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5.
포션을 마시고 불과 몇 초 만에 또 달려드는 쥐쟁이.
내 악령들이 흩뿌리면서 간 독무를 뚫고 오는 그 모습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연금 물질 해체>라는 ‘중화 마법’을 몸에 걸고 있는 나도 내가 뿌린 독기를 버티는 게 고역인데, 저놈은 이 안에서 그냥 펄펄 날아다닌다. 강자에게 독이 잘 안 통한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하네.
“에휴.”
작게 푸념한 뒤, 다시 쥐쟁이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손바닥에 맺힌 그림자 속에서 수류탄을 꺼낸 뒤, 안전핀을 뽑고 기습적으로 창문 쪽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는 쥐쟁이. 거의 포탄에 가까운 속도로 날아온다. 그래도 멀찍이서 보고 있었기에 아예 창문도 못 넘도록 할 수도 있었지만-.
-파앙! 팡!
“읏차!!”
그 대신에 창을 놓고 그대로 도약해 3발 모두 손으로 낚아챘다.
이어서 <연금술>의 마력을 투사해서 안쪽의 타들어가는 지연 신관의 성질에 간섭, 그 불길을 억지로 꺼트렸다. 가공하던 약품이 화학 반응해 터지기 시작하면 X되는 게 <연금술> 업계거든. 이런 폭발 관련 화학 반응 지연 방법은 빠삭하게 배워뒀지.
“찍-불발!?”
창문에 수류탄을 던지고 곧바로 현관문 옆에 선 쥐쟁이,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지 않자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사이에 수류탄을 로브 안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소환 : 검은 독기의 망령>을 사용해 입 밖으로 토해냈다.
-끼, 끼아아아아앍!
곧바로 광란의 괴성을 내지르며 문 쪽을 향해 달려가는 악령 1마리, 그 소음에 쥐쟁이는 신경질적으로-
-쾅! 끼이익!
“찍!”
현관문 철문짝을 박력 있게 걷어차 넘어트리며 안쪽으로 들어온다. 그런 놈의 모습에 다급하게 혀 밑에 넣어둔 앰플 하나를 씹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끼아아아악! 쮸거어……!
“GAR-LO…….”
“찍! 닥쳐!”
몸을 사리던 이전과는 달리, 악령을 피하지도 않고 똑같이 마주 달려드는 쥐쟁이. 그런 놈의 그림자가 불길처럼 일렁이며 스스로 일어나 움직인다. 마치, 2명이 합공하는 것처럼 그대로 악령을 난도질해 갈아버리며-.
-스가가각!
-스각!
뒤에 있는 날 향해 돌진한다.
<광폭화>를 썼어도 정면으론 상대하기 힘들 맹렬한 공격, 뒤로 빠지면서 겨우 막아낼 정도지만 이 건물의 출입구는 쥐쟁이가 들어온 단 하나뿐이다. 창문 쪽으로 빠지기에도 너무 늦었어. 저렇게 과격하게 나올 줄은…….
하지만, 괜찮다.
투구의 아가리에 시체를 쑤셔 넣은 덕분에 이 지랄 맞은 놈을 한 번 벗을 수 있었고-.
“JAR!”
그사이에 ‘용숨결 물약 앰플’을 입에 쑤셔 넣어뒀으니까.
마지막 룬 문자를 완성시키는 ‘JAR’이라는 마지막 외침을 내뱉는 순간, 동시에 내 폐 안에 고였던 혼합물이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앞의 쥐쟁이에게 작렬한다. <녹색용의 포효>, 우리 싸장님의 오리지널 마법은 쥐쟁이 새끼도 무시하지 못했다.
“……!”
-콰드득!
전방에 있던 것들이 모조리 박살 나서 날아간다.
얼마 없는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벽돌 벽까지 모두. 쥐쟁이 또한 파리채에 후려 맞은 파리처럼 그대로 튕겨져 현관문 밖으로 날아가 옆 건물 벽을 박살 내며 안쪽에 처박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한 방일 거다. 이런 걸 쓸 수 있으면 진작 썼을 테니까.
“으드드득!”
이를 악물며 장갑 안에서 꿈틀거리는 <광폭화>의 힘을 폭발시켰다.
시체 섭취로 빠르게 호전된 육신이 간신히 <광폭화>의 힘을 받아들인다. 이어서 혀 밑에 넣어둔 ‘용숨결 물약’ 앰플을 하나 더 깨물어 흡입한 후, 곧바로 무방비로 잔해에 박혀있는 쥐쟁이를 향해 창을 앞세우며 돌진했다.
승기를 잡았다.
집에 숨어있는 오크 시체들을 먹으면서 버티려는 게 원래 계획이지만,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쥐쟁이 녀석이 좀 다급하게 승부수를 던졌고 난 제대로 받아쳤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돼. 저렇게 무방비로 당해서 빈사 상태가 된 놈을 이 기회에 끝…….
-콰앙!
“캬하하하학!”
장 내야 하는데, 괴성과 함께 박살 난 잔해를 터트리듯이 날려버리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지가 무슨 터미네이터도 아니고 어떻게 죽질 않니……. 그래도 터트리는 기세에 비해 몸 상태는 정상은 아니다. 전신이 녹색 독액과 검은색의 독기에 뒤범벅이 됐고 왼쪽 눈알은 터졌으니까.
“까드드득!”
이쪽을 보자마자 남은 한쪽 눈을 부릅뜬 채 달려온다. 흉흉하기 그지없는 살기, 하지만 움직임 자체는 이전보다 느리다. 저 정도면 할 만…….
-스파아아앙!!
“……!”
5m가량 되는 길쭉한 쥐꼬리에 달린 70cm 정도 되는 흉악한 녹색의 검, 채찍의 원리로 소닉붐을 펑펑 터트리며 휘두르던 그 칼날을 돌연 이쪽으로 내던진다. 음속을 뛰어넘는 속도로 쏘아지는 칼날, 생각지도 못한 기습인 데다가 너무 빨라서 피하진 못했지만-.
-터-ㅇ!
<광폭화>의 강화된 신체 능력으로 간신히 창대를 비스듬히 기울여 빗겨냈다.
충격을 대부분 흘려냈지만 그 여파만으로 몸이 휘청인다. 몸의 균형이 깨지며 이쪽의 기세가 살짝 죽은 가운데, 기습적으로 칼을 던져 빈틈을 만든 쥐쟁이는 그사이에 거릴 폭발적으로 좁히며 연이어 자신의 몸에서 그림자를 피워 올린다.
그 콤마 초 사이, 쥐쟁이의 그림자가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휘리릭!
-휘리리릵!
동시에 긴 꼬리를 날리는 쥐쟁이와 그림자, 쥐쟁이는 발목을-그림자는 내 창을 노리며 쏘아져 들어온다. 전찬휘 경감이 휘두르던 쇠사슬처럼 날 옭아매기 위한 움직임. 하지만, 난 <광폭화> 근접전만으로 놈을 끝장낼 생각을 하진 않았거든.
“JAR!”
달려드는 놈을 향해, 난 한 번 더 <녹색용의 포효>의 마지막 룬 문자를 완성시켰다.
6.
해골 대가리의 아가리가 쫘악 벌어지는 것을 보며 스미릭을 이를 악물었다.
기묘한 마력의 응집, 아가리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약품 냄새의 공기, 상대방의 기색……. 생사 앞에서 민감해진 그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해골바가지가 또 그 ‘기괴한 마법’을 뿜어낼 것이라는 것을. 그 순간, 스미릭의 두뇌는 맹렬하게 돌아가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다.
피한다?
순수하게 몸을 움직여 피하기엔 너무 가깝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회피 방법은 생명체의 그림자 사이를 이동하는 <그림자 도약> 정도, 하지만 독무가 자욱하게 깔려서인지 근처에 살아있는 놈이 하나도 없다. 해골바가지의 그림자로 도약하는 것도……. 기각. 무방비로 그림자에서 솟구치는 자신의 머리통을 놈이 내리찍을 거다.
……그럼 버티는 수밖에 없다.
-스스스스……!
포효가 작렬하려는 찰나의 순간, 스미릭은 몸을 최대한 낮게 숙이며 <살아있는 그림자>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함께 포개 겹쳤다. 그리고, 걸치고 있는 ‘그림자용의 갑옷’과 동조하며 그대로 돌진했다.
-!!
뼈와 살을 분리시키는 것 같은 충격파가 그의 코앞에서 작렬했다.
여전히 강렬한 위력, 하지만 무방비로 쓸려나갔던 방금 전과는 달리 스미릭의 몸은 그 공기의 폭류를 거슬러 올라갔다. 마치, 물리적 실체가 없는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물리적인 충격’이 몸을 뚫고 그냥 지나치는 형상. 그러나, 완전히 무시하는 건 아닌 듯 그 속도는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해골대가리는 보란 듯이 느려진 스미릭을 향해 창을 찔러 넣었다.
-콰득!
그림자 용갑으로 가려지지 않는 틈, 목과 흉골을 꿰뚫는 황금빛 창. 해골바가지의 작은 신장으론 노리기 힘든 부위였으나 폭풍을 뚫어내기 위해 스미릭이 최대한 낮게 몸을 숙이면서 드러난 약점이었다. 뇌를 뒤흔드는 충격에 스미릭은 순간 눈앞이 하얗게 변했지만-.
-촤학!
-후두두둑!
그 몸에 새겨진 본능은 움직였다.
해골대가리의 복부를 훑고 가는 은빛과 보랏빛 궤적, 창으로 저지된 덕분에 허리를 양단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은빛 칼날이 깔끔하게 뱃가죽을 가르고 톱날 같은 날을 가진 보랏빛 칼날이 내부의 내장을 끄집어내 파헤쳤다.
-휘릭!
이어서 잠깐 잃었던 정신을 찾자마자 스미릭은 쓸어내듯이 꼬리를 움직였다. 목표는 해골바가지의 발목, 휘감아서 넘어트린 뒤에 곧바로 칼날을 움직여 목을 뜨거나 난도질하려고 했으나 해골대가리는 놀랍게도 창대를 놓으면서 발목을 휘감으려는 꼬리를 피한다.
“좀, 죽어라……!”
-퍽!
그리고, 내장이 뜯겨져 나갔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여 주먹을 스미릭의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반사적으로 입을 닫아 물어뜯었으나 녀석은 얄밉게 건틀릿만 남겨놓고 손은 쏘옥 빼냈다. 그리고, 목구멍 안을 따라 내려가는 묘한…….
-투-웅!
몸속에서부터 박살 나는 충격을 느끼며 스미릭의 의식은 그대로 어둠 속으로 침잠했다.
7.
-투-웅!
쥐쟁이의 몸이 크게 들썩인다. 목에 창을 꽂고도 움직일 정도로 끔찍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놈의 눈이 서서히 풀리더니 이내 ‘털썩!’하며 그대로 바닥에 엎어진다. 그래, 드디어 쥐쟁이가 뒤졌다!
“끄…….”
나도 그 앞에서 양 무릎을 꿇고 복부를 양손으로 감쌌다.
로브 안쪽의 가죽 갑옷은 박살 났고 내 몸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엄청난 양의 구불구불한 창자가 바닥에 쓰레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다시 집어넣기엔……. 주위에 떠도는 독무에 섞인 검은 분진이 아주 듬뿍 묻어있네.
“흐으, 흐으, 흐으, 흐으.”
최선을 다해 숨을 가다듬으려고 했지만 폐와 횡경막이 잘 움직이질 않는다. <녹색용의 포효>의 마법 구조 자체가 폐에 상당한 무리가 가해지는데 연거푸 2번을 토해내니 이러는 거다. <눈>으로 보니 횡경막 쪽 근육과 폐혈관이 허옇게 된 게 보인다.
좋아, 일단 상처부터.
-뿌드득!
복압에 빠져나온 창자를 힘껏 쥐고 뜯어냈다. 그리고, 그 뜯어낸 내장을 투구의 아가리에 가져다 대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내장을 날름 먹어치우는 투구. 이어서 <연금술>로 피를 엉기게 해 상처를 지혈한 후-.
-우적!
내 앞에 있는 쥐쟁이의 투구를 벗겨내고 대가리를 씹었다.
이어서 창을 뽑아내고 갑옷과 장비를 벗기며 정신없이 아가리에 밀어 넣었다. 승리건 뭐건 간에 이쪽도 뒤지기 일보직전이야. 그나마 이 투구가 전해주는 ‘회복의 힘’ 덕분에 개지랄을 해도 살아있는 거지 아니었으면 나도 뒤졌다.
“흐으, 흐으, 흐으, 후우우……!”
그렇게 정신없이 쑤셔 넣고 있는데, 한쪽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이곳엔 고만고만한 오크들만 있는 게 아니다. 영감님과 함께 이 마을에 들어설 때, 기사급으로 보이는 놈들과 마법사도 있는 걸 확인했다. 지금은 독구름을 뿜어내는 분신들의 소란에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정신을 차리고 오면 위험해. 목격자를 죽여야…….
“흐.”
한다고 생각했는데, 방독면을 착용한 영감님이다.
정화통이 없지만 어떻게 방독면의 숨구멍을 막고 독무를 뚫고 들어온 것 같다. 내가 바라보자 흠칫하면서도 뭔가 제스처를 취하는 영감님, 뭔가 손에 쥐고 앞에 뻗는 듯한……. 아, 에메랄드. 혹시 몰라서 내가 가지고 있겠다고 했었지. 어딘가로 벽을 뚫고 탈출하려는 듯싶다.
“…….”
복부를 훑는 칼날에 뜯겨져나간 로브 잔해에서 ‘진동의 에메랄드’를 주워서 던졌다. 재빠르게 낚아채는 영감, 왜 안 오냐는 듯이 바라보는 영감님을 향해 난 다시 나오기 시작하는 목소리로 내 옆에 놔둔 쥐쟁이의 전리품을 가리켰다.
“이거, 회수해서 먼저 가져가세요. 전, 좀 있다가 합류할 테니까.”
“……?”
“추적자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 겁니다.”
쥐쟁이 한 마리론 부족해.
내장이 죄다 뜯겨져 나간 상황, 살기 위해선 회복될 때까지 투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피곤해 죽겠지만 지금 이 기회에 최대한 먹어둬야 해.
당황하는 영감님을 뒤로한 채, 난 창을 다시 쥐고 근처의 시체를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