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76화 (276/350)

제276화

5.

사이좋게 일행들과 금괴를 삼등분한 뒤, 난 지상으로 올라갔다.

올라오니 오후 9시가 조금 넘는 시각, 마침 ‘전투 I’ 과목도 끝날 때이기에 곧바로 미르 내 맥도날드로 향했다. ‘전투 I’ 과목의 교관을 맡고 있는 서예린은 수업이 끝나면 일단 식사부터 하거든. 그 식사는 대부분 맥도날드에서 빅맥을 쌓아놓고 처묵처묵하는 것이지.

그리고, 예상대로 서예린이 있었다.

“……?!”

“헤헤, 잘 지내셨어요?”

2층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서예린, 그에 나도 웃어주며 빈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서예린의 앞에 쌓인 빅맥 하나를 집었다. 딱히 먹을 생각 없었는데, 옆에서 먹방을 찍으니 좀 당겨. 게다가 깨어나고 아무것도 안 먹어서 슬슬 배고프기도 하고.

“…….”

내가 무단으로 집어 들자 서예린은 먹이 뺏긴 강아지처럼 ‘째릿!’하고 쳐다보지만-.

“저도 시켰거든요? 나중에 나오는 제 것 드릴게요.”

“음.”

나중에 나오는 걸로 채워 넣는다고 하니 금세 풀어진다. 그렇게 허락은 얻은 후, 난 빅맥의 포장을 뜯으며 웃었다.

“헤헤, 이런 지상의 음식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요.”

“음음. 동의동의. 미궁에서의 식사, 쓰레기! 지금은 못 먹음!”

내 말에 고갤 주억이는 서예린, 햄버거서 뿜어져 나오는 향긋한 냄새를 맡으며 크게 한입 깨물었는데-.

“……왜 그럼?”

“이거, 상한 것 같은데요?”

맛이 이상했다.

따끈하고 김이 올라오지만……. 뭔가 이상해. 기분 나쁘게 젖은 마분지 씹는 느낌. 고기가 아니라 고기를 흉내 내는 가짜 같다. 지금 보니 냄새도 이상하네?! 재빨리 냅킨에 씹던 걸 뱉고 햄버거를 내려놓자 서예린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가 내려놓은 버거를 들어올린다.

“킁, 킁킁.”

“이상하죠?”

“냠.”

냄새를 킁킁대더니 크게 한입을 베어 무는 서예린, 그러곤 몇 번 우물거리다가 오히려 날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본다.

“멀쩡함. 맛있는 햄버거임.”

“네? 그럴 리…….”

저딴 게 고기라고? 아니, 고기란 자고로 따뜻한 인육. 그 야들야들한 살점 속에 깃든 생기와 미각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

“왜 그럼?”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에 멈칫했다.

그래, 왜 이런지 알겠다. 그 투구, 투구가 내 식성을 바꿔버린 거다. 하긴, 내려가선 밥 대신에 아인종들의 시체를 씹어댔으니 오염될 만하지. 근데, 정신공격은 면역일 줄 알았는데……. ‘식성’까진 안 보호해준다는 건가?

서예린의 질문에 난 한숨을 내쉬며 고갤 저었다.

“그 식인충동 투구를 끼고 다닌 부작용이네요.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내 식성을 건드렸어요.”

“그런 걸 왜 낌…….”

“그래도 되게 잘 써먹었답니다? 시체를 씹을 때마다 고성능 포션을 하나씩 주는 거라. 아, 햄버거 줘요. 적응하려면 먹어야지.”

내가 먹은 햄버거를 돌려받은 후, 눈 질끈 감고 먹었다. 질척한 쓰레기를 먹는 느낌, 텁텁하고 비릿한 게 죽을 것 같다. 지하에 들어갔던 이후로 단 한 번도 음식물을 넣지 않았던 위가 꿀렁거리며 ‘이건 음식이 아니야!’라고 외치며 토해내려 하지만-.

“크흐, 재활 힘들겠네요.”

콜라로 억지로 넘겨버렸다. 내가 진저리를 치자 서예린은 햄버거를 씹으며 입을 연다.

“일은 잘 끝났음?”

“넵, 잘 끝나서 이렇게 나왔죠. 혜영이도 구출했고요. 이틀 동안 한숨 자고 나온 건데, 혜영이는 그동안 안 나왔나 봐요?”

“안 나옴. 동아리방 단톡에도 연락 없음.”

입이 쓰다.

아직 동포들이 몰살당한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네. 아니, 뭔가 조사를 받고 있을 수도 있겠네. 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갤 젓자 서예린은 썰을 풀어보라는 듯 턱짓하고, 그에 천천히 그동안의 말을 풀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전리품에 대한 것도 나왔는데-.

“그 거대 쥐쟁이가 썼다는 칼들, 정확히 어떤 거임?”

내가 가져온 ‘세 자루의 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물욕센서가 작동한 듯, 서예린이 황금빛 두 눈을 빛낸다. 그에 서예린이 쓰던 장검과 단검을 <감정>했었던 결과들을 비교해 보니…….

“예린 씨의 단검은 마법의 사용을 더 좋게 해주는 거라 비교가 애매한데……. 장검은 훨씬 좋아요. 보통 장비가 아니라 유물급 장비들이라서.”

“……오!”

“근데, 한 자루씩은 못 쓰는 칼이에요. 세 자루를 동시에 착용해야 각각의 부작용이 상쇄되는 구조인데, 한두 자루만 쓰면 부작용이 ‘아주’ 심각해.”

칼의 성능은 아주 흉악하니 좋긴 한데, 세 자루를 동시에 써야 한다는 페널티에 제값 받고 파는 건 포기한 상태다. 어떻게 사람이 3자루의 검을 착용하냐고……. 근데, 서예린은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며 엄지손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괜찮! 세 자루 동시에 착용할 수 있도록 영체를 연습하면 됨. 난 가능함! 염동력으로 띄우면……. 할 만할 듯! 내려가서 함 보여주셈!”

이미 자기 것인 마냥, 햄버거를 씹으며 싱글벙글 웃는 서예린. 뭐, 적당한 값만 쳐주면 서예린에게 주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데, 내가 준 반지 사느라 더 이상 거래품이 없을 텐데 어쩌려고 그러나 모르겠네?

어쨌든 전리품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난 왼손 약지의 반지를 빼냈다.

“아, 이거 돌려드릴게요. 이거 돌려주러 왔는데 이야기가 딴 데로 샜네.”

“음! 나중에 법사 장비 가지러 오셈!”

내가 되돌려준 ‘유령의 반지’를 끼며 만족스럽게 고갤 끄덕이는 서예린, 이어서 난 그녀의 호주머니를 향해 손을 까닥였다.

“그리고 휴대폰 좀 빌려줘요. 내려가다 폰 잃어버려서……. 단톡방에 생존신고는 해야죠.”

“음음!”

흔쾌히 건네주곤 서예린은 다시 쌓인 햄버거를 처묵하는 가운데, 난 그 옆에서 톡방에 문자를 썼다.

[나] : 다들 잘 지냈습니까? 한새벽입니다. 오늘 밖으로 나왔는데, 휴대전화 잃어버려서 예린이 폰 빌려서 보냅니다.

[이영] : 진짜임?

[이경] : 쓰는 말투가 예린 언니 말투는 아니네요.

[지아라] : 어떻게 됐냐? 소식은?

[나] : 넵. 일단, 오늘 의뢰한 오크 기사님에게 혜영이 소식 들었습니다. 혜영이 살아있는데……. 좀 안 좋은 일을 겪었더라고요.

[지아라] : 뭔데?

[나] : 요즘 뉴 송파구 분위기 흉흉하잖습니까. 하프 오크 마을에 유입 오크 습격자들이 와서 동포들이 엄청 많이 죽었다나 봐요. 거의 몰살 수준인데, 다행히 혜영이는 몸 성히 살아남았다고 하네요.

[지아라] : 하아, 맙소사…….

[이영] : 그나마 다행인 듯.

-913번 손님, 주문하신 메뉴가 나왔습니다.

소식을 올리자 안도의 메시지가 쏟아지는 동아리 톡방. 주문한 햄버거도 나왔겠다, 스마트폰을 반납하고 햄버거 세트를 픽업해왔는데, 액정을 보던 서예린이 돌연 다시 내게 폰을 건넨다.

“왜요?”

“너에게 문자 옴.”

액정에 떠있는 것은 마빡이와의 개인 톡방, 위에 톡 내용들을 보니 내가 없는 동안에 둘이서 떡볶이 맛집 하며 많이 왔다 갔다 했구만? 어쨌든 그곳에 내게 온 톡이 있었다. 그에 나도 폰을 받았다.

[남궁진아] : 야, 너 진짜 한새벽임?

[나] : 넵. 진짜임. 트루.

[남궁진아] : 근데, 왜 예린이 곁에 있음?

[나] : 지금 막 뉴 송파구 나와서 연락하려는데, 가장 가까운 게 예린이였어요. 얘, 전투 I 과목 끝나면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몇 개씩 조지는 게 루틴이거든요. 가까우니 바로 갔죠.

내 답변에 잠시 톡이 없는 아가씨, 근데 좀 추궁하는 어조네. 아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네? 내가 없을 동안 싸장님네도 방문했다고 했잖아? 너무 간섭이 심한 게 아닌가 생각하던 도중에-.

[남궁진아] : 야. 나랑 술이나 먹자.

[남궁진아] : 예전에 먹었던 곱창집으로 나와라.

[나] : 저 밥 먹어서 배부른데요.

[나] : 진아 씨?

속사포처럼 연거푸 톡을 써 내리는 아가씨, 나중에 내가 쓴 톡은 읽음 표시도 안 뜬다. 뭐, 어차피 오늘은 싸장님 말대로 밖에서 지인들이나 만나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거 너무 무례하네. 어떻게 자기 말만 쓱 하고 무시하냐.

한숨을 내쉬고 스마트폰을 되돌려주자 서예린이 조심스레 물어본다.

“왜 그럼?”

“아니, 아가씨가 제 사정은 듣지도 않고 다짜고짜 술이나 한잔하자고 해서요. 그냥 만나려고요.”

“…….”

“거참,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진짜 제가 자기 노예인 줄 아는 건가요? 아니, 제가 없는 동안 지하 공방까지 내려왔더라고요?? 싸장님 말로는 제가 진짜 있나 없나 확인한 것 같다고 하고……. 그걸 또 어디서 들었는지 원.”

내 푸념에 서예린이 돌연 사고를 저지른 강아지처럼 내 얼굴을 스을쩍 피한다. 딱 봐도 자진 신고하는 반응에 난 눈가를 좁혔다.

“……예린 씨가 말했죠?”

“난 모름.”

시선을 피한 채, 아니라고 부인하면서 이젠 감튀를 열심히 처먹는 서예린. 그렇게 시선을 피하나 싶더니……. 돌연 멈칫하곤 기묘한 표정으로 날 째려본다. 방금 전의 찔리는 표정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왜요. 사람 기분 나쁘게.”

“……아님. 아무튼 잘 만나고 오셈.”

그 묘한 반응에 좀 꺼림칙했지만 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난 뒤에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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