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0화
50화. 리벤쥐!
1.
영감님과 합류한 후, 우리 일행은 다시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머리통을 붙잡고 펑펑 울던 드워프 친구가 오크 영감탱이을 쥐쟁이와 한패로 오해해 바들바들 떠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뒤앙밍크에게 목숨을 담보 잡힌 처지라 어쩔 수 없다.’라는 설명으로 어떻게 잘 구슬려서 다독였지.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경로를 바꿔야 했다.
낮에 지나쳤던 ‘거주지의 트롤’들이 하나같이 화난 표정으로 ‘쿵! 쿵!’ 발걸음 소리를 울리며 위쪽의 두더지 굴을 배회하고 있었거든. 예상치 못한 트롤의 등장에 난 그냥 죽이면서 뚫고 가려고 했는데…….
영감님이 ‘또 그 개X랄하기 싫소!’라고 하면서 발작했다.
낮에 쫓겼던 게 트라우마가 된 듯 아주 격렬하게 반대하더라. 트롤들의 몸집이 육중해서 작은 토굴은 못 지나다니고 발걸음 소리도 커서 충분히 암살하고 다닐 수 있는데도 말이야. 그럼 어떻게 하냐는 내 말에 영감님은 고민하더니 ‘다른 계획’을 설명했다.
오크어를 못 하는 드워프 친구에게 그 ‘계획’을 말해 주니 비슷하게 발작했지만……. 길잡이인 오크 영감의 파업 앞에선 드워프도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정지! 정지!”
중하층, 유입 오크에 의해 완전히 점령된 마을의 터널 도로. 영감님이 다가가자 입구에서 경비병처럼 있던 이들이 제지한다. 한 명 빼곤 전부 전사도 아닌 평범한 오크들, ‘같은 세력’이 점령한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였기에 방비가 좀 부실해 보이네.
어쨌든 간에 영감님은 경비병의 말에 조용히 자리에 섰다.
“그, 누구십니까? 그리고 뒤에 드워프는……?”
딱 봐도 심상치 않은 군장 차림에 한 손으로 검은 사슬에 묶인 오물투성이 드워프를 질질 끌고 가는 오크, 당연히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지.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전사의 질문에 영감님은 차분하지만 위압감 있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냥꾼이다. 그리고 뒤에 있는 드워프는 전리품이고.”
“전리품이요?”
-툭, 데구르르…….
보란 듯이 어깨에 메고 있던 포대 자루를 던지는 영감님, 그 안에 있던 드워프의 머리 하나가 굴러 나온다.
그에 경비병들의 시선이 쏠린 사이, 난 재빨리 <부양>으로 천천히 그 경비병들 머리 위를 날아갔다. 불안정한 <투명화>에 명백히 일그러짐이 보였지만 머리통에 시선이 쏠린 탓에 아무도 날 보지 못했다. 그렇게 내가 넘어가는 걸 보며 영감님은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나간다.
“지하에 숨어 있는 드워프 몇 마리를 잡았지. 그냥 모조리 죽일까 했는데, 뒤에 있는 놈이 자기는 대장장이이니 살려 달라고 하더군.”
“오호? 그렇습니까?”
“그래, 무작정 죽이는 것보단 아는 대장장이에게 노예로 넘기려고 한다. 이놈이 그래도 전사여서 무기를 잘 다루는 지인에게 넘기려고. 그 뒤에 발목을 자르든지 해야겠지.”
영감님의 말에 고갤 끄덕이는 경비병들, 이어서 전사가 손을 들자 곧바로 길을 터 주고 우린 무사히 마을로 입성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왔네요.”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진 후, 난 조용히 영감님 옆에 서서 걸었다. 그에 영감님은 어깰 으쓱였다.
“딱히, 통행증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니까 사칭하긴 쉽지. 그리고 이렇게 표식도 새겼으니 믿지 않는 게 더 힘들걸?”
왼손에 차고 있는 방패를 두드리는 영감님, 그 검은 방패에는 태양을 본떠 만든 문양을 움켜쥐고 있는 손아귀 금박이 입혀 있었다. 영감님 말로는 ‘황금 여명회’의 문장이라는데 작전을 위해서 드워프가 직접 새겨 줬다. 나도 <연금술>로 내 창을 사슬로 만들어서 넘겨줬고.
“그나저나 마을 풍경 한번 되게 살벌하네요.”
외곽의 원형 도로를 걸으며 마을 안쪽을 바라보았다. 새카맣게 불에 그을린 흔적들의 건물, 게다가 도로 곳곳에 뾰족한 꼬챙이에 꿰인 이미 백골이 된 시신들이 널려 있다. 매드맥X가 따로 없네. 그에 쥬라카 영감이 어깰 으쓱인다.
“야만인들이라니까, 야만인. 우리 뉴 송파구 오크처럼 ‘문명화’된 오크가 아니야. 같은 오크로 보면 곤란해.”
“네, 네.”
“어쨌든 통한다는 게 확인됐으니 계속 쭉쭉 올라가지. 오늘 밤은 단절의 도시에서 보내자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영감님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2.
자신만만하던 선언과는 달리 우린 마을 몇 개를 지나친 뒤에 멈춰서야 했다.
다름이 아니고 ‘트롤의 마을 습격’으로 인한 전투 때문. 이번에도 폭도 트롤들이 마을을 습격한 모양인데 드워프를 끼고 은근슬쩍 떠나가기엔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렇다고 다른 유입 오크 세력으로 향하기엔 묘한 상황. 그에 우린 뒤로 후퇴해 하룻밤 숙박하기로 했다.
뜯어낸 금 쪼가리로 빌린 마을 외곽의 가정집.
물이 나오는 집에서 몸에 묻은 오물을 씻어낸 후, 난 배정받은 방구석에 앉아 목에 숨구멍을 뚫어 약물을 털어놓고 억지로 잠을 청했다. 웬만하면 안 자고 버티겠지만 낮부터 정신없이 트롤·쥐쟁이와 싸우고 나니 심력이 바닥나 못 버티겠더라고.
그리고, 또 꿈을 꾸었다.
하도 자주 꿈을 꾸다 보니 얼마 안 가 이곳이 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 서 있는 검은 갑주의 ‘괴물 쥐쟁이’. 놈은 ‘찌-이익!’ 하는 괴성을 지르며 눈에 핏발을 세운 채 달려들고 나도 창을 쥐고 맞서 싸웠다.
하지만, 역부족이다.
뎅겅, 뎅겅, 뎅겅……. 내 죽음이 쏟아진다. 죽을 때마다 난 되살아나지만 얼마 버티질 못한다. 아무리 동체 시력이 좋고 몸을 정확하게 움직인다고 한들, 속도와 힘에서 너무 많이 차이가 나서 소용없다. <광폭화>를 사용해서 비슷하게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긴 했지만, 시간이 끝난 뒤엔 개같이 썰렸다.
강하다.
내 기억에 박힌 전쟁 군주의 경험과 감이, 저 괴물 쥐쟁이가 전쟁 군주의 목숨을 위협할 만한 강자라고 말해 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콰득!
“허윽.”
쥐쟁이가 내 대가리를 투구째로 씹어 먹는 것을 끝으로 두 눈을 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수면제를 먹었다곤 하지만 깨어나기엔 한참 이른 시간. 사라지지 않은 정신적 피곤함에 가볍게 심호흡을 뱉은 후, 난 곧바로 <눈>을 주위에 배치했다.
내 꿈은 ‘전조 현상’에 가까웠다.
미르가 유혈에 잠기기 전에 꿨던 꿈, 주둔지에 타락체가 퍼져서 한바탕 싸우기 직전의 꿈……. 두 개를 꿨을 때부터 내 꿈이 심상찮다는 생각을 하긴 했었다. 아, 추가로 이번에 트롤 새끼들에게 쫓겨나기 직전의 꿈까지 꿨었고. 물론, 진짜 개꿈도 가끔 꾸긴 하지만…….
아니, 잠깐만.
내 꿈은 ‘딱 한 번’ 빼고 전부 미래의 위험을 예견했다. 그걸 꾸곤 ‘개꿈이네.’라고 생각해서 ‘텔레트롤’ 꿈도 개꿈이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정작 개꿈이 아니었고. 딱, 한 번만 개꿈을 꾸다니 좀 이상하네? 만약, 그게 개꿈이 아니라면…….
진짜 미래의 위협을 상징하는 건가?
날 죽이려고 달려드는 오크들, 뉴 송파구 시장과 하하호호 하며 웃던 싸장님이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펼쳐질 미래인가? 아, 너무 무섭다. 싸장님이 오크 취향이란 것도, 제롬 그 양반이 페도필리아 기질이 있…….
“아니, 아니지.”
고갤 저으며 잡생각을 털어낸 후, 몸 상태를 점검했다.
베스트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다. 허벅지도 이제 완전히 회복되었어. 확실히, 투구의 능력이 사기적이긴 하다. 포션은 상처를 잘 치유해도 이렇게 ‘결손에 가까운 상태’의 회복은 힘든데 말이지. 문제는 진짜 그 괴물 쥐쟁이가 찾아왔냐는 건데…….
“하, X발.”
안타깝게도 개꿈이 아니었다.
어둠을 틈타 검은 갑주의 쥐쟁이가 근처의 집 지붕을 밟으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런 놈의 오른손에 들린 코만 비정상적으로 큼지막한 고블린 대가리, 영감님이 제대로 움직이려는 걸 확인하려고 온 것이라고 보기엔……. 입에 걸린 웃음이 심상찮네.
싸울 준비 대신에 조용히 <투명화>를 걸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드워프 친구와 오크 영감님에겐 미안하지만 저놈이 온 이상 당해낼 수 없다. 괜히 싸웠다고 ‘공간 이동 반지’의 마지막 찬스를 날리고 싶지도 않고. 나 혼자라도 살아야지~ 그렇게 몰래 창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는데…….
“찌익! 찍!”
놈이 돌연 시선을 번뜩이며 고갤 ‘획!’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 얼굴에 달린 육안(肉眼)으론 볼 수 없는 벽으로 가려져 있는 방향인데도! 그와 함께 집 안으로 침입하는 대신 이쪽을 향해 튀어 오른다. 이런 개…….
“RA-TI-AM.”
뭔진 모르겠다만 들킨 건 분명하기에 <투명화>를 풀고 허겁지겁 허리띠로 변형한 창을 펴서 <염기성 무기> 인챈트를 걸었다. 그렇게 전투 준비를 마치기 무섭게 놈이 소리 없이 내 앞 30m 앞에 착지하고…….
“바, 반갑다! 이 찢어-죽여 버릴 고양이 새끼야!”
전혀 반갑지 않은 인사를 보냈다.
3.
“하, 하하……. 전 그리 반갑진 않네요.”
“그, 그래? 찍! 난 반가운데!”
이어서 놈은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코를 킁킁거린다.
“여, 역시! 그 오크 새끼랑 같은 편이었구나! 그래-그래! 추적-고블린 냄새, 묻히길 잘했어.”
“젠장, 그럼 오크를 따라가야지 왜 날 따라오나요!? 내게도 묻혔어요?”
좀 억울해서 따지듯이 묻자 놈은 소름 끼치게 웃는다.
“큭, 크크크크. 네 몸 냄새 잘 알아. 인간 냄새! 화약 약품 냄새! 그리고, 킁킁! 트롤 똥냄새! 쮝! 쮝! 난쟁이 냄새도 나네? 뒤앙밍크에게 노예 보는 눈깔을 기르라고 추궁하기 좋겠어! 이로써 내 지분이 늘겠군!”
“지분? 금광 말하는 건가요?”
“죽여야 할 이유! 더 늘었다!”
‘캬캬!’거리며 웃는 쥐쟁이. 그래, 실컷 웃어 둬라. 혀를 차며 왼손에 찬 ‘공간 이동 반지’를 활성화시킬 준비를 했다. 이렇게 된 거, 한 번 맞부딪친 뒤에 도망쳐야겠다. 마지막 남은 공간 이동 기회를 날리는 게 억울하니 저놈에게 한 번 칼찌라도 먹여야지.
그렇게 내가 싸울 준비를 하는 모습에 쥐쟁이는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린다.
“내가 괜히 오크-배신자 뒤를 미행-추적하지 않고, 냄새를 묻힌 줄 아나?”
“글쎄요?”
“바로, 이걸 사기 위해서였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오른손에 쥔 코가 큰 고블린의 머리통이 사라지고 대신에 검게 말라비틀어진 작은 손 다발 묶음이 나온다.
끌어내리는 손아귀
커다란 끓는 기름통 속에 쑤셔 넣어져 죽은 고블린의 손으로 만들어진 도구. 어떻게든 통 밖으로 나오기 위해 발광하지만 자기보다 잘난 꼴을 보지 못하고 끌어내리려는 고블린의 추악한 본능에 단 한 마리도 탈출하지 못했다. 상상을 초월한 집념과 시기가 서려 있다.
·발동 효과 : 사용 시, 상대방의 모든 이동 효과를 봉쇄한다.
-츄하아아악!
<감정>하기 무섭게 그 손이 바스러지며 검은 광채가 쏟아진다. 그와 함께 새카맣게 탄 고블린의 손들이 내 발목을 붙잡는다. 무게가 느껴지거나 하진 않지만……. X됐다. 믿고 있던 탈출 수단이 박살 난 가운데, 쥐쟁이는 즐겁다는 듯이 웃는다.
“니 가방에 담긴 돈으로 구한 거, 비싼-바가지지만 성능 확실해!”
“…….”
“이제 도망 못 간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쥐쟁이는 3개의 칼날을 뽑아 들며 내게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