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24화 (224/350)

제224화

4.

미궁의 종족들에게 전사 계급은 ‘마력 각성자’를 뜻한다.

현실을 초월하게 하는 정체불명의 에너지-마력의 작용에 의해 현실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이들. 당연히, 숫자가 적고 귀중한 취급을 받는다. 내가 몰래 무임승차하고 있는 이 원정대의 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쥬라카가 전사 계급이었다.

하지만, 다가오는 오크는 쥬라카보다 훨씬 더 강했다.

자기 몸에 적용되는 물리법칙은 물론이고 외부에도 영향을 끼칠 만한 수준-기사급. 게다가 그 몸에는 ‘세로쉬의 은총’이 넘실거린다. 보아하니 전쟁 군주들같이 직접적으로 세례를 받은 건 아니고, 그냥 권능을 받은 놈인 것 같네.

게다가 그를 필두로 뒤쪽에서 나오는 6명은…….

“……뭔 꿍꿍이지?”

“하하, 살벌한 친구구만.”

하나같이 마력 각성자-전사들이다.

진짜, 유입 오크들 실력이 엄청나다고 하더니 저렇게 전사급들이 우르르 다닐 줄은 몰랐네. 뒤앙밍크의 원정단처럼 복장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주 튼실하게 무장하고 있다. 마법적인 아우라를 흘리는 장비도 껴 있는 게 성능만 따지면 오히려 저쪽이 더 좋아. 싸우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어쨌든 쥬라카가 말하자 검은 방패를 찬 오크가 고갤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어나간다.

“싸울 생각은 없어. 좀 살벌한 복장을 한 이들이 지나가기에 궁금해서 멈춰 세웠지. 도대체 어딜 가려는 거지?”

“……뉴 송파구 정부의 의뢰를 받아 분뇨 수거를 하러 왔다.”

“분뇨 수거?”

생각지도 못한 대꾸에 오크가 두 눈을 끔뻑인다. <투명화> 상태로 트럭 밑바닥에 붙어있는 나도 마찬가지. 분뇨 수거? 아니, 그럼 이 차는…… 생리적 혐오감에 트럭 밑바닥에 붙은 내가 얼굴을 구기는 사이, 쥬라카 영감님은 고갤 끄덕인다.

“3개월 동안, 하수도가 깔리지 않은 중층 이하에 분뇨 수거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더군. 위생이 심각하게 나빠졌을 테니 수거를 해달라고 의뢰를 받았다.”

“후우, 하긴. 슬슬 냄새가 나긴 했지. 건물마다 화장실이 역류하고.”

질린 표정으로 고갤 끄덕이는 방패를 멘 오크와 그 무리들, 다행히 스무드하게 넘어가는 것 같았다. 앞으로 계속해서 기생하며 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럼 어느 곳이나 분뇨 수거를 해주는 건가?”

“그렇다.”

“그럼, 우리 쪽 마을에 들러줄 수 있나? 길 안내를 해주지.”

상황이 조금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오락실에서 웃으라고 속삭이면서 어깨동무를 하던 고딩 형이 저랬을까? 묘한 분위기를 흘리며 요청하는 오크 기사, 방독면과 투구 덕분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쥬라카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완강하게 고갤 젓는다.

“안타깝지만 안 된다.”

“안 된다고?”

“수거 차량은 이거 하나뿐,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다. 수거한 뒤에 중간층에 있는 오폐수 처리장에 비워야 하는데, 계획대로 움직여야 돌 수 있다. 어차피 모든 중층 지역은 전부 다 돌아다닐 예정이니…….”

“정말 급해서 그렇다네. 거주하고 있는 내 형제들이 진짜 괴로워해서 그래. 이것도 인연인데 조금 편의를 봐줄 수 있지 않겠나?”

침묵하는 쥬라카, 그에 순순히 따르려나 싶었는데…….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다.”

대놓고 고갤 젓는다. 그리곤 손에 쥔 양손 도끼를 꽈악 쥐며 말을 이어나간다.

“우린 예정대로 움직일 거다. 그러니 순서를 기다려라.”

“……좋은 말로 해서는 안 되겠군.”

“해보자는 건가? 마을 자경단도 합류할 텐데.”

쥬라카의 말에 차량에 매달려 있던 이들도 양손 도끼를 쥔 채 내린다.

숫자에서도 밀리고 장비나 개개인의 실력도 부족한 상황, 방독면 안쪽에 있는 우리 원정단 친구들 얼굴은 하나같이 안 좋았지만 겉으로 보기엔 살벌하기 그지없다. 역시, 얼굴을 가린 게 신의 한 수야. 그 완강한 거부 의사에 오크 기사는 흥이 식었다는 듯 혀를 차며 턱짓한다.

“하, 과민 반응하지 마. 이쪽도 괜한 분쟁을 일으키긴 싫으니까.”

검은 방패 오크의 손짓에 트럭을 가로막은 봉고가 천천히 움직이고, 그에 쥬라카도 호응하듯이 동료들에게 손짓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재빠르게 다시 트럭에 탑승하는 오크들, 쥬라카는 천천히 그리고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트럭에 탑승한다.

“경로를 바꾸지. 1번 출구로 가게.”

“경로를 바꿔요?”

“낌새가 안 좋아, 따라붙을 수도 있으니 다른 쪽으로 가야지. 뒤쪽 패거리 트럭에 찍힌 마크를 보니 ‘울락 순교회’인데…… 다른 세력이 차지한 곳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군. 길이 좀 안 좋지만 어쩔 수 없지.”

내가 모르는 말을 중얼거리며 재촉하는 쥬라카, 그에 운전하는 오크는 핸들을 꺾으며 한숨을 내쉰다.

“아직 3km도 아닌데 벌써부터 저런 놈들이 있네요. 마을 자경대 놈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답니까? 저런 대놓고 불한당인 놈들을 받아들이고?”

“마을 자경대로만 막기엔 너무 강해. 저 녀석들, 죄다 전사들이다. 그리고, 조금 전에 나와 말했던 놈은 최소 기사급이고. 나 같아도 공손해질 거야.”

마을의 출구로 향하면서도 쥬라카는 백미러로 상대방이 따라오지는 지 확인한다. 그리고, 터널로 들어서자마자-.

“밟게. 전력으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오크를 재촉한다. 하지만, 길 상태가 그리 좋지 않고 오크도 초보자인 듯 제대로 속도를 못 내는 가운데-.

-부우우우웅!

“옵니다!”

뒤쪽에서 철갑을 두른 픽업트럭이 나타난다. 후면에 달라붙어 있던 오크가 심상찮은 낌새를 눈치채고 소리치는 가운데, 빠르게 접근하는 차량이 반대편 차선 쪽에 달라붙는다. 그에 쥬라카가 이를 악문다.

“쳐! 왼쪽으로 꺾어서 밀어붙여!”

“네!? 하지만, 붙어있는 애들…….”

“괜찮으니까 밀어! 저 새끼들 100% 약탈자다! 그나마 차량에 타고 있을 때가 유리해!”

말하다가 답답했는지 그대로 핸들을 낚아채 ‘휙!’ 꺾는 쥬라카, 그에 나도 흔들릴 걸 직감하고 힘껏 달라붙었다. 트럭이 휘청이는 것과 함께 그대로 반대편 차선을 달리던 픽업트럭을 가볍게 후려친다.

“으아아아!”

-콰앙! 끼기기기긱!

굉음과 함께 흔들리는 차량, 옆의 픽업트럭은 튕겨 나가다시피 해서 터널의 석벽과 부딪친다. 그 과정에서 왼쪽 탱크로리 사다리에 붙어있던 오크도 튕겨 나가 바닥에 나뒹군다. 목이 꺾인 걸 보니 죽었구만. 어떻게 위기를 넘긴 것 같았다만-.

-휙!

픽업트럭이 튕겨 나가기 직전, 오픈된 적재함에 타고 있던 오크 기사가 움직였다.

탱크로리와 부딪치는 순간, 도약해 절묘하게 탱크 위로 착지하는 오크 기사. 오른쪽 탱크 옆에 달린 철제 사다리에 있던 원정대원이 냅다 허리춤에서 빼낸 투척 도끼를 던졌지만 놈은 가뿐하게 손을 뻗어 날아오는 도끼를 낚아채곤-.

-퍼억!

우리 파티원에게 되돌려준다.

머리통에 도끼가 박히고 그대로 트럭에서 떨어지는 우리 파티원. 조수석에 타고 있던 대장 오크가 창밖으로 몸을 빼며 놈에게 투척 도끼를 던졌지만, 놈은 곧장 등에 멘 방패를 휘둘러 막곤 운전석 쪽으로 돌진한다. 젠장, 곱게 묻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후, 난 기사 녀석을 막기 위해 움직였다.

5.

“망할! 핸들 흔들어!!”

탱크로리 위로 뛰어올라 동료를 격살하는 오크 기사, 사이드미러를 통해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쥬라카는 운전사에게 소리치며 허리춤의 투척 도끼를 움켜쥐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몸을 빼며 적을 향해 전력으로 내던졌다.

-퉁!

하지만, 기사 오크는 가뿐하게 등에서 풀어낸 ‘검은 대방패’를 들어 튕겨낸다. 이어서 방패를 오른손에 옮겨 잡은 후, 허리띠에 걸려있던 브로드 엑스를 왼손에 쥐고 그대로 돌진하려 한다. 그에 쥬라카는-.

“그냥 문 열고 뛰어!”

“네?!”

있는 힘껏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콰작!

간발의 차이로 그가 있던 자리에 천장을 후려 찍는 브로드 엑스, 그대로 철판을 뚫고 들어오는 그 광경을 보며 쥬라카는 포기하지 않고 반격하듯 도끼를 던졌지만 놈은 가뿐히 비범해 보이는 검은 방패로 튕겨낸다.

-쿵! 퉁! 퉁구르르르…….

바닥에 몸을 부딪치는 순간, 쥬라카는 슬라이딩하듯이 바닥을 굴렀다. 그러면서도 트럭을 주시했다. 안타깝게도 운전석에 앉은 어린놈은 그의 말을 듣고도 미적거렸다. 그가 몸을 던지는 사이, 놈은 어느새 도끼로 운전석 천장을 박살 냈다.

-끼이이이이이익!

그와 함께 트럭은 반대편 차선의 벽과 시끄러운 마찰음을 토해내며 스치다가 결국 엎어진다. 이를 악물고 일어선 쥬라카는 상황을 체크했다. 운전사 사망, 양옆 경계병 사망, 후방을 경계하던 스툴라는 타이밍 좋게 뛰어내려 어떻게 살아있지만…….

“망할.”

엎어진 픽업트럭에서 적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찰과상을 입었지만 어디 부러진 곳은 없는 것 같았다. 사실상, 피해가 없다. 전사 5명에 기사급 1명 vs 전사 1명에 일반인 1명. 이래선 보나 마나 뻔…….

“?!”

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질적인 존재가 한 명 끼어있었다.

약탈자 놈들과 쥬라카 사이, 바닥을 짚고 일어서는 왜소한 체격의 이방인.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지만 넝마 같은 짧은 로브에 검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허리에는 황금빛을 띠는 굵은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찰캉! 스스스스슥!

“……!?”

그리고, 이방인이 눈에 띄는 황금빛 사슬 벨트를 손에 뜯어내자 금속 벨트가 멋대로 움직이며 3m 남짓한 창으로 변화한다. 동료는 아닌 듯, 그 모습에 당황하는 오크 약탈자들. 이방인은 그 황금빛 장창을 오른손으로 빙글빙글 돌리더니-

-파앙!

약탈자들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보고 있었음에도 대처하기 힘들 정도의 가공할 빠르기, 약탈자들이 저항하려 하지만 돌연 이방인에게서 검은 장막처럼 보이는 ‘새카만 연기’가 솟구치며 이방인과 약탈자들을 뒤덮는다.

“막…….”

-촤학! 촤학! 촤학!

그 검은 장막 속에서 들려오는 ‘고기가 썰리는 소음’,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는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다. 불과 두 호흡도 지나지 않아 드리워지는 침묵, 검은 장막의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흥건한 붉은 피가 안쪽에서 벌어진 일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저벅저벅…….

이어서 질척한 검은 장막 속에서 이방인이 걸어 나왔다.

후드 안쪽에 있는 악귀의 해골, 그 눈구덩이에는 광전사를 연상케 하는 검붉은 광채가 번들거리고 있다. 그 흉흉한 모습에 쥬라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미궁 출신으로 온갖 잡놈들을 다 만나봤지만 저런…….

“이 뭔…….”

그때, 뒤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방패의 오크 기사, 트럭이 엎어지면서 반대쪽으로 넘어갔던 놈이 넘어와서 벌어진 참상을 보며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불길한 외형의 이방인이 왼손을 뻗었다.

-파파팡!

공기 터지는 소음과 함께 조그만 것들이 괴인의 손끝에서 튀어나와 약탈자 대장을 향해 날아간다. 마력 각성자인 그도 잘 못 볼 정도로 가공할 빠르기, 약탈자 대장이 반사적으로 막는 가운데 괴인은 어느새 그를 지나쳐 약탈자를 향해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이 개…….”

그에 약탈자 대장도 움직인다.

커다란 흑색 방패를 들어 올리면서 그대로 괴인을 향해 마주치듯이 돌격하는 오크, 그와 함께 흑색 방패의 표면이 물결치면서-.

-파파팡!

괴인이 쏘아냈던 뭔가가 그대로 괴인을 향해 쏘아진다. 그 모습에 괴인이 살짝 당황한 듯, 휘청이는 사이-.

-콰앙!

흑색 방패와 부딪쳐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크게 튕겨 나갔다.

“새끼들…… 오크를 배신했구나! 이종족이랑 붙어먹었어!! [위대한 세로쉬 님이시여! 저 버러지에게 신의 천벌을!]”

멋대로 오해하며 도끼를 번쩍 드는 약탈자 대장, 그와 함께 그에게서 신성한 황금빛이 번쩍였다. 오크라면 본능적으로 숭상할 수밖에 없는 ‘세로쉬’의 힘,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쥬라카가 굳은 가운데 드높은 천상이 열리며 한줄기 황톳빛에 가까운 황금빛이 흘러든다.

-콰앙!

“뒈져!”

세로쉬를 섬기는 이들의 공통적인 권능 중 하나인 <신성 강타>가 괴인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그 일격에 튕겨 나갔던 괴인이 살짝 휘청거리자 약탈자 대장은 가열하게 달려든다.

-푸화아아악!

그에 해골 투구의 아가리가 ‘쩌억-!’ 열리더니 거대한 타르 덩어리 같은 시커먼 연기를 토해낸다. 브레스 공격처럼 밀려오는 검은 연기, 다행히 호흡기에 작용하는 듯 방독면을 착용한 쥬라카는 직격당하고도 별 피해 없이 재빨리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약탈자 대장은 달랐다.

“……캬학!”

-쾅! 탕! 탕!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허겁지겁 뒷걸음질로 밖으로 빠져나오는 녀석, 연이어 채찍 같은 황금빛 섬광이 검은 연기 속에서 번뜩이며 뻗어 나와 놈을 몰아세운다. 하지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녀석은 커다란 대방패를 움직여 어떻게든 공격을 막아내면서-.

“[강건한 야성의 피가 내 심장에 솟구치니! 이는 세로쉬 님의 축…….]”

-텅!

크게 숨을 들이켜며 뭘 하려 하기에 쥬라카는 그 옆통수를 향해 투척 도끼를 던졌다.

앞의 적의 공격을 막는데 신경이 쏠렸는지 그가 던진 투척 도끼를 뒤늦게 파악하곤 허겁지겁 막았지만, 그 사이에 괴인은 원숭이를 연상케 하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허릴 숙인 채 반대쪽으로 빠져나와-.

-푸욱!

“컥! 허어어…….”

창을 뻗어 약탈자 대장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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