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44화 (244/350)

제244화

4.

생각지도 못한 용의자의 행적에 관한 단서를 포착한 뒤, 추적팀은 곧바로 ‘세로쉬의 방패’ 소속 사제의 도움을 받아 조사에 들어갔다.

“악마에 가까웠다는 말이오?”

“그렇소! 울락 순교회의 짓이 확실하오! 발칙하게 세로쉬의 이름으로 악마를 부리는 이단 놈들이나 할 수 있는…….”

‘황금 여명회’에게 점거된 중층 마을, 거의 한 시간 동안 차분하게 기사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드라릭은 울락 순교회 쪽으로 이야기가 점점 기울어지자 시계를 확인하는 척하며 양해를 구하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듣고 싶지만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그, 울락 순교회 새끼들을 어떻게 할 거요?”

“일단, 윗선에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사실, 이런 세력 간의 분쟁에는 간섭하지 않는 게 주정부의 의견이지만……. 이번엔 좀 신중하게 다뤄야 할 것 같군요.”

드라릭의 답변에 ‘잘 부탁드린다.’며 고갤 끄덕이는 기사. 그렇게 마을 책임자와 면담이 끝난 후, 마을 회관 밖으로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정장 차림의 요원이 드라릭을 반겨 줬다.

“어떻게 됐습니까?”

“별거 없어. 난동을 부린 악령의 형태 묘사 정도? 쥐쟁이가 표현한 것과 흡사해. 나머진 울락 순교회가 벌인 일에 대한 성토뿐이고. 그쪽은 어떻나?”

가볍게 어깰 으쓱이며 대꾸하는 드라릭, 그에 요원도 고갤 끄덕인다.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확인한 묘사도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굉음이 울려 퍼졌다는 현장에서 수류탄의 조각으로 보이는 쇠 파편을 발견했습니다.”

“……놈이 화기를 가지고 있는 건 거의 확실하군. 역시, 암살과 연관이 있는 건가?”

요원의 보고에 얼굴을 찡그리는 드라릭, 이어서 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근데, 놈의 행적은 여전히 모른다는 게 문제군. 벽을 파서 두더지굴 쪽으로 사라진 흔적밖에 없으니…….”

“아, 그것에 관해서 하나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현재, 타깃과 함께 움직이는 오크 전사 있잖습니까? 뒤앙밍크가 고용했다던 트럭 운전기사.”

“그, 쥬라카…… 라고 했던가?”

읽었던 보고서를 떠올리며 드라릭이 대꾸하자 요원은 고갤 끄덕였다.

“그놈이 여길 방문했습니다. 당황스럽지만 사로잡은 드워프 노예를 하나 가지고 움직였다고 하더군요. 잘려 나간 드워프의 머리통도 몇 개를 보여 줬다고 하고.”

“드워프……? 잘못 착각한 거 아닌가?”

“인상착의를 들어 보면 쥬라카가 확실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드워프의 등장, 그에 드라릭이 미간을 찡그리는 가운데 요원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간다.

“어쨌든 간에 그 녀석이 ‘하프 오크 마을’에 대해서 질문했답니다.”

“하프 오크 마을?”

“네, ‘하프 오크 마을을 본 적이 있느냐?’ 혹은 ‘하프 오크 마을을 약탈을 한 적이 있느냐?’에 대해 자세히 물어봤다더군요…….”

“……대체 왜?”

“여기 오크들에겐 드워프처럼 ‘노예’로 잡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위층에선 수요가 있다면서.”

“하긴, 수요가 꽤 있긴 하지…….”

질서 유지관으로 활동하면서 들은 각종 범죄를 떠올리며 드라릭은 입맛을 다셨다.

실제로 하프 오크 여성은 노예로서 꽤 수요가 있다. 자손을 보기 어려운 이종족에겐 순수한 인간 암컷보다 더 뛰어난 최고의 ‘혼혈 생산기’니까. 물론,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역겹긴 하다만. 뜬금없는 하프 오크에 대한 언급에 드라릭이 팔짱을 낀 채 고민에 빠졌을 때, 요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한 건 아무래도 그 용의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겠지요?”

“그렇지. 정황상, 함께 움직인 거나 다름없는 걸로 보이니 말이야. 그나저나 하프 오크 마을이라……. 위치를 아나?”

“하층의 쓰레기장 근처입니다. 단절의 도시에서 직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가 하나 있고요.”

요원의 대꾸에 드라릭은 고갤 끄덕였다.

“좋아, 그럼 위로 올라가서 병력 보충을 한 후에 하프 오크 마을 쪽으로 이동해 보지.”

5.

황금에 두 눈이 벌게진 두 중생의 애원에 난 결국 백기를 들었다.

두더지굴로 가지 않는 이상, 위로 올라가기 위해선 오크 영감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한데 황금에 눈이 멀어서 올라가길 완강히 거부하니 나로선 답이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 올라갈 수도 없고…….

그러니 어쩌겠어?

다시 분뇨 수거장으로 향하는 수밖에.

우리가 진입한 3~4km 지점에 있는 두더지굴의 경로는 몰랐지만, 두 사람은 ‘나’라는 무력만 믿고 무작정 아래쪽으로 돌진했다.

참고로 아주 X 같았다.

떠도는 괴물들과 괴물들이 거주하는 운동장만 한 공터에 들어간 것도 서너 번, 그때마다 식사할 때 추출해 둔 ‘영혼의 영액’으로 내 분신 망령 하나를 소환해서 던져 버렸다. 그렇게 3시간가량을 뺑뺑 돈 끝에 4~5km 지점에 돌입했고 간신히 분뇨 수거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밀채하던 드워프들이 파 뒀다는 석굴방 하나에 내 몫의 짐을 풀어놓고 그대로 엎어졌고…….

“끄으으윽……!”

경험치 정산을 받고 두 눈을 떴다.

피로가 싹 풀린 느낌, 시계가 없어서 얼마나 잔 건지 모르겠다만 경험상 이틀은 푹 잔 것 같았다. 쫘악 기지개를 펴며 일어서니 자연스럽게 석굴 한구석에 쌓여 있는 쥐쟁이를 족치고 얻은 전리품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귀찮아서 전리품 감정도 안 했네.

60~70cm의 한손검 세 자루.

비범해 보이는 흑색 갑옷 한 벌.

검은 반지를 착용한 손가락이 달린 목걸이.

여러 가지를 잡다하게 챙겨 왔지만 이 세 종류의 장비에서만 마법적인 아우라가 흘러나왔다. 다른 평범한 장비를 제외한 뒤, 난 가장 먼저 칼날에서 연녹색 빛 연기가 넘실거리는 한손검을 들어 올리며 <감정>했다.

+6 부정한 삼위일체 : 맹독 (Corrupt Trinity : Poison)

칼이라기보다는 날이 세로로 긴 도끼에 가까운 쿠크리(Kukri) 형태의 한손검, 방사능이 뿜어져 나오는 고준위 오염물을 마법적인 수단으로 농축해서 만들어졌다. 불길한 주술어가 가득 새겨진 칼날엔 형광색 연기 같은 마법적인 방사능으로 넘실거린다. 매우 강력한 맹독을 품고 있으나 착용자의 몸이 서서히 방사능에 썩어 드는 ‘사소한 부작용’이 있다.

세트로 제작된 칼이며 각각의 칼은 서로 다른 칼의 단점을 보완한다.

한 손 무기, 쿠크리, 사악한 장비

대미지 12, 명중 +0

기본 공격속도 1.4, 최소 공격속도 0.7

·맹독의 무기(Poison), 대상에게 마법 오염, 상처 부패, 힘 +5, Hp –5, *사용 시, 착용자가 일정 확률로 방사능에 중독됨+마법 오염.

·‘부정한 삼위일체 : 흡수’의 모든 부정적 효과를 제거.

“이런 개……!”

-땡그랑!

그리고, 식겁해서 내던졌다.

방사능?! 어쩐지 들자마자 손바닥이 묘하게 뜨거운 느낌이더라니……! 다른 칼들도 <감정>해 봤다. 톱같이 뾰족뾰족한 칼날의 보랏빛 검은 흡수(Drain), 은빛의 번쩍이는 한손검은 파괴(Vorpal) 브랜드가 달린 랜다트 마법검인데……. 똑같이 단독으로 쓰면 엿 되는 살벌한 패널티가 달렸다.

도저히 사람이 쓸 만한 건 아니라고 판단한 후, 난 시선을 돌려 갑옷을 바라보았다.

+9 그림자 용비늘 갑주 (Shadow dragon scales Armour)

그림자용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주, 강령술 마법으로 그림자용의 영혼 일부와 생기를 부여했다. 착용 시, 그림자용의 힘을 빌릴 수 있지만 그 대가로 착용자의 생명력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 당장 생명이 위험하거나 하진 않지만 만족도 소모가 대폭 상승하니 주의할 것.

그늘진 자 ‘테네브라’의 신도가 착용할 경우, <그림자의 형상>을 사용할 수 있다.

갑옷, 그림자 용비늘 갑주, 사악한 장비

기본 AC 10, GDR 39%, 방해수치 15

·민첩 +6, 힘 +5, 은신+++++, 화염 저항+, 냉기 저항+, 독 저항+, *굶주림

·발동 기술 : <그림자의 형상>-테네브라 신도 전용.

다행히, 이건 쓸 만했다.

만복도 소모량 상승이라는 패널티가 있지만 민첩과 힘 능력치, 거기에 각종 저항력까지 준수하게 붙은 갑주, 돌죽 기준으로 봤을 때도 최종장까지 쓸 만한 급이야. 한 번 껴 볼까 해서 들어 보니 갑주 주제에 절그럭거리는 소리도 안 난다.

“으음.”

갑옷을 입은 후, 미묘한 느낌에 얼굴을 찡그렸다.

크진 않았다. 2m가 넘는 괴물 쥐쟁이가 쓰던 것임에도 걸치는 순간 내 몸에 딱 맞게 줄어들었거든. 장갑과 투구를 부드럽게 감싸 한 세트처럼 보이게 만들어 줘서 좋긴 한데……. 몸놀림이 둔해지고 무엇보다 마법을 쓰기가 되게 어렵네. 마력을 투사해 룬의 형상을 만드는 과정이 엄청 힘들어.

“……이것도 보류.”

마법을 포기하고 전사의 능력만 믿고 가기엔 내 신체 피지컬이 너무 저열하다. 이건 중갑 전사에게나 어울리는 장비야. 한숨을 내쉰 후, 난 마지막 남은 마법 장비인 잘려 나간 손가락이 매달린 목걸이를 감정했다.

섬뜩한 손가락 목걸이 (the macabre finger necklace)

줄에 대롱거리며 매달린 딥엘프의 손가락, 기묘한 생기를 띠고 있다. 때때로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목걸이

·음에너지 저항+

·반지 한 개 더 착용 가능

목걸이는 반지를 더 끼울 수 있게 해 주는 아이템이다. 저항력도 붙어 있으니 평범하게 좋네, 그리고, 그 손가락에 끼워진 그림자가 일렁이는 듯한 반지는…….

달라붙는 그림자 (Clinging shadow)

그늘진 자-테네브라의 축복이 깃든 반지, 마력을 주입할 시 이 반지는 주위를 캄캄한 어둠으로 감싸며 착용자를 지극히 은밀하게 행동할 수 있게끔 해 준다. 어둠 안에 들어선 이들은 공격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만, 착용자는 어둠을 꿰뚫어 볼 수 있다.

반지

·투명화+, 은신+, 투명 감지(SInv)

·발동 기술 : <어둠의 장막>

목걸이를 쥐고 마력을 투사해 보니 오른손에 끼고 있는 ‘유령의 반지’처럼 묘한 어둠이 흘러나와 내 몸을 감싸는데, 몸의 기척이 많이 사라진 게 느껴진다. 유령의 반지와 병행해서 쓴다면 몸을 숨기기에 딱 좋네.

“쩝.”

아쉬운 대로 목걸이를 착용했다. 진짜 내가 쓸 만한 마법사 템은 진짜 죽어도 안 나오네. 하긴, 죽인 놈이 전사나 암살자인데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어서 그림자 용갑옷은 벗어 둔 후, 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똑! 똑!

그리고, 옆쪽 석굴 방문을 노크한 뒤에 들어갔다.

안쪽에선 오크 영감과 드워프가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주제에 몸짓 발짓을 동원하며 뭐라 떠들고 있었다. 내가 노크하며 들어서자 두 사람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반색하며 날 반긴다.

“거봐! 내가 살아 있다고 했잖아!”

“아니, 뭔 짓을 하기에 이틀 동안 꼬박 문 닫고 있소?”

날 보며 각자 오크어와 드워프어로 반기는 두 사람, 그에 난 작게 어깰 으쓱였다.

“좀 피곤해서 많이 잤네요. 그나저나 금은 잘 챙겼어요?”

내 말에 씨익 웃더니 드워프를 향해 손짓하는 오크 영감, 말은 통하지 않아도 뜻은 통했는지 드워프가 방 한구석에 놓아둔 각진 금속 형태의 백팩을 연다.

“와아…….”

그 안에 있는 건, 손가락 크기의 차곡차곡 쌓인 작은 금덩어리들. 못해도 수백 개는 되어 보인다. 내가 감탄하자 드워프가 의기양양하게 말한다.

“그쪽 몫이요. 하나에 300g 정도 되고 총 226개지. 정확히 3등분했소.”

“그럼 대충 70kg? 진짜 많긴 하네요!?”

“흐흐, 그렇지?”

다가가서 작은 금괴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피곤할 때는 황금이건 뭐건 다 X까! 싶었는데, 이렇게 직접 금덩이를 보니 그냥 마음이 푸근해지는구만……. 나도 모르게 흡족하게 고갤 끄덕이고 있는데 오크 영감이 말을 이어 나간다.

“옆에 천으로 둘둘 감아서 세워 둔 건 그쪽이 가지고 다녔던 양손 도끼요. 쥐쟁이가 모아 놓은 전리품 더미 속에 있더군. 그쪽 거라서 따로 빼놨소.”

황금에 눈이 돌아가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배낭을 던져 놓고 도망치면서 벗어 둔 ‘저주의 혼합체’라는 마법 장비도 금속 배낭 옆에 있었다. 근데, 다른 짐은 없네.

“다른 건 없어요?”

“그쪽이 쓰던 걸로 보이는 장비는 그게 끝이오. 나머지는 드워프가 자기 거라고 하는 것 같더군.”

어꺨 으쓱이며 드워프를 바라보는 영감님, 그에 내가 바라보자 드워프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살짝 머리를 치곤 ‘잠시 기다리시오!’하곤 방에서 나가 어딘가로 달려간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손에 뭔가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이거 받으시오.”

500ml짜리 맥주캔 사이즈의 투명한 수정 덩어리, 뭔지 모르겠지만 희미하게 마법적인 아우라가 넘실거리기에 일단 받았다. 생각보다 매우 묵직하네.

“이게 뭐죠?”

“그쪽이 찾던 지도요. 쥐쟁이 놈이 그 도끼와 함께 창고에 던져 놨더군.”

지도? 내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다른데……. 좀 의심스런 느낌에 수정 덩어리를 들어 올리자 드워프는 손을 까닥인다.

“거기에 마력을 투사해 보시오.”

드워프의 말대로 손에 마력을 투사하자 투명한 수정 안에서 반투명한 푸른색의 실핏줄 같은 것이 난잡하게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 반대편을 보지 못할 정도로 아주 빽빽하게.

“마력을 투사하면 그 부위에 반투명한 푸른색 실핏줄들이 나타나지. 그 푸른색 실핏줄은 두더지굴 통로를 뜻하오.”

“아, 3차원 지도군요.”

이제야 뭔지 알겠다. 3차원적인 형상이니까 이렇게 만들었구나. 그리고, 너무 빽빽해서 보기 힘드니 특정 부분에 마력을 투사하면 보이게 만들었고.

“근데, 이거 내비게이션 기능 같은 건 없나요?”

“내비게이션? 그게 뭐요?”

“현 위치를 표현해 주는 거요.”

“그런 대단한 기능은 없소. 12년 전 지도라서 꽤 부정확하겠지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소. 우리 길잡이는 그걸로 여기까지 안내했어. 줘 보시오, 지금 여기의 위치는……. 이쯤이오.”

고갤 저으며 수정 한 곳을 가리키는 드워프, 그에 난 <메모장>을 켜고 원통을 스캔 뜨듯이 그 형상을 통째로 찍어 낸 후 드워프에게 다시 건넸다.

“가지시오. 이제 그쪽의 것이니까. 토가르 녀석의 것이지만, 원수를 갚아 줬으니 그쪽에게 주는 걸 이해할 거요.”

“필요 없어요. 통째로 기억했으니까.”

“……뭐요?”

“기억했다고요. 지도 내용을.”

내 대꾸에 멍청하게 두 눈을 끔뻑이는 드워프. 그 사이, 오크 영감님은 자신만만하게 의자에서 일어나 날 향해 활짝 웃는다.

“뭔진 모르겠지만 이제 다시 올라가도록 합시다! 흐흐, 이제 이 족쇄도 끝나는…….”

“뭔 소리예요? 전, 안 올라갈 건데요?”

킬킬거리며 낙인이 새겨진 오른쪽 팔뚝을 만지다가 내 대꾸를 듣곤 덜컥 굳는 영감님, 이어서 날 뚫어져라 바라본다.

“아니, 왜?! 길잡이를 구해야 할 거 아니오?”

“드워프가 방금 넘겨준 수정 덩어리가 두더지굴의 지도예요. 대충, 길을 알았으니 하프 오크 마을에 가려고요.”

“……일단, 단절의 도시로 간 다음에 하는 게 어떻소? 저 금덩어리를 통째로 들고 갈 거요!?”

“여기에 던져두고 나중에 들고 가려고요. 왔다 갔다 하는 건 싫어서.”

나로선 금덩이를 들고 힘들게 올라가 봤자 딱히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없다. 싸장님네까지 다시 올라가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시간 낭비에 들킬 위험도 크고……. 기껏해야 호텔방을 빌려서 금괴를 보관해 놓는 정도? 그럴 바엔 오히려 이곳에 방치하는 게 더 나아.

“아, 아니……. 어떻게 좀 말려 봐라 이 난쟁이야!”

“저 늙은 오크 놈이 뭐라고 소리치는 거요?”

사색이 된 얼굴로 드워프에게 어떻게 말려 보라고 소리치는 오크 영감, 그에 드워프가 날 향해 물어본다. 그에 사정을 설명하니 똑같이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날 말리려고 하지만……. 나도 이건 양보하긴 좀 그렇거든. 어서 빨리 목에 걸린 폭탄을 혜영이에게 던져 버려야지.

“지도가 있으니까, 정 급하면 둘이서 올라가세요.”

“……가능할 거라고 보시오!?”

“음, 좀 위험하지만 100% 죽는 건 아니잖아요?”

내 대꾸에 한숨을 푹 내뱉는 오크 영감님, 나야 마법과 <눈>을 활용해서 별것 아닌 것처럼 돌아다니지만 평범한 전사 수준인 영감님과 드워프에겐 꽤나 힘든 일일 거다. 아니,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지.

“X발.”

“X발.”

똑같은 욕설을 다른 언어로 내뱉는 오크 영감과 드워프를 향해 난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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