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21화 (221/350)

제221화

“자, 잠깐…… 뭐든지 하겠소! 고통으로 이자를 내겠소!”

필사적으로 말을 꺼내는 가축, 그에 뒤앙밍크는 싸늘하게 얼굴을 굳혔다.

“말조심하시죠. 전, 고통으로 이자를 받지 않습니다. 그저, 채무자들이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 안타까워서 변제 기한을 늘려준 것뿐이지요.”

“그, 그렇지! 내가 말실수했소. 그러니…….”

“하지만, 여기엔 별다른 자책할 거리가 없군요. 그리고, 오늘 제 기분도 좀 안 좋고요. 저 건물이 멀쩡했다면 그래도 기분이 나았을 텐데…….”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는 뒤앙밍크. 확실히, 어제까지만 해도 공포에 발버둥 치며 자해하는 꼬락서니를 볼 생각도 했었다. 적당히 늘려주며 더 비참하게 떨어트릴 생각도 했었고. 근데, 재수 없게 건물이 무너져서 그 장비들이 하나도 없다. 그에-.

“멍청이!”

-쿵!

“멍청이!”

-쿵!

“난! 멍청이야!”

베일렌은 의자 사이에 있는 돌 탁자에 스스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어찌나 센지, 박은 지 몇 번 되지도 않아 피가 흐를 정도. 하지만, 그래 봤자 뒤앙밍크의 표정은 여전히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스스로 싼 똥오줌을 먹거나, 스스로 치아나 눈알을 뽑거나, 산채로 몸 일부나 친자식을 톱으로 썰어대는 ‘진짜’에 비하면 하찮기 때문에.

“쯧.”

머릴 박으면서도 힐끗힐끗 뒤앙밍크를 보던 베일렌은 손가락을 튕기려는 낌새에 마지막으로 발악하듯이 그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사, 살려주시오! 내, 평생 노예가 되겠소! 그, 어……! 그래! 이번에 내려온 하프 엘프X이 있소! 미국에서 왔다던데, 좀 강하지만 내가 무기만 가지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어! 노예로 잡아서 팔지 않으시겠소!? 하프들 요즘 비싸잖소! 엘프면 더더욱!”

“…….”

“아! 그러고 보니 그X이 당신…… 아니! 주인님이 지하로 사람을 내려보낼 뭔가를 꾸미고 있단 걸 알고 있었소! 그 하프 오크 마을 쪽으로 간다는데, 잘하면 반편이 임신 주머니도 많이 얻을 수 있을…….”

-딱!

그 애처로운 가축의 애원에도 뒤앙밍크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에 덜컥 멈칫하는 드워프, 이어서 뒤로 엎어지더니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로 벌벌 떨기 시작한다. 전신의 신경이 불타오르는 감각에 한계까지 수축된 전신 근육, 횡격막도 움직이지 못해 숨도 못 쉬고 팥죽 같은 땀만 흘리며 ‘움찔! 움찔!’ 거리는 와중-.

“커허어어어억! 허어어억! 허억! 허어억!”

-푸드득. 푸드드득…….

“사, 살려…….”

얼마 안 가 크게 전신의 근육이 풀어지며 숨을 내뱉었다. 그와 함께 배설물을 지렸지만, 가축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을 기며 뒤앙밍크를 향해 애원한다. 그에 뒤앙밍크는 싸늘하게 웃으며 고갤 저었다.

“미안하지만 한번 시작된 ‘도축’은 나도 멈추지 못해.”

“……!”

“그리고, 지금 잠시 고통이 멈춘 건 최대한 고통을 뽑아내기 위해서고. 금방 죽으면…… 더 괴로워지지 못하잖아? 아, 물론 걱정하지 마. 영혼까지 저당 잡힌 넌 ‘죽어서도’ 노예로서 고통받을 거니까.”

절망적인 선고와 함께 다시 시작된 고통, 그에 가축은 다시 엎어졌다.

그렇게 수십 분 동안, 낙인은 절묘하게 완급을 조절하며 가축을 도축했다. 고통에 심장이 멈추고 이어지는 고통에 다시 뛰기를 반복하는 지옥, 사람의 몸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땀과 분비물이 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가운데-.

“커헉! 케흐흑!”

들어왔을 때보다 10kg 이상 홀쭉해진 가축은 완전히 고통 속에서 숨이 끊어졌다. 하지만, 죽었음에도 그 ‘빚’은 남이었었다. 죽음의 신에게 저당 잡힌 그 영혼이 차가운 육신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것을 찬찬히 음미하며 뒤앙밍크는 ‘명령’했다.

“일어나라. 노예야.”

천천히 죽은 노예가 일어선다.

전신이 땀과 배설물에 범벅이 된 모습, 지독한 냄새가 진동함에도 뒤앙밍크는 흡족하게 고갤 끄덕였다. 이번에 진상한 강렬한 고통과 절망에 그의 신께서 즐거워하시는 것이 느껴졌다. 그 또한 꽤나 만족스러웠다.

마력 각성자 좀비.

일반적인 좀비와는 차원이 다르게 강하다. 그 내장을 들어내 비우고 적당히 방부 처리한 뒤에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면 끌고 다닐만한 전사가 완성될 거였다. 무너진 건물에 있었던 장비와 재료들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신 그가 새로 생긴 장난감을 움직여 지하실로 향하려고 할 때-.

“다-끝났나?”

서늘한 감각과 함께 그림자 속에서 한 형상이 솟구쳤다.

7.

꾸부정하게 숙인 상체.

그럼에도 180cm가 넘어가는 커다란 체격의 거대한…… ‘쥐쟁이’, 희귀한 그림자 용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주는 중갑에 가까움에도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느릿하게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온 불청객에 뒤앙밍크는 얼굴을 찡그렸다.

“……스미릭, 일하는 도중에 오지는 말라고 했을 텐데.”

“그래서 이렇게 왔다. 일이 끝날 때쯤에. 그래-그래.”

능글맞게 대꾸하는 쥐쟁이, 그에 뒤앙밍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원래 사무소라면 놈이 이렇게 쉽게 침입하지 못했을 거다. 설령 침입했다고 해도 알아차렸을 거고. 빠득 이를 갈며 뒤앙밍크는 그의 얄미운 동업자를 추궁했다.

“들었나?”

“무엇-어떤 것을?”

“아니, 별것 아니…….”

“아, 금광? 찍! 찌직! 찍찍! 어쩌다 보니! 밤말은 모두! 쥐가 듣는다! 크큭!”

시끄러운 쥐 소리를 내며 웃는 거대 쥐쟁이-스미릭, 그에 뒤앙밍크는 으르렁댔다.

“그건, 내 거야. 건드리지 마라.”

“글-쎄. 가지는 놈이 임자 아닌가? 네가 말한 대로!”

“어차피 금광의 정확한 위치도 모르잖아? 어디에 제련한 금괴를 숨겼는지도 모를 테고.”

“네가 의뢰했던 드워프 원정단 습격…… 이해했다! 대충 그곳일 테고! 그리고-숨겨둔 거! 우린 금방 찾지!”

뱀 같은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스미릭의 모습에 뒤앙밍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쥐새끼들…… 저놈들이 작정하고 방해하면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에 뒤앙밍크는 냉정하게 숨을 고르며 타협했다.

“좋아, 그쪽도 끼워주도록 하지.”

“끼워줘? 왜? 다 내 거인데?”

능글맞게 탐욕을 드러내는 쥐쟁이 새끼를 향해 인내심이 바닥난 뒤앙밍크는 소파 옆에 둔 철퇴를 붙잡았다. 그에 그림자 속에서 칼을 꺼내 잡는 스미릭, 그렇게 둘의 불편한 대치가 얼마간 이어지고 뒤앙밍크가 먼저 한숨을 내쉬며 철퇴를 내려놓았다.

“그만하지. 그쪽도, 나도. 서로 금괴를 못 먹게 방해할 수 있으니까.”

“네가? 날?”

“그래, 난 그냥 거기에 금광이 있다고 구 정부에 보고하면 돼. 그럼 오크들이 알아서 몰려들 텐데 그쪽이 금괴를 찾을 수나 있겠어?”

“그럼 넌 금광도 못 얻을 텐데?”

능글맞게 대답하는 스미릭, 그에 뒤앙밍크는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베일렌 놈이 빼돌린 금괴를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금광 또한 중요하다. 그에 그는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맞아. 그리고 우리가 서로 영원히 안 보고 살 순 없잖아? 무엇보다 그쪽과 나는 공생관계라고? 내가 없으면 필요한 물품들을 구하기 훨씬 어려울 텐데…… 금이 있다고 해서 쓸 수나 제대로 있나? 차라리 서로 나누자고.”

“그래-그래. 고양이와 붙어먹을-오크 새끼들보단 네가 훨씬 낫지.”

“좋아, 보관된 금괴는 6:4로. 내가 6이다. 추가로 금광은 내 거야.”

“뭔-고양이 소리?”

6:4의 비율에 으르렁거리는 스미릭, 그에 뒤앙밍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동안, 내가 다 작업한 거니까! 날 모욕한 그놈을 추적해서 금을 숨기고 있단 걸 파악한 것도 나고!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차지하고 있는 지하 설비가 박살 나서 내 건물이 무너졌거든! 뭔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만 건물이 무너졌는데 최소한의 배상 시늉은 해야지!?”

“씨X! 그건, 폭약 사고 아니다! 그건, 습격! 이다! 그래! 빌어 처먹을-고양이 새끼가. 저지른 거야!”

“……습격을 받았다고?”

“그래-그래!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꾸에 뒤앙밍크가 다시 묻고 스미릭은 이를 갈며 지난밤에 있었던 습격에 관해 설명했다.

급작스럽게 지하를 습격한 해골 악귀 투구를 쓴 괴인, 쥐쟁이 시체를 씹어 먹는 야만적인 행동, 그가 흩뿌렸던 지독한 <부패 구름>과 끔찍한 검은 망령들, 그리고 마법의 보조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무장한 그림자 전사 4명을 한순간에 죽여 버릴 가공할 창술까지.

그 모든 설명을 듣고 뒤앙밍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네 클랜은 거의 괴멸 상태란 거냐?”

“그래-시X! 돈이 필요하다! 다시 세우려면 돈이! 아래쪽 클랜에 가서 빼앗고! 다시 무기를 사고! 번식시켜야 해! 그리고, 그 인간 놈을 죽인……! 아니, 죽이는 게 먼저야!”

“인간이라고?”

의아한 표정의 뒤앙밍크를 향해 스미릭은 코를 킁킁거리며 고갤 끄덕였다.

“그래-그래! 인간! 분명, 인간 냄새였다!”

“하프 냄새를 착각한 게 아니고?”

“흐릿한 하프 냄새! 아니다! 인간의 살냄새! 그리고, 아주 지독한 화학 약품 냄새……! 그래-그래! 네가 줬던 그 폭탄 같은 정제된 화학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너무너무 선명해!”

그에 뒤앙밍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졌다.

스미릭이 이끌던 ‘검은 칼날’ 클랜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비천하기 짝이 없는 쥐쟁이들의 세력이었지만 그 유연하고 조용한 움직임은 암살자에 유리했고, 그늘진 자 ‘테네브라’를 섬기면서 극대화되었다.

수많은 오크 기사와 마도사, 고위 사제를 암살한 뉴 송파구 ‘최고·최악의 암살단’.

그 수장인 ‘소리 없는 죽음-스미릭’은 딥 엘프 암살자들을 모조리 도살한 괴물이었다. 저 진귀한 그림자 용의 갑주가 그 증거, ‘단절의 도시’ 지하에 숨은 걸 알면서도 오크들이 반쯤 토벌을 포기할 정도로 강성한 곳이니 말 다했지.

그런 클랜을 혼자서 초토화한 것도 믿기 힘든데 그게 ‘인간’이라?

미궁에서라면 몰라도 이건 심상찮은 이야기였다. 뭐라고 해도 이 세상의 지배자는 인간이니까.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밖에서 잘 먹고 살 수 있다. 그런 인간이 지하에 내려왔다는 거니 어떤 이유가 있을 거다.

“너희들의 시체를 씹어 먹은 걸 보면 아마 물불 안 가리는 미궁 출신이겠군. 지상의 인간이 이곳에 내려오다니…… 심상치 않아. 개인적으로 얽히기 싫어.”

“뭐.라.구?”

고갤 옆으로 기울이다 못해 거의 180도 가까이 돌아간 스미릭의 얼굴, 거꾸로 돌아간 그 면상을 보며 뒤앙밍크는 이마를 짚었다. 완전히 눈깔이 돌아간 모습, 저 개 같은 쥐새끼…… 발광하기 전에 재빨리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손을 들었다.

“나도 피해를 봤다. 내 사무실 건물이 박살 나서 무너졌고, 그 때문에 제대로 오늘 가축들을 돌보지 못했어. 게다가 너를 내 계획에 끼워주면서 금괴 절반가량을 뜯기게 됐지. 당연히, 그 괴인을 죽이고 싶다.”

“그래, 그래야지. 죽여-찢어야 한다!”

“하지만, 내겐 수습이 먼저야. 괜히, 놈을 건드렸다가 더 잃긴 싫어. 심상찮잖아. 그런 실력의 인간이라니.”

“그럼 내 손을 빌려야겠지. 내가 놈을 죽여준다.”

고갤 숙여 거꾸로 돌아간 얼굴을 들이밀며 스미릭은 누런 쥐새끼의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곤 한 손을 내밀며 속삭였다.

“그러니, 호의-장비를 구할 돈을 내라.”

빌어먹을 쥐쟁이.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신으로부터 더 많은 권능을 받았지만 전사로서는 좀 녹슨 자신과는 달리 저 거대한 쥐쟁이는 무섭도록 성장했으니까. 탐욕스런 암살자 앞에 뒤앙밍크는 이를 악물며 돌 탁자 아래에 놓은 캐쉬 박스를 통째로 꺼냈다.

“오늘 회수한 돈이다. 1,012만 2,000원이니까 다 가져가.”

“적다. 터무니없이! 부하 놈의 의뢰비도 안 돼!”

“지금 가지고 있는 건 이게 다야.”

“그럼 나중에 장비! 폭탄·총……!”

“그건 나도 얻기 힘들다. 암살을 의뢰한 후원자가 준 것일 뿐이야. 시X, 그거 발견되면 좀 골치 아프겠군.”

떼쓰는 쥐쟁이를 달래며 뒤앙밍크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아, 젠장. 그쪽에 도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그, 암살 의뢰는 당분간 안 받을 거지?”

“그래-복수가 중요하다.”

“하지만, 황금도 중요해. 미적거려선 안 돼. 너도 조금 전에 들어서 알 텐데? 내가 지하로 사람을 보내려는 걸 눈치챈 이들이 있다고 했어.”

조금 전, 가축이 했던 말.

자신이 지하로 사람을 보낼 꿍꿍이를 꾸미고 있단 걸 파악한 놈들이 있었다. 하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좋든 싫든 사람을 움직이면 티가 나고 어디선가 소문이 새 나가기 마련이니까. 물론, 적당히 포장할 방도를 마련했지만…… 혹시 모르니 빠르게 재물을 챙기는 게 먼저다.

“그 황금 창을 든 괴인은 내가 사람을 풀어서 찾아보도록 하지. 어찌 됐든 간에 나도 그놈에게서 피해를 보았으니까. 일단, 어디서 왔는지는 알아야 복수를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그 코가 민감하다 한들, 이곳은 너무 넓어.”

“찍-그럼 빨리!”

“그래, 최대한 빨리 금괴부터 회수하도록 하지. 일단, 네가 합류했으니 작전을 다시 짜자. 그리고 무엇보다…… 당사자의 말을 들어봐야지?”

고갤 돌려 뒤앙밍크는 일어선 노예를 바라보았다. 좀비가 된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태, 그 몸속에 갇혀 고통받는 영혼은 아직 이성을 가지고 있을 거다. 그래 봤자 얼마 되지 않아 기억과 자아가 모두 뭉개지겠지만.

-짝!

뒤앙밍크가 박수를 치자 굳어있던 그 입술에서 망자의 비명과 애원이 흘러나온다.

-끄으으으…… 죽여…… 줘! 제발!

“그래? 그럼 정확한 금괴와 금맥의 위치를 대봐. 그러면 ‘생각’해보지.”

-그으으…….

고통에 반쯤 이성이 사라진 노예가 필사적으로 중얼거리는 것을 두 사람은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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