든 불법 체류자지만…… 전쟁이 나도 이곳보단 피해가 덜하겠지.”

한숨을 내쉬는 오크 아저씨, 그 말에 불과 몇 시간 전에 본 유령 몬스터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흔적의 <과거>에서 본 수많은 오크 일가족의 죽음도. 아무리 생각해도…….

“한 가지 충고해 드리죠. 그 브로커에게 가지 마세요. 아마, 사기꾼일 테니까.”

“……뭐요?”

“상층으로 향하는 뉴 송파구의 기반설비에는 ‘유령’과 ‘정령’ 계열 괴물들이 서식해요. 정확히 말하면 상층에 있는 이들이 일부러 ‘만들어’내서 방목한 거죠. 설비에 피해는 안 가면서 침입자들은 죽일 수 있도록. 이건, 제가 그곳을 뚫고 오면서 얻은 전리품이랍니다.”

증거로 등과 배낭 사이에 걸쳐둔 비범해 보이는 양손 도끼를 꺼내 두른 외장재를 살짝 뜯어서 보여줬다. 불타오르는 광채가 서서히 흘러나오는 반투명한 도끼, 그에 아저씨가 살짝 넋이 나간 가운데 난 어깰 으쓱였다.

“그곳을 통해 내려오면서 전 수많은 일가족의 흔적을 목격했어요. 그곳에서 죽어서 속박된 어린이 유령들도 뚫고 와야 했죠.”

“…….”

“안타깝지만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뿐이네요.”

가볍게 도끼를 다시 들쳐 메고 골목 밖으로 걸어가는데, 오크 아저씨가 뒤에서 돌연 소리친다.

“아래로 내려갈 거라면 ‘이종족 지구’를 찾아가서 ‘뒤앙밍크’라는 드워프를 찾아보시오!”

“……이종족 지구요?”

“치안이 흉흉해지면서 근래에 구 정부가 새로 만든 곳이오! 이곳에 남아있는 오크가 아닌 이들은 죄다 그곳에 있지! 7개의 대기둥 중 북동쪽 2번 기둥으로 가면 볼 수 있을 거요! 그리고 뒤앙밍크는…….”

살짝 망설이다가 오크 아저씨는 한숨을 내쉰다.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고객 중 하나요. 사채업자인데, 그가 지하로 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들었소. 그 일과 관련해서 나도 일하고 있지. 혹시 그가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면…… 오크가 알려줬다고도 하지 마시오. 그 일에 협력하는 이들이 얼마 없거든.”

“네, 명심하죠. 그리고, 이건 사례입니다.”

생각지도 못한 정보. 감사 인사로 돈뭉치 한 다발을 더 꺼내 바닥에 내려놓은 후,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위에 띄워둔 <눈>에 노란 완장을 하고 있는 무장한 기사급 오크가 골목 쪽에 접근하는 게 보인다. 그 뒤에는 내가 쫓아냈던 오크 불량배들이 보이고.

“저기요? 어르신?”

“왜 그러오?”

“기사가 한 명 오는데…… 제가 사라지고 나서 기사에게 추궁받으면 곤란하시죠?”

내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갤 끄덕이는 오크 아저씨.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파격적으로 도와드려야지. 그에 난 빙긋 웃었다.

“그럼, 우리 잠깐 연기 좀 할까요?”

7.

미궁에서 올라온 이들은 99.9% ‘살인자’인 동시에 ‘약탈자’다.

삶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아왔기에 폭력을 행사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미궁 밖에서 거대한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기 위해선 그러한 ‘미궁에서의 방식’은 억제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질서 집행관’이란 직책이 존재했다.

일종의 경찰,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는 오크들로 주로 중층을 순찰한다. 전부 기사급 실력자들이며 범죄를 저지르면 즉석에서 처분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두렵고 범죄자들에겐 사신과도 같은 이들이었다.

그리고 요즘, 질서 집행관들은 반쯤 짜증에 미쳐있었다.

외부 오크들이 저지르는 끝없는 사건·사고들. 그로 인해 치안이 개판이 되면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게다가 업무의 특성상, 이종족들도 어느 정도 지켜야 했기에 무식한 중·하층민들은 ‘동족을 핍박한다.’며 뒤에서 욕을 쏟아내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드라릭’ 또한 그러한 짜증에 찬 질서 집행관 중 하나였다.

“이곳이냐?”

“예! 예!!”

드라릭의 질문에 얼굴이 찐빵처럼 부풀어 오른 어린 오크들이 허겁지겁 고갤 끄덕인다.

단절의 도시에서 순찰을 돌던 도중에 만난 어린놈들, 평소에 이런 놈들이 사고를 쳤기에 드라릭은 그냥 뭐라 말하려는 놈들을 다짜고짜 주먹으로 두들겨 팼다.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놈들은 공포에 질린 채 괴물이 있다고 했기에 이렇게 골목까지 왔다.

그리고, 어린것들이 말하던 괴물을 볼 수 있었다.

“…….”

쓰러진 오크의 목덜미에 황금빛 창을 겨누고 있는 후드를 쓴 누더기 로브의 괴인, 인질이 죽든 말든 달려들어서 상대를 으깨는 것이 ‘질서 집행관’의 스타일이었지만…… 이번엔 감히 그러지 못했다.

미궁에서 그를 수십 번이나 살려준 감이 발을 멈춰 세웠다.

“손님이 오셨네요?”

그가 나타난 인기척에 괴인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가고, 그 후드 안쪽의 검붉은 안광이 피어오르는 악귀 해골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작해야 그의 가슴께도 안 올 만큼 쪼끄마한 존재, 섬뜩한 느낌에 드라릭이 있는 힘껏 도끼창을 움켜쥐는 순간-.

괴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괴한 살기가 그를 향해 쏟아졌다.

미궁을 헤쳐 나온 백전노장, 기사급에 도달할 때까지 그는 수많은 사선을 넘었고 상대방이 쏟아내는 기세-살기 또한 많이 받아봤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끔찍한 것’은 처음이었다.

거의 저주에 가까운 느낌.

골목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몸뚱이는 진창에 질척하게 빠져들어 가며 산채로 썩어들어 가는 듯한…… 이건, 그가 경험했던 전쟁 군주들의 살기 못지않았다. 아니, ‘살기’라는 것이 의지와 심상에 마력이 감응되어 발현되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더 끔찍하다.

죽는다.

직감했다. 싸우면 100% 자신이 죽는다. 평소 같았으면 슬슬 눈을 피할 어린놈들이 괜히 발작하면서 자신에게 달려와 빌던 게 아니었다. 거미줄처럼 몸에 몸을 옭아매는 살기를 어떻게든 뿌리쳐보려고 발악을-.

“아, 복장을 보니 질서 집행관분이시군요?”

“…….”

“불량배 놈들이 자기 패거리 부른 줄 알았어요.”

하려고 하는데, 돌연 어두워졌던 골목이 다시 밝아지고 몸을 옭아매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에 드라릭이 살짝 멍해 있는 동안, 악귀는 포로의 목에 겨눈 창을 거두고 그를 향해 고갤 꾸벅 숙였다.

“공무가 다망하신데 죄송합니다.”

“…….”

“오랜만에 도시에 왔더니 분위기가 요상하기에 좀 물어보려 했는데 다들 무시해서…… 하하하.”

“…….”

“저 뒤쪽 어린 친구들이 이분을 린치하는 걸 발견해서 구출한 뒤에 잠시 물어보기만 했을 뿐입니다. 말을 안 하려고 해서 살짝 살기만 뿜었죠. 저, 진짜 아무런 짓도 안 했답니다.”

드라릭이 서 있는 코너 뒤편에 숨어있는 이들을 언급하며 변명하듯이 말하는 괴인, 먼저 상대가 숙이는 그 모습에 드라릭은 크게 숨을 내뱉었다. 줄줄 흐르는 팥죽 같은 식은땀, 다행히 싸움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에 그는 최대한 동요를 억제하며 입을 열었다.

“……괜히 논란을 일으키지 마시오.”

“예, 이종족 지구 안에 있을 테니 걱정 마시길.”

고갤 꾸벅인 후, 그 괴인은 그를 스쳐 지나간다. 다리에 힘이 빠지려는 것을 간신히 도끼창으로 지지하며 드라릭은 숨을 골랐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좀 정신이 들자마자 그는 천천히 일어서고 있는 중년 오크를 바라보았다.

“다친 데는 없소?”

“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운이 좋았소.”

한숨을 내쉬며 드라릭은 고갤 돌려 골목 뒤에 있던 어린것들을 흘겨보았다. 괴인이 지나친 뒤에 멀뚱히 남아 쭈뼛거리고 있는 놈들을 향해 그는 이를 갈았다.

“도대체 너희들은 뭔 짓거리를 하는 거냐?”

“…….”

“저건…… 나도 붙으면 찢긴다. 기사급 수십 명이 달라붙어도 힘들 거야.”

“……네!?”

“괴물이라고!”

그의 대답에 멍한 표정으로 두 눈을 끔뻑이는 어린놈들.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안 올라온다. 미궁 안이었다면 진즉에 뒤졌을 멍청한 놈들…… 인간들이 한다는 ‘의무교육’이란 것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며 그는 한탄했다.

“그러니 함부로 시비 걸지 말라는 거다. 망할, 요즘 것들은 미궁을 경험해보지 못해서 지가 잘난 줄 알고 아무에게나 시빌 걸어요. 미궁이었으면 니들은 이미 뒤졌어!”

“…….”

“미궁이 아닌 지상인 것에 감사하고, 마침 시빌 건 상대가 온순한 것에 감사하며, 마침 내가 순찰하던 걸 감사해라. 다른 질서 집행관이 이런 일 겪었으면…… 니들은 진짜 뒤졌어.”

으르렁거리며 도끼창을 까닥이는 드라릭의 모습에 벌벌 떠는 어린놈들. 그렇게 사고뭉치들과 피해자를 보낸 뒤, 그는 잠시 골목에 우두커니 서서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밀려드는 이방인들, 그리고 정체불명의 괴물까지…… 도대체 뉴 송파구가 어찌 될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그것에 대해 알려야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드라릭은 위험인물의 등장을 알리기 위해 질서 집행관 본부를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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