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16화 (216/350)

제216화

막간. 잠시 지나가겠습니다

1.

오크 아저씨의 말에 따라서 난 곧장 ‘이종족 지구’로 향했다.

도시에 있는 7개의 거대 기둥 중 북동쪽에 위치한 2번 기둥, 가까이 접근하니 확실히 멀리선 안 보이던 다른 곳과 비교되는 특징이 보였다.

기둥을 포함한 영역을 고리처럼 둘러싼 평탄화된 평지.

그 두께는 대충 50m가량 되어 보였는데, 꼭 불길이 번지기 전에 만든 방화선 같은 느낌이 강했다. 평평해졌지만 이전에 건물이 있었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있네. 그 어떤 오크도 평탄화된 영역에 접근하지 않는다.

그 너머에 커다란 요새가 있었다.

기존에 있던 건물과 건물 사이를 돌로 채워서 막은 것으로 보이는 ‘흑색의 성벽’, 그 위에는 갑옷을 입은 드워프들이 기계식 석궁을 든 채 순찰을 돌며 경계하고 있다. 다행히, 아예 외부와 단절된 건 아니고 정문 쪽에서 물자를 실은 트럭이 오가고 있구만.

그런 트럭들을 따라서 요새 정문에 접근하자-.

“이봐, 누구지?”

정문 성벽 위에 있는 드워프들이 일제히 날 바라보며 석궁을 겨누고, 이어서 초소 쪽에서 한 드워프가 근접 무장을 한 채로 나와 이쪽을 바라본다.

마력 각성자, 실력은 오크 기사급.

무장도 아주 튼실하다. 마법 장비를 둘둘 둘렀네. 아마, 기관총으로 쏴 갈겨도 버티지 않을까? 어쨌든 난 싸울 의지가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양손을 들었다.

“오크들을 피해서 왔습니다. 이쪽이 이종족 대피처라고 해서요.”

“……뭐야? 오크는 아닌 것 같은데.”

내 모습을 훑고 추궁하는 드워프, 그에 난 미리 생각해둔 변명을 내뱉었다.

“하프 엘프입니다!”

“반 귀쟁이?”

내 외형을 보고 생각해둔 변명거리다. 그나마 다 크지 않은 엘프가 내 체형과 비슷하더라고. 그런 내 대답에 드워프가 미심쩍은 눈으로 내 위아래를 흘겨본다.

“그 투구 한번 벗어봐.”

“죄송하지만 이 투구는 벗을 수가 없답니다. 저주를 받은 장비라서요.”

“미안하지만 그럼 받아들일 수 없어.”

내 대꾸에 그는 손에 쥔 망치를 어깨에 걸치며 말을 이어나간다.

“체형을 보니 오크는 아닐 것 같지만, 그렇다고 마구 다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 안 그래도 별의별 잡놈들이 와서 이곳 안쪽은 뒤죽박죽이야. 그쪽 장비를 보니…… 좀 많이 위험해 보여.”

“흐음.”

완강한 거부에 작게 신음했다.

이거, 몰래 벽을 넘어가야 하나? 건물을 개조한 듯한 5층 정도 높이의 장벽, 저 정도는 도움닫기로 넘을 수 있지만…… 몰래 넘기엔 내 <투명화> 실력이 너무 일천하다. 시도 못 할 건 아니지만 위쪽엔 석궁을 들고 있는 드워프 병사들이 있어서 리스크가 커.

그렇다면…….

“사실, 사업 관련해서 안쪽에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사업?”

“네, 여기 초대장입니다! 그리고, 이름은 뒤앙밍크 씨라고…….”

가방에서 재빨리 100만 원어치 현찰 뭉치를 꺼낸 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드워프들이 잘 보지 못하도록 종이에 일시적으로 <연금술>로 성질을 부여해 색깔을 바꾸고 ‘초대장’이라고 포장하며 던졌지만…….

“뒤앙밍크?! 이 X새끼가!! 그리고, 이 돈다발이 초대장이라고!!”

“아니…….”

오히려 역효과인 듯했다.

뒤앙밍크라는 이름을 언급할 때 나오는 ‘진한 혐오의 얼굴’, 극대노한 드워프는 마법을 사용해 은빛으로 변한 한손 망치를 번쩍 들고 지면을 후려친다. ‘쩌적! 쩌적!’ 하며 갈라지는 지반, 그렇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이며-.

“꺼져! 안 그러면 뒤질 테니까!”

연이어서 받은 돈뭉치를 내게 도로 던지며 망칠 흔들며 꽥꽥! 소릴 지른다.

떨어진 돈뭉치를 주우면서 그 과격한 반응에 한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어떤 인간…… 아니, 드워프길래 저렇게 혐오스럽다는 듯한 얼굴을 하는지. 괜히 말을 꺼냈네. 진짜 쉬운 게 하나 없구만. 그래도 지하로 내려가려면 어떻게 그 드워프랑 접촉해봐야 할 텐데…… 성벽을 넘어야 하나?

“아.”

문득, ‘쉬익! 쉬익!’ 거리고 있는 드워프의 발밑이 보인다.

쩍쩍 갈라진 지반. 그 지면 아래엔 조잡한 기반시설이 깔려있다. 인간이 제대로 깐 게 아니고 기술을 배운 이종족들이 어설프게 깐 것. 그래, ‘하수도와 상수도’는 어딜 가나 있을 테니…… 저 안과 연결되는 곳도 있을 거다.

그렇게 광분하는 난쟁이 투사를 뒤로한 채, 난 조용히 한 걸음 후퇴했다.

2.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물은 꼭 필요하다.

그건 이종족 또한 마찬가지다. 도시라는 거대한 군집이 형성된 이상, 상수도와 하수도는 반드시 있다. 그건 이 ‘단절의 도시’ 또한 마찬가지였다. <눈>을 지면 아래에 둔 채, 난 이종족 지구의 고리 외곽을 한 번 삥 돌아보았다.

그리고, 외부에서 안쪽으로 향하는 파이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파이프 선로를 따라서 몇 시간 동안 인종혐오가 가득한 거리를 돌아다니며 지도를 만들고, 오크들이 슬슬 자러 가는 밤시간(떠도는 빛이 어두컴컴해졌다.)이 됐을 때-.

-콰작!

인적이 드문 골목의 얇은 석재 바닥을 부숴서 하수도 안쪽에 진입했다.

“으으, 진짜…….”

지독한 악취가 떠도는 내부 공기, 이를 악물고 미리 봐둔 최단 경로로 안쪽으로 향하는 통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떠도는 기괴한 벌레를 밟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하수도답게 ‘쥐새끼’가 숨어있었다.

그것도 낮시간에는 보이지 않던 ‘아주 거대한 놈들’이.

쥐를 닮은 인간형 종족, 그 사악한 외형에 걸맞게 이들은 매우 탐욕스럽고 조심성이 많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근력과 지능은 살짝 떨어지지만 대신에 매우 민첩하고 은밀하며, 썩은 고기를 먹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을 정도로 생존력이 높다.

1.3m 정도 되는 작은 키, 구부정하고 깡말라 보이는 체격, 칙칙한 회색 털로 뒤덮인 피부와 수염이 튀어나온 분홍빛 큰 코, 흰자 없는 붉은 눈과 날카로운 앞니…… 전체적으로 ‘쥐의 부정적인 면을 모아서 인간형으로 빗어내면 이렇지 않을까?’ 싶은 외형을 가진 괴물들.

라투스(Rattus) 혹은 레틀링(Ratling)-통칭 쥐쟁이라고 불리는 이종족이다.

간신히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지성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비열하고 잔학한 품성’을 가지고 있기에 괴물 취급받는 것들이 송곳 같은 단검을 들고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치니 날 내려다보며 군침을 흘리는 헐벗은 쥐 떼들…….

뭐, 그래도 ‘알아서 오는 경험치’인데 피하지 말아야지.

-콰직!

황금빛 창으로 그대로 뒤에서 날아드는 쥐쟁이를 단숨에 꿰뚫었다. 중층으로 내려오면서 마주했던 ‘그림자 꿰미’에 비하면 허접한 암습, 그렇게 첫 번째 암습이 실패하자-.

“쮸, 쮸겨!”

“고기-먹이! 그래!”

일제히 ‘찍! 찍!’ 거리며 사방에서 달려든다.

위에 있는 상수도 파이프에서 뛰어내리거나 하수도 물에서 튀어나오는 쥐쟁이들, 곧바로 창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달라붙는 7~8놈의 목을 썰었다. 그렇게 불과 몇 초도 안 돼서 반절 넘게 죽자 반응이 180도 바뀐다.

“후퇴-도주!”

“역-돌격!”

“찍! 찌지지직!”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쥐쟁이, 몇 놈 따라가서 족치고 입맛을 다셨다. 전부 경험치니까 싹싹 죽이려고 했는데 많이 놓쳤네. 진즉에 마법을 썼으면 싹 다 죽였을 텐데…… 병기술이 능숙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너무 무기로만 해결하려는 것 같다. 다음에는 마법도 함께 사용해야지.

그렇게 조금 전 싸움을 복기한 후,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츄릅……!”

난데없이 입가에 군침이 흘렀다.

동시에 배가 꼬르륵거린다. 마치, ‘갈망과도 같은 허기’. 이 투구 때문에 온종일 밥을 못 먹어서 배고프긴 한데 너무 극적인 반응이었다. 음식물쓰레기보다 훨씬 지독한 냄새가 진동하는 이곳에 군침이 돈다고? 도대체 뭣 때문에? 뭔가 이상해서 내 몸을 살펴보니…….

“허.”

쓰고 있는 투구가 보내오는 반응이었다.

그 대상은 쥐쟁이들의 시체, 아무래도 투구의 기준에 따르면 이 쥐쟁이는 ‘인간’인 것 같았다. 어서 빨리 먹으라는 듯이 허기 신호가 쏟아지는데…… 차라리 사람 시체면 곧바로 쑤셔 넣었을 거다. 이걸 쓸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했으니까.

근데, 저건 더럽기 그지없는 거대 쥐새끼다.

……이거 먹다가 탈 나는 거 아니야? 대환이도 내가 독을 섞은 걸 먹고 탈이 났는데? 해독 포션 같은 것도 챙겨오긴 했다만 그래도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탈 안 난다고 해서 음식물쓰레기를 막 먹을 순 없잖아.

“흠……!”

그 순간, 묘수가 떠올랐다. 곧바로 손을 뻗어 쥐쟁이 시체를 들어 올려 투구의 아가리 쪽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쩌억! 콰직! 콰드득! 빠드득! 우적우적!

투구가 저절로 움직여 시체를 씹어 삼키고, 그렇게 분쇄한 것들을 투구와 연결되어 있는 어떠한 ‘영적 공간’에 내던진다. 그 고깃덩이들이 빠르게 녹아들면서 ‘일종의 에너지 형태’로 바뀐 걸 투구가 취하고 그 일부는 내게 주입된다. 이전에 대환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 과정을 보면서-.

“ᛠᚣᚠᚽᛗᛤᛒᛓᛔᛒᛓᛔ…….”

난, 내 몸을 대상으로 <연금술>을 사용했다.

<눈>으로 몸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그 위치까지 정확히 볼 수 있기에 할 수 있는 미친 짓. 투구가 내 몸의 심장에 주입하려는 그 에너지 흐름을 가로채서 <물질화> 시키고, 혈맥을 따라 흐르려는 그 이물질들을-.

“끄응.”

-쪼르르르…….

창날로 팔뚝의 동맥을 깊게 찢어서 외부에 배출해냈다. ‘안정화 재료’가 없어서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은 <물질화>된 에너지 덩어리, 보아하니 저번 미르의 유혈 사태 때 습득했던 아기 모양의 핏빛 쿠키-‘생명의 빵’이라는 것과 되게 비슷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살짝 먹어 봤는데-.

“오.”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다. 먹는 순간, 스며들어 혈맥을 타고 질주하며 전신의 세포에 그 ‘특유의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이게 되게 걸물이다.

신체의 모든 신진대사를 ‘완벽하게’ 대체한다.

세포에 작용하는 걸 보니 마력으로 억지로 때우는 것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밥을 먹은 것처럼 생명활동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충족시킨다! 그러면서 땀이나 오줌 같은 배설물까지 없어! 게다가 재생력까지 끌어올려 주네?

-콰직! 콰드득! 빠드득!

곧바로 하나 더 씹어 먹었다.

충족되는 허기, 그와 함께 투구에서 보내오는 아주 감미로운 충족감. 중독될 것 같은 느낌이야. 이거, 연금술 재료를 투입해서 <물질화> 시킨 에너지를 안정화하면…… 유용한 식사 대용 물품을 만들 수 있겠네. 화장실 갈 걱정도 없고.

“……쥐는 생각보다 맛있네요.”

편견에 찼었던 과거의 나를 반성하며 남겨져 있는 쥐쟁이 시체를 다 씹어 먹은 후, 난 입맛을 다시며 이종족 지구 방향을 향해 다시 발을 내디뎠다.

3.

미궁에서 가장 비루한 종족은 어떤 이들인가?

대부분의 아인종들은 ‘인간’이라고 하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일단은 ‘사람’으로서 취급한다는 의미다.

‘라투스-레틀링’들은 아예 사람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가장 비천한 존재들, 정착이 불가능한 생존 투쟁이 이어지는 미궁 안에서 그들은 나약했다. 인간들조차도 그런 그들을 ‘쥐쟁이’라며 버러지 취급할 정도로. 어둠 속에 숨어 버려지는 쓰레기들을 줍고 갉아먹는 삶, 그게 라투스들의 숙명이었‘었’다.

하지만, 지상에 나오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쥐를 닮은 라투스들은 번식력이 엄청나며 또 매우 빠르게 성장한다. 한 달 만에 그 새끼는 부모가 없어도 될 만큼 성장하며 두 달이면 거의 온전한 성체가 된다. 식량만 충족된다면 그 숫자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불어난다.

‘끝없는 무리의 힘’, 이것이 라투스들이 깨달은 자신들의 저력이었다.

미궁 속에선 변천(變天)이라는 현상 때문에 뿔뿔이 흩어져야 했지만 이젠 다르다. 오크들은 그 위험성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끊임없이 그런 라투스들을 핍박했지만, 라투스들은 어둠 속에서 인내하는 동시에 증오를 불태우며 뉴 송파구 곳곳에서 조용히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단절의 도시에도 그러한 거점이 존재했다.

이종족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지어진 기반시설 속에 숨겨져 있는 거점, 좁고 어두운 그 장소는 라투스들에게 유리한 전장이었고 무엇보다 그 거점을 차지한 ‘검은 칼날’ 클랜은 ‘그늘진 자, 테네브라’를 섬기는 라투스 암살자들이 모여 있었다.

오크들도 한 번 토벌을 해보려고 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고 사실상 토벌을 거의 포기한 마굴(魔窟).

“찌이이이익!!”

오늘, 그곳에 넘실거리는 흑자색의 악의(惡意)가 들이닥쳤다.

“괴물-악마!”

“전진-돌격! 돌격한다! 안 가면. 노예.다!!”

“캬아아아악! 도망! 역-돌격!!”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썩어들어 가는 악랄한 <부패 구름>, 선천적으로 부패에 대한 내성이 있기에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는 그들이었지만 밀어닥친 이 <부패 구름>은 상상을 초월했다. 영혼부터 불태우는 것 같은 악랄함, 마력을 각성한 전사들마저도 그 독기에 주춤거리며 피했다.

끔찍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캬캬캬캬캬컄!

-쥬겨! 쥬우겨어어얽!

-키키키킥!

자색의 안광을 불태우며 흑자색 악의 안에서 튀어나오는 검은 연기 같은 괴물들, 마력 각성자가 아닌 훈련생들은 그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썩어들고 마력을 각성한 전사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픽픽 쓰러진다.

그 밀려오는 악의의 중심에 황금빛 창을 든 괴인이 있었다.

쥐쟁이들보다 살짝 더 큰 정도의 체격을 지닌 누더기 로브 차림, 드러난 후드 안쪽에서 검붉은 안광을 흩뿌리는 기괴한 악귀 모양의 해골은…….

-콰직! 콰드드득! 우적! 우적!

창을 쥐지 않은 반대편 손에 든 죽은 쥐쟁이 하나를 게걸스럽게 씹어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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