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68화 (268/350)

제268화

4.

25구역 출입구가 공격을 받은 후, 인간 측은 보복을 위해 분석에 들어갔다.

뉴 송파구의 오크들과 연관된 게 보이기에 오크 정부 측에 항의를 하는 한편, 정찰 드론을 보내 그 무리를 계속 추적했다. 사실, 본격적인 ‘공격 드론’을 보내서 금방 몰살시킬 수도 있었지만……. 공격자들의 행동이 뭔가 이상했다.

마치, ‘노크’를 한 것 같았다.

일부러 자신들의 시선을 끌려고 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입힌 피해가 경미한 것도 그렇고 진짜 공격한 게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몰살시키는 명분으론 충분하지만 인간들은 좀 더 자세한 상황 파악을 위해 관찰을 택했다.

공격자 무리가 곧바로 올림픽 공원으로 향하는 모습에 의아함이 증폭되던 와중에-.

“……!?”

“뭐지?”

공원을 둘러싼 안개가 돌연 걷히기 시작했다.

하루에 2번, 안개가 걷혔을 때 보이던 텅 빈 모습과는 달리 공원 곳곳엔 소수의 무리를 지어 다니는 오크들이 보인다. 그리고 두 무리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진다. 그에 뭔가 더 이상함을 느끼며 전투실에 있는 정보 분석가들이 상황을 살피는 가운데-.

“!!!”

“비상! 비상!!”

‘한 오크’를 발견하곤 비상이 걸렸다.

도저히 ‘같은 종’으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거구의 오크, 게다가 걸치고 있는 갑주와 무기는 인간의 기준으로도 대단히 미려하고 뛰어났다. 전신이 상서로워 보이는 황금빛 불길로 타오르는 모습은-.

“학살자 킬가레스다!”

고위급 군인과 경찰들 사이에선 유명한 놈이었다.

소말리아에 ‘종족청소’를 감행한 제노사이더, 탁월한 언변으로 수많은 오크들을 현혹하고 있는 종교적 구루이자 테러리스트 수장. 대한민국에 벌어진 기적을 보고 합류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나름 촉각을 곤두세웠건만 놈이 어느새 몰래 잠입해 있었다!

“당장, 뉴 송파구에 연락해! 방금 연락은 우리의 ‘오해’니까 병력을 내려 보낼 필요 없다고!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네?! 하지만…….”

“O-1 개체는 똑같은 O-1개체가 없는 이상, O 개체로 ‘절대’ 처리 못 한다. 자칫하다간 현혹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저놈의 현혹은 O 개체들을 조종하는 코드 108-세로쉬의 강화 효과를 받아서 더더욱 강하다!”

‘오크 전쟁 군주’를 뜻하는 ‘O-1’, 그 개체들은 무력도 뛰어나지만 ‘진면목’은 동족을 규합할 때 드러난다.

오크들은 그 난폭함에 서로 잘 뭉치지 못하지만 전쟁 군주 개체가 등장하는 순간부턴 달라진다. 페로몬에 현혹된 듯, 그에게 복종하며 별 다툼 없이 거대한 무리를 이룬다. 특히나, 상대는 그런 매력이 뛰어나기로 알려진 킬가레스다. 자칫 내려간 오크들이 현혹당했다간 골치 아파진다.

“대기 중인 전투 드론 20대 투입한다! 중형 개체 처리용 미사일 탑재한 걸로!”

“확실하게 끝내려면 그냥 순항 미사일을 쏘는 게 낫지 않습니까?!”

“그래, 그게 낫겠군!”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마련된, 지금까진 ‘너무 과해서 쓰지 않았던’ 인간들의 전투 병기들이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그 철두철미한 지상 인간들의 폭력이 지하에 작렬하기 직전-.

“…….”

“…….”

전투실 화면에 ‘기적’이 벌어진다.

그 광경에 바쁘게 움직이던 전투실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얼어붙는 가운데, 자문역으로 내려온 미궁 출신 전사는 한숨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끼어들지 말도록 합시다.”

“뭔…….”

“시간을 되돌리고 죽음을 부정하는 것. 저건, 우리들 입장에서도 ‘신의 기적’이오. 그 말인즉, ‘코드 108’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단 뜻과 다름없소.”

뭐라 반박하려던 장교가 그 대답에 입을 다물었다. 코드 108, ‘미궁의 신’을 뜻하는 단어. 그 초월적인 행사는 이미 잘 알려졌다. 그렇게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미궁출신 전사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여긴 한 번, ‘대규모 기적’이 벌어졌던 곳이요. 저런 ‘기적’이 또 벌어졌는데, 그와 관련된 현상에 섣부르게 나서는 건 더 위험에 처할 수도 있소.”

“…….”

“나라면 지금 당장 대응하지 않겠소. 물론, 사태가 이상해지면 대응해야겠지만 말이오.”

그렇게 인간들은 침묵했다.

5.

응징의 철퇴를 휘두르고 난 뒤, 킬가레스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모르칸쉬를 옮긴 놈은 아직 이 근처에 있을 터, 어떻게든 그 기척을 찾아내기 위해 쏟아지는 총성에 시끄러운 와중에도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

돌연 뒤쪽에서 ‘순수한 신성’을 느낀다.

등지고 있어도 느낄 수 있는 부드러운 황금빛, 오크만을 위한 신성이 뒤쪽에서 불타오르고 있었다. 킬가레스도 그 누구보다 자신의 신성이 순수하다고 자부했지만……. 지금 느껴지는 것은 더 대단했다. 신앙심이 깊었기에 더더욱 잘 알았다.

고갤 돌리자 보이는 것은 솟구치는 황금빛 기둥.

그 모습을 킬가레스는 잘 알고 있었다. 성자 무르굴이 기적을 일으킬 때의 광채. TV나 영상매체로는 표현할 수 없던 그 신성함에 총탄에 쓸려나가고 있던 하프 오크들은 물론이고 공원에서 나오던 오크 무리까지 덜컥 멈춰 섰다.

“…….”

킬가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어디선가 모르칸쉬를 업은 놈이 도망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신앙을 따르는 자로서 이건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 황금빛 기둥이 비추는 것은 납작해져서 핏물만 남긴 흔적.

사방으로 으깨져서 튀겼던 살점들이 날아와 황금빛 광휘에 들어선다. 이어서 그 흔적을 중심으로 한 점씩 틀에 갖춰진 것처럼 다시 갖춰진다. 뼈가 세워지고 살이 채워지며 이어서 망가졌던 무구 또한 황금빛이 깃들며 다시 복구된다.

[음.]

마지막으로 황금빛 기둥이 사그라지며 부활한 이가 눈을 떴다.

육안(肉眼) 대신에 부드러운 황금빛 아우라가 가득 찬 눈, 그에 하프 오크들은 일제히 숨을 죽였다. 분명, 그들이 알고 있는 대장-오혜영이지만……. 동시에 오혜영이 아니란 것을 직감했다. 그 가운데, 킬가레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그 질문에 손에 들린 무구들을 이리저리 보고 있던 그녀는 입을 열었다.

[무르굴……이라고 하기엔 그렇군. 진짜 나는 이미 자비로운 그분의 품 안에 안겼으니까.]

“…….”

[난, 그가 남긴 ‘조각이자 미련’이지. 뭐, 그냥 ‘오무혁’이라고 부르게. 진짜 나완 구분이 필요하니까.]

차분하게 자신을 ‘오무혁’이라 소개한 그는 킬가레스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넌, 그분의 말씀을 전파하는 자구나. 네 안에 그분을 향한 헌신이 보인다.]

“…….”

[하지만, 이 아이의 기억들을 살펴보니……. 그 말 중에선 ‘거짓된 말’도 있군.]

그가 뿜어내는 기세에 반쯤 압도됐던 킬가레스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거짓된 말이라고?”

[그래.]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오크 전쟁 군주’라고 불리는 자.

그런 인간들의 평가는 개인의 무력과 호전성 때문에 붙은 게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전사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킬가레스는 자신을 ‘종교인이자 학자’로 생각했고 인간들의 평가도 맥락 자체는 비슷했다.

극단적 철학과 사상으로 무장한 지식인

20세기 초 유산계급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일으켜 공산혁명을 일으켰던 ‘레닌’처럼 그는 전 세계의 오크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지식인이었다. 신학적으로 세상 그 누구보다 일가견 있는 그에게 이런 지적은 무력으로 조롱당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쾌한 것이었다.

“……내가 말한 것 중에서 무엇이 거짓됐다는 거지?”

[하프 오크들이 오크가 아니라는 것이지.]

킬가레스의 얼굴이 더더욱 굳는 가운데, 오무혁은 주위에 얼마 남지 않은 하프 오크들과 참혹하게 으스러진 시신들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보며 담담히 말을 이어나간다.

[혼혈 또한 오크다. 모든 오크들의 주인께서는 그들 또한 공평하게 사랑하시지.]

“…….”

[자신을 배신하거나 다른 신을 섬기는 오크도 너그럽게 포용하시는 게 그분이야. 고작 인간의 피가 좀 섞인 것만으로 그 사랑은 옅어지지 않는다.]

그 말에 킬가레스는 한 발자국 걸으며 빠드득 이를 갈았다.

“하, 그래. 반푼이도 오크라고?”

[그래.]

도망친 모르칸쉬에 대한 것은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그의 신앙과 지나온 세월-삶을 모조리 부정하는 말, 킬가레스의 두 눈에서 황금빛이 이글거렸다. ‘오크들을 위한 신성’, 앞에 부활한 이에 비하면 그 순수함은 빛이 바랬으나 그 크기만큼은 모든 걸 불사를 거대한 불길 같았다.

-쿠웅.

“난, 이 세상에 올라오기 전부터 세로쉬 님의 은총에 대해 설파했다!”

철퇴를 내리찍으며 그는 울림통처럼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상에 올라온 뒤로도 수없이 많이 쪼개진 부족들의 경전들을 읽고 재정립했지! 그래,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세로쉬 님의 의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이는 없다고 자부한다!”

[…….]

“근데, 반푼이가 오크라고?!”

총을 맞았지만, 아직 쓰러진 채로 살아있는 한 하프 오크.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색색 숨을 내뱉고 있는 그 앞까지 다가간 후, 킬가레스는 한쪽 무릎을 꿇고 그 얼굴 위에 왼손을 올렸다.

“미궁에 그런 이들도 많았지.”

[…….]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찌 됐든 간에 우리를 닳았으니까! 나약하다곤 하지만……. 어떻게 자기 핏줄을 이었다고 생각되는 자식을 외면할 수 있겠나!?”

[당연한 말이군.]

“하지만, 내가 본 진실은 뭔 줄 아는가!?”

굳은 얼굴로 손에 힘을 주는 킬가레스, 그와 함께 하프 오크의 머리가 으스러진다. 이어서 자리에서 일어난 후, 그는 피와 뇌수가 묻은 왼손을 보란 듯이 내밀며-

“반푼이를 동정하고 보듬었던 부족들은! 결국, 쇠퇴하다가 멸망했다는 거다! 아니라고? 수없이 미궁을 떠돌며 진리를 찾은 내 인생과 삶, 그리고 그 안에서 찾은 모든 기록들이 증명한다!!”

[…….]

“이것들은 기생충이야! 동정심을 자극하지만, 우릴 나약하게 만들고 결국엔 죽여 버리는 지독한 벌레! 경전을 만들 정도로, 그리고 다른 모습으로 강림한 세로쉬 님을 본 모든 부족들의 경전도……! 오크가 아니라고 말했다. 근데, 이것들이 오크라고?!”

오혜영의 형상을 한 존재에게 노호성을 터트렸다.

그 모습은 마치 활화산이 터져서 불벼락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몇 안 남은 하프 오크들은 물론이고 그를 따르는 오크들도 그 압도적인 기세에 질려 순간 벌벌 떠는 가운데, 오혜영의 모습을 한 존재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난, 그런 것들은 모른다.]

“…….”

[솔직히 고백하면, 경전 같은 건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어. 몇몇 사기를 고취시키는 구절은 교양으로 알고 있지만 말이지.]

분노에 타오르는 킬가레스를 향해 그는 담담히 설득했다.

[하지만, 직접 그분을 뵙고 이건 안다. 우리의 신께선 하프 오크를 똑같이 사랑하고 계신다는 걸. 이건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경전들이 뭐라 하건 간에 말이다.]

“…….”

[물론, 경전의 말을 다 부정할 생각은 없어. 어쩌면 지상에 나와서 달라진 것일 수도 있겠지. 미궁과는 달리 지상은 나약한 이들도 살 수 있을 정도로 좋으-]

-부웅-!

-투웅!

그런 그를 향해 킬가레스는 철퇴를 휘둘렀다.

대처하기 힘들 정도의 빠르기, 하지만 오무혁은 노련하게 방패를 들고 뒤로 빠지며 그 충격을 분산했다. 서너 걸음 뒤로 빠지면서 육체의 마력을 통해 거의 대부분의 충격을 분산시켰다. 얼얼하단 듯이 왼손을 터는 그를 보며 킬가레스는 둔기를 다잡았다.

“넌, 흉내를 내는 가짜다.”

[후우, 나도 솔직히 너 같은 부류를 제일 싫어한다.]

킬가레스의 맹렬한 적의에 오무혁도 한숨을 내뱉으며 오른손에 쥔 커다란 도끼를 들어 그를 가리켰다.

[아집에 눈이 돌아버려서 자기만 맞다고 날뛰는 놈들. 그리고, 그런 놈들 대부분은 너 같은 신앙인이더군. 그런 놈들을 처리하느라 생전에 어찌나 힘들었는지 몰라.]

“감히……!”

[지금은 좀 이해가 가긴 한다. ‘절대적인 진리’를 등 뒤에 업고 있으면 자신의 주장도 진리인 것 같으니까. 하지만, 네가 틀렸단 건 변하지 않아.]

그 모욕에 킬가레스의 신성이 불타올랐다.

그 의지에 응해 ‘천상의 영역’에서 힘이 내리꽂혔다. 모든 세로쉬 교단이 공유하는 기초이자 가장 중요한 권능인 <신성 강타>, 같은 오크에겐 피해가 경감된다 한들 킬가레스의 <신성 강타>는 전쟁 군주를 주춤하게 할 정도였으나-.

[내게 ‘그분의 권능’은 통하지 않는다.]

오혜영의 모습을 한 그에겐 티끌만큼의 영향도 없다.

그 광경에 킬가레스가 흠칫하며 살짝 한 발자국 물러선 가운데, 오혜영은 방패를 앞세우며 한 발자국 내디뎠다.

[나는 ‘두 번 세례를 받은 자’요. 그분을 목도하며 가장 순수한 의지를 아는 자니.]

“[시르카그!]”

이어지는 킬가레스의 노호성, 이어서 거대하게 뭉쳐진 잿빛의 안개가 떠오른다. 황금빛 쇠사슬에 감긴, 상체만 있는 안개의 거인. 샛노란 외눈을 번들거리며 악마는 킬가레스의 의지에 따라 손을 뻗어 오혜영의 몸에 깃든 오무혁을 강타했다.

[큭]

그리고, 이번엔 무사하지 못했다.

닿는 순간에 밀려오는 육신의 감각 한계를 넘어선 끔찍한 고통들, 오혜영의 몸을 빌린 그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고-.

-콰-앙!

격분을 담은 킬가레스의 철퇴가 그 뒤를 이었다.

돌진하며 철퇴 내리찍는 킬가레스, 머리 위에서 내리꽂히는 일격에 다급히 방패를 들었지만 제대로 타격을 흘리지 못해 오무혁은 한쪽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 꿇은 무릎을 기준으로 쩌적쩌적 갈라지는 아스팔트, 위력 자체는 무식하게 강력했다.

-콰득, 쩌저적…….

[끄응.]

“어디, 한 번 더. 떠들어. 봐라.”

킬가레스가 스스로의 신체를 강화하며 우악스럽게 철퇴를 누르고, 그에 오무혁이 살짝 신음하는 가운데-.

“아니, 오무혁 씨. 지금 뭐하세요?”

근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킬가레스는 흠칫하며 물러섰다.

덕분에 철퇴 밑에서 빠져나온 오무혁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5층 건물 옥상에서 황금색 창을 어깨에 걸친 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는 소년, 그에 그는 피식 웃었다.

[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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