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66화 (266/350)

제266화

막간. 구출 완료!

1.

“케흑, 케헤헤헥……. 우웨에엑!”

동료의 등에 업힌 채, 오혜영은 피를 토했다.

그저 휘두른 무기에 한 번 맞은 것, 방패로 막기까지 했지만 그 피해는 무지막지했다. 전신의 뼈가 박살 난 듯한 통증, 실제로 방패를 찬 왼손은 팔뚝 뼈가 뚝 부러져서 ㄱ자로 꺾여있었다. 옆에서 달리는 다른 동료가 허겁지겁 방패를 벗기고 뼈를 맞추는 가운데-.

“케흑, 죽……. 죽여 버릴……!”

“혜영아, 포션부터! 천천히!”

쌓여온 울분이 터진 오혜영은 만신창이임에도 분노에 차서 날뛰었다.

자신들이 역겨운 존재라고? 그럼, 그 역겨운 존재들을 멋대로 싸지른 새끼들은 뭔가!? 애초에 자신들이라고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건가? 인간에겐 오크 취급, 오크에겐 인간 취급!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빨리 되돌아가서 치료부터 하…….”

“아니!”

오혜영의 입에 포션을 물리고 있는 하프 오크의 주장을 드라릭이 단호하게 끊어버린다. 계속해서 질주하며 그는 사나운 목소리로 연거푸 말을 이어나갔다.

“미궁 입구로 간다! 모르칸쉬 님이 납치된 게 확인된 이상 반드시 구출해야 해!”

“아니, 이 인원으로요!? 가도 구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잖아요! 이미 변천이 일어났을 수…….”

“케흑, 퉷! 미궁 입구로!”

그런 동료의 말을 끊어버리는 오혜영의 목소리. 입에 물고 있던 빈 포션 병을 뱉은 후, 그녀는 까드득 이를 갈며 훨씬 안정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쟁 군주를 구하러 간다!”

“아니, 가능할 것 같…….”

“가능해! 포션 한 병 더 내놔! 그리고 혼자 달릴 수 있으니까 내려줘!”

건재하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 자신을 업은 하프 오크의 가슴팍을 오른손으로 강하게 두드리는 오혜영. 무시하고 달리려던 하프 오크였지만, 연이은 재촉에 결국 굴복해 조심스럽게 그녀를 내려놨다. 그런 오혜영을 향해 드라릭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괜찮나? 정 뭣하면 나 혼자서 구출하러 가면 된다. 랜턴은 하나 더 있어.”

“후우, 후우우욱……. 별것 아닙니다.”

대꾸하면서 오혜영은 몇십 초 전까지만 해도 부러졌던 왼손을 쥐었다 폈다. 쩌릿쩌릿한 감각이 올라오긴 하지만 그래도 움직인다. 전신에 걸친 타격도 마찬가지, 잘 움직이지도 않고 진짜 죽을 것 같았는데 지금은 좀 아프긴 해도 움직일 수 있었다.

포션을 먹었다고 해도 비정상적인 회복력.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몇 번 극심한 부상도 당해 봤기에 오혜영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아주 잘 알았다. 뭔진 몰라도 회복이 대단히 빨라졌다. 이 정도면 포션을 먹고 하루 정도는 푹 요양한 수준이다.

……아마, 그 ‘정체불명의 동아리 오빠’가 준 장비들의 효과겠지.

안개 속을 뚫고 나와서 20명의 전사들을 순식간에 죽여 버린 것도 대단했지만, 좀 전의 모습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그 느낌이 굉장히 불길하긴 해도 그 ‘절대자 같았던 개새끼’와 비등한 기세를 뿜어내다니?

“쿨꺽, 크으. 한 병 더 줘. 그리고 무기하고 방패도.”

입에 물고 있던 포션을 비운 후, 그녀는 옆에서 달리던 하프 오크에게 손을 뻗었다. 죽은 적에게서 상당수의 전리품을 회수했기에 포션은 몇 병 더 있었다. 받은 포션을 단번에 비운 뒤, 그녀는 다시 방패와 도끼를 손에 쥐곤 고갤 끄덕였다.

“빨리 가죠. 그 새끼한테 엿 먹이러.”

“음!”

차분해진 그녀의 음성에 드라릭도 고갤 끄덕이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일반인의 전력질주 수준, 한 걸음씩 뛸 때마다 오혜영은 전신이 삐걱거리는 것 같았지만 그러한 느낌도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의 분노가, 그리고 ‘그놈’에게 엿 먹일 거라는 의지가 꼭 힘을 부여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분가량 달렸을까?

“……저기다!”

기괴한 문양이 조각된 가로세로 15m 가량의 거대한 정사각형의 출입구. ‘미궁의 입구’였다. 그곳에 푸른 랜턴 열댓 개가 놓여있었고 안쪽에서 오크 전사들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보통 무기가 아니라 소총을 든 것을 보니 이곳의 놈들.

-타다다당!

-타당! 타다다다!

“으윽!? 뭐…….”

곧바로 소총을 들고 있는 하프 오크들이 연발로 선제사격을 가하는 가운데-.

“우와아아악!”

오혜영이 울분과 분노를 담아서 <전투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했다.

“뭐, 뭔!?”

“적……! 적이다! 쏴!”

기습을 피를 흩뿌린 오크 전사들이 허겁지겁 통로 쪽으로 몸을 숨기며 손에 쥔 소총을 난사하지만, 그녀가 착용한 ‘비범한 갑주와 방패’는 굵직한 7.62mm 총탄에도 뚫리지 않았다. 강한 저지력이 전신을 때리지만 분노의 힘으로 접근한 그녀는-.

-스걱! 서걱!

거침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반투명한 영체의 형상인 붉은 양손 도끼, 하지만 크기완 달리 한손으로 써도 될 정도로 가볍다. 게다가 엄청난 장비인 듯, 나름 무장한 오크 전사의 몸뚱이가 달군 나이프 앞의 버터처럼 갈라졌다.

“망할 도대체……!”

소총은 쏴봤자 통하지 않고, 쏴봤자 이미 아군 사이에 파고들어 오사가 될 게 뻔한 상황. 전사들이 다급히 허리춤의 무기를 꺼내 휘두르려 했지만-.

“비켜라!”

한발 더 빨리, 그녀의 뒤를 따라서 온 드라릭의 도끼창이 그들을 후려쳤다.

마력을 각성한 20명가량의 전사들, 결코 호락호락한 이들이 아니었지만 먼저 선두가 당하고 엉겁결에 오혜영과 드라릭의 접근을 허용한 것은 너무 치명적이었다. 불과 몇십 초 만에 일행은 입구에서 나오고 있던 오크들을 모조리 참살했다.

“…….”

“…….”

그러곤, 미궁의 입구 그 안쪽을 바라보았다.

화강암으로 이뤄진 거대한 지하 층계는 어느 순간부터 ‘새카만 구정물이 흐르는 것’처럼 미묘한 기류가 뭉실뭉실거린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자아내는 모습에 일행들은 망설였지만-.

-타닥!

미궁 출신인 드라릭은 거침없었다.

감각을 방해하는 그 미묘한 기류 속으로 뛰어드는 드라릭, 그에 망설이던 오혜영과 하프 오크들도 재빨리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

일행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기괴하게 뭉그러져 있는 지하 공간’이었다.

흔들리며 요동치고 있는 지하 공간, 마치 컴퓨터 CG그래픽이 깨진 것처럼 벽의 타일들이 꿈틀거렸다. 그 꿈틀거리는 것들이 빠르게 부스러지면서 기괴한 빛무리로 화(化)하는데, 자유롭게 움직이며 서로 뭉치고 흩어지는 모습이 뭔가 굉장히 불길해 보였다.

그에 오혜영이 뒤따라온 동료에게 경고하려 했지만-.

“……?!”

“……!!”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분명 소리치고 있지만 들리지 않는다. 그녀뿐 아니라 같이 들어온 하프 오크들이 입을 뻥긋거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말하고 있다. 그에 하프 오크들이 당황한 사이, 앞서 들어간 드라릭은 이를 악물고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의 무중력 상태인 것처럼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오크.

동굴 오크 특유의 뼛가루 같은 하얀 피부, 킬가레스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거구, 심상찮은 검은 군장 차림에 그 허리춤에 걸린 커다란 두 개의 한손 도끼까지. 뉴 송파구에 남아있는 두 명의 전쟁군주 중 하나인 모르칸쉬였다.

“……!”

하지만, 거침없이 미궁 입구에 뛰어들었던 것과는 달리 드라릭은 섣부르게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작, 14~15m 정도 떨어져 있는데도. 그에 오혜영이 의아해하면서 어서 빨리 구출하기 위해 층계 밖으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

“……!?”

화들짝 놀라며 다리를 뺐다.

다른 하프 오크들도 그녀와 마찬가지로 발을 내딛자마자 기겁하며 뺐다. 아직 층계 쪽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계단을 내딛자마자 발에서 느껴지는 중력(重力)이 사라졌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중력의 방향’이 돌연 꼬이며 다리가 이리저리 휘둘렸다.

지금 보니 모르칸쉬는 그냥 얌전히 떠 있는 게 아니었다. 뒤죽박죽 변화하는 중력의 방향에 ‘휘릭! 휘릭!’ 흔들리고 있다. 그 모습이 꼭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그를 쥐고 이리저리 흔드는 것 같았다.

……그래, 이게 변천(變天)이었다.

소리가 사라지고, 중력이 어그러지며, 이어서 지성체를 제외한 모든 물체가 재구성되고 재배치되는 미궁의 자연현상. 지금 보니 미르에서 교육받은 것과 똑같았다.

그리고, 왜 드라릭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깨달았다.

변천 과정에서 서로 손을 붙잡거나 장비 등으로 이어지지 않은 이상 99%는 따로 뿔뿔이 흩어진다. 아마, 중갑을 입고 저쪽까지 제대로 날아갈 수 있을까 갈등하는 것일 테지. 그렇게 코앞에 있는 전쟁 군주를 보며 오혜영과 드라릭이 발을 구를 때-.

“?”

“!!”

돌연, 한 하프 오크가 짊어졌던 장구류를 몽땅 내던지더니 드라릭의 도끼창을 잡고 흔들었다.

뭔지 모르지만 도끼창을 달라는 행동에 드라릭이 순순히 건네자 그 하프 오크는 다이빙하듯이 점점 격렬하게 흔들리고 있는 미궁 안쪽으로 도약했다. 그래 봤자 이리저리 흔들리는 중력의 덫에 걸려 얼마 가지도 못했지만-.

“!!”

아직 무너지지 않고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얼마 없는 지면과 벽을 도끼창으로 밀어내거나 당기면서 모르칸쉬 쪽을 향해 몇 번의 도움닫기로 날아가 낚아챘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일행들이 반색했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점점 더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미궁, 무너진 공간에서 나온 빛무리가 점점 더 밝게 빛나고 현실과 연결된 층계 쪽에서도 서서히 중력이 일그러지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오혜영이 어서 돌아오라는 듯, 아직 지면의 중력이 작용하는 곳에서 오른손에 쥔 도끼를 앞으로 뻗었고, 다른 일행들은 혹여 도달할 시에 당기기 위해 그녀의 왼손을 붙잡았다.

“…….”

도움닫기로 갈 만한 지면과 벽은 잠깐 사이에 거의 대부분 사라진 상태, 게다가 중력의 영향이 없는 게 아니기에 모르칸쉬의 ‘육중한 무게’는 그냥 손으로 움직이기엔 너무 무거웠다. 그에 하프 오크는 결심한 듯이 이를 악물었다.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한쪽 벽에 도끼창의 날을 걸고 당긴 후-.

“!!!”

그 얼마 없는 지면에 쪼그린 양다리를 대고 힘껏 밀면서 동시에 허리·팔 근육까지 동원해 도끼창에 걸린 모르칸쉬를 전력으로 밀어냈다. 그에 오혜영은 다가오는 모르칸쉬를 향해 도끼를 뻗었고-.

“!”

갑주 틈에 도끼날을 걸었다.

그에 드라릭과 남은 하프 오크가 전력으로 그 왼손을 당겼다. 층계 쪽으로 다가오는 정신을 잃은 전쟁 군주, 그렇게 구출을 끝마친 일행은 몸을 던진 하프 오크를 바라보았다. 잠깐 사이에 발판은 사라진 상태였고, 그는 변천의 빛무리에 휩싸인 채 어서 가라는 듯이 손짓한다.

“…….”

드라릭이 멍한 오혜영의 손을 쥐며 고갤 저었다.

이어서 그는 하프 오크가 던지고 간 소총과 장구류, 배낭을 전력으로 하프 오크 쪽을 향해 내던졌다. 그 장구류 일부가 날아가 그 하프 오크의 손에 닿는 가운데, 그는 전쟁 군주를 들쳐 업고 미궁 밖으로 뛰쳐나간다.

“…….”

아직 남아있는 오혜영을 향해 둥둥 떠다니는 하프 오크는 날아온 배낭을 낚아채곤 엄지를 들어올린다. 뒤에 있던 하프 오크가 오혜영에게 나가야 한다는 듯이 재촉하고…….

결국, 오혜영도 현실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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