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27화 (227/350)

제227화

“어엉……? 뭔 소리여유 대장?”

“기다려봐! 생각 중이잖아!”

옆에서 멍청한 목소리로 질문하는 부하를 타박하며 생각하는 주술사 트롤, 겉으로 보기엔 대화의 여지가 없는 괴물들이지만…… 한 달가량의 <과거>를 훑어본 결과, 이 트롤들은 오크들과 일종의 원시적인 거래·교역을 하고 있었다.

그래, 자신들의 ‘혈액’을 대가로 식량과 놀잇거리를 얻었다.

과거를 읽는 과정에서 딱 봐도 지상의 기술로 만들어진 거대한 전용 헌혈 장비가 나와서 좀 놀랐어. 하지만, 근래에 교역이 끊겼고 트롤은 시위 겸 식량 확보를 위해 숨어있는 은신처에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고작 한 달 정도 본 거지만 이런 트롤들의 생활 패턴을 떠올리면…….

“위에서 왔다면 여기에 대해 말해줄 수 있지?”

대화를 시도할 가능성이 컸다. 특히나, 나처럼 직접적으로 트롤과 말이 통하고 소식을 알릴 수 있다면 더더욱. 예상한 반응에 난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가능해요. 하지만, 여기뿐만 아니라 아래쪽까지 둘러볼 예정이랍니다. 위에 보고하는 건, 4~5일 정도 지나야 될 거예요.”

“음.”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은데…… 어쩌겠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내 목에 걸려있는데 이 정도야 애교지. 실제로 싸장님에게 부탁하면 제롬 양반에게 어떻게 청탁도 해볼 수 있겠고. 내 대답에 트롤 주술사는 고갤 끄덕이곤 부하들에게 비키라는 듯이 손짓한다.

“지나가도 돼.”

“아, 감사합니…….”

“근데, 나랑 같이 가야 해.”

도중에 내 말을 끊는 트롤 주술사, 내가 바라보자 그는 야수 같은 샛노란 두 눈으로 날 보며 말을 이어 나간다.

“우쥴 할아버지 만나자. 할아버지, 할 말이 있을 거야.”

“네, 그러도록 하죠.”

무리의 우두머리를 만나라고 가라는 트롤 주술사, 솔직히 시간 낭비지만 아예 못 가는 것보단 낫지. 승낙한 후, 몸을 돌려 트럭에 탑승하자 오크 영감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바라본다.

“트롤 말을 할 줄 아시오?”

“네, 잠깐 대화 좀 했죠. 다행히 좋게 끝났어요.”

“허, 내 살다 살다 트롤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볼 줄…….”

혀를 내두르는 영감님, 어쨌든 난 앞쪽을 향해 턱짓했다.

“자, 가죠.”

“미안하지만 아까 했던 후진이 끝이오. 엔진이 못 버텨. 그냥 트럭은 내버려 두고 가야 할 것 같소. 안타깝지만 원정은 실패로…….”

“뭔 소리예요? 뒤로 말고 앞으로 가세요.”

‘트럭이 후진하지 못하니 원정은 이제 끝.’이라는 주장을 펼치려는 영감님을 타박하며 난 검지로 똑똑하게 앞을 가리켰다. 그에 영감님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뭐요?”

“앞.으.로. 가자고요. 애들이 길도 비켜주잖아요? 저기 돌 지팡이 짚고 있는 주술사 녀석이랑 같이 맞춰서 내려가면 돼요. 맡은 의뢰는 다 끝내야죠.”

내 대꾸에 잠깐 침묵하는 오크 영감님, 그리곤 이내-.

“아니, 저 식인 괴물들을 따라 내려가자고!? 당신 미쳤소?”

반쯤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지른다. 너무 과민반응을 보이는 영감님을 향해 난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손을 들어 올리며 차분하게 타일렀다.

“괜찮아요. 괜찮아. 대화해보니까, 착한 친구들이에요.”

“아니, 내려갔다가 저놈들이 갑자기 말 바꿔서 우릴 먹으려고 들면 어쩔 거요?! 저것들 그냥 수틀리면 동족도 먹는 새끼들이라고! 게다가 이미 마을을 몇 번 습격도 했고!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해!”

침착한 말투도 다 때려치우고 따지고 드는 영감님, 나름 합리적인 주장에 <과거>에서 훑어봤던 장면-앞쪽 마을에 있을 트롤들의 숫자를 떠올렸다. 이어서 <게임 시스템>의 보조로 내 앞에 선 트롤들의 스펙을 훑어봤다.

체력이 많고 독과 질병에 강한 저항이 있긴 하지만…….

“괜찮아요! 괜찮아! 틀어지더라도 뚫고 나갈 수 있어요! 자, 쭉 갑시다!”

“아니, 어떻게?!”

“제 마법으로요! 제 ‘진짜 특기’는 근접전이 아니라 마법이랍니다. 보여드린 무기술은 보조에 불과하죠.”

내 한 몸 정도는 충분히 건사할 수 있다.

100% 안전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험을 무릅쓰고 갈만해. 약탈자들에게서 추출해서 만든 ‘영혼의 영액’에 <소환 : 검은 독기의 망령>도 곧바로 쓸 수 있고. 영감님? 음, 뒤앙밍크의 손에 죽는 것보단 싸우다 죽는 게 호상이라고 하셨으니까 죽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혼자서만 몰래 도망치려고 한 거 매우 괘씸하거든요?

“안 가! 이건 미친 짓이야!”

“거참, 겁이 많으시네.”

계속된 내 설득에도 생떼를 부리며 거부하는 조별 과제 ‘먹튀 빌런’, 어쩔 수 없이 ‘갈 거면 전리품 가방 내려놓고 혼자 가십쇼.’라는 최후의 수단을 제시하자-.

“……X발.”

그제야 울먹거리며 트럭의 기어를 올렸다.

3.

미궁 출신들이 다 그렇지만 쥬라카의 일생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미궁에서 빠져나왔을 당시, 가라앉은 송파구는 여러 지성 종족이 패권을 놓고 전쟁 중이었다. 오크는 ‘쿨락’이라는 한 전쟁 군주 아래에 똘똘 뭉쳤고, 쥬라카는 그 휘하의 수많은 전사들 중 하나로 정복 전쟁에 뛰어들었다.

그 짧은 전쟁은 결국 오크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막판에 ‘재앙’을 만났다.

새카만 검은 아우라에 새파란 안광이 타오르는 해골 가면을 쓴 괴물, 그 당시엔 누구인지 몰랐지만 지금엔 안다. ‘다크 노바’, 룬 수호자라는 항거 불가능한 재앙을 3마리나 격파한 또 다른 재앙. 그 불합리한 존재에 의해 전쟁 군주가 사망하고 그의 인생도 꼬이기 시작했다.

그 당시, 오크들은 세상 물정을 몰랐다.

7km 위, 지상엔 나가본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고 그래서 인간들의 저력을 잘못 계산했다. 다크 노바가 ‘인간’이라는 명목하에 고위층 오크들은 지하로 내려왔던 수천 명의 군인 포로를 학살해 식량으로 먹어 치우는 결정을 내렸고, 인간들은 그 보답으로 지하 전체에 막대한 양의 독가스를 퍼부었다.

그도 운 좋게 미궁 통로 근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죽었다.

피신한 미궁 안에서 ‘변천-재배치’가 일어나기 직전에 다시 올라갔을 땐, 모든 게 끝나 있었다. 보이는 건, 바닥에 널브러진 끝없는 시체들뿐. 그렇게 수 개월간 지속되었던 지하 송파구의 패권전쟁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끝났다. 그 압도적인 광경을 보면서 쥬라카는 깨달았다.

뭐든 간에 ‘안전’이 최우선이다.

그날 이후로 쥬라카는 과할 정도로 안전을 챙겼다. 뉴 송파구 계획이 만들어지고 물자 이송을 위한 트럭이 들어왔을 때, 그가 괜히 앞장서서 ‘운전사’로 전직한 게 아니었다. 전사로의 삶은 필연적으로 싸움이 있기 마련이고 죽음과 가까우니 한 발짝 물러선 거였다.

그 뒤, 꽤나 평탄한 삶을 살았다.

큰 도전 하거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실력은 퇴보했지만 그래도 쥬라카는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던 동료들 대부분은 뒤져나갔으니까. 근래엔…… 좀 꼬여서 사채를 빌리고 위험을 무릅쓰게 됐지만 그래도 위험과는 최대한 떨어져 살았다.

그렇기에 ‘이런걸’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르르러러럭!”

-쿵! 쿵! 쿵! 쿵!

“으, 아아아!”

필사적으로 터널을 가로막는 트롤들을 뚫으려고 하는 오크들, 하지만 이미 패색이 짙었다. 강철 범퍼를 잔뜩 단 트럭들은 돌진하다가 망가졌는지 죄다 찌그러져 나뒹굴고 있었고, 분노한 트롤들은 날뛰며 얼마 남지 않은 맨몸의 오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돌격! 도망치지 마! 도망쳐봤자 이곳에 갇힌-!”

-으적! 우지지직!

“으, 으아아악!”

그저 막무가내로 팔을 휘저으면서 달려가는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오크들에겐 치명적이었다. 그 돌진과 부딪친 오크는 덤프트럭에 치인 것처럼 팔다리가 박살 난 채 공중에 튕겨 나갔고-.

-촤학! 후두두둑!

재수 없게 그 날카로운 손톱에 걸린 이들은 육체가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서 살점과 내장을 공중에 흩뿌린다. 그 외에도 죽은 전사의 다리를 붙잡고 몽둥이처럼 휘두르는 놈, 바윗덩어리를 던져 으깨는 놈…… 트롤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크를 학살하고 있었다.

“……빠득.”

그 광경을 보며 쥬라카는 나지막이 이를 악물었다.

그날 이후로 일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살았지만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렇게 다른 종족에게 학살당하는 동족을 보는 건 확실히 참기 힘들었다. 당장 트럭의 액셀을 박고 돌진해 앞으로 가로막고 있는 트롤들의 등짝을 후려치고-.

“하, 하하하. 거참.”

싶었지만 옆에서 들려오는 쾌활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수상쩍은 동료’, 스스로 뒤앙밍크가 고용했다고 주장하는 괴인이 창밖에서 벌어지는 학살을 보며 웃고 있다. 불길한 외형과 위압감에 지금까지 별말 안 하고 곱게 찌그러졌지만 이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오크가 죽는 게 그렇게 웃기오?”

분노가 섞인 그의 음성에 ‘동료’는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뒤집어쓴 후드 안의 해골이 까닥인다.

“아, 죄송해요. 웃는 게 아니라 좀 당황스러워서.”

“당황스러워? 트롤이 저런 살육괴물인 줄 모르셨소?”

“아뇨, 하는 말이 당황스러워서 그랬죠. ‘왜 가만히 있는데 괴롭히냐!’라고 소리치며 날뛰고 있거든요.”

그 대꾸에 쥬라카가 어이를 상실한 사이, ‘동료’는 옆에서 트럭과 보폭을 맞춰 걸어가는 주술사를 향해 울부짖음에 가까운 소음을 내뱉는다. 그에 주술사는 비슷하게 대꾸한다. 그렇게 얼마 동안 알 수 없는 대화를 마친 후, 그는 쥬라카를 향해 어깰 으쓱인다.

“왜 이런 짓을 벌이냐고 물어봤더니 이 마을 놈들이 식량을 약탈했다고 하네요. 포위했던 이유는 ‘식량을 가지고 도망치지 못하도록’이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최소한 이쪽은 진지하게 믿는 편이에요. 똑똑한 형이 그렇게 말했다면서요.”

“허.”

“나름 오크어로 ‘식량만 회수하고 풀어준다.’라고 경고도 하는데 이렇게 몇몇이 말을 안 듣는다고 해요. 그래서 자기도 좀 마음이 안 좋다고…….”

마음이 안 좋다고? 그럼 도로에 널린 동족의 시체를 깔아뭉개는 자신은 더 짜증과 분노가 솟구친다. 그래도 ‘저항하지 않고 숨어있는 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라는 첨언에 쥬라카는 화를 삭이며 주술사의 안내에 따라 마을 안쪽으로 진입해서 한 트롤 앞에서 멈춰 섰다.

“그르르륵?”

“그럭!”

또 다른 주술사 트롤.

하지만, 안내하던 주술사와는 달리 그 복장이 꽤나 화려했다. 금박 무늬가 새겨진 가죽 로브에 투명한 크리스털이 곳곳에 박힌 돌 지팡이까지. 안내하던 주술사를 보며 지팡이로 바닥을 ‘쿵! 쿵!’ 내리찍던 화려한 복장의 주술사는 이내 이쪽을 바라보았다.

“…….”

그 순간, 쥬라카는 숨을 죽였고-.

“크르륵!”

“크엉?!”

옆 좌석의 ‘동료’는 얇은 목소리지만 트롤과 비슷한 울부짖음을 내뱉는다. 그에 화려한 복장의 주술사는 꽤나 놀라는 눈치, 알 수 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얼마 가지 않아 화려한 복장의 주술사가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며 멀어지자-.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하오.”

쥬라카는 진지하게 재촉했다. 그에 ‘동료’가 바라보자 쥬라카는 한숨을 내쉬며 팔뚝에 오톨도톨 솟아난 닭살을 손으로 쓸어내리고 살짝 떨리는 입술을 뗐다.

“저 주술사 놈, 절대 믿어서는 안 되는 놈이오. 저런 눈빛을 본 적이 있어서 내가 잘 알아. 그래, 그놈들도 트롤 주술사였지…….”

16년 전, 지하 송파구의 패권을 둔 싸움에서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오크를 괴롭혔던 대적. ‘아파트’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쓰러트리며 날뛰었던 트롤들의 주술사 무리가 저런 눈깔이었다. 그래, 꼭 ‘불가해한 사악한 지성’이 번뜩이는 느낌…….

“그쪽도 코드…… 아니, 신을 느끼는 건가요?”

“뭐요? 신?”

“음, 아니. 아니에요.”

쥬라카가 반문하자 ‘동료’는 고갤 젓곤 어깰 으쓱인다.

“안타깝지만, 당장 떠나는 건 불가능해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온 김에 마을에 가서 우두머리와 대화 좀 하고 가라고 초대를 받았거든요. 거절하기엔 좀 그런데요?”

“젠장, 그럼 난 먼저 나가서 기다리…….”

“뭔 소리예요? 그쪽도 같이 가야죠. 자, 내리세요.”

그 폭탄선언에 쥬라카의 생각이 잠깐 정지됐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그 내용을 이해했다. 저 사악한 꿍꿍이를 꾸미는 게 분명한 트롤 새끼들의 본거지에 가자고? 이 미친놈은 ‘걱정 마세요. 죽이려고 했으면 진작에 우릴 죽였겠죠.’라며 태연하게 말을 이어가지만……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었다.

“아니, 그쪽 혼자서 가도 되잖소!”

“그래도 같은 원정대인데 함께 움직여야죠!”

“난 당신 같은 실력자가 아니오! 트롤 한 마리도 어떻게 못 하는 약자지! 끌려갔다가 일이 틀어지면 난 죽어!”

“걱정 마세요! 제가 구해 드릴게!”

하도 억울해서 나온 대꾸, 그에 이 자칭 ‘동료’라는 미친놈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생글생글 웃는 목소리로 대꾸한다. 뒤집어쓴 두개골 투구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쥬라카는 ‘이놈’이 웃고 있는 걸 직감했다.

“하! 그럼 방법이나 들어 봅시다! 저 트롤들이 X랄하면 어떻게 날 구해줄 거요? 탈출은 어떻게 할 거고?!”

“어, 어? 그, 그게…….”

하도 답답한 마음에 내뱉은 말에 멈칫하며 순간 말끝을 흐리는 자칭 ‘동료’, 그 뒤에 허겁지겁 뭐라 떠들지만 별다른 계획이 없단 걸 눈치챈 쥬라카에겐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잠깐 실랑이가 있었지만…….

“X발…….”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 비슷한 수준이라면 끝까지 저항하겠지만 압도적인 강자 앞에선 찌그러질 수밖에. 안전만 추구하다가 나약해져 버린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며 쥬라카는 차 문을 열고 창 들고 협박하는 미친놈의 뒤를 느릿느릿 뒤따랐다.

4.

어떻게든 조별 과제에서 런하려는 괘씸한 영감탱이를 붙잡고, 난 트롤 주술사의 안내를 받으며 그를 따라 움직였다.

<과거>를 훑어본바, 트롤들이 오크들 몰래 기습적으로 마을을 습격할 수 있었던 이유는 3가지다. 첫째는 암석 자체의 내구력을 약화하는 트롤 주술사들의 ‘대지 마법’, 둘째는 그렇게 약화한 암반을 가뿐하게 박살 낼 수 있는 트롤 특유의 ‘괴력’. 마지막 셋째는…….

애초에 사는 곳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허,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도망치지 못해서 축 늘어져 있던 오크 영감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나의 동(洞)과 비견되는 오크 마을보다 훨씬 커다란 규모의 공간, <눈>으로 대충 가늠해본 바 못해도 5개의 동이 합쳐진 규모다.

이게 트롤들이 뚫어낸 작은 석굴에서 고작 200m도 가지 않아 나오는 곳이다.

“당신도 모르는 곳인가요?”

“……내가 13년 차 베테랑 운전기사인데, 뉴 송파구 중층에 이런 곳이 숨겨져 있는 건 처음 알았소. 그나저나 질투가 날 정도로 좋군. 이 정도면 거의 상층에 있는 공원 같아.”

영감님의 말에 나도 고갤 끄덕였다.

단절의 도시로 내려오고 나서 ‘식물’이란 걸 거의 못 봤는데, 이곳은 그냥 지상의 공원같이 나무와 잔디가 깔려있었다. 약간 흠이라면 축사가 있는 시골처럼 분뇨 냄새가 난다는 거? 몇몇 트롤들이 느긋하게 누워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이곳이 끝이 아니다.

훑어본 기억에 따르면 이곳은 최상층인 8층, 이러한 공간이 7개나 더 겹겹이 쌓여 있다. 안내하는 좀 맹한 트롤 주술사를 따라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 경사로 같은 통로를 따라 7층에 도착하자-.

-쿵! 쿵! 쿵!

-와아아아아!

8층에선 들리지 않았던 쩌렁쩌렁 울리는 트롤들의 함성이 고막을 강타했다.

내려가자마자 보이는 건, 못해도 수백 마리의 트롤들. 어른, 아이 할 거 없이 천장 한쪽을 주시하며 신나게 쿵쿵 뛰고 있었다. 천장에 있는 건 딱 봐도 스크린 대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하얀 대리석이었고-.

-그르륵! 그르르르~!

“우! 텔레트롤!”

“바위돌이! 우!”

그 위에 흥겨운 노래와 함께 3D 폴리곤 덩어리로 만들어진 색색의 트롤들과 오크들이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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