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2화
10.
내리꽂히는 킬가레스의 모습을 보며 오무혁은 그 타이밍을 쟀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이 상대해 봤기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도가 텄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안쪽에선 선팅된 유리처럼 반대편이 보이는 방패를 든 채, 오무혁은 적당한 타이밍에-.
-콰아아아악!
방패에 흡수시켜 뒀던 검은 번개를 방출하고 옆의 건물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지상의 생명체를 없애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과한 위력, 지옥의 악마에게 <악마술> 마법은 그 위력은 반감되지만 그래도 ‘타이밍’을 빼앗기엔 충분했다. 작렬하는 순간, 킬가레스의 주의가 끌렸고 떨어지는 속도는 급정거하기엔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ꡔꡗꡜ!]”
그 찰나의 순간에 킬가레스는 지옥어 염파를 내뱉는다.
킬가레스의 왼손바닥에서 튀어나온 반투명한 노란 손아귀들이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가는 오무혁을 향해 날아간다. 그에 오무혁 또한 곧바로 방패에 마력을 불어넣어 자신을 따라오는 마법을 빨아들였다.
-스하하하……!
소모되는 마력의 양을 보니 그리 강하진 않은 공격, 마법을 받아내며 오무혁은 방향을 통제하지 못하고 도로 쪽에 내리꽂히는 킬가레스를 응시했다. 이제 놈이 취할 수 있는 건-.
-투-웅!
바닥에 꽂히기 직전, 킬가레스가 둔기를 휘두른다.
그 거대한 철퇴가 돌연 빛나며 킬가레스의 몸이 ‘관성과 물리법칙’을 무시한 채 덜컥 멈춰 선다. 철퇴의 힘과 질량은 물론 급강하의 위치 에너지까지 포함한 <역장 강타>가 오무혁을 향해 쏘아진다.
-투콰아아아앙!
이전에 쏘아대던 것보다 더 빠르고 강한 일격, 하지만, 이미 망치로 포탄 같은 걸 쏘아내는 걸 오무혁은 이미 봤다. 망치가 빛나면 피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움직였기에 간신히 스치듯이 피해냈다. 철구가 날아간 것처럼 벽을 터트리고 건물 7~8채를 박살 내는 역장, 이전에 쏘아 내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위력이다.
그래도 여기까진 어느 정도 ‘예상 범위’ 내였지만-.
[뭔!?]
킬가레스가 관성을 무시한 채로 ‘급정거’하는 것은 오무혁의 예상을 넘어섰다.
하늘에서 망치로 역장을 쏘아내는 것을 봤지만, 그 마법의 진정한 효과는 몰랐기에 벌어진 계산 미스, 지면에 처박혀야 할 킬가레스가 아주 부드럽게 아스팔트 바닥을 박차며 돌진한다. 3m가량의 거대한 덩치, 역장 포탄에 박살 나 커진 입구도 놈의 체격엔 작았으나-.
-콰앙!
그 육신과 닿는 순간, 스티로폼처럼 사방으로 튕겨진다.
오무혁의 예상보다 거의 두 박자는 빠른 진행, 다급하게 방패에 흡수한 마법을 킬가레스에게 뱉어 냈으나 허무하게도 그 몸에 닿자마자 흩어진다. 그렇게 접근하면서 킬가레스는 양손으로 거대 철퇴를 움켜쥐었다.
-쿠드드드득!
그리고 전력을 다해 오무혁이 치켜든 방패를 후려쳤다.
마치, 야구 배트를 휘두르는 것 같은 형태. 이전에 일격은 뒤쪽의 해골 대가리를 신경 쓰느라 동작을 그리 크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거침이 없었다. 오무혁 또한 전력을 다해 자신에게 내리꽂힌 물리력의 방향을 마력과 방패의 기울임으로 비스듬하게 바꿔 냈지만-.
-퍼엉!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몸이 붕 떠올라 건물 벽을 박살 내며 옆의 건물로 파고들었다.
그에 킬가레스는 쉴 틈을 주지 않고 날개를 한 번 활짝 접었다 펴며 <비행> 마법의 보조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시 돌진한다. 전신이 으스러진 감각에도 오무혁은 피를 쫘악 토한 후에,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이미 방패를 쥔 왼팔의 뼈는 아예 조각났다.
-캬하하하!
-깔깔깔!
킬가레스의 왼손이 빛나고 기괴한 마력의 덩어리들에 오무혁을 향해 날아간다.
부러진 왼팔을 들어 방패로 마법을 흡수했다. 흡수하는 데 들어가는 마력의 양을 보니 또 약한 것들, 곧바로 방출했지만 킬가레스에겐 흠집도 안 간다. 함부로 강한 마법을 갈겼다가 흡수당하면 골치 아프기에 킬가레스 또한 일부러 보조적 마법만 사용하고 있었다.
굳이 마법으로 죽이지 않아도 충분했다.
“[죽어라! 거짓된 우상아!]”
-콰앙! 콰앙! 콰앙!
거대한 철퇴를 양손으로 잡고 킬가레스는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폐건물이라지만 콘크리트에 철근을 놓고 단단히 굳힌 기둥이 일격 터져나간다. 그에 뒤로 튕겨 나가듯이 빠지면서-.
-텅!
오무혁은 방패를 벗어던지며 포션을 들이켰다.
대방패를 이용한 방어-후반격이 전투 스타일인 오무혁이었지만, 망가진 손으로 다루기엔 커다란 방패는 너무 크고 거추장스러웠다. 이어서 재빨리 왼손의 뼈를 대충 맞춘 뒤, 오무혁은 도끼를 양손으로 쥐었다.
[후우.]
한 손으로 휘두르던 핏빛 도끼, 원래부터 양손으로 들기 걸맞은 크기였고 한 손으로 들 정도로 가벼웠기에 부담이 없었다. 이어서 오무혁은 피하는 대신에 당당함을 의태하며-.
[우오오오!]
킬가레스를 향해 뛰어들었다.
좀 싸워 본 바, 킬가레스는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상태에선 마법을 난사했지만. 철퇴로 으깰 정도로 근접해 있는 순간엔 ‘으스러트리겠다!’는 충동에 잠식되어 마법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철퇴부터 휘둘렀다.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방패가 없는 이때, 킬가레스가 마법과 둔기를 연계하면 순식간에 으스러질 터. 오무혁으로선 어쩔 수 없는 도박이었으나-.
“[크, 크흐하하하!]”
킬가레스는 오무혁의 생각대로 녹색으로 불타오르는 눈을 빛내며 웃더니 철퇴를 휘둘렀다.
-쾅! 쾅! 콰드드득! 쾅!
전쟁 군주들 수준에선 둔중하고 느렸던 철퇴, 하지만 악마화가 된 킬가레스의 철퇴는 전쟁 군주 기준에서도 무시무시한 빠르기가 되었다. 그나마 커다란 몸의 사전 동작을 읽기 쉬워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순식간에 으깨졌을 거다.
“[약해! 약해! 너무나도 약해!! 지상에서도 꼭 쥐새끼 같구나!]”
[악마가 되는 것보단 낫지!]
완급 따윈 없는 강공 일색의 폭풍, 오무혁은 전력을 다해 이리저리 뛰며 피해 냈다.
어찌어찌 건물 안의 철근콘크리트 기둥을 이용해 치명적인 일격은 피해 내고 있지만, 터져나가는 콘크리트 폐석덩이들과 철퇴에서 흐르는 지옥의 불똥이 전신을 난타했다. 갑주의 튼튼함으로 버텨 냈지만 만신창이 상태에선 큰 충격, 그렇게 오무혁이 하나둘씩 요리조리 피했지만-.
-콰앙!
킬가레스 철퇴는 기어코 중앙의 기둥을 우직하게 박살 내며 그 너머의 오무혁을 맞췄다. 몸을 뒤로 움직이는 상태에서 갑옷으로 최대한 받아 냈지만 그 철퇴에 스쳐 오무혁은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킬가레스의 어깨너머 뒤쪽을 보며 씨익 웃었다.
“[……!?]”
그 모습에 악마의 광기에 젖어 가던 킬가레스의 정신이 순간 냉정하게 돌아온다.
시르카그의 잔재, 그 한구석에 있는 ‘절망과 공포’. 그 감정을 일부 이어받은 킬가레스는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전과 같은 블러핑일 게 뻔했지만 반사적으로 감각이 뒤로 쏠렸고-.
“[……!!]”
블러핑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눈으로 보진 않았어도 악마의 감각이 밖에서 진짜로 뭔가 급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줬다. 너무 시간을 끈 것일까? 철퇴로 으스러트리고 싶다는 충동을 억제하며 킬가레스는 오무혁을 끝장내기 위해 왼손을 뻗어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쿠르르르……! 쾅!
“[뭔?!]”
포탄처럼 날아온 <역장 강타>에 안쪽의 기둥 너덧 개가 박살 났을 때부터 위험한 소음을 내던 건물. 거기에 오무혁이 계획적으로 유인해서 기둥을 부쉈기에 폐건물은 결국 스스로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그걸 의도하고 오무혁은 타이밍에 맞춰서 철퇴에 맞아 건물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그렇게 자욱한 콘크리트 먼지와 함께 수백 톤의 하중이 킬가레스를 짓눌렀지만-.
“[우오오오!]”
그는 자신을 짓누르는 폐석을 터트리듯 헤치며 허겁지겁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해골 대가리의 괴물에게 붙잡히면 안 된다는 필사적인 일념(一念)하에. 다행히, 해골 대가리가 도착하기 전에 그는 순식간에 100m가량을 떠올랐다.
“[모두! 이제! 죽어라!]”
아래에 벌레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적들을 향해 다시 마법을 퍼부으려는 순간, 달려온 해골 대가리 놈이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벌린다. 관자놀이까지 길게 쩌억 벌려진 해골 악귀의 모양의 투구, 그 안쪽에서-.
“JAR!”
-푸화아아악!
힘찬 괴성과 함께 그 아가리에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시커먼 것이 날아와 킬가레스를 때렸다.
“[!!]”
그에 킬가레스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공격했을 때 사용했던…… ‘소환수의 재료’, 이미 물질적인 형태를 거의 벗어던진 그였지만 이 타르 덩어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정말 끔찍했다.
악마도 진저리칠 만큼의 ‘끔찍한 살의’
악마가 되어서 감정이 민감하게 돼서 느끼는 것이지만 이건 자신이 저 거짓된 존재에게 느끼는 ‘살의’ 그 이상의 추악하고 질척한 감정이 담겼다. 게다가 이 물질의 양이 심상치 않았다. 곧바로 모든 힘을 갑옷에 불어넣으며 날개를 펼쳐 벗어나려 했지만-.
순간, 그 물질들이 일제히 타오르며 강렬한 충격이 그를 덮쳤다.
11.
질이 부족하면 양으로 때우면 된다.
오면서 틈틈이 지팡이로 흡수한 거의 200명분의 ‘영혼의 영액’, 물질화를 하며 자연스레 뱉어 내면 만드는 데 수 분 이상 걸렸겠지만, 용숨결 물약의 힘으로 <녹색용의 포효>를 써서 폐 속에 고였던 것들을 단숨에 뱉어 냈다.
놈이 내 토사물에 직격당하는 순간, <독의 연소> 콤보를 날렸고-.
-!!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폭발이 주위를 뒤덮었다.
거의 100m 밖에서 터진 것이지만 그 폭발의 화염과 충격파가 지상에도 뻗쳤다. 뱉을 때부터 전신을 강화하며 대비하고 있었지만 고막이 기압 차에 박살 나며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나도 그 충격에 휘말려 튕겨졌다. 그렇게 잠시 몇 번 구른 뒤에-.
“후우으으…….”
해골 지팡이를 지지대 삼아 일어서며 숨을 골랐다.
킬가레스가 쏟아 낸 ‘검은 번개 폭풍’ 이상의 위력, 전신이 쑤셨지만 오면서 왕창 시체를 섭취한 덕분에 아직까지 몸이 버티고 있었다. 그에 비틀거리며 <눈>으로 폭발의 안쪽을 관측해보니-.
놈이 추락하고 있는 게 보였다.
갈기갈기 찢긴 오른쪽 날개 피막, 왼쪽 뼈 날개는 부러져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날개뿐만 아니라 갑주처럼 뒤덮고 있는 골격도 많이 부서져 떨어지고, 그 안쪽에서 이글거리는 녹색 불길을 흩날린다. 쇠약해졌지만 저러고도 죽지 않은 게 레전드네.
[쿨럭, 쿨럭…….]
“쓰읍, 괜찮아요?”
[회복하기 전에…… 놈을 죽여!]
빈사 상태로 근처에 쓰러져 있는 오무혁 양반, 괜찮냐고 물어보니 황금빛 안광을 뿜어내며 킬가레스를 죽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품 안에 수제 포션이 남아 있으니 알아서 마시겠지. 어쨌든 그에 재빨리 킬가레스의 숨통을 끊기 위해 움직였다.
“[쿨럭, 크으으……! 어딜……!]”
지상에 추락한 뒤에 철퇴를 지팡이 삼아 비틀거리면서 일어서던 킬가레스. 내가 다가가자 놈은 노호성을 내지르며 불길을 내뱉으려 하고, 그에 아직 혀 안에 남은 <용숨결 물약>을 하나 더 씹었다. 그리고 밀려오는 녹색 화염 숨결을 향해-.
“GAR-LO-JAR!”
<녹색용의 포효>로 단숨에 걷어 냈다.
불길을 뿜어내며 뒷걸음질 치다가 그 충격파에 튕겨지는 킬가레스, 그 꼬라지를 바라보며 장갑에서 꿈틀거리는 <광폭화>의 힘을 받아들였다. 좋아, 이제 마무리로 창을 저 대가리에 꽂아…….
“뎃?”
넣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내 손에 들린 걸 보곤 내가 지팡이를 쥐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비슷한 무게라서 깜빡하고 있었네. 나, 창을 <연금술>로 벨트 형태로 바꿔서 메고 있었지?
……조졌다.
<광폭화>를 쓴 이상, 갑자기 마법을 쓰는 건 큰 희생을 동반한다. <연금술>로 창을 바꾸는 짓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 그렇다고 이 지팡이로 저 괴물을 끝장내기엔…… 너무 약하다. 내 마력으로 강화됐다고 한들 한계가 있어. 악마라서 부가적인 ‘음에너지 공격’ 또한 면역이고.
놈에게 돌진하는 동안, 머릿속이 핑핑 돌아갔다.
빠질까? 아냐, 이대로 빠지면 놈 또한 뭔가 이상함을 느낄 게 뻔하다. 놈이 2:1을 꺼린 건 ‘악마를 단숨에 터트린’ 내 퍼포먼스 때문이다. 그게 반쯤 허세라는 걸 들키는 순간, 승부는 원점이 된다. 아니. 최악의 경우, 내가 뒤로 다 빠지기 전에 눈치 까고 붙을지도 모른다!
그럼 난 뒤진다.
냉정히 말해 내 근접전 실력은 ‘정교함’과 ‘수읽기’ 항목을 빼면 오무혁보다 모든 방면에서 떨어져. 설령, <광폭화>를 했다고 해도 말이다. 상대는 그런 오무혁을 압도적인 피지컬로 몰아치던 괴물이다. 아예 쥐포가 될 거야. 그렇다면…….
“[!!]”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찌르는 대신에 과감하게 왼손을 뻗었다.
그리곤 무분별하게 마력을 쑤셔 넣었다. 마법은 아니지만 마력이 넘실거리는 손, 그에 킬가레스가 기겁하며 거대 철퇴까지 놓고 빠르게 쭉 뺀다. 블러핑이지만 먹혔다!
“도망치지 마세요! 곱게 죽어욧!”
“[꺼져!]”
무기까지 놓고 도망치는 녀석에게 허세를 부리며 계속 달라붙었다. 마치 술래잡기하듯이 왼손은 계속 앞으로 쭈욱 뻗은 상태로, 방어는 도외시한 미친 짓거리지만 오히려 그게 놈에겐 더 섬뜩한 듯했다.
그래. 설령, 놈과의 근접전이 성립하지 않더라도 그게 ‘내가 피한 걸로 되면’ 안 된다.
내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뒤의 수 싸움을 생각해서라도. 녀석이 날 성공적으로 떨쳐 낸 그림이 되는 게 좋다. 고작 1~2m 남짓한 거리, 골목이라서 제대로 속도가 나지 않자 킬가레스는 거추장스러운 오른쪽 날개를 스스로 뜯어내서 부피를 줄이며-.
“[내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거칠게 휘두른다.
저래도 담긴 힘을 보아하니 맞으면 내 사지가 터져나갈 수준, 그 궤적을 <눈>으로 예측해 내 몸에 닿을 수 없는 범위까지 벗어났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자 놈은 여유가 생긴 듯, 내게 뜯어낸 날개를 내던지고 왼손을 뻗어-.
-낄낄낄!
-하하하하!
각종 <악마술>로 비롯된 디버프 마법을 난사한다.
심각하게 다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이 줄어든 탓인지 이전의 것에 비하면 약하다. 어쨌든 빠르게 쏟아지는 마법들을 피해 주위의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폴짝폴짝 뛰며 내달렸다. 나름 자연스럽게 날 따돌리며 대로 쪽으로 빠지는 킬가레스, 성공적으로 내쫓아냈다 생각하며 몸 안의 <광폭화>의 기운을 억제했는데-.
[어딜 가나!]
내 사정을 모르는 오무혁 씨가 도끼를 양손으로 쥔 채 폭발적으로 따라붙었다.
우리가 있는 위치를 파악하고 지름길로 달려온 상태, 내가 뭐라 말리기도 전에 만신창이란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맹렬하게 킬가레스에게 돌진한다. 그에 킬가레스는 맨손으로 오무혁과 맞서 싸운다. 그러면서도 내게 시선을 맞추고 뒷걸음질로 공원을 향해 쭈욱 빼면서-.
“[세로쉬의 이름 아래 신실한 성도들아! 저놈을 막아!]”
부하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염파를 내뱉는다.
하지만, 오크 부하들은 딱히 반응하지 않는다. 당연한 반응이지, 킬가레스와는 달리 다른 오크들은 오혜영의 신성한 분위기에 압도당했으니까. 하지만, 부하들이 돕지 않는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놈이 밀리고 있지만 뒤따라 붙는 나를 피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뿐.
사실, 두 사람 모두 비등하게 만신창이다. 아니, 둘이 제대로 붙으면 오무혁 양반이 으깨질 거야. 잠깐이지만 <광폭화>를 쓴 부작용이 내 몸을 짓누른다. 서서히 벌어지는 거리 격차, 그냥 저대로 보내면 뒈질 텐데…….
“……?!”
그렇게 탈진 상태에서 죽어라 달리면서 속으로 갈등하고 있는데, 문득 놈이 뒷걸음질 치는 뒤쪽에 깔린 하프 오크들의 시신이 보인다.
“……에라이, X발!”
그에 도박하는 심정으로 <도르낙의 시체 수렁>을 사용했다.
이미 한 번 사용해 봤고 지팡이의 보조를 받았기에 마법은 성공적으로 완성, 지팡이에서 시커먼 에너지 덩어리가 포탄처럼 뻗어져 나가 뒤쪽에 너부러진 하프 오크들의 시신에 내리꽂힌다. 이어서 순식간에 적중당한 시신들이 ‘푸확!’하고 작게 폭발했고-.
“[!?]”
뒤쪽에서 느껴지는 심상찮은 기색에 킬가레스가 흠칫했지만 이미 만들어진 ‘독기의 늪’에 한쪽 발이 빠졌다. 동시에 내 마법의 대상이 된 해골이 튀어 올라 뒤에서 킬가레스의 얼굴을 끌어안으며 시야를 가린다. 순간, 균형을 잃고 킬가레스가 뒤로 넘어지는 가운데-.
[죽어라.]
붉은 궤적이 그의 목을 베어 갈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