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5화
51화. 우리 집에 왜 왔니?
1.
용의자의 행적에 관한 단서를 얻은 후, 드라릭과 추적팀은 단절의 도시에서 인원을 보충하고 곧바로 ‘하프 오크 마을’로 향했다.
“이해할 수가 없어.”
커다란 공업용 승강기 안, 철창 밖에 있는 석벽을 응시하며 드라릭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그런 드라릭의 혼잣말에 옆에 서있던 요원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말이야. 반푼이들 마을로 향하는 직통 승강기가 있다니…….”
단절의 도시에서 하프 오크 마을로 향하는 승강기, 물어보니 그 길이만 4.5km가 넘는다. 그러한 깊은 굴을 파는 데 들어가는 비용과 승강기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각종 비용 같은 걸 생각하면……. 그런 드라릭의 의문에 요원은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하하, 반푼이들을 위해 이런 승강기를 설치하진 않죠. 이 승강기의 정식 명칭은 ‘26구역 엘리베이터 3’입니다.”
“26구역? 여기가 그쪽 방향이었나?”
“예, 반푼이들 마을이 쓰레기장 근처에 있거든요.”
송파구를 구성하는 26개의 동(洞), 뉴 송파구도 지상의 분류 기준을 따라서 구역을 나눴다. 그중에서 25동과 26동은 특별한 곳이었다. 25동은 지상의 ‘인간이 차지한 뉴 송파구 구역’을 뜻하고, 26동은 동 전체가 7km 아래까지 뻥 뚫려서 내려간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그 설명에 드라릭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갤 주억였다.
“흐음, 그렇군. 하긴, 반푼이들을 위해서 이런 막대한 비용을 감수할 리가 없지……. 그나저나 용케 쓰레기장 쪽에 자리 잡았군? 구 정부 시설이 있는 만큼, 하층에선 나름 괜찮은 지역일 텐데 말이지?”
“실제로 가장 좋은 지역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반푼이들이 그 지역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무르굴 전 시장님과 반푼이 녀석들의 대장의 거래 덕분이죠.”
“허, 감히 그분이랑 반푼이 놈들이 거래를 해? 어떻게?”
황당하다는 드라릭의 반응에 요원은 쓰게 웃었다.
“지상의 인간들과 ‘관계 개선’을 위해 인간들의 교육기관인 미르로 반푼이들을 보낸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오크를 대표해서 뽑힌 반푼이가 반푼이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무르굴 전 시장님이 마음에 들어 했기에 거래를 할 수 있었죠.”
“아, 맞아.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 잠깐만. 그때, 뽑힌 반푼이들. 죄다 여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예, 오혜영이라는 여자입니다.”
“……허, 여자가 우두머리라고?”
그 말에 드라릭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딱히 남녀를 차별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상식으로선 이해하기 힘들었다.
미궁 안에서 가장 중요한 우두머리의 덕목은 ‘무력’.
그러한 경향은 지상으로 나왔어도 유지되었다. 특히나, 반무법지대인 하층이라면 더더욱 무력이 중요할 터. 아무리 마력이 육체를 초월하게 한다고 한들, 무력적인 면에선 남성이 유리할 텐데 여성이 우두머리라고?
그런 반응에 요원은 고갤 저었다.
“우두머리로서 꽤나 훌륭한 여자입니다.”
“……그래?”
“예, 무력도 어느 정도 받쳐주고 무엇보다 영리합니다.”
여전히 미심쩍다는 반응에 요원은 말을 이어나갔다.
“전쟁 군주님과 협상하면서 반푼이들에게 지하 쓰레기장의 일자리가 상당 부분 돌아갔습니다. 중하층에서 직업을 구하기 힘든 걸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죠. 그리고, 이번에 만들어진 교육기관인 ‘우그 타람’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지. 강수영 연금술사와 현 시장님이 만든 곳이잖나? 상층에서도 화제였지.”
“그곳에 하프 오크가 많이 입학한 것도 그 여자의 공이 컸습니다. 자기 무리에게 반억지로 ‘한국어’를 배우게 했거든요. 덕분에 많은 가산점을 받았고 교육생의 절반 이상이 반푼이들이 됐죠.”
그 설명에 드라릭은 얼굴을 찡그렸다.
“강수영 연금술사가 인간이어서 반푼이들을 많이 뽑은 줄 알았는데?”
“그런 소문이 돌긴 했습니다만……. 사실, 그런 개입 없이 순수하게 ‘시험 성적’으로 가른 겁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뿐이죠. 적극적으로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반푼이들에게 성적으로 밀렸다는 건 자존심이 좀 상하니까요.”
“……그렇긴 하지.”
“이런 것 말고도 지상에서 유X브로 꽤 많이 돈을 벌어서 막대한 양의 식량과 물품을 구매해 반푼이 마을에 정기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들어 보니 여러모로 우두머리로서 어울리는 여자군.”
이 정도라면 진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설명을 듣고 납득했다는 듯이 고갤 끄덕이고 있던 그는 문득 든 생각에 요원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자네는 반푼이들에 대해 상당히 잘 아는군?”
“교섭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요약해 제공하는 건 ‘요원’의 기본 업무입니다. 그냥 마법 몇 개만 쓸 줄 알면 경장갑 전사와 다를 바가 없죠. 이곳에 내려오기 전, 하루 동안 관련된 자료 보고서를 빠르게 훑었습니다.”
드라릭의 질문에 대꾸하며 요원은 한 손에 쥔 서류 가방을 들어올렸다.
“혹시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십니까? 대외비가 아닌 보고서 몇 개는 사본을 가져왔습니다만.”
“아니, 필요 없네. 반푼이 마을엔 딱히 관심 없어.”
-철커덩! 쿵!
굉음과 함께 멈춰서는 엘리베이터, 이어서 승강기의 문이 열리고 드라릭을 필두로 한 추적팀 8명은 밖을 향해 움직였다.
2.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추적팀은 30분가량 걸어서 ‘하프 오크 마을’에 도착했다.
“허, 이거 굉장하군.”
도착한 마을 입구를 보면서 드라릭은 감탄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의 거대한 철문, 그 크기가 단절의 도시 도로 게이트에 설치된 철문과 비견될 만했다. 두께도 거의 30cm가량 되는 게 닫히면 웬만한 짓으로는 뚫기 힘들어 보인다.
그 입구를 지키고 있는 마을 자경단도 정예했다.
문 쪽에 통일된 갑옷을 입고 있는 8명의 병사들, 대놓고 마력의 기세를 흘리는 전사들이 잔뜩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명이 도르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걸 보니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간 곧바로 철문을 내릴 것 같았다.
“드라릭 경,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음.”
드라릭이 고갤 끄덕이자 요원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이 양손을 든 채 문 쪽으로 다가가 병사들과 접촉했다. 그렇게 10여 분가량 지난 뒤, 되돌아온 요원은 고갤 끄덕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마을의 우두머리가 한 번 대장님을 만나 보고 결정하겠다고 하겠답니다. 근데, 무기도 놓고 들어와야 한다고…….”
“못 할 정도는 아니지. 자네도 같이 들어갈 수 있나?”
“가능할 겁니다.”
추적팀 일행에게 도끼창을 건넨 후, 드라릭은 요원과 함께 마을 자경단원의 뒤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마을의 구조가 독특하군.”
“예, 그리고 웬만한 중층 마을보다 훨씬 잘사는 것 같습니다.”
호리병 모양의 마을, 작은 공터에는 병사들이 있었고 커다란 공터가 생활공간이었다. 커다란 공터 부분도 축구 운동장 수준으로 아담했는데, 공터는 운동장처럼 비워놓고 외곽의 석벽을 층층이 뚫어서 거주 공간을 만들었다. 꼭 작은 복도형 아파트를 둥글게 이어붙인 것 같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그다지 좋지는 않군.”
“유입 오크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마을 같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드라릭의 소감에 요원도 고갤 끄덕였다.
하프 오크 마을이지만,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은 전부 오크였고 마을 안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이들 또한 오크의 비율이 높았다. 하프 오크들은 대부분 거주 공간에 숨어서 창문 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에 박힌 건물들 중 하나에 병사가 노크하며 들어서자, 살짝 긴장한 듯이 보이는 하프 오크 남성이 소파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전 이곳 마을의 대표자인 ‘오재석’이라고 합니다.”
“질서 집행관 ‘드라릭’이다. 이쪽은 요원인 ‘바소즈’라고 하고.”
“상층에서 귀하신 분들이 올 줄은……. 어서 앉으시죠.”
소파에 앉으라는 듯이 말하곤 방 한구석의 정수기 옆에서 인스턴트커피를 타는 오재석, 그 뒷모습을 보며 드라릭은 상대방의 수준에 대해 가늠했다.
인간의 피가 섞여서인지 정확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대단히 젊어 보인다. 희미하지만 마력 각성자의 기세가 드러나는데……. 대충 ‘훈련을 받은 전사’ 수준? 기사급은 확실히 아니다. 소파에 앉으면서 드라릭은 입을 열었다.
“정수기가 있다니 좀 신기하군. 전기가 통하는 건가?”
“예, 쓰레기장에서 동력을 끌어오고 있습니다. 전기세도 꼬박꼬박 내고 있고요.”
“흠, 마을의 우두머리는 여자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제가 대행하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위에선 어떤 일로 오셨는지요?”
믹스 커피가 든 종이컵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용건을 물어보는 오재석, 그에 드라릭은 용건을 꺼냈다.
“최근에 이 마을에 수상한 이들이 온 적 있나?”
“수상한…… 이들 말입니까?”
“그래.”
뭔가 망설이는 것 같은 오재석의 모습에 드라릭은 살짝 주먹을 쥐었다. 의심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일단 두들겨 패는 게 ‘질서 집행관’의 방식. 물론, 이것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하지만 이곳이라면 충분히…….
“여기, 저희가 쫓는 용의자의 몽타주입니다.”
하지만, 드라릭이 주먹을 쓰기 전에 요원이 가져온 서류 가방에서 재빨리 파일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신장은 150cm가량, 하프 엘프 여성입니다. 후드가 달린 누더기 로브에 머리엔 해골 형태의 투구를 쓰고 있고 무기는 황금색 창을 사용합니다. 독과 강령술 계통의 마법도 구사하고요. 아, 참고로 암석도 뚫습니다.”
“……이런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드라릭을 향해 고갤 젓는 요원, 그에 드라릭은 입을 열었다.
“그럼 며칠 동안 이곳에서 머무르고 싶군.”
“네? 하지만…….”
반문은 받지 않겠다는 듯이 고갤 저으며 드라릭은 오재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우리가 있는 편이 마을을 위해서라도 좋을 거다. 이유는 모르겠다만 이 ‘용의자’가 이쪽을 목표로 다가오고 있다고 파악됐거든.”
“…….”
“현재 확인된 능력만 하더라도 기사급 신체 능력에 대량 살상 마법을 구사하는 마법사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할 때, 녀석을 적으로 만날 수도 있어. 우리가 있는 편이 나을 거야.”
이어지는 경고에 오재석은 망설이다가 결국 한숨을 내뱉었다.
“저 혼자서 결정하기엔 좀 커다란 사안입니다. 잠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눠도 되겠습니까?”
“그래.”
드라릭이 허락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 오재석, 그런 그를 향해 드라릭은 나지막이 경고했다.
“참고로 이건 ‘뉴 송파구’ 정부의 일이다. 그리고, 우린 공무(公務)를 하고 있는 거고.”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경고에 오재석이 대꾸하곤 나간다. 그렇게 방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요원은 드라릭을 보며 입을 열었다.
“역시, 바지사장인 것 같죠?”
“그런 것 같군. 하지만, 우리가 상관할 일은 아니지.”
요원의 말에 대꾸하며 드라릭은 태연하게 커피잔을 기울였다.
좀 위축된 기색에 이런 간단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모습. 역시나, 실세는 따로 있는 것 같았다. 마을을 들어올 때도 짐작했지만 아마 중층의 여러 마을들처럼 유입 오크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것 같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사실에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미궁 출신들은 탐나면 빼앗는 것이 당연한 ‘떠돌이 악탈자’의 삶을 살아왔다. 지상에 나와서 좀 달라지고 있다곤 하지만 몸에 베인 생활방식을 한순간에 버리는 건 힘들었고, ‘상층’과 ‘단절의 도시’와는 달리 행정력이 잘 미치지 않는 곳에선 뺏고 빼앗기는 게 일상이었다.
그런 행위를 단속해봤자 얼마 안 가 또 벌어진다.
그러한 이유로 중층의 ‘아랫것들’이 유입들에게 터전을 뺏겨도 반쯤 방치하고 있는데, 이런 반푼이들 마을에 관여하는 건 괜히 힘을 빼는 짓이었다. 그렇게 바지사장이 허락을 맡고 돌아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려고 했는데-.
-덜컥!
“드라릭 경, 그리고 바소즈 경.”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경비병과 오재석이 들어오더니 소파에 앉아있는 두 사람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콘크리트로 막은 두더지 굴 쪽에서 진동이 울린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뭔가가 콘크리트를 깨부수고 접근한다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역시, 이곳으로 왔군.”
오재석의 말에 드라릭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안내하게. 바소즈, 넌 밖에 있던 대원들 모두 불러들여라.”
“예.”
요원이 밖으로 나가는 가운데, 드라릭은 오재석의 안내를 받아서 한 가정집으로 꾸며진 주거 공간에 들어섰다. 이미 오크들과 하프 오크들의 병사 몇 명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진짜로 집 안에 있는 콘크리트로 마감된 벽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랬지?”
“30분 전부터 이랬다고 합니다.”
그 흔들림이 점점 심해지는 가운데-.
-드드득! 후두두둑…….
벽이 덜덜 덜리다가 자갈로 쪼개져 무너져 내리면서 안쪽이 드러났다.
건장한 오크 한 명이 지나갈 법한 터널, 돌가루 사이로 한 건장한 체격을 가진 형체가 보였다. 그 모습에 드라릭은 반사적으로 옆의 마을 자경단원이 들고 있는 도끼를 빼앗아 쥐었다.
검은 갑주를 입은 거한
그림자가 불타는 듯한 중갑 차림, 왼손엔 ‘황금 여명회’의 금박 문양이 새겨진 검은 대방패를 오른손엔 커다란 한손 도끼를 쥐었다. 정확한 실력은 모르겠지만 걸친 장비가 하나같이 비범해 보이는 게 딱 봐도 엄청 강해 보였다. 그렇게 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어라? 오랜만이네요. 그쪽 분.”
그런 거한의 뒤에서 후드를 걸친 용의자의 머리가 삐죽 튀어나와 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