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0화
5.
뒤앙밍크의 사업장은 내가 쥐쟁이 무리에게 쫓겼던 인근이었다.
지하에서 벌어진 연이은 폭발로 폭삭 무너진 건물들 중 하나, 재수 없게 건물에 깔려 죽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뒤앙밍크는 상층에서 출·퇴근하기에 죽지 않았을 거란 게 망한 사업가 드워프의 답변이었다.
그에 곧바로 움직였다.
일단, 건물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나타날 거라 생각하고 대기하려고 했는데…… 그 사신의 낙인이 찍힌 드워프들이 단체로 대로변에서 날 납치하려고도 했다. 물론, 깔끔하게 날 덮친 놈들을 역으로 두들겨 패줬지.
그렇게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는 곳에서 얼마나 지났을까-.
-쿠웅! 쿠웅!
-쿠웅!
땅을 울리는 발소리와 함께 저 멀찍이서 거인 2명이 다가오는 걸 볼 수 있었다.
뱃살이 툭 튀어나온 ‘뚱뚱한 인간’ 같은 체형의 거인들, 3m가 넘는 키에 검은색 가죽옷 위에 방탄 플레이트를 걸쳤고 머리는 방독면과 투구를 써서 완전히 가렸다. 체격에 걸맞은 거대한 미트 해머를 양손에 들고 있는데, 방독면의 붉은 바이저를 번들거리는 모습은 위압감이 넘쳤다.
오우거.
지상에서는 보지 못하는 이종족 중 하나…… 근데, 살아있는 것이 아니네. 갑주로 전신을 감싸고 있어서 눈치채기 힘들지만 <눈>으로 흘러나오는 기운을 보니 좀비같이 조종받는 언데드다. 그런 오우거 언데드를 조종하는 실은 오우거 좀비 사이에서 걷는 땅딸막한 드워프와 연결되어 있고.
회색 양복 차림에 칙칙한 회색 진흙 빛 피부의 딥 드워프.
흰 수염에 흑요석같이 흰자 없이 까만 두 눈은 음울하게 번들거리고…… 무엇보다 저 몸에서 이글거리는 코드 108-모라티온의 가호가 넘실거렸다. 음, ‘양의 낙원’에서 봤었던 모라티온의 신도보다 훨씬 강해 보이네.
뒤앙밍크, ‘사신의 사채업자’.
내가 사람 보는 눈은 그리 특출나지 않지만 저건 그냥 겉으로도 위험해 보인다. 사악한 드워프라고 해야 하나? 무너진 건물 현장에서 잔해를 치우거나 깔린 이들을 구조하고 있던 경비병들도 그가 나타나자 움찔하며 자리를 비운다.
그에 뒤앙밍크는 음산한 눈으로 무너진 건물을 훑는다.
“경비병.”
“네…… 넵!”
근처에 있던 경비병을 손짓해 부르더니 뭔가를 물어보기 시작하는 뒤앙밍크, 그렇게 놈의 시선이 다른 곳에 쏠린 사이에 난 숨어있던 건물 뒷골목에서 나와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듯이 <눈>의 범위 30m 안쪽까지 접근해 적당히 1개월 정도의 <과거>를 훑어보았다.
그와 함께 역재생하듯이 난잡하게 머릿속에 밀려들어 오는 과거의 장면들…….
-주르륵.
“끄응…….”
‘게임 시스템(을 흉내 내는 르피너스의 선물)’의 보정이 들어가는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피곤함, 얼어붙은 송곳을 관자놀이에 찔러 넣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코피가 수도꼭지를 튼 것마냥 쏟아진다. 어제부터 전투와 <감정>을 남발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후우.”
<연금술>로 코피를 굳혀 틀어막은 후, 다시 뒷골목 쪽에 피신해 머릿속에 가득한 쓰레기 정보를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천천히 풀어헤쳤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이리저리 끼워 맞추며 분석하니…… 어떤 방식으로 뒤앙밍크가 지하로 인원들을 내려보내려는지 감이 잡힌다.
그리고…….
“그레이트 X새끼네요.”
과거를 훑어본 결과, 뒤앙밍크는 아주 개악질이었다.
망한 사업가 드워프가 말했던 ‘그저 괴롭히기 위해 돈을 빌려주는 새끼’라는 평가가 딱 들어맞는 놈이다. 북한의 ‘양의 낙원’에서 봤었던 것과 비견될 만한 섬뜩한 고문을 이자도 못 낸 채무자들에게 가했는데, 자신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채무자’가 스스로 하도록 종용했다.
그것도 부모와 자식, 혹은 채무자에게. 직접적으로 언급 안 하지만 고문실에 데려다주면서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말을 하는데, 못 알아듣거나 안 하면 그대로 낙인의 <고문> 효과를 발동시켜 죽여 버렸다. 그렇게 알뜰살뜰하게 절망과 고통을 뽑아내서 모라티온에게 바치고.
“우연히 폭발이 난 곳에 건물을 세운 게 아니었네요.”
그리고, 뒤앙밍크는 지하에 있던 쥐쟁이 새끼들과 공생관계였다.
고작 한 달 정도의 과거를 훑었지만, 자신의 사무실에서 1.8m 가까이 되던 그 ‘거대 쥐쟁이’와 이야기하는 게 5번이나 보였다. 거액의 돈+장비를 주면서 ‘어떤 놈을 납치해 달라.’ 혹은 ‘어디로 가서 총을 써 암살해 달라.’고 의뢰했지. 어제도 폭탄 조끼와 각종 장비를 주면서 누굴 암살시키려고 했…….
“끙.”
지끈거리는 골통을 붙잡았다.
방전된 배터리처럼 순간 끊어졌다-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의식, 생각지도 못한 전투들과 <감정>, <과거시>를 남발해서 그런지 피곤이 막대하다. 고작 하루도 안 지났는데, 지상에서 금요일까지 꼬박 새운 정도의 피곤함이야. 이 상태로 계속 갈 수 있으려나?
물론, 수면을 취하면 피곤함이 회복되겠지만, 그건 진짜 싫은…….
-ZWU갑^[email protected]■!끼*%겔궒!
“망할.”
어떤 소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뒤죽박죽 뒤섞인 소음, 하지만 왠지 모르게 웃음 같은 느낌의 섬뜩한 소음이 내 귓가에 울린다. 평상시라면 금요일 오후부터 간간이 들리는, 내 정신이 한계라는 것을 말해주는 환청. 더 버틸 수 있지만…… 그때부턴 환각도 나올 거다.
한숨을 내쉰 후, 난 어쩔 수 없이 호텔을 향해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6.
‘모라티온의 신도’는 배척받는다.
생명체의 고통과 절망을 원하는 죽음의 악신, 그런 신을 믿는다는 것은 ‘그가 믿는 신이 원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시체를 일으키고, 생명체를 맹목적으로 고통에 빠트리려는 이를 좋아하는 이는 별로 없다. 그렇기에 모라티온의 신도는 자기가 신도라는 것을 숨긴다.
하지만, 뒤앙밍크는 달랐다.
미궁 밖의 세상, 지성체들이 거대한 규모로 모여 살아가는 사회(社會)라는 새로운 질서. 영리한 그는 지상의 인간들이 걸어온 역사에 관해 공부했고 그 속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성공했다.
이제 그는 거대한 사회의 일부분이 되어 맡은 기능을 담당했다. 토벌이나 배척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이 되었고, 무려 집단의 보호를 받아 당당하게 정체를 드러내며 행동하며, 미궁에서는 맛볼 수 없는 ‘권력’이라는 달콤한 과실까지 맛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불상사’가 발생한 오늘도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흐음.”
무너진 사무실 건물 근처, 불경기에 폐쇄한 건물을 즉석에서 매입한 그는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그의 호위인 좀비 오우거가 앞에 서 있자 따로 간판이 달리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가축-채무자들이 몰려들었다.
돈을 빌려주고, 낙인을 찍고, 가축들을 돌보는 것.
사무실 건물이 무너지면서 ‘징수를 위한 설비’는 죄다 사라진 상황, 그렇기에 평소보다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그에 짜증이 났지만…… 오늘의 마지막 가축을 보니 그런 짜증 또한 사그라지는 느낌이었다.
“베일렌 사장님.”
“뒤앙밍크…… 님.”
“허허, ‘님’이라뇨. 저야 비천한 사채업자 아니겠습니까?”
건장한 체격과는 달리 초췌한 안색의 드워프, 자신을 높여 부르는 가축의 모습에 뒤앙밍크는 내심 흡족했다. 바락 혈족의 뻣뻣한 놈, 평소에 자신을 ‘시체 파먹는 구더기’ 등으로 부르며 업신여기던 놈인 만큼 더더욱 그 높임말이 달콤하다.
서류를 집어 들며 뒤앙밍크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오늘로 계약서의 변제 기간인 석 달입니다. 빌린 금액 원화로 20억, ‘죽음 이후까지’의 월 이율 5%. 총 주셔야 할 금액은 ‘원화’로 23억 2,294만 4,463원. 지하 돈으로 갚으시면…… 현재, 경기 안 좋아서 환율이 1:2.4 정도 되지만 그냥 2배로 받도록 하지요.”
“…….”
“채무의 변제는 가능하십니까?”
가능할 리가 없다.
바락 혈족 내에서 유명했다. 자기 마누라는 물론이고, 딸내미까지 다 팔아버렸다고. 심지어 미궁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친분을 쌓은 전우들에게조차도 돈을 빌려달라고 하다가 전부 손절 당했다. 붙여놓은 심부름꾼에 따르면 오늘은 어디서 돈을 구해 불법 도박장에 갔다가 100만 원가량을 탕진했단다.
그동안, 그가 겪었을 고통과 좌절은…… 저 낙인에 저장된 아우라만 봐도 짐작 가능하다.
승승장구하던 사업가의 비참한 말로, 그 모습을 보며 뒤앙밍크는 저열한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이게 자신의 ‘천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참으로 놀랍다. 육체적 고문이 없더라도 저런 고통과 절망을 모을 수 있다니? 게다가 주위의 타인들까지 함께 좌절과 고통의 굴레에 억지로 끌어들인다.
그렇게 그가 즐거움에 속으로 웃고 있을 때-.
“좀 더 유예해 주시오.”
가축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한다.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지만 공포를 느끼는 데 민감한 뒤앙밍크는 그가 포식자 앞에선 먹이처럼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빙긋 웃으며 친절하게 대답했다.
“물론, 유예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한 달 치의 이자는 받아야겠습니다. 그게 계약서에 적힌 내용이니까요. 정확히 원화로 1억 1,306만 1,792원 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소. 그리고, 그러한 유예는 언제든지 가능하지 않소?”
“흐음, 어떻게 갚으시려고 하죠? 이미, 가산도 전부 탕진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지하 은행에 다른 것들도 전부 담보로 잡힌 거로 알고 있고요. 알다시피, 제 사업은 철저한 ‘징수’가 생명입니다. 떼를 쓴다고 전부 유예시키면 ‘거지새끼들’은 아무도 돈을 안 갚으려고 하거든요.”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뒤앙밍크는 차분하게 가축을 응시했다. 흰자위 없는 새카만 눈에 가축은 움찔했지만, 빤히 보이는 허세를 부리며 말을 내뱉는다.
“……그건 설명해줄 수 없소. 하지만, 내 명예를 걸고 약속하건대 갚을 수 있는 비장의 수단이 있소! 그리고 무엇보다, 그쪽도 일단 내가 살아있어야 돈을 받을 것 아니오? 내가 죽으면 그쪽이 얻을 수 있는 건 고작 움직이는 시체 하나 아니겠소?”
“…….”
“난 오히려 돈을 더 빌리고 싶소! 조금만, 진짜 조금만 더 하면 돼! 한 번에 갚을 수 있다고!”
주먹을 꽈악 쥐며 말하는 채무자, 공포심에서 벗어나 일순간이지만 ‘사람’이 되는 ‘가축’의 모습에 뒤앙밍크는 작게 실소했다. 저 가축이 뭘 계획했는지 몰랐다면 짜증 났겠지만, 지금은 그저 좋다. 저렇게 살 수 있다고 희망을 가져야…….
“제게서 돈을 빌린 뒤에 갚을 수 없게 된 이들이 그런 말을 하더군요. 주로 다른 이들의 성공에 눈이 돌아가서 뒤도 생각하지 않고 돈을 빌려 사업하던 오크 놈들이.”
“난 그런 쓰레기들과는 달라! 난 확실하게 갚을 수단이 있어! 그쪽에게도 설명하기엔…….”
“금광이 있단 사실이요?”
실패했을 때 따라오는 고통과 좌절이 더 크니까.
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이 부릅뜨는 가축의 모습에 뒤앙밍크는 씨익 웃었다. 지하 토굴을 파내 공간을 늘리는 ‘개척 사업’, 베일렌 소일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을 가공해서 흙이나 모래로 가공해 지상과 지하에 팔지만…….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광물’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숨긴 건 이해합니다. 알려지는 순간, 구 정부에서 간섭해올 테니까요. 기껏 만든 공장설비도 옮기라고 할 테고…….”
“…….”
“근데, 참 잔인하십니다! 일부러 오크들을 유인해서 채굴하던 부하들을 싹 다 죽이시다니…… 게다가 동업자인 구 공무원 친구까지도! 아니, 물불 안 가리는 사업가 기질이라고 해야 하나? 저도 감탄했다니까요?”
숨겨왔던 죄악의 폭로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베일렌, 그렇게 몇 마디 말로 다시 사람을 가축으로 만든 뒤앙밍크는 자신 못지않게 탐욕스러웠던 가축을 향해 속삭였다.
“전, 사업이 사업이다 보니 암살자들의 동향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 그런!?”
“그래서 왜 그렇게 공무원을 죽이고 부하를 죽였나 개인적인 추리와 조사를 해봤죠. 살짝 긴가민가했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확실해졌군요.”
동공이 요동치는 가축을 보며 웃는 뒤앙밍크, 그에 넋이 나갔던 가축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돌 탁자를 부서트릴 것처럼 ‘쾅!’ 내리치며 입을 열었다.
“맞소, 맞아! 하지만, 금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려면…….”
“5km쯤이잖습니까? 제게 돈을 빌려서 ‘유골 수습’이란 명목 아래에 어떻게든 사람들을 고용해서 가보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그 정도면 위치는 뻔하죠. 근데, 그 채석장. 이미 오크 것 아닙니까? 그 소유권도 지하 은행에 얼마 없는 담보로 맡겨 있고요.”
“아니요! 담보일 뿐! 아직 정당한……!”
흥분한 가축의 모습을 바라보던 뒤앙밍크는 살짝 <징수>를 사용하며 손을 들었다. 그와 함께 극적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심장을 붙잡고 움찔거리는 가축. 그렇게 짖어대는 것을 멈춘 뒤, 뒤앙밍크는 나지막이 속삭였다.
“사회에 너무 물들었군요. 베일렌 씨. 여기서 자기 것을 지킬 수도 없는 약한 놈이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아시잖습니까?”
“…….”
“참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부하들과 함께 금을 가지고 왔으면 이런 꼴은 되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