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67화 (267/350)

제267화

57화. 거짓된 선지자에게 죽음을!

1.

‘공간 이동 반지’를 사용한 후, 난 공원 안의 숲에 떨어졌다.

동시에 <투명화>를 사용하며 최대한 몸을 낮췄다. 반지를 사용한 지점에서 고작 반경 300m 지점, 숲과 안개가 가려져서 괜찮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들켰다간 X돼. 전사라면 몰라도 마법을 펑펑 날리는 놈들에게서 도망칠 자신이 없거든.

다행히, 킬가레스는 날 쫓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황급하게 늙은 오크랑 뭐라고 떠들더니 되돌아가서 내던진 철퇴를 낚아채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미궁의 입구 쪽으로 질주한다. 다른 오크 무리들과는 달리 안개에 시야를 방해받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 빠르구만.

“음, 성공?”

상공 30m가량 높이에 <눈>을 띄워 보니 이미 일행들은 미궁에서 빠져나왔다.

일행 한 명이 없지만 대신에 오크 기사님이 세로쉬의 은총이 뿜어져 나오는 커다란 오크 하나를 업고 공원 밖으로 내달리고 있다. 킬가레스가 빠르게 접근하지만 저 정도 거리에 속도면……. 마주치지 못하겠네. 희생이 좀 있지만 이 정도면 대성공이다.

“읏차!”

푸른 눈깔의 늙은 오크도 사라진 후,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 체크 겸 가볍게 제자리에서 통통 뛰었다. 킬가레스와 싸우긴 했지만 컨디션은 여전히 베스트. 바로 도주하고 있는 일행 쪽으로 붙……. 아니, 내 위치가 좀 애매하니 하프 오크들이 군대를 유인하기 위해 모이고 있는 최종 목적지 쪽으로 향해야겠다.

고갤 끄덕인 후, 난 공원 외곽 쪽을 따라 움직였다.

2.

모르칸쉬를 업은 채, 일행들은 내달렸다.

목적지는 하프 오크들이 합류하기로 한 곳, 오크 정규군을 유인하기로 한 장소였다. 오혜영이 앞장서서 달리는 가운데, 드라릭은 몸을 흔들며 어떻게든 업힌 모르칸쉬를 깨워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모르칸쉬 님! 일어나십쇼! 모르칸쉬 님!”

“그냥 한번 무기로 찌르죠!”

깨어날 생각을 안 하는 모르칸쉬, 그에 오혜영이 신경질적으로 말하자 드라릭은 기겁했다.

“섣부르게 했다간 위험해! 변천 때의 충격에도 안 깨어나신 걸 보면 뭔가 마법적 조치가 가해진 게 분명하다.”

“그럼 그냥 계속 업고 갑니까?!”

“어차피 밖까지 얼마 안 남았다. 이대로 순조롭게 나가기만 하면…….”

그 때, 짙은 안개가 빠르게 걷히기 시작한다.

-빨리빨리!

-어! 소리가 들린다!

-안개에 닿은……. 아니 진짜다! 소리가 들려!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안개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고함과 발자국 소리, 그에 일행들이 식겁하며 더 서두르는 가운데, 차단되던 감각들이 하나둘씩 다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가려져있던 ‘시야’ 또한 인지되기 시작했다.

“저, 저기! 저쪽이다”

“막아!”

-드르르르륵!

혼자서 역주행하고 있는 일행을 발견하고 소리치는 추적자들, 후방에 있는 하프 오크가 먼저 연발로 소총을 드르륵 긁었고 추적자 한 무리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지만-.

-타다다다당!

“으윽!?”

총은 그들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추적자들도 곧바로 반격했다. 뒤쪽에서 쏟아지는 총탄, 가장 뒤에 있던 하프 오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동료의 신음에 선두를 달리던 오혜영이 움찔했지만-.

“대장! 가! 케흑……. 빨리!”

-타다다다당! 타다다당!

하프 오크는 비명을 지르듯이 외치며 탄창을 갈고 또 소총을 연발로 긁는다.

그에 오혜영은 이를 악물고 다시 내달렸다. 뒤쪽에 서서 드라릭을 향해 쏟아지는 총탄을 갑옷으로 막으면서. 안개가 사라진 이상 랜턴을 내던지고 더더욱 전력으로 뛰는 가운데, 저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는 무리가 보였다.

인간 측이 점거한 뉴 송파구 지역으로 향했던 하프 오크들.

잔뜩 지쳐 보이고 숫자도 3/4 정도로 줄었지만 다행히 약속한 장소에 와있었다. 갑자기 안개가 걷히고 총성이 울려 퍼지자 긴장한 모습, 공원 쪽에서 날아오는 총탄과 익숙하지 않은 오혜영과 드라릭의 모습에 그들도 다짜고짜 사격을 가했지만-.

“나야! 나!”

그녀가 총성을 압도하는 고함을 내지르자 곧바로 파악했다.

“대장! 대장이야! 사격 중지!”

“뒤엔 적이다! 총 쏴!”

“쏴! 대장을 피해서! 엄호해!”

-타다다당!

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건 알아도 제대로 된 전투 방법은 모르기에 하프 오크들은 은·엄폐도 제대로 안 하고 무작정 엄호하기 위해 돌진했다. 수많은 동포들이 피를 흩뿌리는 광경에 답답했지만 뭐라 하기엔 상황이 너무 급박했다.

“괜찮아, 대장?”

“그래! 빨리 후퇴한다! 전쟁 군주는 구했어!”

그렇게 무수한 피를 흩뿌리며 돌진한 하프 오크들은 일행과 합류했다. 그에 드라릭도 안도감에 작게 한숨을 내뱉었지만-.

“[어딜 감히-!]”

이어서 성난 노호성이 ‘쩌렁쩌렁-!’ 대기를 울린다.

기세를 담은 포효, 천둥이 울리고 지엄한 존재가 꾸짖는 듯한 ‘전투 함성’에 하프 오크들은 본능적으로 공포를 느끼고 반쯤 위축됐다. 반면에 숫자에 밀려서 주춤거리던 추적자들은-.

“와아아아아!”

“여기입니다! 킬가레스 님!”

-타다다당! 타당!

마치, 마약을 맞은 것처럼 충혈된 눈으로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거기냐!”

-쿵! 쿵! 쿵!

공기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 이어서 진주빛 갑주를 걸친 거대한 오크가 한쪽 숲을 뚫고 나타났다. 전신이 황금빛 광채로 불타오르는 오크, 그 신성한 모습에 하프 오크들이 움찔거렸지만-.

“쏴! 놈을 쏴-!”

오혜영의 외침-<전투 함성>에 몇몇 이들이 정신을 차리고 반격하기 시작했다.

-쿵! 쿵! 쿵!

그 거대한 오크가 한 발자국씩 땅을 박찰 때마다 보도블록이 작게 흔들리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일행들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마치, 덤프트럭이 전속력으로 돌진해오는 것 같은 압박감.

-타다다다당!

-타당! 타타타당!

하프 오크들이 필사적으로 그 흉악한 존재에게 사격을 집중했지만 총탄은 저지력도 발휘 못 했다. 그는 왼손으로 눈가만 가린 채 별것 아니라는 것처럼 계속 돌진했다.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오혜영은 모르칸쉬를 업고 도망치고 있는 드라릭을 추궁했다.

“아직도 안 일어나요!? X발, 다 뒤지게 생겼는데?!”

“아, 아직이네!”

저놈은 미쳐 날뛰고 있는데 이쪽 전쟁 군주는 잠만 처자기 바쁘다. 그에 그녀가 이를 득득 가는 가운데-.

“이 버러지 반푼이들이-!!”

킬가레스가 하프 오크들에게 도달했다.

쓰러지진 않았지만 총에 맞아서 도주를 포기한 채, 계속해서 총을 갈기던 이들. 공포와 절망에 차서 발악하던 소년들을 향해 킬가레스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쓸어내는 것마냥 철퇴를 휘두른다. 그 한 번의 궤적에 4~5명이 휘말려 토마토가 으깨지는 것처럼 흩날린다.

그럼에도 동포들은 몸을 던져서 킬가레스를 막으려 발악했다.

“까드득……!”

그 광경을 보며 오혜영은 이를 악물었다. 비명을 지르며 으스러지는 형제들, 마을을 떠나기 전엔 200명이 넘었던 동포들은 이젠 100명도 채 안 된다. 하프 오크 마을이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하청업체라는 걸 생각하면……. 인정하기 싫지만 마을은 이미 망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도망쳐야 하는가?

더 이상 지킬 것도 없는데?

저기 코앞에서 자신들을 망하게 한 괴물이 날뛰고 있었다. 죽은 형제·자매들의 원수, 이대로 가면 따라잡히겠지. 하지만, 자신이 애들을 다잡는다면 그 시간을 더 늦출 수 있을 거다. 어차피 망하는 거라면……. 자신만 망할 순 없다.

저놈에게 더 ‘엿’을 처먹여 줄 거다!

“저놈의 시야를 가려볼 테니, 골목길로 들어가든가 해서 한번 따돌리세요.”

앞장서 달리는 드라릭에게 소리친 뒤, 그녀는 도망치는 대신에 남아있는 부하들을 향해 쩌렁쩌렁 소리쳤다.

“몸통을 노려 봤자 소용없어! 얼굴! 얼굴만 노려! 특히 눈! 그리고 로켓! 누구 로켓 남은 거 있어?!”

“내가 가지고 있지.”

로켓을 찾는 말에 근처에서 누군가의 말한다.

마을의 배신자인 오재석, ‘인간들의 기지 입구에 대전차 로켓을 쏜다.’는 가장 위험한 일을 맡긴 이들 중 하나. 좀 초췌한 모습이긴 했어도 그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그녀가 바라보자 그는 허리춤에 걸린 발사체를 보여주며 웃는다.

“발사관은?! 그거 없으면…….”

“그건 손에 있으니까 도망치면서 버렸지. 그래도 충분해. 먼저 간다.”

두려움과 공포로 굳은, 하지만 애써 폼 잡듯이 웃으며 그는 오혜영이 뭐라 하기도 전에 킬가레스 쪽으로 내달렸다. 발악하는 하프 오크들을 거침없이 으깨버리며 돌진하고 있는 전쟁 군주, 그런 괴물을 향해 내달리는 오재석의 양손엔 길쭉한 발사체 탄두가 있다.

“안…….”

가로막는 하프 오크의 몸통을 분쇄하는 철퇴, 너무나도 빠르고 강했지만 ‘걷어내듯이 휘두르는 궤적’ 자체는 단순했다. 오혜영이 뭐라 다 소리치기도 전에 오재석은 뛰어들면서 다가올 철퇴의 궤적에 그 탄두의 끝이 향하게 했고-.

-콰-앙!

탄두는 철퇴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안전장치가 있었지만 너무 커다란 외부 충격에 신관이 작동해 터져버렸다. 폭발의 굉음과 후폭풍에 주위의 하프 오크들이 너부러진 가운데-

“으아아아!”

오혜영은 충혈된 눈으로 폭연 속으로 뛰어들었다.

비통했지만 우물쭈물거릴 틈이 없었다. 저 괴물이 이 정도로 쓰러질 리가 없다. 폭연을 뚫고 보이는 찬란한 황금빛 형상을 향해 그녀는 다짜고짜 도끼를 휘둘렀다. 전력을 다해 머리 쪽을 노리는 일격이었지만-.

-터억!

까드드-득!

통하지 않았다.

대전차 로켓을 맞았지만 전쟁 군주는 살아있었다. 질주가 멈추고 그 몸뚱이는 그을림과 잔상처가 있었지만 대체로 멀쩡했다. 머리로 날아온 도끼를 거대 철퇴의 손잡이 쪽으로 쳐내듯이 받아낸 그는 이를 갈며 오른손을 내려찍듯 휘둘렀다.

-투-쾅!

이어서 폭발음 못지않은 ‘굉음’이 울려 퍼진다.

주먹이었지만 그 충격은 이전에 철퇴를 맞았을 때보다 더 끔찍했다. 이전의 휘두름은 그저 ‘가볍게’ 파리를 죽이듯 날린 것, 게다가 날아가면서 충격도 분산됐다. 하지만, 지금은 위에서 내리찍는 형태라 뒤로 날아가지도 못했고 무엇보다 킬가레스가 분노를 실어서 후려쳤다.

부딪치는 순간, 충격파에 폭연(爆煙)이 날아갔고-.

“우-웨에에엑!”

오혜영은 방패를 위로 올린 상태로 버텨냈다.

내장 섞인 피를 쫘악 토해내도, 전신의 뼈가 박살 나고, 그 압력에 눈이 터져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현실의 물리법칙을 뒤트는 힘 마력, 그 마력은 결국 사용자의 의지에 감응하여 움직인다. 필사의 의지, 모든 응분과 분노를 담은 그 의지에 감응했다.

그래 봤자 방어구가 부실했으면 으스러졌겠지만 그녀가 착용한 방어구는 전쟁 군주가 탐낼 정도로 대단히 뛰어난 명품들이었다.

-타다다다당! 타당!

“이……!”

그렇게 멈춰선 킬가레스의 얼굴을 향해 총격이 쏟아졌다.

얼굴을 집중적으로 노리는 총탄, 그에 그는 오른손으로 눈가를 가리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강화 효과로 방탄 피부를 가진 그였지만 눈을 때린다는 것 자체가 신경이 쓰이는 행위다. 하지만 이내 흠칫하며 손가락 틈 사이로 모르칸쉬를 업고 도망치던 자의 행적을 쫓았다.

“……!”

없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분명 멀리가지는 못했을 터, 어서 빨리 추적을 하려 했으나 또다시 날아오는 붉은 궤적을 흠칫하며 막았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 앞에 있는 반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고작 이 반푼이 하나 때문에-!

“이 버러지가!!”

-퍼엉!

노호성과 함께 작렬하는 킬가레스의 발길질, 주먹질을 버틴 것과는 달리 오혜영은 힘없이 날아가 쓰러졌다. 하지만, 그 얼굴은 웃고 있었다. 고막은 터졌지만 그 뼈를 징징 울리는 음성은 고막이 터져도 들렸다.

그래 해냈다.

넌 절대자가 아니다. 널 내가 엿 먹였으니까. 부들거리는 입꼬리를 올려 오혜영이 웃는 가운데, 전쟁 군주는 거대 철퇴를 양손으로 고쳐 쥐었다. 눈가에 여전히 총탄이 쏟아지지만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을 두 번이나 물 먹인 오혜영을 향해-.

-콰릉!

천벌을 떨어트렸다.

3.

공원의 외곽을 따라서 난 천천히 합류 지점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면서 간간히 보이는 오크 추적자들도 몇 명 처리했다. 혜영이의 도주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는 구라고 ‘전리품’을 참기 힘들었거든. 몇몇 꽤 강한 오크 놈이 꽤 쓸 만한 마법 장비를 착용한 게 보였기에 안개를 이용해 선빵을 날려 죽이고 장비들을 회수했다.

……따지고 보면 그냥 살인강도긴 한데, 지하에선 이래도 괜찮잖아?

“캬~ 때깔 좋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난 시신이 쥔 해골 지팡이를 빼앗았다.

+0 강령술 지팡이 (Staff of Necromancy)

<강령술>을 위해 만들어진 뼈 지팡이, ‘죽음의 기운’ 통제를 수월하게 하고 그 위력을 증폭시킨다. <발동술>과 <강령술> 마법에 숙련되어 있다면 이 지팡이에 타격당한 생명체는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한 손 무기, 지팡이

대미지 5, 명중 +5

기본 공격속도 1.2, 최소 공격속도 0.6

·주문력 증폭-<강령술> 마법에 한정

·주문 성공률 증가-<강령술> 마법에 한정

·직접 타격 강화-(12.5 + 강령술×12.5)% 확률로 음에너지 대미지

평범한 강령술 지팡이, 게임에서라면 철검이나 갑주와 동급이겠다만 현실에선 무조건 ‘마법 장비’라서 매우 비싸다. 뭐, 어쨌든 마법사라면 당연히 들어야 하는 거야. 이것 외에도 몇 가지 마법 장비를 쏠쏠하게 챙겼다. 여분의 수제 포션도 있구만? 정말 고맙습니다, 오크 선생!

그렇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강도짓에 여념이 없는데-.

“……!?”

지옥의 안개가 급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허겁지겁 전리품 회수를 마치고 <눈>을 들어 조망해보니 미궁 쪽 입구에 벌어진 참상을 본 킬가레스가 악마를 사역해서 안개를 걷어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놈은 눈을 감고 집중하는 하는 듯하다가-.

“쓰읍.”

희미한 총성이 들린 곳으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전리품 배낭을 메고 달렸다. 하지만, 애초부터 놈보다 멀리 떨어져있다. 게다가 숲이건 길이건 무시하며 내달릴 수 있는 놈과는 달리 나는 소총을 든 오크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다.

“[어딜 감히-!]”

쩌렁쩌렁 울리는 노호성과 함께 밖에 도착한 하프 오크에게 접촉한 킬가레스는 학살극을 찍기 시작했다.

총탄 같은 걸 무시하면서 돌진하는데, 진짜 알보병들 사이에 난입한 전차 같았다. 하지만, 하프 오크들도 무력하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오크 기사님과 같이 도망치던 혜영이가 멈춰 서서 하프 오크들의 멘탈을 다잡으며 명령하자-.

놀랍게도 킬가레스의 진격을 잠시나마 멈춰버렸다.

그사이에 오크 기사님은 코너 쪽으로 빠져서 도망쳤고. 다행히, 괴물들도 킬가레스의 포효와 노호성에 죄다 멀찍이 도망쳐서 무방비로 달리는데도 기사님을 건드리진 않는다. 하지만, 킬가레스를 가로막은 혜영이와 하프 오크들은 무사하지 못했다.

-쿠-우웅-!

“X미.”

혜영이가 죽는 모습을 보며 난 한숨을 내뱉었다.

폭약이 터진 것마냥 지면이 은은하게 울린다. 몸통은 터지고 머리와 팔다리는 끊어져서 사방으로 튀긴다. 다른 하프 오크들이 당할 땐 그러려니 했는데, 혜영이가 그 꼴을 당하는 걸 보니……. 허탈함에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 투구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끝은 아니다.

목걸이에 있는 신성이 불타오르며 흩어지려는 그 영혼을 붙잡는다. 이어서 신성한 조각의 파편이 꿈틀거린다.

“그래, 딸내미를 건드리면 아버지가 나와야죠.”

한숨을 내쉰 후, 난 앞으로 펼쳐질 기적을 주시하며 다시 현장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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