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7화
3.
오혜영이 가장 먼저 들은 내용은 ‘악몽이라 생각했던 기억’이 현실이라는 것과-.
“그날이……. 3주 전이라고?”
그게 벌써 3주 전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묻는 오혜영의 모습에 먼저 말을 꺼낸 하프 오크가 고갤 끄덕였다.
“정확히 세어 보진 않았는데 그 정도 됐어. 대장이 사라지면서…….”
“사라진 게 아니라 총에 맞은 걸 내가 옮긴 거야! 상비용 포션 몇 개와 함께 빼돌려서 핵폐기물장으로 옮겼지! 그동안 정신을 잃은 대장을 꾸준히 간호하고!”
“그래, 그래. 네가 대장을 살렸다. 아무튼…….”
끼어드는 다른 동료에 알겠다는 듯이 손짓하며 그는 찬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다시 반항하지 못하도록 인질로 끌려간 여자들과 아이들, 약탈자 놈들의 행패, 처리 인원이 부족해서 쌓이는 핵폐기물, 처리하다가 쓰러진 동료들…….
그렇게 한동안 멍하니 있던 오혜영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꽈악!’ 쥐었다.
“말도 안 돼.”
“하지만, 진짜…….”
“아니, 그거 말고.”
쥔 주먹을 다시 펴며 오혜영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내 몸 상태가 말이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3주 동안 앓던 몸이 아니야. 좀 마르긴 했는데……. 컨디션이 너무 좋아. 평소와 별 차이 없어.”
가늘어지긴 했지만 며칠을 굶은 거라곤 보기 힘든 몸, 약간의 체형의 변화가 없었다면 그냥 자다가 일어난 걸로 착각할 정도로 컨디션도 좋았다. 그 대꾸에 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한 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1시간 전만 하더라도 삐쩍 말랐었어. 엄청 아파 보였고.”
“그럼……?”
“그, 인간 있잖아. 우리가 들어오기 전에 방에 있었던 ‘그분’이 치료해준 거야.”
조심스럽게 말하는 동료들의 모습에 오혜영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분? ‘한새벽’을 말하는 거야?”
“……그분 이름이 그거야?”
“그, 하얀색 머리칼에 쬐끄만한 인간 맞지?”
“응.”
고갤 끄덕이는 동료들, 그에 오혜영도 고갤 끄덕였다.
“맞아. 근데, 왜 그렇게 쫄아 있냐? 걔가 뭔 짓 했어?”
“…….”
“미르에서 한 학년 선배긴 한데, 나랑 고작 한 살 차이야. 성장 속도가 느린 인간이니 실질 나이로 치면 우리보다 더 적을걸? 솔직히, 평소에 선배라고 부르긴 해도 사실상 친구 먹은 인간이야. 같이 술도 마시고 했다구?”
아이들의 반응을 오혜영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한새벽을 언급할 때마다 마치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압도적 강자’를 언급하는 것처럼 존중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혹여 나중에 말한 것이 알려지더라도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비굴하게 기는 모습. 그런 오혜영의 의문에 그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몇 시간 전에 그분이……. 약탈자들을 혼자서 쓸어버렸어.”
“뭐?”
“혼자서 우리 마을을 점령한 약탈자들을 학살했다고. 포로도 30명 정도 잡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했다
한 명이 말하다가 다른 동료들이 때때로 끼어들면서 그 묘사가 중구난방이 되었지만, 그래도 왜 동료들이 그녀의 쬐끄만 인간 선배에게 살짝 비굴할 정도로 공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동료들이 말하는 한새벽의 모습은 ‘괴물’이었다.
마을 입구 쪽의 약탈자들은 기괴한 악령들을 토해내서 학살했고, 거주 지역에 숨어있던 약탈자들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죽였다. 막판에 궁지에 몰린 약탈자 수십 명이 거주지 중앙 공터에 모여서 동료들을 인질로 잡고 저항했지만, 한새벽은 정면으로 돌진해 총알을 무기로 쳐내며 접근해 쓸어버렸다. 그 압도적 광경에 남은 약탈자들은 공포에 질려 항복했고.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사고로 기억을 잃은 뒤에 인상이 180도 달라졌지만, 어쨌든 그녀는 한새벽을 거의 3년 가까이 알고 지냈다. 기억을 잃기 전이나, 기억을 잃은 뒤나, 그러한 압도적인 모습은 전혀 보질 못했다.
그랬던 한새벽이 그런 괴물이 됐다고?
그냥 이 내용을 소식으로 들었으면 믿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설명하는 동료들이 이따금씩 보여주는 표정과 목소리에 섞인 짙은 두려움이 설득력을 부여했다. 게다가 한두 명도 아니고 모두 의견이 똑같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마을을 정리한 새벽 오빠가 내 위치를 파악해 구하고 치료했다는 거지?”
“응, 맞아.”
“쓰읍.”
팔짱을 끼며 오혜영은 입술을 질겅였다.
마을의 약탈자들이 쓸려나간 것은 좋은 일이지만…….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마을에 있는 놈들이 끝일 리가 없다. 대범하게 소총을 아래로 밀반입하는 놈들, 엄중하게 관리되는 대한민국의 핵폐기물 처리에 간섭할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놈들이다. 게다가 그런 놈들에게 ‘인질들’까지 잡혀 있었다.
……뉴 송파구 정부에 알린다?
‘총기 밀수’에 관여된 상황, 최악의 경우 ‘반역자’ 취급을 받아 토벌당할지도 모른다. 물론, 자진 신고를 했으니 그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일정 부분 관여됐으니 최소한 이 마을은 산산조각 날 거다. 인질들의 생사(生死)도 문제, 오크들은 자신 같은 반푼이들의 안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토벌할 텐데 그랬다간 인질들은 모두 죽을 거다.
……그렇다고 알리지 않고 덮는다?
그러면 해결되는 게 없다. 아마, 지금까지 가져간 총기로 여길 점령하려고 오겠지. ‘괴물 선배’가 입구 쪽에 있던 약탈자들을 악령으로 처리하면서 꽤 많은 총기가 온전히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걸로 애들을 무장해 마을을 보호하는 건. 한발 더 나아가 잡혀간 인질들을 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아니, 한새벽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면…….
“야, 너희들 잊은 거야?”
오혜영이 생각에 잠긴 모습에 조장들이 침묵하던 도중, 돌연 한 조장이 말을 꺼낸다. 그에 시선이 쏠리자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뉴 송파구 정부의 기사가 내려온 걸 빼먹었잖아! 그리고, 그 기사가 말한 것도!”
“아, 그것도 있었네!”
“잊고 있었다. 너무, 그분의 이미지가 강해서…….”
다른 동료들은 그제야 생각났다는 반응, 오혜영이 설명해보란 듯이 바라보자 곧바로 빼먹은 이야기를 꺼냈다. 한새벽이 마을에 오기 직전에 방문했던 뉴 송파구의 ‘총기 추적팀’, 마을에 약탈자 정리가 끝난 뒤에 다시 나타난 추적팀 대장인 오크 기사, 그가 말했던 사실들…….
그 내용에 오혜영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전쟁 군주를 소환할 수 있는 팔찌를 빼앗겼다고!?”
“응, 기사가 엄청 간곡하게 부탁하더라. 자칫 잘못하면 전쟁 군주가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위로 가서 알려야 하는데, 지금 위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그분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했어. 하지만, 되게 시큰둥해하며 널 구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면서 사실상 거절했고.”
한새벽을 총기 밀수과 관련되어 있다고 착각해 추적해온 오크 기사, 그런 기사가 가지고 있었다는 마법 팔찌, 일이 끝났다고 방심한 기사를 배신한 뉴 송파구의 요원……. 밑바닥 하프 오크들에선 전혀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끝난 순간-.
“……잘하면 가능성 있겠어.”
오혜영의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쳤다.
“응? 뭐가?”
“우리 마을이 살아날 방법. 아니, 이것밖에 없어!”
의아하단 듯이 묻는 동료의 말에 대답하며 오혜영은 다리를 덮고 있던 담요를 내던지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속옷만 입은 그녀의 모습에 조장들은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대장, 뭔진 몰라도 좀 쉬는…….”
“그럴 시간 없어! 엄청 급해! 지금 아니면 못 해!”
말하는 걸 도중에 자르며 오혜영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부하들을 바라보며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찬석아!”
“네, 대장!”
“내 갑옷하고 무기 가져와! 없으면 걸칠 만한 갑옷하고 무기 아무거나! 그리고 민오야, 약탈자 놈들이 가지고 있었던 총기하고 탄약 멀쩡하다고 했지? 보관해둔 것도 있고.”
말이 끝나자마자 찬석이라 불린 하프 오크가 재빨리 밖으로 튀어나가는 가운데, 민오라고 불린 하프 오크는 고갤 끄덕인다. 그에 그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나갔다.
“좋아, sl 조원들 몇 명 데리고 가서 마을 공터에 그것들 다 꺼내놔! 총하고 총알 세트로! 당장이라도 마을 애들이 집어 들고 사용할 수 있도록!”
“어, 그건 왜…….”
“빨리!”
짧게 끊는 호통에 허겁지겁 달려 나가는 민오, 이어서 그녀는 남은 2명의 조장들을 바라보았다.
“진수야, 너는 그 기사님을 공손히 불러와. ‘위쪽에 긴급하단 소식을 알리는 방법과 약탈자를 추적할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면 순순히 따라올 거야.”
“넵!”
“마지막으로 지혁이는…….”
거침없이 명령을 내리던 이전과는 달리, 잠시 말을 망설이는 오혜영. 진수라 불린 조장이 나가고 나서야 오혜영은 크게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어나갔다.
“재석이, 아직 살아 있지?”
오재석. 지상에 올라가 활동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실상 마을의 우두머리 자리를 물려준 심복. 동시에 이번 일에 약탈자들을 끌어들이고 그녀가 위에 알리지 못하게 했던 배신자. 그녀의 언급에 지혁이라 불린 하프 오크는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내뱉었다.
“응, 지금 방에 갇혀있어. 처와 자식을 뺏긴 애들이 총을 빼돌려서 재석이 죽이려고 해서…….”
“지금 내 앞에 데려와.”
나지막한 그녀의 명령에 그는 고갤 끄덕이며 방문을 나선다.
방에 혼자 남아 오혜영은 생각한 것을 차근차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잠시 뒤, 가장 먼저 뛰쳐나갔던 하프 오크가 갑옷과 무기를 들고 도착했다. 약탈자 오크가 사용했던 장구류들, 그녀가 대충 갑옷을 걸치는 가운데-.
“……데려왔어.”
오재석을 데리러 간 하프 오크가 도착했다.
그 뒤에 서 있는 전(前) 부두목 오재석의 모습에 오혜영이 입을 장구류를 들고 온 하프 오크가 적개심 어린 얼굴로 이를 갈았다. 그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만 결국에 현 유혈 사태를 초래한 원흉, 그리고 대장인 오혜영의 등에 칼을 꽂은 ‘배신자’. 지금까진 한 패거리인 약탈자들 때문에 참았지만 사라진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할 말 있냐.”
갑옷을 다 걸치고 난 뒤, 오혜영은 조장이 가지고 온 도끼의 날을 손가락으로 점검하며 무심하게 말한다. 그에 오재석은 두 눈을 감고 복잡한 표정으로 침묵하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두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혜영아, 널 좋아했다. ‘이성’으로서.”
“……뭐?”
“널 내 여자로 만들고 싶었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랑 고백, 그에 찬석이라 불렸던 하프 오크가 광분하며 달려들려고 하자 오혜영은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러곤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갤 까닥이자 오재석은 초탈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넌 항상 나보다 뛰어났지.”
“…….”
“오크들과 협상해서 마을을 만들고, 애들도 가르치고, 돈도 벌어오고……. 너의 옆에 서려니 남자로서 자괴감이 들더라. 너에게 어울리는, 최소한 대등한 남자가 되고 싶었다. 마을을 내게 맡겨줬을 땐, 날 알아봐준 것 같아서 기뻤어. 힘들었지만 너에게 가까이 간다고 생각하니 열심히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이런 일을 저질렀어?”
오혜영의 비아냥에 오재석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이번 일은 수상하고 위험하단 걸 알고 있었지. 하지만, 이전에 말했던 대로 해야 할 것 같기에 한 것뿐이야. 그리고 널 막은 이유는……. 위에 알리는 순간 내가 쌓아온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고 생각했거든. 괜히 산통을 깨서 망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지.”
“…….”
“그래, 모든 게 내 자존심 때문이었어. 너에게 비견되는, 어울리는 남자가 되고 싶단 자존심. 그 결과가 이 꼴이었고.”
자조적인 웃음을 흘리며 오재석은 고갤 저었다.
“애들의 미움을 받고 마을도 박살 내고 여자애들과 아이들도 인질로 빼앗겼어. 이렇게 될 줄은……. 그날 이후로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계속 생각했지만 답이 없더라. 그냥, 내가 모든 걸 망친 거야.”
크게 한숨을 내뱉은 후, 오재석은 살짝 숙인 고갤 들어 무표정한 오혜영을 바라보았다.
“이젠, 네 옆에 서 보겠다는 미련은 없어. 널 볼 면목도 없어서기도 하지만……. 널 구하러 왔다는 그분을 보니 내 처지를 확실히 자각했으니까.”
“……자각했다고?”
오혜영의 되묻는 말에 오재석은 허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너보다 한 학년 위라고 하니까 나이는 나랑은 동갑, 인간이니 실질적인 성장으로 치면 나보다 어리겠지. 근데도 엄청나. 평생 노력해도 그런 수준에 이를 것 같진 않더라. 그런 사람하고 어울리는 너에게 내가 눈에 차기나 하겠어?”
“…….”
“난, 우물 안 개구리……. 아니, 여기에 돌고 도는 반푼이 새끼였던 거지.”
씁쓸하게 말하는 오재석, 그에 적개심을 보였던 하프 오크와 그를 데려온 하프 오크, 모두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대장인 오혜영은 ‘가질 수 없는 절벽 위의 꽃’ 같은 존재였다. 그들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기에 참았지만 한 번씩 연모의 감정은 품었었다.
그런 두 하프 오크의 모습에 오재석은 처음으로 방에 들어와서 유쾌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뭔 말이 필요하겠냐! 그냥, 마지막으로 후련하게 속으로만 썩히던 말을 하고 싶었다! 품어둔 거 말도 못 하고 끝내는 건 아쉬우니까! 하하, 사랑 고백은 내가 처음인가? 어쨌든 미안하…….”
-콰직!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오혜영의 손에 들린 도끼가 움직였다. 부딪치는 순간, 뼈 부러지는 소음과 함께 그대로 옆으로 튕겨져 나가는 오재석. 하지만, 다른 이들이 생각했던 피는 흩뿌려지지 않았다.
“일어나. 새꺄.”
날이 달리지 않은 도끼머리 뒷부분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오혜영은 쓰러진 오재석을 내려다보며 이죽였다.
“케흑, 켁. 으으…….”
‘퉷!’하며 부러진 이빨을 뱉는 오재석, 일반인은 안면이 함몰될 만한 일격이었으나 꽤나 강한 전사인 오재석에겐 광대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좀 나갈 뿐 충분히 일어날 만한 타격이었다. 휘청거리며 오재석이 일어서자 오혜영은 휘두른 도끼를 어깨에 걸치며 입을 열었다.
“죽이진 않을 거야.”
“대장! 지금 다른 애들이 저 새끼에게…….”
“알아! 하지만, 지금 인질로 잡힌 애들 구하려면 한 손이 아쉬워! 근데, 마력을 쓰는 전사가 있다? 놓칠 수 없어!”
반발하려는 조장의 말을 도중에 끊은 후, 오혜영은 코피를 흘리는 오재석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재석, 지금 난 약탈자 새끼들을 조지러 갈 거야.”
“……!?”
“넌 그 새끼들이 어디 갔는지 알고 있겠지? 진짜 네가 벌인 짓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협력해. 잡혀간 애들 구해야 하니까.”
뭐라 입을 뻥긋거리며 말리려고 하는 오재석, 한 손을 들어 말을 내뱉는 걸 차단하며 그녀는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가능성은 충분해. 마을에 남겨놓은 총과 폭약이 남아있으니까. 그걸로 애들을 무장시키면 다들 1인분은 하겠지. 물론, 그것만으론 부족하겠지. 마을에 있는 것들은 놈들이 지금껏 빼돌린 폭약에 비하면 일부분일 테니까. 하지만, 일이 잘 풀린다면……. 상층의 오크 기사단들이 여기에 합류할 거야.”
전혀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마지막 말에 다른 하프 오크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 언급을 듣고 멍하니 있던 오재석이-.
“거길 노리는……?”
이내 뭔가를 파악한 듯한 기색을 내보이자 오혜영은 피식 웃었다.
“내가 뭘 할지 눈치챘나 보네? 네가 맡아야 할 일이기도 하다.”
“…….”
“위험해도 우리가 살기 위해선 이 길밖에 없어. 물론, 이번 일에 협력하는 걸로 네가 벌인 모든 걸 통칠 수는 없겠지. 어찌 됐든 간에 마을을 박살 내놓고 애들을 위험해 빠트린 책임은 너무 크니까. 그러니……. 이번 일이 끝나고 마을을 떠나. 꼴 보기도 싫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시선을 돌리는 오혜영, 그에 오재석은 맞은 뺨을 붙잡고 고갤 숙인다. 그때, 문 바깥쪽에서 들려오는 ‘쿵쾅!’거리는 소음. 곧바로 오재석에게 가란 듯이 손짓한 뒤, 그녀는 자세를 가다듬고 숨을 골랐다.
그리고 몇 초 뒤에 소음의 주인이 나타났다.
“여기냐?”
“네, 여기…….”
뉴 송파구의 ‘정규 기사’ 복장을 입고 있는 한 중년 오크. 부상을 입은 듯, 한쪽 복부를 쥐고 있는 그는 곧바로 사나운 기세를 흘리며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러곤, 오혜영 앞까지 다가와 고압적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위에 소식을 알릴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들었다. 혹시, 승강기 ID카드를 가지고 있는 건가?”
다짜고짜 물어보는 오크 기사, 그 위압감에 방 안의 다른 하프 오크들은 살짝 주눅 들었지만 오혜영은 그런 기색 따윈 없이 당당하게 고갤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제가 가진 ID카드는 약탈자 오크들과 싸우면서 박살 났어요.”
“…….”
“하지만, 말을 전했듯이 위쪽의 뉴 송파구 오크 정규군을 끌어들일 방법이 있습니다. 어쩌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수습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기사-드라릭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오혜영은 비장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리, 거래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