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56화 (256/350)

제256화

54화. 택배 왔습니다~

1.

핵폐기물 보관소는 마을에서 20여 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핵폐기물이 내려오는 산업용 승강기가 설치된 절벽, 그 옆에 금속으로 단단히 덮인 기차 터널 정도 크기의 석굴이었는데 마을에서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초소를 지키고 있는 약탈자 잔당들이 있었다. 당연히, 친히 그 모가지를 따줬지.

어쨌든 초소에 거치된 방사능 차폐복을 입고 납으로 된 문을 열자-.

-스하하하…….

“후우, 되게 후덥지근하네요.”

체감상 20±5℃ 내외로 느껴지던 다른 뉴 송파구 지역과는 달리, 건식 사우나마냥 안쪽에서 뜨거운 김이 서린 공기가 밀려나왔다. 그런 내 소감에 안내를 맡은 하프 오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간이 보관실에 폐기물이 많이 쌓여서 그럴 거예요. 최근에 버리지 못했거든요.”

“……폐기물이 쌓여서 후덥지근하다고요?”

고갤 끄덕이는 조장, 방사능 폐기물이……. 뜨겁나? 게임이나 만화 같은 데서 본 묘사는 형광색 빛만 뿜어져 나오는 거라서 모르겠네. 그런 내 반응에 조장은 문 안쪽으로 들어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내려오는 방사능 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은 만지면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워요. 마력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은 가까이 가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기도 하고……. 아무튼, 원래는 다른 곳처럼 서늘해요.”

“흐음, 그렇군요.”

대답하며 <눈>으로 방사선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자 가시광선 너머의 기묘한 광채로 주위가 가득 찼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에서 그 광채가 뻗어 나오고 있는데, 뭔가 기분이 안 좋아서 공기에 닿는 피부를 확대해보니…….

“여기에 혜영이를 놔둔 건가요?! 미쳤어요!?”

“아, 여기는 괜찮…….”

“아뇨, 안 괜찮아요! 공기 자체에 방사능이 엄청나! 이 정도면 일반인은 하루도 못 버티고 죽어욧!”

그 위력이 심상치 않았다.

공기 분자에서 뻗어 나오는 방사능이 내 몸을 세포 단위로 찢어발기고 있는데, 그 속도가 내 마력이 영체(靈體)의 설계도대로 세포를 복구시키는 것보다 빠르다. 지금 내가 ‘수호 정령의 반지’의 ‘생태이상 회복’과 ‘체력 재생 보너스’를 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흉악한 위력이야.

그런 내 반응에 안내하는 조장의 얼굴도 하얗게 변한다.

“그, 그러고 보니 폐기물은 무조건 내려온 지 일주일 내로 버려야 한다고 하긴 했…….”

“빨리 가요!”

내 재촉에 허겁지겁 조장이 달려가고, 나도 그 뒤를 따랐다.

커다란 터널 같은 복도에 사이드로 각각의 방이 있는 구조의 보관소, 유별나게 방사능의 광채가 강한 방이 있기에 <눈>으로 살펴보니 드럼통 몇 개가 부풀어 오르다 못해 터져있었다. 거기에서 녹은 유리 같은 게 흘러나와 바닥에 질질 흐르고 있고. 이런 X…….

“여기! 여기에 있어요!”

200m 정도 되는 터널의 끝, 어두운 퇴적암에 잘 안 보이게 기역 자로 뚫린 코너. 생수통과 음식 쓰레기 사이로 차폐복을 입고 힘없이 늘어져있는 혜영이가 보인다.

……얼굴만 봐도 꽤 쇠약해진 게 눈에 보인다.

건장한 혜영이가 평범하게 키 큰 여자에처럼 보일 정도면 말 다 했지. 코에서 가느다란 핏줄기가 흐르고 있기에 <눈>으로 몸속을 살펴보니 납탄이 얼굴을 포함해서 곳곳에 박혀있는데, 그곳에서부터 몸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이거, 좀 늦었다간 폭탄 목걸이 터졌겠네.

“기다려요. 너무 쇠약해져서 조치 좀 취할 테니까.”

당장 혜영이를 업으려는 하프 오크를 제지하며 방호복부터 벗겼다. 그리고, 내 목에 걸린 칙칙한 쇠사슬을 쓰다듬었다. 천만다행으로 뭔 짓을 해도 꿈쩍도 안 하던 목의 쇠고리가 스르륵 자연스럽게 풀린다.

“그건……?”

“회복을 돕는 마법 목걸이예요.”

그 쇠사슬 같은 목걸이를 혜영이의 목에 가져다 대자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한번 반짝이며 채워진다.

겉모습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 안에 서려 있던 ‘세로쉬의 신성’이 목적성을 가지고 변화한 것이 보였다. 이전까지 목걸이를 <감정>하면 ‘세로쉬의 신성과 무르굴의 영혼 조각이 깃든 물품입니다.’ 정도로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무르굴의 구원 (MuReu-Gul’s Salvation)

두 번 세례받은 자, 세로쉬의 성자-무르굴이 착용했던 목걸이. 겉으로 보기엔 볼품없는 칙칙한 쇠사슬이지만, 가장 ‘순수한 세로쉬의 신성’과 ‘무르굴의 영혼 조각’이 깃들어 있다. 그동안 외면해야 했던 딸에게 주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다.

다른 이들은 아무런 효과를 얻지 못하지만 ‘정당한 주인-오혜영’에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

목걸이

·SH 5+, 투사체 반사, 재생+

·세로쉬의 축복-‘무장 강화’

·성장 가속-‘병기술’

·활성화 기술 : 부활 (1/1)

이젠 제대로 된 설명이 나온다.

방패 수치(SH) 증가에 투사체 반사 능력치를 보면 ‘반사의 목걸이’ 기반 아이템인데, 추가로 체력 재생에 특이한 옵션이 3개나 붙었다. 그 옵션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순간, 플레이버 텍스트가 자동으로 떠오르며 문자가 채워진다.

세로쉬의 축복-‘무장 강화’

착용자가 스스로의 힘을 증명하거나 성장했을 때, 목걸이에 걸린 세로쉬의 신성이 해당 착용자에게 낮은 확률로 축복을 내립니다. 세로쉬의 신성으로 착용자의 무구를 ‘오크’가 쓰기 걸맞게 변형시키며 전반적인 능력을 조금씩 강화시킵니다.

성장 가속-‘병기술’

전쟁 군주-무르굴의 경험이 착용자의 무의식에 작용하여 병기술에 기반을 둔 모든 신체적 기술의 적성이 대폭 상승(적성 +4)합니다. 오크 전쟁 군주-무르굴의 수준에 도달할 시,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부활

죽음에 이를 시, 안에 깃든 세로쉬의 신성으로 다시 한번 ‘온전한 상태’로 부활합니다. 부활하고 잠시 동안 목걸이에 남아있는 무르굴의 영혼 조각이 몸에 깃들어 ‘강신 상태’가 되며, 강신된 무르굴은 ‘오크 전쟁 군주’ 수준의 전투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착용자의 수준이 무르굴 이상일 시, 자동으로 강신 상태는 해제됩니다.

빠른 경험 쌓기 + 장비 강화 + 죽을 시 부활……. 이미, 오무혁이 한번 보여줬던 것들이구만. 가볍게 입맛을 다신 후, 내 오른손에 끼고 있는 ‘수호 정령의 반지’도 빼서 끼워줬다. 재생력이 붙었으니 더 낫겠지. 그 뒤, 축 늘어진 혜영이를 한쪽 어깨에 들쳐 멨다.

“자, 돌아갑시다.”

2.

귀를 찢는 총성과 함께 붉은 피가 흩뿌려진다.

고통스러운 얼굴로 피를 쏟으며 쓰러지는 형제자매들, 그것만으로도 괴롭지만 쓰러지는 것은 형제자매뿐만이 아니었다. 아직, 다 크지도 못한 아이들에게도 죽음은 공평하게 쏟아졌다.

어른과는 달리 형체조차 남기지 못하고 으스러진 채, 천천히 날아가는 한 아이의 얼굴.

그 낯익은 얼굴을 오혜영은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래, 기억난다. 마을이 지어지고 난 뒤에 한 남녀 애들이 사고를 쳐서 낳은 ‘첫 아이-오가람’이었지. 그걸 기점으로 서로 부부 생활 하는 애들이 많아졌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가 세운 마을이, 쫓기던 반푼이들의 안식처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오혜영은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어느새 그녀의 오른손에는 도끼가 들려있었고, 그에 총을 갈기며 동포를 죽이는 적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리찍었다.

그 머리통이 쪼개지며 뇌수와 피가 솟구친다. 분노의 힘으로 곧바로 도끼를 뽑으며 다른 오크에게 달려들었지만, 그 총구가 곧바로 향한다.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죽음, 충격에 시야가 크게 흔들리는 것과 함께 몸 곳곳에서 통증이-.

“……허어어억!? 허억? 허억…….”

눈을 떴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두 눈을 끔뻑였다. 익숙한 천장, 분명 마을에 위치한 자신의 방이다. ……그래, 꿈이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불길한 꿈.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눈으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에 얼굴을 구기는 순간-.

“되게 빨리 일어났네요?”

옆에서 들려오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오혜영은 고갤 돌렸다.

깨끗한 백색의 일자 앞머리 단발, 나른하게 감고 있는 눈, 특유의 생글생글거리고 있는 웃음.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모습에 오혜영은 다시 멍청하게 두 눈을 끔뻑였다.

“……새벽 오빠?”

“넵.”

고갤 끄덕이는 하얀 인간 소년, 잠시 그 얼굴을 뚫어져라 보다가 오혜영은 이내 한숨을 내뱉었다.

“아, 이것도 꿈이구나.”

“……네? 왜요?”

“네가 오크어를 할 리가 없잖아. 새끼, 되게 잘하네.”

뒤늦게 이질감을 눈치챘다.

그 입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오크어’, 그녀의 동아리 선배가 오크어를 할 리가 없었다. 그런 대꾸에 그녀의 꿈속 선배는 한숨을 푸욱 내뱉더니 양손을 뻗어-.

“꿈 아니에요.”

“에으엑……?”

“오크어로 말한 건, 여기 내려오고 나서 계속 그 언어로 말해서 그런 거고요.”

그녀의 볼을 붙잡고 양옆으로 ‘꽈악!’ 잡아당긴다.

조그맣지만 분명 생생한 통증, 그와 함께 한국어로 말을 건다. 그에 오혜영은 두 눈을 끔뻑였다. 이게 현실이라고? 하지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어, 어헣게 된 이임가?(어떻게 된 일임까?)”

“뭐긴요, 미르에 무단결석해서 찾아보려 왔죠.”

뺨을 꼬집고 있는 손을 놓으며 한새벽은 팔짱을 끼며 투덜거린다.

“승강기가 있는 줄도 몰라서 무데뽀로 내려오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어요! 진짜 죽을 뻔했다고요!”

“아, 죄송함다…….”

뭔 말 하는지 모르겠다만 자신을 타박하는 것 같기에 일단 고갤 숙였다. 뭔지 모르겠지만 아마 현실인 것 같았다. ……꿈보다 더 믿기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렇게 고갤 숙이자 조그만 선배는 한숨을 내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을을 점거하고 있던 오크들을 전부 정리했어요. 혜영 씨의 몸에 박힌 탄환과 쇳조각은 다 빼냈고, 거기에 ‘특별한 장비’로 치료까지 했고요. 부작용으로 사람을 보면서 ‘먹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날 수 있긴 한데……. 참으면 점점 괜찮아질 거예요. 아마도.”

“네? 마을을 점거하고 있던 오크요? 탄환과 쇳조각?”

“……기억 안 나요?”

묘한 표정을 하며 되묻는 작은 선배, 그에 오혜영은 침묵했다.

꿈속에서 봤었던 학살극, 그와 함께 서서히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왜 여기에 내려왔는지, 마을에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참혹한 현실을 인지한 그녀의 얼굴에 활기가 빠져나가는 가운데, 한새벽은 작게 한숨을 내뱉곤 그녀의 목과 손가락을 가리켰다.

“마법이 걸린 ‘목걸이’하고 ‘반지’를 껴뒀어요. 체력 회복에 도움이 되는 장비들이니 계속 끼고 계세요. 반지는 나중에 돌려주시고, 목걸이는…… ‘혜영 씨를 많이 아끼는 누군가’의 선물이랍니다. 가지세요. 아주 강력한 마법 장비니까.”

“어……. 어떻게 됐슴까? 그, 그 오크들은! 여기 제 동료들은?!”

그 질문에 한새벽은 문가 쪽을 가볍게 턱짓했다.

“자세한 건, 제가 나간 뒤에 들어올 애들에게 들으세요. 저 애들이 더 잘 알 테니까.”

“…….”

“저도 좀 쉬어야겠어요.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거든요. 후우, 지친다~”

그녀를 향해 가볍게 미소를 보낸 뒤, 발걸음을 옮겨 문 밖으로 나가는 한새벽.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얼굴들이 들어와 침대 쪽으로 황급히 다가온다.

“대장?! 괜찮아?”

“혜영아!”

울 것 같은 얼굴을 한 동료들, 잠시 눈을 감으며 숨을 고른 그녀는 곧 눈을 뜨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됐고, 뭔 일이 있었는지 좀 말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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