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38화 (238/350)

제238화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내가 잠시 아무런 대꾸를 못 하는 동안, 드워프는 꺼냈던 손가락만 한 금 쪼가리를 몇 번 슥슥 닦곤 내게 내밀었다.

“받으시오, 구해준 보답이오.”

“아, 네.”

고약한 냄새의 오물이 묻어있긴 했지만 금은 금이지. 대충 300g 정도는 되겠구만. 금을 챙기면서 난 입을 열었다.

“그쪽은 거기서 채굴하던 사람인가요?”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 나 말곤 다 죽은 것 같지만.”

“……도대체 뭔 일을 겪었던 건지 좀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

“말하는 김에 좀 쉽시다. 3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어서 힘들어 죽겠소.”

골목길에 가까운 터널 한복판에 털썩 주저앉는 드워프, 주위에 딱히 위험해 보이는 것도 없기에 나도 옆에 앉자 드워프는 넋두리하듯이 말을 쏟아냈다.

“어디부터 설명해야 하나? 그래, 어떻게 금이 있는지부터 설명해야겠구만. 석 달 전에 유입 오크들에게 내가 살던 마을이 파괴됐소. 뉴 송파구의 오크들은 신의 없게도 우릴 배신했지. 마을에 살던 우리 혈족 대부분이 죽었고, 대장장이였던 내 스승님도 죽었어. 도제 생활을 하던 나와 친구는…….”

유입 오크에게 쫓겨서 단절의 도시에 진입한 생존자들, 마력 각성자 자격으로 어떻게든 상층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찾아온 도제 친구, 그런 친구가 받았다는 베일렌 소일-채석장에서 일하는 형의 편지, 그 편지 속에 숨겨진 묘한 뉘앙스의 단어들…….

“……친구 놈이 말했소. 베일렌, 그 개자식이 입막음 조로 금맥이 있단 사실을 파악한 인부들을 깡그리 죽여 버린 거라고. 게다가 그 ‘유골 수습’이란 말도 안 되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람을 보내려는 걸 보면 확실하다고.”

“오호.”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모아서 원정을 오게 됐소. 어차피 반쯤 인생 조진 거, 도박이라도 해보자고.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지! 반쯤 자포자기로 간 건데, 그쪽에게 줬던 금 쪼가리가 진짜 벽 속에 쓰레기처럼 쌓였더군!”

그 묘사를 하며 드워프는 황홀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금괴 형태로 가져갔다간 금광이 있단 걸 눈치챌 수도 있으니, 밑바닥에 있는 다른 괴물들에게서 얻었다고 변명하기 위해 적당히 조잡한 금붙이 모양으로 가공을 해야 했지. 오고 가며 3명이 죽긴 했지만 살아남은 6명은 각자 30kg씩 두둑하게 챙길 수 있었소.”

“와, 30kg이면…… 진짜 성공했네요.”

북한의 조폭 무리를 처리하는 과정에 금붙이도 몇 개 얻어서 그 시세를 알아봤는데, 남한에서 금값은 대충 1kg에 1억 원 내외다. 지하의 시세는 모르겠다만 대충 30억 원씩 챙겼다는 거지. 내가 감탄하자 드워프도 씨익 웃는다.

“그에 고무돼서 우린 한 번 더 목숨 걸고 내려갔소. 더 탄탄하게 준비한 덕분에 내려가는 도중에 아무도 죽지 않았지! 그리고, 한 번 더 열심히 금붙이를 가공하던 도중에…… 그 미친 쥐쟁이가 나타나서 박살 났고.”

괴물 쥐쟁이를 떠올리자 소름이 끼치는 듯 몸을 가늘게 떠는 드워프, 그 사연을 다 듣고 나니 이 상황이 좀 이해가 됐다. 그래, 금광이라면 뒤앙밍크나 괴물 쥐쟁이 같은 거물들이 꼬일 만하지. 좀 사그라졌던 두통이 다시 올라오는 느낌에 난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돌겠네.”

“응? 왜 그러시오?”

“그, 금광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죠? 정부에는 당연히 안 알렸겠고.”

“당연하지! 금광이 있단 게 알려졌다간 더러운 오크 놈들이 별별 핑계로 압수할 게 뻔하오! 내가 알기론 거기에 금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당신과 나’, 그리고 내 동료들 정도밖에 없소! 뭐, 동료들은 아마 그 괴물 쥐쟁이에게 전부 죽었을 테니, 사실상 우리만…….”

말하다가 ‘흠칫!’하며 내 옆에서 떨어지는 드워프, 딱 봐도 내가 금을 독차지하려고 자신을 죽일 거라 생각한 것 같다. 아니라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솔직히, 여기서 금이 나오건 말건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야. 이쪽에 기반이 없는 나는 금광을 가질 수 없으니까. 문제는…….

“제가 알기로 그 공장의 소유권은 이제 뒤앙밍크 씨가 가졌어요.”

“……뒤앙밍크? 그 혈족에게서도 쫓겨난 시체박이 놈이 그곳의 주인이 됐소?”

“예, 베일렌 씨는…… 아마 죽었을 거예요. 뒤앙밍크 씨에게 영혼을 담보로 돈을 빌렸거든요.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 ‘괴물 쥐쟁이’가 뒤앙밍크와 일종의 동업자라는 사실이죠.”

<과거시>로 확인한바, 뒤앙밍크와 그 괴물 쥐쟁이는 서로 친분이 있었다. 게다가 뒤앙밍크가 저 공장을 인수하고 오크 영감을 고용해 내려가라고 했었지. 갑자기 든 생각인데, 오크 영감에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언급했던 건 쥐쟁이 얘기인 것 같아.

그 설명에 이 드워프도 감을 잡았다.

“자, 잠깐?! 그럼…….”

“예, 뒤앙밍크와 쥐쟁이. 두 사람 모두 금광이 거기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유권을 사들이고, 쥐쟁이도 한번 직접 온 것이겠죠. 설령, 몰랐다고 하더라도 그쪽을 처리하면서 금이 있단 걸 알아차렸을 테고.”

“…….”

“소문이 흘러나갔다간 정부에게 뜯길 수도 있으니까…… 확실하게 독점하기 위해 우릴 노릴 것 같네요. 집요하게 쫓아오겠죠. 나중엔 뒤앙밍크도 움직일 게 뻔하고.”

내 추측에 창백한 얼굴로 변하는 드워프, 이어서 드워프는 언제 떨어졌냐는 듯이 재빨리 다가와서 내 팔을 붙잡는다.

“그, 그렇소! 우리! ‘우리’를 노릴 거요! 그쪽도 수상해 보이니까!”

“그렇겠죠.”

필사적으로 ‘우리’란 말을 강조하는 드워프, 그에 한숨을 내뱉으며 수긍했다. 난, 이미 그 괴물 쥐쟁이와 원한이 있다. 이번 일까지 얽혔으니 반드시 죽이려고 들겠지. 진짜 ㅈ같네. 목숨이 위험하다고 하니 딸랑딸랑 달라붙는 이 드워프 양반도 아주 엿 같고.

그런 내 기색을 눈치챈 건지, 드워프 양반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호들갑 떨며 입을 연다.

“그, 그러고 보니 그쪽은 왜 거기에 갔소? 보아하니 금맥이 있단 건 모르는 것 같은 눈치인데?”

“길 가다가 잠시 쉬러 방문했습니다.”

“……쉬러 왔다고? 그곳에?”

“최소한 오크는 없지 않습니까? 폐허라길래 숨을 돌리려고 했죠. 최소한 이런 두더지굴이나 오크 마을보단 나을 테니까요. 잠시만 조용히 해주세요. 저 생각 좀.”

뭐라 떠들려고 하는 드워프의 아가리를 제지하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전쟁 군주의 창술과 봉술을 익혔기에 자신만만하게 ‘직접 구하러 갈 수 있음!’이라고 내려왔는데, 미친 괴물들이 너무나도 많다. 세로쉬의 권능을 쓰는 오크 기사, 돌을 던져대는 트롤 새끼들, 거기에 괴물 쥐쟁이까지…… 진짜 진지하게 후퇴를 고려해봐야 하나?

“가, 같이 갑시다! 나, 나 좀 살려주쇼! 내 황금 10…… 아니, 12kg을 주겠소! 내가 가진 몫 전부요. 나머지는 내 혈족들의 탈출을 위한 뇌물과 식량값으로 써서 이미 없소!”

그런 내 모습을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아직 오물 범벅인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드워프, 그에 난 한숨을 내뱉으며 드워프를 바라봤다.

“드워프 아저씨, 혹시 하프 오크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길이라도 압니까?”

“하, 하프 오크 마을?”

“네, 거기 찾아가는데 길이 막혀서요.”

내 질문에 두 눈을 뒤룩뒤룩 굴리는 드워프, 그러더니 이내 손뼉을 치곤 대꾸한다.

“난, 그 길을 모르오! 하지만, 길을 알고 있을 법한 이를 아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도’를 빌려줄 만한 이를 알고 있소!”

“지도?”

“그렇소! 마법 지도! 우리 길잡이가 들고 다니던 거요! 상층의 다그림 혈족이 뉴 송파구를 개척할 때 만든 것! 토가르 녀석이 자기네 형 금고에 있던 걸 몰래 빼돌렸다고 자랑했지. 젠장, 토가르…… 재수 없는 상층 혈족치곤 되게 싹싹하고 괜찮은 놈이었는데.”

죽은 동료 생각이 났는지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보인 드워프는 이내 눈물을 삼키곤 날 바라본다.

“그놈 형에게 소식을 전하면 될 거요. 분명 금광에 대해선 관심을 가지겠지. 그 대가로 지도를 빌릴 수 있을 거야. 아마, 10년도 더 된 옛날 지도긴 하지만 그래도 두더지굴이 빠삭하게 나와 있으니 하프 오크 마을의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하면 갈 수 있겠지.”

“흐음, 지도라.”

지도, 지도가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그래, 일단은 올라가서 몸을 좀 추슬러야지. 그리고, 쫓아오는 쥐쟁이와 뒤앙밍크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고.

“좋아요. 그럼 일단 올라가도록 하죠.”

7.

그렇게 걷기 시작한 지 30분가량, 우린 새로운 적과 마주쳤다.

미지의 효과에 의해 ‘중형견 크기’로 성장한 거대한 바퀴벌레, 매우 빠르게 움직이며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 수 있다. 입에는 부패독이 흐르며 그 껍질은 단단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약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그 모습은 생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푸드드득!

“으으……!”

불쾌한 소음을 내며 달려드는 거대 바퀴벌레 ‘떼’, 그 혐오스런 모습에 기겁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쟁 군주의 경험이 각인된 몸은 반사적으로 창을 찔러 넣는다.

-콰득! 콰득! 콰득!

껍질이 바다거북이 수준으로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주둥이를 꿰뚫고, 머리통 안쪽에서부터 뇌를 헤집어줬다. 그렇게 손쉽게 한 방에 한 마리씩 무력화됐지만…….

-푸드득! 푸득! 푸드드득!

-푸득!

곤충은 머리가 박살 나도 움직인다. 그래 봤자 아가리가 박살 나서 물지도 못하니 몸에 살짝 부딪히거나 스쳐 지나갈 뿐이긴 하다만 기분이 더러운 건 어쩔 수 없네.

“와, 진짜 엄청나군! 그렇게 창을…… 아니, 무기를 잘 다루는 사람은 내 처음 보오.”

그렇게 밀려드는 20마리가량의 바퀴벌레를 잡고 나자 뒤따라오는 드워프가 감탄한다. 그 칭찬에 난 우쭐하기보단……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그쪽은 뭐하나요? 좀 도와야죠? 마법사라면서?”

“어, 그. 그렇긴 한데…… 내 마법은 그리 공격에 적합하지 않소.”

“뭐요?”

보란 듯이 손바닥을 보여주는 드워프, 그 손바닥에는 독특한 문신이 있었는데 거기서 가스 토치처럼 작지만 강렬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고작해야 6~7cm? 강력해 보이긴 하다만 너무 범위가 작다.

“무기 제작을 위한 <화염 마법>이오. 강하긴 하지만 보다시피 공격용으로 쓰기엔 무리가 있지.”

“…….”

“아무튼 다행이구려. 식량을 구했어! 목마르고 배고팠는데!”

정색하는 날 무시하며 드워프는 배를 까뒤집고 꿈틀거리는 거대 바퀴벌레의 다리를 발길질로 부수고 그걸 굽기 시작한다.

“그, 뭐 하는 겁니까?”

“뭐하긴! 먹어야지! 이것들은 내장과 몸통 부분에 독이 있어서 먹으면 배탈이 나지만, 다리는 적당히 구워 먹으면 괜찮소! 미궁에서도 많이 먹어 봤어! 자, 그쪽도 먹어보시오!”

웃으며 토치로 구운 바퀴벌레 다리를 내미는 드워프, 딱딱한 껍질 안에 있는 살이 꼭 대게 다리 같다만…… 그래도 정체불명의 녹즙이 흘러나오는 그 살을 먹을 생각은 없다. 마침 투구를 쓰고 있기도 하고. 고갤 젓자 드워프는 허겁지겁 바퀴벌레 다리를 쪽쪽 빨아먹는다.

그 추잡스럽게 먹는 땅거지를 내버려 둔 채, 난 <눈>으로 위아래 반경 30m 안을 훑었다.

30분 정도 함께 걸어본 결과, 저 땅거지는 사실상 길을 몰랐다. 미로에 갇힌 꼴이나 다름없는 상황, ‘진동의 에메랄드’도 없어서 벽을 뚫을 수도 없고…… 그에 내가 내린 판단은 ‘트롤 마을’로 되돌아가는 거였다.

트롤 마을의 비밀통로-기반 시설에서 휴식을 취한다.

좀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그나마 안전해. 그 뒤에 트롤들이 뚫어놓은 굴을 따라서 도로로 합류해 가는 것, 이게 세운 귀환 계획이다. 다행히, 이렇게 주위를 계속 훑어보니 묘하게 익숙해 보이는 터널이 있었고…….

“후우, 찾았다.”

이전에 지났다고 확신할 만한 흔적-‘쥐쟁이를 한번 만나서 조졌던 곳’을 발견했다.

지금은 괴물 쥐쟁이에게 찢겼을 오크 영감님처럼 지나쳐온 길을 100% 정확하게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난 <과거시>가 있다. 피곤하겠지만 나 자신의 과거를 훑으면서 어떤 길을 지나쳤는지 더듬으면…….

“어……!?”

되는데, 그 터널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 한 인영이 보였다.

검은색 군장 차림에 얼굴엔 비인간적인 위압감이 느껴지는 붉은 렌즈의 방독면, 한쪽 어깨엔 파리가 윙윙대는 자루를 메고, 각 손엔 검은색 대방패와 날카로운 한손 도끼를 들고 있다. 눈의 범위인 30m 밖에 있어서 방독면 속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확실하다.

오크-쥬라카 영감님이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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