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5.
-쿠웅!
“케흑, 케헤에에엑!”
타오르는 불길 속을 뚫고 나온 후, 우슈는 한쪽 무릎을 꿇고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해골 투구를 쓰고 있던 수상한 놈이 일으킨 ‘마법적인 불길’, 그것은 놈이 소환했던 모든 물질을 불살랐다. 심지어, 몸 내부에 들어간 것도! 가장 선두에서 악령들과 드잡이하고 독구름을 가장 많이 흡입한 우슈가 정상일 리 없었다.
“흐으, 흐으, 흐으으으…….”
화려한 가죽 로브는 넝마가 되었고, 자랑이던 매끈하고 두꺼운 암석 종괴들은 쩍쩍 갈라져서 떨어진다. 속은 더 심각했다. 진짜 죽을 것 같은 느낌에 우슈는 로브 안쪽에 숨겨뒀던 붉은 돌덩이-동족의 피와 돌가루를 굳혀서 만들어낸 회복약을 꺼내 씹었다.
그렇게 얼마간 숨을 고른 후-.
“빌어먹을…….”
새로운 독구름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심한 동생들을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동족을 팔아넘긴 늙은이를 처단하고, 순조롭게 우두머리가 되는 줄 알았건만 더럽게 꼬였다. 희생양으로 선택한 놈들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고, 반면에 동족들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아둔했다. 독구름이 무서워서 저렇게 발만 동동 구르는 꼴이라니!
“스읍, 하아. 스읍, 하아. 그래, 바꾸면 된다.”
치미는 울분을 참으며 우슈는 고갤 주억였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한심한 늙은이가 오크에게 피를 바치는 순한 돼지 새끼가 되도록 세뇌했으니 저렇겠지! 하지만, 이제 자신이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모든 것이 달라질…….
-파앙! 콰드드득!
돌연, 아래쪽에서 들려오는 바위 깨지는 소음. 다른 트롤들의 고함과 발 구름 소리에 대다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우슈는 그것이 인위적인 것을 눈치챘다.
“아래! 아래에 놈이 있다! 당장 내려가!”
“어? 사형! 근데, 이거 아픈 연기가…….”
-쾅!
“내려가라고!”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치며 말하는 우슈, 그에 주눅 든 주술사들이 허겁지겁 아래로 향한다. 이어서 그도 신경질적으로 회복약을 하나 더 까먹고 돌 지팡이를 짚으며 일어섰다. 마음 같아선 좀 쉬고 싶었지만 저 멍청한 모습을 보니 내버려 뒀다간 큰일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아픈 몸을 이끌고 검은 독구름을 뚫으며 아래로 향하자-.
-저기! 우쥴 할아버지네 문이 부서졌어!
-이 나쁜 놈들!!
먼저 내려간 동생들의 고함과 함께 박살 난 석문이 보인다. 도대체 놈들이 왜 이곳에 온 것일까? 하는 의문이 잠깐 들었지만 이내 그는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붕괴의 에메랄드’가 한가득 박힌 장소.
추악한 늙은이처럼 모든 에메랄드를 한 번에 다룰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번에 하나 정도는 충분히 다룰 수 있다. 놈이 어떻게 발악하든 간에 저 안에 들어간 순간 스스로 함정에 들어간 꼴이나 다름없다. 비릿하게 웃으며 우슈는 발칙한 놈들을 보기 위해 부서진 문으로 달려갔고-.
“저…… 저놈이!”
석문 안쪽에서 보이는 광경에 비명을 질렀다.
겁쟁이 늙은이 몰래 만들어둔 비밀 통로, 자신에게밖에 알려주지 않았다던 그 비밀 입구 앞에 놈들이 있었다. 심지어 어떻게든 문을 부숴보려고 발버둥 치는 중,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상한 해골바가지 꼬마가 에메랄드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가지고 싶었지만 장례를 치르고 정당하게 넘겨받기 위해서 일부러 시신 옆에 놓고 왔던 그 소중한 물건을 놈이 쥐고 있다! 감히,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비켜!”
분노한 우슈가 노성을 내지르며 진로를 가로막는 동생들을 밀치고, 지팡이를 들어 올려 주문을 외우려는 순간-.
“샤아아악!”
놈이 듣기에도 거북한 쇳소리를 내뱉으며 왼손에서 시커먼 에너지 덩어리를 발사한다. 이미 한 번 호되게 당했기에 우슈는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그 구체는 그들을 노린 게 아니었다.
사이에 있는 깡마른 늙은이의 시신.
비겁자 늙은이와 부딪친 순간, 노인네의 몸뚱이가 ‘푸확!’하고 작게 폭발하며 그 잔해들이 사방으로 튄다. 약한 폭발, 당연히 무시하고 돌격하는 게 정석이지만-.
“그어러럭!”
“컥!”
그 잔해가 튄 트롤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어졌고 문 안쪽에 들어갔던 다른 트롤들이 반사적으로 움찔거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그런 멍청한 동생들의 반응을 다그치려고 했지만-.
“우욱……!”
“냄새!”
코를 찌르는 강렬한 악취에 순간 똑같이 움찔했다.
시체가 폭발하면서 튄 녹색 가스가 솟구치는 시커먼 진흙, 그곳에서 썩은 음식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트롤조차도 버티기 힘든 악취가 올라왔다. 게다가-.
“살려줘! 살려줘어어어억!”
“아파아파아파아파!”
진흙을 뒤집어쓰고 엎어진 트롤들이 지팡이를 내팽개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둔감한 트롤이 보일 거라고 보기엔 힘든 행동, 그런 그들의 살가죽은 벌겋게 익으며 녹아내리고 있었다. 주위의 땅이 모두 그 끔찍한 진흙에 뒤덮여서 지나가기엔 애매한 상황, 우슈는 재빨리 지팡이를 들었다.
위력이 강한 에메랄드 창을 날렸다간 땅꼬마가 쥔 지팡이가 부러질 수도 있기에 익숙한 <암석탄>을 사용하려 했지만-.
-캬아아아악!
“?!”
진흙이 튀었던 장소에서 한 해골이 튀어 올라 그를 덮치려고 했기에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휘둘러서 쳐냈다.
도르낙의 시체 수렁 (Dolnax’s Corpse Morass)
레벨 6 독/강령술/대지
시전 소음 : 6
주문 소음 : 0
최대 SP : 200
사거리 : 최대 전방 50m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6P, 시체 1구
지속 턴 : 최대 10+1d(SP/5) min
효과 : 리자드맨 주술사, ‘사악한 도르낙’이 만들어낸 흉악한 복합 주문. 시체에 저주의 마력을 불어넣어 그 살점을 녹여버리고 그 재료로 주위의 대지를 시독(屍毒)이 끓어오르는 늪으로 바꿔버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늪은 독에 내성이 있는 존재라고 해도 중독시키며…….
늪에 빠진 ‘망자’를 되살린다.
뼈만 남은 망자는 산 자에 대한 증오로 주위의 희생양을 닥치는 대로 늪에 빠트린다. 늪지에 빠진 산 자의 살점은 그대로 녹아내려 늪지의 영역을 넓히며, 죽을 시엔 늪지에 속박된 또 다른 망자가 되어 주위의 산 자를 늪지에 빠트린다.
희생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강력해지는 흉악한 주문.
우쥴의 복장을 걸친 트롤 해골, 해골답게 우슈의 돌 지팡이에 쉽게 박살 났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다시 조립되어 민첩하게 다른 트롤들을 향해 달려든다.
“비…… 비켜!”
“밀지 마!”
“으아아악!”
트롤 주술사들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물러서고, 그사이에 해골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 진흙을 닦아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한 트롤의 발목을 붙잡고-.
-첨벙!
“우어어어어어억!”
자신의 시신이 터진 곳, 어느새 녹색 가스가 풀풀 풍겨 나오는 진흙탕이 된 그곳에 기습적으로 처박아버린다. 그래 봤자 해골이기에 끌려간 트롤은 금방 박살 내고 늪을 빠져나왔으나-.
-캬하아아악!
“우…… 우바! 왜 그래! 저리 가!”
진흙에 뒤덮인 트롤 또한 해골과 똑같은 기성(奇聲)을 토해내며 달려든다.
그에 주술사들은 지팡이를 들어 필사적으로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전(前) 동료들을 밀쳐냈다. 그 지팡이에 찔려 밀려날수록 진흙 트롤의 살점은 벗겨져 바닥에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로운 ‘늪지’가 만들어진다.
-캬하하하학!
“이미 쟤들은 죽었어! 그러니 마법으로 박살 내! 진흙을 던질 수도 있으니까 뒤로 빠져서 늪을 모래로 덮어버려!”
그렇게 우왕좌왕하는 동생들을 다독이며 우슈는 선두 지휘했다. 급한 대로 돌덩이를 던져서 해골을 밀어냈고, 해골이 던지는 진흙에 맞은 트롤이 나뒹굴 때는 뒤로 끌어냈다. 하지만, 희생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덩달아 날뛰는 해골 또한 많아진다.
-쿵!
결국, 늘어나는 피해에 경사로 쪽으로 도망쳐서 문을 돌덩이로 막아버린 후-.
“그아아아아악!”
우슈는 자신의 돌 지팡이를 내던지며 분노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6.
폭포 뒤 비밀 통로는 트롤 거주지의 기반 시설이었다.
위층에서 봤었던 화장실과 냉동실, 잔디 조성용 스프링클러 같은 장비들을 돌리는 데 필요한 것들, 딱 봐도 좀 조잡한 것이 오크의 솜씨들로 보이더라. 어쨌든, 먼저 도망친 오크 영감은 그 복잡한 형태에 당황하면서도 무작정 달리다가-
-콰드득!
“우왁!”
함정을 밟았다.
벽에서 돌연 쏟아지는 암석 송곳들, 반사적으로 왼손에 억지로 낀 방패를 들어 올려 막으면서 나뒹굴었다. 팔이 아프겠지만 몸에 박히는 것보단 낫지. 그나저나, 저 방패 ‘마법 흡수’ 능력이 있는데 설명을 안 해줘서 못 써먹네.
“케흑, 크흐흑.”
“그래서 함께 가자고 했잖아요.”
‘끄으응…….’
“마법적인 함정이 곳곳에 있으니까 곱게 따라오십쇼.”
팔뚝 뼈가 부러져 튀어나온 팔을 붙잡고 끙끙대는 영감탱이를 타박한 후, 난 앞장서서 걸었다.
정확한 지형은 나도 몰랐지만, ‘함정이 깔린 곳’이 통로여서 그래도 대략적인 길은 보였다. 게다가 엉겁결에 가져온 지팡이에 이곳에 깔린 함정을 무력화하는 기능이 있더라고? 덕분에 수월하게 뚫고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20여 분가량을 헤맨 끝에 우린 밖으로 나왔다.
“하아…….”
새카만 퇴적암으로 만들어진 터널 한복판, 비밀 문을 닫고 나오자마자 영감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으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벽에 등을 기댔다가 흠칫하며 무기를 놓고 등을 더듬더니 나라를 잃은 표정을 지으신다.
“망했군.”
나완 다르게 그런 영감님의 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트롤들에게 도망치면서 여러 번 엎어지고 나뒹굴 때 더플팩의 배낭끈이 끊어진 것 같았다. 게다가 트럭까지 잃어버렸으니…… 그런 영감을 향해 난 손에 쥔 3m짜리 통짜 에메랄드 기둥을 기울여 건넸다.
“장비 잃어버려서 그런 거죠? 그 방패는 안 돼도…… 이거라도 드리죠.”
“허…… 퍽이나 고맙군.”
“그래도 꽤 비쌀 거예요. 마법 장비거든요.”
마법 장비라는 말에 툴툴거리면서 옆에 놓으라고 말하는 영감, 거의 40kg짜리인데 어떻게 들고 가시겠지. 그렇게 거추장스러운 지팡이를 영감에게 짬처리 한 뒤, 나도 바닥에 주저앉으며 숨을 골랐다.
진짜, 힘들어 뒤질 것 같다.
잠을 덜 자서 그런지 정신적 피곤함도 피곤함이지만…… <광폭화> 상태에서 억지로 마법을 쓴 부작용이 더 심했다. 진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배고파. 가방에서 챙겨온 여분의 식량과 포션을 꺼낸 후, 영감에게 몇 개 건네며 입을 열었다.
“뭐, 좋은 경험 했다고 치자고요. 재물은 또 얻으면 되죠.”
“……뭐요?”
“약탈자 놈들이 어제 만났던 놈들만 있는 게 아닐 텐데, 제가 죽이면 그쪽이 쓸 만한 거 수집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내 대꾸에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방패와 방독면을 벗고 건넨 에너지바를 깨물어 먹는 영감, 이어서 그는 왼쪽 팔뚝을 뚫고 나온 뼈를 터프하게 맞추면서 선언했다.
“그래도, 원정은 조진 게 확실하니 올라가야 하오. 아직도 장사나 홍보 같은 것도 안 될 정도로 막장이란 걸 알려야 해. 득실득실한 약탈자 새끼들을 뚫고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가 문제군. 길을 보니 4.3km 지점이긴 한데…….”
올라간다고? 그래선 안 되지. 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다만 더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고민하는 영감님에게 난 한 손을 들었다.
“죄송한데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뭐요?”
“제가 뒤앙밍크에게 고용됐다고 했었죠? 그거, 거짓말이에요.”
“……하긴.”
내 말에 의외로 쿨하게 납득하는 영감님, 그 반응이 좀 의외여서 바라보자 어깰 으쓱이신다.
“기사급과 트롤을 단숨에 죽이는 창술, 그리고 훨씬 더 흉악한 마법까지…… 사채업자 놈이 고용하기엔 너무 실력이 뛰어나잖소?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었지.”
“하하, 그런가요.”
“그래서, 말하려는 게 뭐요?”
에너지바를 씹으며 바라보는 영감을 향해 난 본론을 꺼냈다.
“전, 지하의 ‘하프 오크 마을’을 찾고 있어요.”
“하프 오크 마을? 거긴 왜 찾소?”
“개인적으로 찾아가 봐야 해서…….”
“그 반편이들에 대해선 나도 잘 모르오. 내가 가는 곳엔 없었어.”
쿨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다는 듯이 고갤 젓는 영감님, 하지만, 난 이 인간…… 아니, 오크 내비게이션이 꼭 필요하다.
“그래도 나머지 지리에 빠삭한 베테랑이 있으면 훨씬 편하겠죠. 좀 도와주실 수 있나요? 그것에 관해서 사례할 용의가 있답니다.”
“흐음, 그 사례란 게 정확히 뭐요? 전리품을 나눠주는 정도로 끝나는 거요?”
그에 살짝 멈칫했다. 아무래도 전리품 이외에도 더 원하는 것 같은데…… 좀 난감하네. 정식으로 내려온 거라면 돌아가서 우그 타람에 들어오는 트럭 운전사로 써주겠다고 해볼 텐데, 여기 내려온 걸 숨겨야 하니 딱히 제공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니, 최소한 상층이었다면…….
“상층에 올라올 수 있나요?”
“……없소. 창업을 한 게 좀 꼬여서 시민권을 팔아버렸거든.”
“그럼 좀 애매하네요. 도대체 뭘 드려야 할까…….”
우그 타람의 교직원들은 상층 쪽 지역에 출퇴근하니 ‘사람 소개로 알게 됐다.’라면서 억지로나마 비벼볼 수 있는데, 돌연 중층에 있는 사람을 아는 척하기엔 좀 그렇지. 그런 내 대꾸에 영감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말을 꺼낸다.
“상층에 다시 올라가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올라간다면 뭘 해줄 수 있소?”
“안정적인 ‘직장’ 제공 가능해요. 잘하면 지상에도 나가볼 수 있고.”
“……뭐요?”
“대신, 용병으로 뛰어야겠지만.”
일단, 이 영감이랑 알게 된 합당한 알리바이만 있다면 그 뒤론 내가 제공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이종족 지상 진출을 위한 용병 회사인 ‘그레이 쉴드’, 바지사장이긴 하지만 양 씨가 사장으로 있다. 그 아래에 이사로 ‘오태산’ 씨가 있고. 오태산 씨가 내게 굽실거리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 그레이 쉴드에 이 영감을 넣어볼 수도 있을 것 같거든.
“흐음, 요즘 지상에 나간다고 대규모로 훈련한다고 듣긴 했지.”
“거기 회사분이랑 연줄이 있거든요. 알다시피 저도 일종의 용병으로 뛰는지라…….”
“좋소, 나쁘진 않군. 그걸로 하지.”
쿨하게 고갤 끄덕이는 영감님, 그에 한시름 놓으며 난 허리띠로 만들어낸 창끝을 메스 형태로 변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가까운 곳에 휴식을 취할 만한 데가 있을까요?”
“원래 향하던 목적지로 가는 게 좋겠소. 폐허일 테니까 오크와도 잘 마주치지 않을 테고…… 근데, 그 투구 안 벗기 위해서 그래야겠소?”
내 목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식량을 부순 가루와 포션을 쑤셔 넣자 떨떠름한 얼굴로 물어보는 영감님. 목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대답할 수 없기에 난 어깰 으쓱이곤 내가 한 모금 마신 포션을 건넸다. 그에 영감도 포션을 마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팔을 만지며 감탄한다.
“이거 효과가 엄청 좋군. 내가 써본 포션 중 최고야. 어디서 샀소? 가격만 괜찮다면 좀 쟁여두고 싶군.”
“카학! 퉷! 당연하죠. 양산품이 아니고 연금술사가 만든 억 단위 가격의 수제 포션이니까.”
“……뭐요?”
“억 단위의 수제 포션이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마시다가 내 말을 이해하곤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손에 쥔 병을 보는 영감, 사용 기한이 임박한 거라서 싸장님에게 싸게 받은 거다. 내 전용 포션으로 만들어서 가져올까 하다가 혹시 혜영이가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에 몇 개 가져왔지.
탐심이 이글거리는 영감의 모습에 난 고갤 저었다.
“참고로 마개 열면 약용성분 휘발되기 시작합니다. 다시 잠가도 팔기 힘들어요.”
“…….”
“그냥 적당히 마시세요.”
내 말에 한숨을 내뱉으며 영감님은 다시 포션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