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22화 (222/350)

제222화

막간. 황금 창을 든 악마

1.

새벽에 있었던 폭발의 굉음(轟音)은 ‘단절의 도시’ 전역에 울리기 충분했다.

그 폭음을 들은 이들의 숫자만 수십만 명, 안 그래도 ‘곧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라 더더욱 민감했다. 당연히, 뉴 송파구 정부는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조사는 지지부진했다.

‘오크와 나머지 종족’들 간의 갈등은 여기서도 문제였다. 뉴 송파구 정부는 빨리 조사를 끝내고 싶었지만, 이종족 지구에 머무는 이들은 이게 오크들에 의한 폭발이 아닌지 의심했고. 오크를 제외한 이종족들로만 이뤄진 조사단을 꾸려서 조사하고 통보하려는 형식을 취하려 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는 가운데, 폭발이 벌어진 지 하루가 더 지난 수요일에서야 오크들이 포함된 제대로 된 혼성 조사단이 파견될 수 있었다.

“거, 끔찍하구만.”

건물이 무너진 잔해 속, 지하에서 나오는 수없이 많은 쥐쟁이들의 시신을 보며 조사단의 일원으로 파견된 질서 집행관-드라릭은 얼굴을 찡그렸다. 죽은 쥐쟁이 숫자만 최소 수백 단위, 게다가 하나같이 시신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철퍽!

“으으으윽, 시X!”

조심스럽게 잔해를 치우고 쥐쟁이 시체를 꺼내던 드워프 경비병 하나가 쌍욕을 내뱉고 드라릭은 그 드워프를 충분히 ‘이해’했다. 피고름이 들어찬 풍선처럼 터져서 내장을 줄줄 흘리는 그 모습은 그가 봐도 충분히 역겨웠으니까.

지하에서 나오는 쥐쟁이 시체 중 폭발에 찢긴 건 굉장히 양호한 축에 속했다.

고름과 낭포로 부풀어 오른 것, 나병에 걸린 것처럼 살이 녹아내린 것…… 특히나, 고름이 차오른 것은 살짝 손대는 순간 싯누런 피지와 피고름이 터지며 흘러내리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으니까. 그나마 꺼낸 것들 중에서 온전한 시신을 확인하며 드라릭은 고갤 끄덕였다.

“흉곽에 새겨진 붉은 손바닥 문신…… 역시, 검은 칼날단이군.”

“검은 칼날단?”

따라붙은 감시역의 드워프 경비병이 작게 중얼거리자 드라릭은 어깰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단절의 도시 지하 기반 시설에 숨어있는 쥐쟁이로 이뤄진 암살단이다. 우리 같은 질서 유지관들에겐 지긋지긋한 놈들이지.”

“쥐쟁이가 암살단을요?”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에 드라릭은 쓰게 웃었다.

“그쪽은 이곳 출신이 아닌가 보군.”

“뭐, 불만 있소?”

“아니, 이해해. 우리도 처음엔 쥐쟁이를 얕봤으니까. 1년 전에 그놈들을 토벌하려다가 전사급 180명에 기사급은 32명이나 죽기 전까진 말이지.”

그에 휘둥그레 눈을 뜨는 드워프의 반응에 드라릭은 쓰러진 쥐쟁이의 시신을 도끼창으로 찌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미궁에서 보던 쥐쟁이들로 생각하면 안 돼. 이놈들은 고작 2개월 만에 성인이 된다. 게다가 암컷을 공장처럼 사용해서 쑴풍쑴풍 새끼를 미친 듯이 까는데, 쥐새끼들이 쬐끄만 주제에 무지 처먹잖아? 그 정돈 알지?”

“……그렇긴 합니다. 오지게 처먹죠.”

“공급되는 먹이가 부족하기에 서로 치열하게 싸워. 당연히, 동족을 먹어 치우고 강한 놈만 살아남는…… 미친 쥐새끼가 탄생하는 거지. 대략 50명 중 하나가 살아남는다더군. 그게 여기 문신을 새긴 일반 쥐쟁이야.”

그 말에 입을 떡 벌리는 드워프, 1년 전에 사로잡은 쥐쟁이 포로에게서 그 사실을 들었을 때의 자신도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드라릭은 쓰게 웃었다.

“그게 우리가 ‘검은 칼날단’ 포로에게서 알아낸 거다. 요즘 쥐새끼들을 다들 이런다더군. 그렇기에 나름 비범해서 마력 각성자들도 무지 많아.”

“…….”

“게다가 이 문신은 일종의 마법 문신이라서 <광폭화>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도 있지. 우린 이놈들을 뉴 송파구를 위협하는 실질적인 위협으로 보고 있다.”

더 이상 말을 못 하는 드워프 경비병을 내버려 둔 채, 드라릭은 찬찬히 움직여 더 많은 쥐쟁이 시체들이 있는 폭발의 중심지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반 시설이 깔려 있던 지하 공간 안쪽에서 조사 중인 동료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뭐, 알아낸 거 있냐?”

“음, 믿기 힘들겠지만…… 검은 칼날단이 전멸한 것 같아. 최소한 본거지가 박살 난 건 확실해.”

화재의 현장처럼 새카맣게 그을린 잔해를 신중하게 헤집으며 말하는 동료, 그에 드라릭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자 동료는 어깰 으쓱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두목 스미릭의 시체는 없지만. 건물 잔해에서 놈들이 사용하던 마법 장비는 물론이고 ‘그늘진 자’의 신상(神像)까지 나왔어. 안쪽에서 그늘진 자를 섬기는 귀쟁이들이 진짜인 걸 확인했고. 그 ‘번식장’도 깔린 것 같더군. 가짜라고 보기엔 너무 피해가 커.”

“허, 허허허.”

동료의 말에 드라릭은 살짝 허탈하게 웃었다. 더럽고 불결한 쥐쟁이 새끼들이 죽었다는 건 언제나 좋은 일이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흘러갈 줄은 몰랐다. 그렇게 드라릭이 허탈하게 웃고 있을 때-.

“여기! 이쪽에 생존자가 있습니다!”

더 깊숙한 곳을 뒤지고 있던 딥 엘프 조사단 일원이 외친다. 그에 드라릭과 동료는 곧바로 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기반 시설 밑에 지어진 거점, 그 밑바닥에 있는 좁은 토굴. 혹시 모르기에 암살자에 대항할 수 있는 딥 엘프 요원들이 파견된 곳이었다.

“여긴…….”

무너진 잔해 사이에 있는 커다란 통로, 그 안에 들어서자 양옆의 벽면에는 팔다리가 벽에 묶인 쥐쟁이들이 주르륵 매달려 있었다. 입에는 호스가 부착되고 복부는 거대하게 부풀어 오른 것이 꼭 가축 같은 모습, 그 기괴한 광경에 드라릭이 조심스럽게 창으로 건드리자-.

-푸드득! 푸드드드…….

“으윽!”

그 가랑이 사이에서 잘 익혀진, 고름으로 뒤덮인 쥐쟁이 사산아가 주룩주룩 쏟아졌다. 드라릭이 질겁하는 모습에 동료는 피식 웃었다.

“옛날 쥐쟁이 포로가 말했던 ‘번식장’인 것 같네. 말했잖아. 튼튼한 양질의 암컷들을 골라 임신 기계로 쓴다고.”

“……그래도 이건 너무 엽기적이군.”

“맞아. 이런 ‘전문적인 설비’를 갖추고 곳곳에서 작정하고 종족의 숫자를 늘리고 있다니…… 미궁에선 이런 짓이 불가능했을 텐데 말이지.”

짙은 혐오가 섞인 얼굴로 질식해 죽은 ‘번식기’를 훑는 동료,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안쪽으로 향해 통로가 끝나는 곳에 있는 쥐쟁이와 딥 엘프 조사원들을 볼 수 있었다.

“찍! 찌-찌지직!”

“찌-이익!”

한쪽 앞발이 잘린 채 구석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쥐쟁이 한 마리, 그리고 ‘단검’을 쥔 채 놈을 심문하고 있는 딥 엘프들. 그 찍찍 소리에-.

“황금 창을 든 악마?”

“……뭔 소리야?”

“저 쥐쟁이가 떠드는 거야. ‘황금 창을 든 악마가 악귀들을 부렸다?’ 뭐, 지상에 나왔다고 해도 쥐쟁이 새끼 머리가 대부분 뻔하지. 걸러 들어.”

쥐쟁이의 언어를 알고 있어서 파견된 동료의 대꾸. 동료는 시큰둥하게 말했지만…… 드라릭은 황금 창이라는 말에 엊그저께 마주쳤던 존재가 떠올랐다. 그에 드라릭은 딥 엘프 측에 다가가서 정중하게 요청했다.

“저 쥐쟁이에게 이 말을 해줄 수 있소?”

“어떤 걸 말이죠?”

“후드가 달린 누더기 로브, 그 후드 안쪽에 있는 악귀 해골, 눈구멍에서 빛나는 불길한 검붉은 광채. 그리고 저주와 같은 살기.”

“……네?”

“이 정도면 되오.”

그 요청에 딥 엘프가 심문을 하고 있던 이에게 다가가 속삭이고, 그에 심문하던 딥 엘프가 그 말을 내뱉자-.

“찌이이익! 찌이이이이이익!”

“그만! 찍-찌지지-찍!”

발작하는 쥐쟁이, 심문을 하고 있던 딥 엘프가 단검으로 코끝의 살점과 수염을 날리며 협박하지만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에 동료와 딥 엘프들이 쳐다보자 드라릭은 한숨을 내뱉으며 엘프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저 쥐쟁이가 말하는 자, 진짜 있는 자요.”

“……진짜 있다고요?”

“그렇소, 내가 직접 봤소. 겁 없는 어린 오크 놈들이 그 괴물에게 시비를 털어가지고…… 그 살기가 날 향했을 때 죽음을 직감했지. 그나마 불필요한 싸움을 싫어하는 것 같아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난 죽었소.”

그에 동료의 얼굴이 신중해진다. 현재 확보된 유일한 생존자, 쥐쟁이의 말이라 믿기 힘들었지만 그렇게 묘사하는 이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네가 죽음을 직감했다면…….”

“좀 불경한 말이지만 전쟁 군주님들 못지않았다. 아니, 느낌이 훨씬 더 ‘추잡하고 끔찍’했어. 질서 유지관 경계 목록에 새로 보고했으니 초상화가 곧 그려질 거다.”

마력에 반응하는 기세, 그건 심상에 따라 좌우된다. 살기를 보고 어느 정도 어떤 유형인지 추정해도 될 정도. 끔찍하다는 건…… 그만큼, 악랄한 존재라고 판단해도 무방하다. 그에 동료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그러고 보니, 그자. 이종족 지구에 갈 거라고 했었지.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도대체 어떤 능력이 있었냐고 좀 물어봐 주시오.”

“음, 찌-직! 찍찍!”

그에 딥 엘프가 진지한 얼굴로 고갤 끄덕이며 심문을 계속해나갔다. 그렇게 30분 넘게 지났을 때, 오크들은 대략적인 심문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었다. 옆에서 쥐쟁이의 심문을 같이 들은 동료가 먼저 보고서를 훑곤 고갤 끄덕였다.

“역시, 딥 엘프들의 해석도 이렇군. 나만 이상하게 말을 해석했나 싶었는데.”

“왜?”

“‘그 악마가 갑자기 쳐들어왔다. 교관을 죽였다. 이유 없이. 곁에 가면 시체가 썩었고, 시체를 씹어 먹고, 입에서 악령을 토해냈다. 닿는 것만으로도 썩어 문드러지는 사악한 것들, 독기를 흩뿌리며, 어린 것들을 잔학하게 학살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폭발했다. 모든 것이 불길에 휩싸인다.’”

“…….”

“이것도 많이 순화한 거야. 그래도 너무 거창하지. 네가 진짜 그자를 봤다고 하지 않았으면 쥐쟁이의 과대망상이라고 생각했을걸?”

그에 드라릭의 얼굴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상층 드워프 쪽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굴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다른 이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곤 작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폭발에 대한 흔적을 조사했소. 일단, 폭발은 복합적이요. ‘폭약’에 의한 흔적이 있고, ‘마법’으로 인한 발화의 흔적도 있소.”

“폭약?!”

“확실하오. 지상에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성분 검출을 해봤어. 게다가 총의 흔적도 있었소. 폭발에 완전히 박살 났지만 말이지. 지하에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총, 마력 각성도 하지 못한 초짜가 마력 각성자를 죽이게 해주는 마법 같은 무기. 방탄 수준의 피부를 지닌 전쟁 군주가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총이다. 그렇기에 지상의 폭약과 총알은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상층에 있는 모든 주류 이종족들이 거기에 동의했다.

하층민들의 반란을 막기 위해, 동시에 오크들이 작정하고 총으로 무장하고 숫자로 밀어붙이면 더 답이 없기에 동의한 것들. 근데, 폭약이 사용됐다? 게다가 총까지 흘러나왔다? 이건 정말 심각한 사안이었다.

조사관들 사이에서 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엘프 조사관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폭약과 총을 이용한 테러와 암살이 좀 있었지 않나요? 오크 고위층 사이에서.”

“부끄럽지만…… 맞소. 덕분에 분위기가 좀 험악하고. 하지만, 이런 곳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거요. 그것도 쥐쟁이 암살단이 있는 곳에서.”

“어딘가에서 총을 빼돌리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한 드워프의 중얼거림, 그에 드라릭은 한 손을 들어 무거워지려는 분위기를 환기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끼리 어떻게 말하기엔 너무 안건이 크오. 일단, 다른 이들에겐 총과 폭약은 비밀로 하고 윗선에 알리도록 합시다. 그리고, 황금 창의 악마에 대해서도 알아보도록 하고.”

그에 모든 조사관의 고개가 위아래로 까닥였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