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4화
58화. 일이 끝난 후에 (1)
1.
오혜영은 꿈을 꾸었다.
그 생생함은 별개로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개꿈이었다. 꿈에선 미르에서의 동아리 동료-한새벽이 등장했는데, 그 비리비리한 계집애처럼 변한 놈이 무기를 잘 다루는 무시무시한 실력자로 나왔다.
그것뿐인가?
보기만 해도 짓눌릴 것 같은 신성함을 온몸에서 뿜어내는 오크 전쟁 군주도 등장했다. ‘킬가레스’라는 그놈은 자신과 동포들을 역겨운 존재들이라고 매도했는데, 아마 그동안 오크들에게서 당했던 것들이 꿈에서 울분으로 표현된 듯싶었다.
그 꿈에서 놈에게 한 번 죽었지만……. 개꿈답게 곧 부활했다.
거기서, 그녀는 돌연 오무혁이 되었다. 지상의 인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양부(養父)가 된 그 다분히 정치적인 새끼가. 가끔 지상에 부녀 사이로 얼굴을 비출 때 어색하게 웃음을 짓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랐는데 참 기묘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소망이 투영됐는지도 모르겠다.
꿈에서 나타난 ‘킬가레스’라는 존재에게 대항할 만한 ‘사람’은 그녀가 아는 이상 오무혁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그녀가 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한 자였다. ‘유혈의 거인’ 같은 것도 봤지만 그건 애초에 사람이 아니었고.
그 비리비리한 동아리 선배와 함께 그녀는 악마로 변한 킬가레스와 맞서 싸웠다.
절망적일 정도로 강했지만 그녀가 주인인 꿈속답게 승부는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그 최후의 순간에 그녀는 악마로 변한 놈의 대가리를 잘라버렸다. 그렇게 동포와 자신을 모욕한, 꿈에서라지만 동포들을 학살한 놈을 죽여버렸다. 아주 통쾌하게.
그 뒤에 있었던 것들은 개꿈답게 개연성이라곤 1도 없는 일들이었다.
자신이 킬가레스를 부활시키고 다른 오크들에게 명령해 그를 그대로 미궁으로 되돌려 보냈다. 웬 오크 기사가 돌연 나타나서 자신에 관한 걸 물어봤는데, 그 과정에서 오무혁으로 변한 자신이 자신은 사실 오무혁의 딸이라고 말했다.
그에 살짝 웃음이 나왔다.
꿈이란 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것, 어쩌면 자신의 마음 한켠에는 권력자에 기생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저 카리스마 넘치는 저 존재가 ‘자신의 진짜 아버지라면 얼마나 편했을까?’하는 생각도 했으니까. 해석도 필요 없는 개꿈 중의 개꿈이었다.
“흐으으음…….”
살짝 몸을 움직이니 온몸이 뻐근했다.
회복 중일 때의 근질근질함, 살짝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뜨자 침대 옆에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는 쬐그만 형상이 보인다. 좀 지치고 초췌한 얼굴이지만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백발 소년, 의자에 앉아있던 그는 그녀가 일어나자 고갤 돌려 바라본다.
“오늘만 두 번째네요. 잘 일어났나요?”
“……새벽 오빠?”
“넵.”
고갤 끄덕이는 한새벽, 이곳에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의 모습에 오혜영은 멍하니 두 눈을 끔뻑였다. 꿈속의 모습과 똑같은 복장, 그럼 여긴……. 또 꿈일까? 그런 그녀의 모습에 한새벽이 양손을 들어올린다.
“정신 못 차린 것 같은데, 이번에도 꼬집어드려요?”
“어, 어어? 아, 아님다.”
꿈속에서도 정신을 못 차려서 양 뺨을 꼬집혔지. 살짝 스스로의 뺨을 꼬집어봤다. 얼얼한 통증, 아무리 봐도 진짜다. 꿈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한새벽이 현실에 있는 상황, 그럼 도대체……. 자신이 꿨던 것은 무엇이지?
“저 꿈을 꿨슴다.”
“어떤 꿈이에요?”
“아주아주 개꿈. 아니, 글쎄 동포를 모아서 아이들을 구출…….”
꿈의 첫 내용을 말한 순간, 돌연 ‘무거운 현실감’이 오혜영을 짓눌렀다.
몽롱하던 정신이 곤두서며 정신을 잃기 전의 기억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래, 이곳은 자신이 세운 고향 마을이었고 그곳을 점거한 약탈자들과 싸웠다. 놈들이 쏘는 총에 맞아서 골골대다가……. 그 뒤부턴 말이 안 되는 개꿈의 내용과 이어졌다.
-벌떡!
“혜영 양, 좀 더 쉬…….”
만류하는 한새벽을 뒤로한 채, 오혜영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걸을 때마다 전신이 삐걱였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텅 빈 마을 공터, 이전의 바글바글함과 활력이라곤 보이지 않는 죽은 풍경이었다.
“……아니, 아니야. 누구 없어!? 말 좀 해봐!”
무덤같이 조용한 진실에 순간 압도됐지만 오혜영은 강렬하게 부정했다. 그리고 목이 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를 내질렀다. 돔형으로 된 거주지가 그녀의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어, 대장!”
“깨어났구나!”
5층 거주지의 복도에서 하프 오크 몇 명이 화답했다. 무장한 채로 손을 흔들고 있는 4명, 그에 창백하게 질려있던 오혜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그래, 어디까지 꿈이고 현실인지 모르겠지만 그 개꿈이 모두 현실일 리 없다.
“하, 하하하. 그래. 꿈일 수밖에 없지! 야, 애들은 다 어디 갔어?”
“어, 그…….”
쾌활하게 묻는 오혜영에 말을 흐리는 부하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오혜영은 저 위에서 보이는 얼굴들이 자신이 꿈속에서 마을에 남겨뒀던 애들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렇게 오혜영이 다시 굳어버리고 위에 있는 부하들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가운데-.
-펄럭.
“여자애가 남사스럽게 속옷만 입고 가면 어떡해요?”
누군가 그녀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준다. 고갤 돌려보니 한새벽, 꿈속에서처럼 누더기 로브의 후드 아래에 악귀의 해골을 뒤집어쓴 모습의 그를 향해-.
“……진짜임까?”
오혜영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했다. 꿈을 꾼 것처럼 흐릿한 기억, 거기서 자신을 제외한 애들은…….
“사, 살아남은 애들은…….”
“없어요. 한 명도.”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고갤 젓는 선배, 그에 오혜영은 침묵했고 선배는 담담히 말을 이어나간다.
“그래도 혜영 양이 유도한 대로 하프 오크에 대한 누명은 거의 다 벗을 거예요. 아무도 반박 못 할 아주 큰 공을 세웠으니까요.”
“어디까지 사실임까?”
멍한 얼굴로 오혜영은 한새벽을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아무리 생각해도 개꿈이었다. 자기가 죽었다 부활했다고? 물론, 남궁진아-그 재벌집 아가씨가 자신이 부활했다고 한번 호들갑을 떨었었다. 하지만, 기적이 벌어졌을 당시에 그녀는 다른 모든 오크들과는 달리 모이지 않았고 결국 패닉에 빠진 헛소리로 취급되었지.
“부활한 것? 무르굴이 되었던 것? 킬가레스에 관한 것? 그놈을 살려서 보냈다는 것? 제가…… 그 무르굴의 친자라는 것?”
“사실이에요. 모두 다.”
담담히 사실이라고 말하는 한새벽, 그에 오혜영은 덜덜 떨며 입을 열었다.
“그럼, 새벽 오빠에게 목걸이를 보낸 사람은…….”
“이미 눈치채셨잖아요.”
-털썩.
다리에 힘이 빠지는 느낌에 오혜영은 자연스럽게 주저앉았다.
자신이 주저앉은 마을의 바닥을 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퇴적암을 깎아서 만들어낸 바닥, 이 모든 것이 그녀와 자신의 형제·자매들이 직접 만든 거였다.
하지만, 그 동포들은 더 이상 없다.
우그 타람에 있는 애들이 꽤 있지만 이곳에 돌아올 리가 없다. 그래도 ‘쓰레기 처리장’은 돌아가야 하니 다른 이들이 여길 차지하겠지. 배척받은 동포들의 안식처들은……. 더 이상 없었다. 근데, 그 모든 것을 꾸민 놈은 멀쩡히 살아서 돌아갔다.
심지어, 이미 한번 죽었는데도!
“……웃기지 마.”
손을 뻗어 자신의 목에 걸린 차가운 목걸이를 손에 쥔 그녀는-.
“웃기지 말라고!”
분노하며 그 족쇄를 내동댕이쳤다.
2.
“……웃기지 마.”
“…….”
“웃기지 말라고!”
심상찮은 절규와 함께 뜯어낸 목걸이를 세차게 내던지는 혜영이. 그 광경을 보며 난 옆에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왠지 이럴 것 같아서 마을에 오자마자 쉬지도 않고 혜영이 옆에 앉아있었는데……. 역시, 멘탈이 왕창 깨진 것 같았다.
그렇게 텅 비다시피 한 마을 공터에서 혜영이는 계속해서 절규한다.
“성자?! 구원!? X발, 왜 그놈을 살려주는 건데!!”
“…….”
“차라리 내 형제 한 명이라도 살려주지! 왜! 왜! X발, 우리들의 핏값은 죄도 아닌 거야?!”
“…….”
“빌어먹을 오크, 빌어먹을 핏줄! 엿이나 처먹어! 죽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다 죽어!!”
평소에 느긋하고 대인배처럼 ‘하하!’ 웃던 혜영이는 없었다. 자기 빼고 사실상 다 죽었는데 저럴 수밖에.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원망과 저주를 쏟아내는 혜영이, 손가락뼈가 으스러질 기세로 바닥을 후려치는 혜영이를 향해-.
“손만 아플 뿐이니까 그만하세요.”
지팡이를 뻗어 자해를 멈추게 한 뒤, 내던져진 목걸이 쪽으로 걸어가 주워서 내밀었다.
“받아요.”
“필요 없슴다. 킁, 치우십쇼.”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쌀쌀맞게 대꾸하는 혜영이를 향해 난 고갤 저었다.
“오크들의 성자가 축성한 강력한 유물이에요.”
이어지는 내 말-‘오크의 성자’에 폭발하려는 것을 재빨리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혜영 씨 친아버지의 선물이기도 하고요.”
“…….”
“후후, 부럽네요. 친부모님에게 이런 선물도 받아보고? 전 부모님의 얼굴도 모르는데 말이죠.”
말하면서 살짝 과장되게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자 혜영이가 살짝 움찔한다.
내가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알기에 저런 반응을 한 것이겠지. 역시, 이전부터 느꼈던 것이지만 애가 참 착하다. 뭐, 사실 난 딱히 감흥도 없지만. 우리 부모님, 다른 세계의 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계시거든. 이름과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말이지.
그렇게 폐륜 가불기를 걸려서 뭐라 대꾸 못 하는 혜영이를 향해 난 피식 웃었다.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
“어렸을 적엔 그랬을지 모르지만, 기억을 상실해서 하나도 없어요! 딱히 감흥도 없죠. 진정하라는 의미해서 그냥 해본 말이랍니다.”
여전히 뭐라 대꾸하지 못하는 혜영이. 어쨌든 진정된 게 확실하기에 난 손에 쥔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오무혁. 그 양반이 혜영 씨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잘 알아요. 제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거든요.”
“…….”
“아니, 유령이나 다름없는 주제에 제 목에 폭탄 들이밀고 협박했다니까요? 자기 딸내미 살아있으니 구하러 가라고?”
그래, 폭탄 목걸이로 만들어서 날 협박했지. 쓰게 웃으며 난 혜영이를 향해 고갤 끄덕였다.
“물론, 혜영 씨가 분노하는 이유는 알아요. 자신을 학살한 놈을 오무혁 씨가 되살렸죠. 그것에 분노하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에요. 하지만……. 성자조차도 어쩔 수 없다는 일도 있답니다.”
“…….”
“제가 보기에 그도 나름 최선을 다했어요. 당신을 아꼈고요. 자기가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반푼이들의 대장이 됐다고, 자기와 그 여자를 많이 닮았다고 얼마나 자랑하던지……. 에휴, 생전에나 그런 말을 하지 원.”
살벌한 러브스토리는 하지 말아야지.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는 편이지만 그건 넣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아. 바닥에 주저앉은 혜영이가 계속 침묵하는 가운데, 난 그 목걸이를 손수 그 목에 다시 걸어줬다.
“이 목걸이는 혜영 씨만을 위한 거예요. 다른 이들에겐 착용해도 아무런 효과가 없죠.”
“…….”
“이걸 착용할 시, 전투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오무혁 선생님 수준이 될 때까지 매우 빠르게 성장할 거예요. 게다가 착용한 다른 장비들이 때때로 축성을 받아 강력해진답니다? 그런 기능 말고도 다른 체력 회복이나 투사체를 막는 효능도 있고.”
“…….”
“아마, 이걸로 점점 경험을 쌓으면 ‘전쟁 군주’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그 킬가레스라는 놈에게도 당당히 정면에서 칼찌를 먹여줄 수도 있겠죠. 다른 누구의 힘을 빌려서가 아닌 혜영 씨 본연의 힘으로.”
내 마지막 말에 혜영이의 눈빛이 달라진다. ‘까득!’ 이를 갈며 손을 뻗어 내가 걸어준 목걸이를 꽈악 쥐는 혜영이, 하지만 방금 전처럼 벗어던지지는 않는다. 그러곤 살짝 눈가가 빨개진 얼굴로 날 올려다본다.
“새벽 오빠, 오빠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누구긴요. 그냥 동아리 선배지, 혜영 씨 술친구이기도 하고요. 오무혁 씨한테 부탁받은 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요.”
살짝 허릴 숙여 주저앉아있는 혜영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난 빙긋 웃었다.
“저도 이만 쉬러 가봐야겠어요. 많이 움직여서 피곤하거든요. 아, 다른 사람들에게 제가 찾아왔단 거 비밀입니다?”
“…….”
“아, 그리고 미르에 출석해요! 다른 애들이 다 걱정하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난 뒤 난 몸을 돌려 근처의 빈방으로 향했다. 전투로 인해 혹사된 머리, 이건 좀 자야 풀린다. 다시 올라가기 위해선 자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털레털레 걸어가는 도중에-.
“음?”
“…….”
웬 오크들과 마주쳤다. 뼛가루처럼 창백한 피부의 거대한…… 오크. 전쟁 군주 모르칸쉬다. 그 옆에는 오크 기사님이 서 있는 모습, 모르칸쉬가 날 바라보는데 표정이 묘해진다. 내가 쓴 투구를 확인하고 이어서 손에 착용한 뼈 장갑을 확인한다.
……생각해보니 당연히 알겠네.
성자가 경고한 위험인물에게 보낸 장비니 말이야. 오크들에게도 내려왔단 게 들켰구만.
“…….”
“…….”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묘한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그……. 왜 여기 있습니까?”
결국, 모르칸쉬가 먼저 떨떠름한 어조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그나마 적대적인지 않은 게 다행인가? 그에 나도 한숨을 내뱉었다.
“방 안에 좀 들어가서 자세히 이야기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