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1화
8.
지하 송파구에 재앙이 찾아들었다.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형광색 불길, 폐건물 속에서 숨어 있던 원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형광빛 불길에 잠식되어 산 채로 불타오른다. 그 타오르는 희생양들은 역병을 옮기는 쥐새끼들처럼 지옥의 불길을 다른 곳으로 퍼트리는 가운데-.
“[거짓된 자여!!! 나와라!!]”
-콰앙! 쿠우우…….
“[나와서 심판을 받아라!!]”
그 지옥의 불길 속에 착지한 킬가레스는 듣는 것만으로도 장기가 떨리고 공포에 몸이 굳는 염파를 쩌렁쩌렁 내뱉는다. 거대한 뼈 철퇴를 휘둘러 타오르는 주위의 건물을 가뿐하게 박살 내는 그의 포효에-.
[여기다.]
마침내, 오무혁도 화답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킬가레스는 날개를 펼쳐 50m가량을 떠올랐다. 불길에 휩싸인 지대 바깥쪽, 한 대로변에 오무혁이 당당히 서 있었다. 그에 킬가레스는 다시 한번 왼손에 <증오의 불길>을 피워 올리며 이를 갈았다.
“[쥐새끼처럼 계속 도망만 치는구나……!]”
[당연하지. 난 공중에 떠 있는 널 공격할 방법이 없으니까. 아니, 오히려 그쪽이 비겁한 것 같지 않나? 공중에 멀찍이 떨어져서 같잖게 마법이나 깔짝거리고 말이야.]
“[…….]”
[그 철퇴는 사실상 장식인 것 같군. 차라리 기관포를 구해서 들지 그래? 원거리 공격은 그게 더 빠르고 나아.]
“[닥쳐!]”
오무혁의 조롱에 과도하게 성을 내며 킬가레스는 손으론 <증오의 불길>을 내던지고 철퇴로 <힘의 강격>을 후려갈긴다. 그에 오무혁은 다시 쏘옥 근처 폐건물에 숨는다. 당장이라도 저 건물 안에 들어가 거짓된 자의 머리통을 철퇴로 으스러트리고 싶었지만-.
-까드득…….
킬가레스는 내려가지 않았다.
격분의 감정을 담은 염파를 터트렸지만 그사이에는 ‘희미한 불안감’도 섞여 있었다. 오무혁이 숨은 건물 주변을 형광빛 불길로 뒤덮으며 킬가레스는 신경이 곤두선 사람처럼 사방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해골 대가리’, 그 미친놈이 보이지 않았다.
그조차도 간신히 달래듯이 통제하고 있던 ‘시르카그’를 일격에 소멸시킨 괴인, 그 소멸한 시르카그의 정수를 그대로 흡수한 킬가레스는 희생양의 감정의 일부를 이어받았다. 그에 애써 인정하진 않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놈에게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놈의 행적을 무시하기엔 너무 위험이 크다.
자신을 단숨에 죽이지 않은 걸 보면 어떤 제약이 있는 게 분명했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시르카그와 같은 꼴을 당할 수도 있다. 저 발칙한 거짓 선지자를 철퇴로 으깨고 싶다는 들끓는 충동을 애써 참아내며-.
“[……좋아,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마법’을 퍼부어 주지.]”
킬가레스는 날개를 펼쳐 더더욱 높이 떠올랐다.
거의 200m가량, 그 어떤 건물도 닿기 힘든 위치에 도달한 후에 그는 철퇴를 높이 들어 올리곤 정신을 집중하며 악마어를 내뱉었다. 그와 함께 갑옷에 융기된 뼈에서 지옥 문자가 녹색으로 타오르고 7개의 룬문자가 만들어지며 공명한다.
-쿠우우…….
이어서, 그 주위의 공기가 떨리며 꺼림칙한 붉은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퍼붓는 검은 벼락 (Fulminated Dark thunder)
레벨 7 악마/번개
시전 소음 : 15
주문 소음 : 30
대미지 공식 : 6d(SP/5)-악마/전기
최대 SP : 200
최소 소모 마력 : 5, 증오의 정수
특이 사항 : 계속 제자리에서 ‘축전’할 시, 보다 적은 마력을 사용해서 똑같은 마법을 계속 날릴 수 있습니다. 번개가 떨어진 자리에 일정 시간 동안 <감전 지대>를 만들어 매 턴마다 2d8 번개/악마 대미지를 가하고 <마비> 상태 이상을 부여합니다.
효과 : 지속력이 매우 뛰어난 <악마술> 마법, 증오의 감정과 주위의 대기 마력을 공명하여 지속적으로 검은 번개를 만들어 낸다. 시전자는 그 자리에 ‘축’으로서 고정돼 주위의 대기를 오염시켜 점차 전하를 축적하고, 임곗값에 도달하면 축적된 전하를 마력이 소진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방출한다.
그렇게 떨어진 번개는 매우 질척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바로 사라지지 않고 일정 범위를 지속적으로 튀겨 버린다.
-끄이이익! 카아아…….
희생자의 얼굴이 꿈틀거리는 핏빛 구름 사이에서 흐르는 검은 뇌전, 지성체의 비명과도 같은 그 천둥소리에 오무혁이 다시 나타났다. 신기하게도 불길에 닿지 않은 인근의 다른 건물에서. 그 광경에 킬가레스가 눈살을 찌푸리는 가운데, 오무혁은 곧바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흐흐,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쩌렁쩌렁 울리는 염파, 그에 오무혁이 살짝 고갤 돌려 올려다보며-.
[……빙긋.]
씨익 웃었다. 그런 오무혁의 시선이 살짝 어긋났단 걸, 자신의 뒤쪽을 바라보고 있단 걸 킬가레스의 초월적인 시야는 포착했고-.
“[죽어!!]”
-콰과과아아아악! 끄아아아아!
흠칫하며 몸을 돌려 그동안 축적한 ‘번개’를 쏘아낸다.
수많은 이들의 비명 소리 같은 소음과 함께 갈기갈기 찢어지듯 날아가는 검은 번개, 검은 번개 폭풍이 허공을 찢어발기며 돔의 벽까지 닿았다. 설치된 수많은 카메라들과 정찰 드론들이 검은 벼락에 노출되어 터지고, 바닥에 쏟아진 벼락은 갈기갈기 건물 안쪽에 있는 생명체들을 튀겨 버린다.
-끼이이익! 끄으아악!
그저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번개에 맞은 지역들은 모두 ‘억눌린 비명 소리’ 같은 검은색 정전기를 솟구치며 타오른다. 현대 화기의 위력에 뒤지지 않는 실로 광범위한 파괴, 하지만 그가 경계하던 ‘해골 대가리’의 모습은 없었다.
[후후.]
그에 오무혁은 작게 실소했다.
물론, 자신이라도 저쪽과 같은 상황이면 흠칫할 거다. 그만큼, 그 녀석이 강력한 악마를 단숨에 죽인 건 충격적이었으니까. 축적된 번개를 엉뚱한 곳에 쏟아 내고 살짝 멍하니 있는 킬가레스에게 오무혁은 가볍게 혀를 찼다.
[순진하구만.]
“[이 개 같은 새끼가!!]”
속은 걸 알자 킬가레스는 격분하며 오무혁을 향해 철퇴를 가리키고 검은 번개를 쏘아 냈다.
방금 전과 같은 광범위한 번개 폭풍이 아닌 고작 한 줄기의 번개, 그래도 충분히 강력했지만 오무혁은 미리 들고 있던 방패를 이용해 그 번개를 흡수했다. 그렇게 간단히 대처한 후, 오무혁은 킬가레스를 향해 진지하게 충고했다.
[내가 마법을 흡수할 수 있단 걸 이미 봤을 텐데? 다시 침착하게 힘을 축적해서 광범위하게 번개를 갈겼어야지.]
“[닥쳐!]”
[……이전이었다면 이런 충동적인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넌, 점점 이성을 잃고 난폭해지고 있어. 서서히 타락하고 있는 거다. 너가 누군지 기억해라.]
지성체의 파멸을 원하는 악마, 그 심성은 대부분 둘로 나뉜다.
지독하게 ‘교활’하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난폭’하거나. 나름 난폭하긴 해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켰던 킬가레스의 행동은 오무혁이 봐도 알 정도로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었다. 나름 진정 어린 충고이자 도발에-.
“[난, 멀쩡하다! 이 거짓된 자야!]”
-콰지지지지직!
또 격분하며 킬가레스는 철퇴를 뻗어 번개를 방출한다.
그전에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기에 킬가레스의 분노는 건물에 작렬했다. 그 검은 정전기가 건물 안에도 퍼져 나가고 그 안에 벌벌 떨며 숨어 있던 희생양들을 비명 소리와 함께 번개에 산채로 튀겨지지만-.
[후우.]
오무혁은 충분히 버텨냈다.
지속적으로 악랄한 정전기가 몸을 때렸지만 재빨리 공산품 포션을 한 병 비우며 숨을 고르니 버틸 만했다. <마비>도 걸리지 않았고.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만……. 방패를 들어 올리며 오무혁은 창문으로 킬가레스를 관찰했고.
“[……!!]”
두리번거리던 킬가레스의 눈이 돌연 한쪽에 고정되는 것을 포착했다.
공원 쪽 방향, 건물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반응에 오무혁은 저쪽에 그 흰 머리의 괴물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어서 킬가레스의 녹빛 안광이 이쪽을 향해 불타오른다.
[쯧.]
투쟁심 번들거리는 눈에 오무혁은 도끼와 방패를 고쳐 잡고 공원 쪽을 향해 뛰쳐나갔다. 나름 여유롭게 말했지만 1:1로는 가망이 없다. 그 모습에 킬가레스의 주위에 덮인 검은 전하가 광란한다. 다시 한번 핏빛 구름이 꿈틀거리며-.
-파지지직!
철퇴의 움직임에 따라 번개를 토해 낸다.
이전처럼 한 점에 강렬하게 내리꽂히는 것이 아닌 ‘흩뿌리듯이 광범위하게’ 정전기 같은 번개가 주위를 뒤덮는다. 오무혁을 노린 것이 아니라 그가 달려가는 앞쪽, 처음에 시선이 향한 곳을 노리는 번개다. 딱 봐도 장애물에 가까운 번개를 뿌린 뒤에-.
“[찢어 죽여주마!]”
킬가레스는 검은 피막이 있는 날개를 접으며 내달리는 오무혁을 향해 강습했다.
9.
생각한 방법을 준비하기 위해 난 곧바로 시신이 널려 있는 공원 입구 방향으로 향했다.
마법을 갈기면서도 킬가레스는 시시때때로 고갤 돌려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놈의 시야는 <투명화>와 생명체 반응을 꿰뚫어 보았지만, 근처 건물에 숨은 괴물이나 지성체가 엄청 많아서 내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게 요리조리 건물 사이를 뛰어다니며 내달린 끝에-.
“읏차!”
난 오무혁 씨를 내려다봤던 건물에 도착해 짐을 되찾았다.
‘친절한 오크 마법사’가 준 전리품 가방, 다행히 안쪽에 있던 전리품들은 모두 무사했다. 들고 있던 창은 허리띠 사슬 형태로 바꿔서 허리에 맨 뒤에 ‘강령술 지팡이’를 꺼내 쥐었다.
“후우.”
마력을 불어넣으며 동기화하자 지팡이에서 서늘한 감각이 올라온다. 그렇게 지팡이를 쥐고 곧바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킬가레스의 학살이 벌어졌던 장소로 향했다.
으깨진 채, 혹은 총탄에 맞아서 널브러진 하프 오크와 오크들의 시신들.
킬가레스의 시선을 피해 그 시체 파편을 몰래몰래 주워 먹으면서 지팡이를 뻗어서 아직 남아있는 영혼들에게서 ‘영혼의 영액’을 추출했다.
“……오!”
그 마법의 파동에 휩싸인 지팡이에 영혼의 찌꺼기들이 아주 그물에 걸린 물고기 떼처럼 ‘확! 확!’ 걸린다.
<연금술> 과정에서 <강령술>을 뜻하는 룬문자 일부가 들어가기에 혹시나 해서 한 번 써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수월하게 마법이 걸린다. 지팡이 성능 확실하군? 나중에 나도 창+지팡이 하나 장만해야겠다. 무지 편리하네.
“스으으읍……!”
이어서 지팡이에 서린 영혼의 찌꺼기들을 모조리 폐로 빨아들였다.
마력에 의해 추출됐지만 영혼이라는 ‘비물질적인 것’, 백여 구가 넘은 영혼의 영액도 내 조그만 폐 속에 충분히 담겼다. 근데, 너무 많이 담기니 좀 꺼림칙하긴 하네. 그렇게 ‘체력 회복’과 ‘영혼의 영액 축적’에 여념 없을 때-.
“[……!!]”
허공에 천둥 번개를 갈기며 X랄하던 킬가레스가 날 눈치챘다.
나름 녀석 몰래 한다고 <눈>으로 계속 망을 보고 있었는데, 공터 쪽이라서 숨을 곳이 없어서 딱 걸렸다. 그래도 이미 충분히 수확은 끝냈기에 재빠르게 근처 건물로 튀었다. 그런 내 모습에 킬가레스는-.
-콰르르르르릉!
내 쪽을 향해 번개를 흩뿌린다.
오무혁을 향해 쏟아낸 것과는 다른 광범위하게 작렬하는 검은 번개, 그 마법이 내리꽂힌 지점에서 형성되는 ‘전기장판’에 인근 건물 수십 채에 숨어 있던 생명체들이 실시간으로 튀겨진다. 그러면서 놈은-.
“[찢어 죽여주마!]”
지금까지 공중에 떠올랐다는 게 거짓말인 듯이 오무혁을 향해 강습한다. 아마, 날 못 오게 막은 사이에 오무혁을 끝장낸다는 것 같은데-.
“휘유, 고생할 뻔.”
내가 걸친 로브의 <부양> 마법으로 지면에서 떨어지는 걸로 간단히 해결했다. <비행> 마법만큼은 아니지만 정말 좋단 말이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은 후, 난 감전을 감수하며 발로 살짝 지면을 박찼다.
“으윽.”
풍선처럼 밀려나는 몸, 그와 함께 전신이 ‘쩌릿쩌릿’하지만……. 짧은 시간 닿아서 그런지 버틸만하다. 게다가 투구가 전해 준 ‘생명의 힘’은 아직도 몸을 돌면서 그 얼마 없는 타격도 빠르게 호전시키고. 그렇게 약간의 고통을 감내하며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MA-LUN-TA!”
<액체 질소 대포> 마법을 사용했다.
주위의 공기를 일정 시간 빨아들인 후, 구체로 만들어 압축해 방출하는 마법. 하지만, 룬문자의 한 부분을 건드려서 일부러 뭉쳐서 축적하는 부분에 균열을 만들었다. 한쪽이 깨진 구체의 형상으로. 그렇게 빨려 들어간 기체는 제대로 뭉치지 못하고 한 방향으로 다시 나왔고-.
-푸우우우!
나는 추진력을 얻어 전기장판을 뚫고 격전의 한복판을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