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39화 (239/350)

제239화

8.

괴물 쥐쟁이에게서 살아남은 후, 쥬라카는 곧바로 분뇨 수거장에서 벗어났다.

그의 생존본능이 ‘이 쥐쟁이 근처에 있다간 좋지 않은 꼴이 될 거다.’라는 강렬한 경고를 보냈고 쥬라카는 그에 충실하게 따른 결과였다. 그렇게 쉬지도 못한 채, 그는 드워프 대가리가 든 포대를 들고 위로 다시 올라가야 했다.

-Grrr!

-Gu! Gr!

작고 못생긴 초록색 괴물, 볼까지 찢어지는 큰 입에 매부리코 그리고 염소처럼 넓게 퍼진 동공의 노란 눈을 가졌다. 작은 체격에 힘도 약할 거라고 착각하지만 육체적인 능력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 지성이 있긴 하지만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면 ‘교활하고 잔혹한 야수’에 가깝다.

오직 남성만 존재하며 타 아인종의 암컷을 붙잡아 번식한다.

2명만 걸어가도 가득 찰 것 같은 좁은 터널, 코너에서 나오는 8마리의 고블린에 쥬라카는 빠르게 놈들의 무장 상태를 확인했다.

2마리는 가죽으로 만든 투석구를 붕붕 돌리고 있고 나머지 6마리는 창을 들고 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끝을 뾰족하게 깎은 3m 목창, 조잡하지만 충분히 날카롭고 오물이 묻어서 찔리면 좀 고생할 것 같았다.

“쯧, 역시.”

뒤쪽에서도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에 쥬라카는 혀를 찼다.

좁은 지역에서의 합공, 전사로 활동할 때 고블린 놈들에게서 많이 경험해봤던 전략이다. 당연히,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잘 알았다.

“흐읍!”

“Gr!?”

등에 멘 자루를 옆에 던진 후, 쥬라카는 방패를 앞세운 채 돌진했다.

포위되기 전에 한곳을 뚫어버리는 것, 그게 그나마 가장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다. 투석구를 든 고블린 두 놈이 돌을 던졌지만 내세운 방패에 가볍게 가로막히고, 이어서 오물 묻은 목창이 찔러 들어온다.

-텅! 텅! 콰직!

“Giaar!”

왼편에서 찔러오는 창 3개를 방패로 막아내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창대가 형편없이 부러진다. 오른편에서 찔러오는 창 3개는 도끼를 휘둘러 그 창의 끝을 쳐내듯이 베어냈다. 그 처리 과정에서 기세가 죽었기에 쥬라카는 돌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당황하지 않았다.

“Gr?!”

-콰직!

곧바로 왼발을 들어 올려 방패에 의해 시야가 가려진 사각(死角)에서 쪼그려 앉아 달려들던 고블린을 짓밟았다. 투석구를 휘둘렀던 선두의 고블린, 왼편에 있던 녀석이 어느새 그의 방패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얼굴을 노려서 시야와 주의를 그곳으로 쏠리게 하고, 그사이에 달려들어 발을 노린다.

체구가 작고 날렵한 고블린 무리가 자주 사용하던 전술, 투석구를 들지 않은 왼손에 단검이 있는 것을 봤을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나름 비장의 수단이었던 듯, 고블린들이 당황하는 가운데-.

“우와아아악!”

쥬라카는 커다란 함성을 지르며 고블린 사이를 파고들어 날뛰었다. 흉포하게 휘두르는 도끼질에 순식간에 고블린 4마리가 죽자 나머지 고블린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기를 던지고 도망친다. 이어서 그는 부러 사나운 몸짓으로 뒤를 돌아보았고-.

-푸슝!

-텅!

“……!?”

그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빠르게 내리꽂히는 작은 화살이 방패에 적중했다.

방패에 맞고 허무하게 튕겨 나가는 금속제 석궁 볼트, 뒤에서 달려오고 있던 고블린 중에서 가장 덩치 큰 놈이 녹슨 난장이제 갑옷과 석궁을 들고 있었다. 쥬라카는 반쯤 식겁했지만 방독면을 쓰고 있었기에 고블린들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Gr……!”

“Ru!”

그에 고블린들이 달려오다 움찔한 가운데, 대장의 소리에 다시 뒤를 돌아 도망친다. 그렇게 고블린들이 사라진 후.

“허, 허허허…….”

쥬라카는 안도의 웃음을 흘렸다.

운 좋게 상처 없이 막아냈다만, 전투는 정신적으로도 피로하기 그지없는 행위다. 조금 전만 하더라도 그렇다. 방패를 안 들었으면 분명 몸통을 꿰뚫었을 터, 이어서 달라붙는 고블린들에 의해 죽었을지도 모른다. 고블린이 착용하고 있던 장비를 헌납해준 이름 모를 난쟁이처럼.

“씨X…….”

아주 엿 같았다.

어떤 잡놈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한 두더지굴, 이런 곳에 다시 오게 되다니……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안전한 도로로 이어진 하층의 마을은 이미 유입 오크에 의해 잠식됐으니까. 내려오면서 겪어본바, 유입 새끼들은 진짜 야만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곳에 이방인이 들어간다?

미궁에서 ‘다른 오크 부족’에 들어가는 꼴이다.

대충 어떻게 될지 상상이 됐다. 물론, 미궁에서와는 달리 굉장히 ‘관대하게’ 처분하겠지만 싸움을 피하려면 통행료를 뜯길 게 뻔하겠지. 착용한 장비에도 눈독 들일 것이 뻔하고. 그나마 돈이 될 만한 장비를 얻었는데 다른 놈에게 뜯길 순 없다……!

최소한의 질서가 잡힌 3~4km 지점까지 올라가서 벽 뚫는 에메랄드로 길을 뚫고 합류한다.

이미 한 번 내려오면서 걸어갔던 길, 쥐쟁이 무리밖에 만나지 않았던 길을 따라가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당연히, 무사히 갈 확률도 높다! 그래, 꾸역꾸역 올라가서 지금 착용한 장비를 팔아서 빚을 갚고 자유의 몸이 되는 거다!

“후우! 좋아!”

포션으로 치료했던 팔과 다리가 욱신거렸지만 쥬라카는 의지를 다잡으며 던져놨던 포댓자루를 들고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진한 지 1시간가량 됐을 때-.

“…….”

돌연 느껴지는 ‘지독한 냄새’에 쥬라카는 긴장했다.

하수도가 없는 두더지굴, 물로 씻겨지지도 않기에 항상 피와 오물의 냄새가 풍겨왔지만 유별나게 그 냄새가 더 강해졌다. 꼭 분뇨 수거장에서 풍기던 냄새 같…….

“하하, 영감님!”

그때, 그를 반기는 오크어가 들려왔다. 앞쪽에 교차되는 거의 수직으로 뚫리는 터널, 그곳에서 한 사람이 머리만 내민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미친 해골바가지.

괴물의 두개골 투구를 쓴 덕분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짓과 말투에서 반갑다는 느낌이 느껴졌다. 헤어졌었던 동료와의 재회에 쥬라카는-.

“어, 어어! 영감님! 어디 가요!”

미련 없이 뒤로 돌아 내달렸다.

그의 생존본능이 말해줬다. 저 ‘X새끼’와 또 엮이면 ㅈ같아질 거란 걸. 실제로 겪지 않았던가? 트롤들이 득실거리는 곳에서 굳이 자겠다고 지랄하다가 박살 난걸? 덕분에 얻었던 귀중한 트롤 가죽 장비들을 대부분 잃었다. 혹 잡히면 방패를 내놓으라고 지랄할지도 모른다!

“거기 서욧!”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악귀의 모습에 기억 속에도 없는 경로-미끄럼틀이나 다름없는 경사의 길까지 탔다. 내려가니 알고 있는 길과 연결되기에 ‘길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 왜 도망쳐요! 사람 상처받게!”

“X발…….”

미친 해골바가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9.

날 보자마자 영감님은 도망쳤다.

잡히자마자 ‘X발……’거리며 어깰 축 늘어트리는 영감님. 거, 더럽게 서운하네. 우리 같이 오크 약탈자도 잡고! 전리품도 나누고! 트롤 촌에서 도망도 치고! 쥐쟁이에게서…… 나 혼자 런했구나. 어찌어찌 살아남아도 앙심을 품을 만하네. 근데, 솔직히 자기 목숨이 중요하잖아.

“하하, 반가워요!”

“…….”

“저 혼자 도망친 것 때문에 그러세요? 삐졌어요! 에이, 너무하시네!”

최대한 친화력을 뽐내며 영감님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툭 쳤다. 그런 내 꼬라지에 영감님은 한숨을 푹 내뱉곤 고갤 젓는다.

“그래 봤자 당신 의뢰 못 받소.”

“네?”

“분뇨 수거장에서 만났던 괴물 쥐쟁이에게 내 목숨 줄이 틀어잡혔소. 그놈은 뒤앙밍크와 동업자요! 그리고, 놈이 시킨 일을 하지 않으면 난 뒤앙밍크에게 죽어! 그 하프 오크 마을을 찾아간다는 건 불가능하오! 아무리 낙인의 활성화가 3달 남았다고 해도 언제 회수될지 몰라!”

빠득빠득 이를 걸며 소리치는 오크 영감님, 확실히 사정이 그렇다면 날 피해서 도망칠 만도 하지. 하지만, 걱정 없다.

“하하, 걱정 마세요! 저희도 위로 올라가기로 했거든요!”

“올라가?”

“예! 좀 더 준비를 철저하게 해서 내려가기로 했어요. 아, 저기 오네요.”

근처에서 헐레벌떡 달려오는 숨소리, 그와 함께 힘겹게 뒤따라오던 드워프가 반쯤 탈진한 채 우리 근처에 나타나 바닥에 드러눕고 영감님은 기겁하며 방독면의 숨구멍을 틀어막으며 헛구역질한다.

“우욱!? 저건 뭐요!”

“에, 새로 사귄…… 동료?”

“이 X…… 그러고 보니 그쪽도 냄새가 X나 썩는데.”

대놓고 면박을 주는 오크 영감님, 음…… 확실히 내가 봐도 좀 심각하긴 해. 근데, 영감님도 좀 독특한 아우라가 흘러나온다? 영감님의 팔뚝과 방독면 숨구멍에서 마력이 가미된 무언가가 흘러나온다. 되게 희미한 건데…… 왠지 질척질척한 감정이 느껴져.

심상찮기에 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감정>이 발동한다.

난잡하게 스쳐 지나가는 과거의 기록들, 쥐쟁이가 영감님을 협박하면서 뭔가를 묻힌 게 보였다. 더 이전의 기록들도 쏟아진다. 찍찍거리며 뭔가를 섞는 쥐쟁이 연금술사, 그리고 고문받는 고블린…….

추적향 (Tracking perfume)

증류수에 ‘처절하게 고문당한 고블린의 감정’을 뒤섞어 만들어낸 물질, 증류수에 아주 옅은 마력을 섞었기에 마력적·화학적 검사를 해도 평범한 물에 가깝다. 하지만, 고블린의 원한은 깊디깊고 짝을 이루는 머리통이 있다면 아무리 희미하다고 한들 그 감정이 완전히 휘발될 때까지 집요하게 찾아낼 것이다.

·효과 : 67시간 5분 1초까지 <마크> 상태.

“근데요, 영감님. 추적향이 묻었네요. 오른쪽 팔뚝하고 얼굴 부분, 대충 3일은 갈 것 같은데?”

“……X발, 심부름을 제대로 하나 감시하겠다는 건가.”

내 말에 사색(死色)이 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영감님, 그 모습을 보니 추적향까지 묻혀서 감시할 정도의 심부름이 뭔지 좀 궁금해진다.

“뭔 일이 있었어요? 좀 궁금하네.”

“…….”

“말해 봐요, 그럼 저도 ‘귀중한 정보’를 하나 알려드릴 테니까! 이 드워프에게서 알아낸 건데, 듣고 나면 잘 들었다고 생각할걸요?”

이어지는 내 부추김에 영감님은 한숨을 내쉬며 도끼를 허리띠에 걸치곤 어깨에 걸친 천 자루를 보란 듯이 들어 올렸다. 말라붙은 핏자국에 겉에 파리가 웽웽거리는 자루, 그 안에는…… 드워프 머리통 5개가 들어있었다.

“별거 없고 쥐쟁이가 이걸 뒤앙밍크에게 전달하라고 했소. 난쟁이 머리통인데, 이곳에 침입자가 있었다고 알리…… 잠깐만. 저 난쟁이 설마?”

“네, 그 분뇨 수거장에서 구했어요. 동료인지 한번 확인해보죠. [카리드 씨? 이거, 동료의 머리인가요?]”

영감님이 들고 있는 자루를 빼앗으며 드워프에게 말을 걸었다.

그 말에 늙은 개처럼 헐떡이다가 날 물끄러미 바라보는 드워프, 자루를 풀어서 옆에 내려놓자 그 안을 보곤 기겁하더니 얼싸안으며 엉엉 운다. 그 모습을 영감님이 떨떠름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난 어깰 으쓱였다.

“맞는 것 같네요.”

“……거, 내가 안 죽였다고 확실히 말해주쇼. 괜히, 엉뚱한 사람에게 원한을 사고 싶지 않소.”

“그건 충분히 설명할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알려드릴 정보는 영감님의 심부름과도 연관된 일이네요.”

“뭔데?”

“그 흙·모래 공장. 아주 재미있는 비밀을 숨기고 있더라고요.”

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울고 있는 드워프의 정체와 과거, 그리고 금광의 비밀까지 모두 다. 혹시 못 믿을까 싶어서 드워프에게 받았던 금덩어리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금광!? 거기가 금광이란 말이오?!”

“예, 이건 저 드워프가 증거로 보여준 거예요. 아, 그거 그냥 드릴게요. 제 서비스입니다.”

꺼낸 금덩이는 쿨하게 넘겨드렸다. 솔직히, ‘엄청’ 아깝긴 하다만 올라가려면 영감님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까. 업보가 쌓였으니 돈으로 좀 풀어야지. 하지만, 돈독 오른 평소 모습과는 달리 영감님은 금덩이를 받지도 않고 방패도 내팽개친 채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쥐어뜯는다.

“젠장젠장젠장젠장…….”

“……왜 그래요?”

“잘못하면 돈을 들고 가도 이 낙인을 못 풀 것 같으니까!”

팔뚝의 시커먼 낙인을 보여주며 말하는 영감님, 그냥 돈 주면 자동으로 풀리는 거 아닌가?

“돈 주면 풀리지 않나요?”

“그런 거였으면 걱정도 안 했소! 이건, 뒤앙밍크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오! 돈을 줘도 안 풀어줄 수 있어! 수틀리면 죽일 수도 있고!”

“…….”

“지금까지는 신용과 평판을 생각하며 칼같이 약속을 지켰지만, 그 신용을 능가하는 이득이 있다면 어길 수 있는 법이지! 괜히 풀어줬다가 손해가 생긴다고 생각하면 그냥 돈 안 받고 죽여 버릴 수도 있고! 금광이라니! 이거, 너무 일이 크잖아…… 그때 그냥 돌아갔어야 했는데.”

뒤집어쓴 방독면을 붙잡고 울먹거리는 영감님, 말을 들어 보니 좌절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좀 안타까워서 싸장님의 영체에 박혀 있던 걸 뽑아내던 식으로 해제할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아무리 봐도 힘들겠네. 차원이 다르게 깊게 박혔어.

그렇게 내가 안타까운 마음에 혀만 차고 있을 때-.

“이보시오. 당신, 인간이지?”

“……네?”

“쥐쟁이가 그랬어. 당신 인간이라고. 분명히 들었어.”

“아, 아니. 쥐쟁이 말을 믿…….”

영감님이 돌연 돌직구를 날리며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날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아무튼 윗선이랑 어떻게든 인맥이 있다는 것 아니오! 상층에서 직장도 잡아주고, 지상으로 보내준다고 호언장담할 정도로!”

“어, 그렇긴 합니다만…….”

“좋아. 나도 그…… 보험? 이란 걸 좀 들어놔야겠소.”

붙잡은 내 멱살을 놓은 후, 숨을 고르던 영감님은 날 빤히 바라보며 입을 뗐다.

“그 윗선에 좀 말해주시오. 돈을 가지고 가는데도 뒤앙밍크가 트집 잡아서 안 풀어주려고 한다고. 아무리 뒤앙밍크라고 한들, 고위층이 직접 주시하고 있는 앞에선 양아치 짓을 못 할 거요.”

“에, 그게…….”

“해주쇼! 안 그러면 X발 그냥 깡그리 다 뒤앙밍크에게 불어버릴 거요! 어차피 난 반쯤 X된 상황이라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반쯤 눈이 돌아간 영감님. 내가 창 들고 협박했을 때도 저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제기랄,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아,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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