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26화 (226/350)

제226화

47화. 조별 과제엔 언제나 트롤이……

1.

정리·정비가 끝난 뒤, 우리 지하 원정대는 다시 출발했다.

얼마 안 가 픽업트럭을 운전하는 오크와 찢어지고, 남은 건 나와 오크 영감님뿐. 붉은 렌즈가 번들거리는 방독면을 쓴 영감님은 겉으론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지만, 안쪽의 얼굴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긴, 약탈자 때문에 동료가 3명이나 죽었는데 긴장 안 하는 게 이상하지.

긴장을 풀 겸+정보도 수집할 겸 해서 가볍게 말을 걸었는데, 영감님은 군대에서 대대장에게 질문받은 병사처럼 되게 딱딱하게 반응했다. 날 경계하는 모습, 생각해 보니 영감님 입장에선 나도 의심스런 인물이긴 하지.

인싸는 여기서 어떻게 잘 구슬리겠지만…… 난 아싸라서 그런지 못하겠더라.

그래서 몇 번 말 걸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이번 일 끝나면 더 볼 사이도 아닌데 뭐. 어쨌든 차량은 그렇게 30분 동안 순조롭게 아래로 내려가 마침내 검문·검색도 없는 영역에 도달했다.

“마을 분위기가…… 좀 이상하군.”

“꼭 전쟁터 같네요.”

영감님의 말에 나도 동의했다.

이전에 지나쳤던 마을들이 좀 흉흉한 슬럼가가 떠올랐다면 지금 도착한 마을은 꼭 전쟁터 같다. 마을 외곽에 세워진 피난민 천막엔 붕대를 두른 부상자들이 누워 있고, 보기 힘들었던 오크 전사들이 널려 있어. 외곽 주차장에 있는 차량 또한 좀 세기말 디자인이고…….

“이 밑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잠깐 쉬면서 물어보는 게 어떻겠소?”

“차량에서 너무 떨어지지만 마세요. 뭔가 일이 터지면 제가 간섭하기 힘드니까.”

내가 쿨하게 허락하자 영감님은 주차장에 차량을 세우고, 그 한편에 마련된 야외 휴게실에서 담배 피우며 잡담하고 있는 운전사들에게 다가간다. 위압감 느껴지는 영감님의 복장에 오크들이 경계했지만-.

“휴. 답답하구만. 담배 한 개비씩들 하시겠소?”

보란 듯이 방독면을 벗으며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한 개비 문다. 그렇게 영감님은 남다른 인싸력을 뽐내며 오크들에게 담배 한 개비씩 돌리면서 말문을 틔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오크들, 그렇게 한 시간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님이 돌아왔다.

“아래 경로상의 마을에 대규모 트롤 무리가 나타났다더군. 주술을 사용하는 희귀한 놈도 있어서 토벌대가 꾸려졌다고 하오. 보아하니 우리가 위에서 마주쳤던 놈도 토벌대에 합류하려던 놈…….”

운전석에 앉으면서 듣고 온 내용을 떠드는 영감님, 이미 <눈>으로 엿들어서 대충 알고 있다. 마을 중 하나에 트롤들의 습격이 있었고, 그 약탈과 살인을 막기 위해서 유입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한다.

트롤이라…….

유튜브에서 봤던 트롤 관련 영상을 떠올렸다. 얼굴은 문둥병 환자처럼 무너져 내리고, 몸은 털 대신에 끔찍한 종괴(腫塊)가 덕지덕지 붙은 것 같은 거대 원숭이 같았지. 말이 통하긴 하는데 유아 수준이었고. 비정상적인 회복력의 원천인 피는 마법적인 전통적인 포션의 재료이기도 하다.

그렇게 대충 한 귀로 흘려듣고 있는데-.

“아무튼, 더 진행하는 건 좀 힘들 것 같소.”

“네? 어째서죠? 트롤 때문인가요?”

“그것도 그렇긴 하지만…… 생각보다 유입 오크들 사이의 분쟁이 심한 것 같거든.”

영감님의 말에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이건 영감님이 듣고 온 내용 중에 없던 것, 내가 응시하자 영감님은 잠시 빼뒀던 방독면의 정화통을 끼우면서 말을 이어 나간다.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내려가는지 알고 있소?”

“하층에 있는 흙·모래 공장+분뇨 수거장을 다시 활성화하는 거 아닌가요?”

“맞소, 분뇨 수거를 하면서 공장의 필요성을 어필하는 거지.”

읽어본 영감님의 <과거>에 따르면 이 원정대의 목적은 아래에 내려가 뒤앙밍크의 것이 된 ‘흙·모래 공장+분뇨 수거장’을 다시 활성화하는 거다. 분뇨를 수거하는 공장이 멈춰서 유입 오크들도 고역일 테니, 한번 돌아다니면서 그 필요성을 어필하는…… 일종의 홍보차량이지.

내 대답에 고갤 끄덕이며 영감님은 말을 이어 나간다.

“운전사들의 옷과 몸에 있는 표식과 서로 모인 꼬라지를 보니 하층이 돌아가는 꼴이 대충 짐작이 되오. 4개 세력이 꽤나 팽팽하게 다투고 있는 것 같아. 내가 분뇨 수거를 위해 내려간다고 하니까 각자 트롤이 없는 경로를 추천해 줬는데…….”

영감님은 자신의 추리를 설명했다.

조직에 속한 운전사들이 무리 짓는 경향, 그들이 추천해 준 경로, 유입 오크들 소속이 아닌 듯한 운전사들의 못마땅한 반응…… 그 말을 들으며 난 그저 입만 헤 벌렸다. 그냥 사람 좋게 웃으며 잡담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영감님은 교묘하게 말을 돌리며 이면의 정보를 파헤치고 있었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영감님이 추론한 정보들을 하나로 모아 보니…….

“……한 마디로 분뇨가 넘치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막장이다?”

“그건, 확실하지 않소. 하지만, 이 차량을 탐내고 있는 건 확실해. 지금은 마을이라서 손을 쓰지 않지만 자기네들 세력권으로 차량이 움직이면 뺏을 것이 예상되오. 사실, 이곳도 좀 그렇소. ‘전투 징발’이란 명목으로 차량을 반 강탈당한 이가 벌써 있거든.”

“흐음…….”

“아무래도 이대로 내려가는 건 좀 힘들 것 같소.”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펼치는 오크 영감님, 확실히 영감님의 추론은 빈틈이 없었다. 나조차도 설득될 정도니까. 하지만…….

“그래도 가야죠.”

“……진짜 그럴 거요? 내려가는 것도 불확실할뿐더러, 내려가 봤자 유입 오크들의 분위기를 보아하니 공장 재활성화라는 목적 달성은 힘드오.”

내가 진짜 뒤앙밍크의 의뢰를 받아 움직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내 목적은 그냥 ‘내려가는 것’이거든. 껄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는 영감님을 향해 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받은 의뢰 내용은 ‘내려가는 것’이거든요. 정 되돌아가시겠다면…… 제가 드린 장비들을 되돌려 받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

“저도 수고했는데 챙기는 게 좀 있어야죠? 솔직히, 의뢰에 실패하면 제가 조금 챙긴 거로는 부족해요.”

내 대답에 영감님은 방독면 안쪽의 얼굴을 팍 구긴다.

<과거>를 확인한 바, 이 원정대의 대원들은 전부 뒤앙밍크의 채무자들이다. 그리고, 임무를 달성하면 ‘빚 탕감’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위험해도 목숨 걸고 뛰어든 거지.

하지만, 한 시간 전에 만난 약탈자 놈들로 인해 상황이 좀 바뀌었다.

놈들이 꽤나 훌륭한 드랍(?)템을 남겼고, 난 가장 좋은 거 몇 개 빼고 쿨하게 남은 두 사람에게 넘겼는데…… 그렇게 준 장비들만 처분해도 뒤앙밍크의 빚은 완전히 갚을 정도였다. 어린 오크 놈이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그냥 올라가도 빚 갚는다.’라고 흥분한 걸 난 다 봤다.

그래, 이 영감님 은근슬쩍 도망치려는 거다.

어차피 목숨 안 걸어도 빚을 다 갚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걔는 있어 봤자 별 도움 안 될 것 같아서 순순히 보내드렸지만 이 영감님은 안 되지! 내 모가지가 걸린 일이다! 절대 양보 못 함! 출발한 거! 무조건 내려간다!

“……하아, 알겠소.”

-부릉! 부르르릉!

그런 내 강한 집념을 읽었는지, 영감님은 체념한 표정으로 다시 차량을 움직였다.

2.

조별 과제에서 도망치려는 조원의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난 계속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향하는 경로는 운전사들이 추천해 주지 않은 경로였다. 유입 오크들 사이의 일종의 완충지대를 넘어가는 방식으로 짰지. 그러면서도 트롤이 나타났다는 마을은 피하기 위해서 좀 경로가 꼬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흘러가는 줄 알았는데…….

“……내가 그냥 돌아가자고 했잖소.”

“흠.”

종양 덩어리로 뒤덮인 유인원을 연상케 하는 인간형 괴물.

낮은 지능과 매우 흉측한 외모를 지녔지만, 대신에 커다랗고 물리적으로 대단히 강력하다. 이들은 잘려 나간 손발도 재생할 정도로 뛰어난 회복력을 지녔으며 매우 빠른 신진대사를 갖고 있기에 아주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

당신은 위장 깊은 곳에서 구역감을 느꼈다.

가죽 쪼가리로 고간만 간신히 가린, 헐벗은 트롤 4마리와 가죽 로브와 지팡이를 든 주술사로 보이는 트롤 1마리가 도로 중간에 앉아 있었다. 습격 소식이 없는 마을 방향이라서 안심하고 움직였는데 이렇게 되네. 저쪽도 우릴 본 건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모습, 근데 트롤들의 모습이…….

“여기 트롤은 저렇게 생겼나요?”

“……좀 특이하긴 하군.”

유튜브에서 본 놈과는 좀 다르다. 유튜브에서 본 트롤들은 원숭이 유인원과 비슷하게 팔다리가 길쭉길쭉했는데, 저놈들은 고릴라를 연상케 할 정도로 뚱뚱하고 피부의 종괴는 잘 연마된 돌처럼 딱딱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좀 심각하게 비만, 그래도 트롤인 건 확실하다.

“후진할 수 있겠어요?”

-부우우우웅!!

“안 되네요.”

차량을 후진해 보려고 하지만 되질 않는다.

오크들의 세력권을 신경 써서 움직이면서 정상적인 길로 오지 못했다. 터널 경사가 굉장히 가팔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타고 온 트럭 자체가 좀…… 시원찮았다. 폐차하지 않고 수출한 차량 같다고 해야 하나? 엄청 낡아서 힘 자체가 약했다. 어떻게 하층까지 편하게 가나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네.

“앞에 트롤이 버티고 있는 걸 보면 앞쪽 마을도 트롤이 있을 것 같소.”

“하아.”

짜증에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난 차 문을 열고 내리며 영감님에게 충고했다.

“차 버리고 도망칠 준비하세요. 제가 트롤들에게 마법을 쓰면 곧바로 액셀 밟아서 트럭은 놈들에 던져 버리시고.”

“음, 알겠소.”

진지한 음성과는 달리 방독면 안쪽의 얼굴은 좋아죽겠다는 표정의 영감님. 왜 저런 웃음을 지을까? 못 내려가면 장비를 다 돌려받겠다고 했는데? 물론, 실제론 여기서 원정대가 엎어지면 그냥 수거한 장비 가지고 올라가라고 말할 생각…….

아니, 잠깐만.

지금 내 외형으로 마을에 가면 오크들이 제지할 게 뻔하다. <투명화>도 솔직히 위장 수준이어서 과격하게 움직이진 못하고. 내가 조수석에 앉아 있기에 이 영감님도 알고 있지. ……이 영감탱이?! 장비 들고 런 하려는 속셈이구나!?

“크르르르륵!”

교활한 영감의 술수를 파악하고 이를 갈 때, 전방에서 트롤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젠장, 일단 트롤부터 처리해야지. 놈들에게 진득한 살기를 내뿜으며 품 안의 준비물을 꺼내려고 할 때-.

“싸우나유? 대장?”

“어, 어쩌지.”

“난, 져 쬐끄만 놈이 좀 무서운디…… 싸우기 싫어.”

“다가오지만 않으면 내버려 둬도 되지 않겠어유? 막으라고만 했잖아유.”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트롤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호랑이 같은 야수가 낮게 ‘그르럭!’거리는 것 같은 소음, 하지만 <게임 시스템>이 번역하는 그 말은 뉘앙스나 뜻이 되게 온순했다. 자세히 보니…… 뭐라고 해야 할까? 얼굴은 되게 험상궂지만 왠지 좀 순둥순둥하게 보이네.

잠깐만.

트롤들이 고민하고 있는 사이, <눈>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런 할 준비를 하고 싱글싱글 웃고 있는 오크 영감님. 그 꼬라지가 심히 꼴 받지만 그래도 그 능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끌고 가면 도움이 되겠지.

그래, X발. 인생 뭐 있냐!?

“안녕하세요!”

“그럭!!”

크게 숨을 들이켠 후, 살기를 거두고 커다란 목소리로 인사했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야수 같은 그르럭 소음에 기겁하며 놀라는 트롤들. 얼마 가지 않아서 무리의 대장-주술사로 보이는 트롤이 두 눈을 끔뻑이더니 날 향해 말한다.

“우리 말 할 줄 알어?”

“네, 기본 소양으로 익혔죠. 좀 지나가도 될까요?”

“어, 그게……!”

어벙하게 우물쭈물하는 주술사 트롤, 그러더니 부하들로 보이는 애들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하지만, 부하들도 ‘어떡하지.’, ‘텔레트롤에선 폭력은 나쁜 거라고 했다.’, ‘그냥 보내주자.’ 등으로 나온다. 뭐라 해야 하나…… 도저히 습격자라고 보기 힘든 반응들이다.

그렇게 트롤들이 수군거리는 사이에-.

“끄응.”

난 은근슬쩍 30m 앞까지 접근해서 트롤 대장의 <과거>를 훑었다.

대충 한달 분량, 자세히 살펴보는 게 아닌 맥락을 주시하는 데 집중했다. 숨겨진 트롤 마을, 끊긴 식량, 기아, 모인 트롤들의 병력, 그리고 약탈…… 투구 안쪽에 손을 뻗어 주르륵 흘러나오는 코피를 닦으며 난 놈들에게 통할 만한 거짓말을 떠올렸다.

“왜 내려가려는 거지?”

주술사 트롤의 질문, 그에 난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위에서 이쪽의 정세를 파악하러 왔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