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0화
“아니, 아라 씨! 그만하…….”
아가씨가 어떻게 폭력 사태는 막아보려 하지만, 혜영이는 맞은 아래턱을 쓰다듬더니 이내 ‘흐.’하는 코웃음을 흘리곤 지아라를 향해 달려들어 그래플링을 걸듯이 껴안는다. 그러곤 뒤로 메치기를……!
-콰득! 쾅!
“아니, 너희…….”
“말리지 마세요.”
아가씨가 다급하게 끼어들려 했지만 근처에 있던 반귀쟁이들이 오히려 말리며 떼어낸다. 그에 나와 아가씨가 바라보자 이경이 대답한다.
“처음엔 이렇게 많이 싸웠어요.”
“…….”
“아마, 괜찮아질 거예요. ‘의견 조율’ 과정이니까.”
그에 멀찍이 탁자에서 일어나 물러선 반깜귀와 서예린도 고갤 끄덕인다. ……거, 미궁 출신들의 사고방식은 확실히 다르구만. 하긴, ‘진짜 살육전’을 경험한 이들에게 이런 주먹다짐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겠네. 그에 나와 아가씨도 물러선 가운데-.
“ᴨᴭᵆᴦᴧ!”
“흥!”
-우당탕!
두 사람의 싸움은 격화됐다.
의자를 잡고 체어샷을 날리는 오혜영, 마법을 써서 바닥 콘크리트를 부수곤 자기 주먹에 두르는 지아라. 지아라는 쌍코피가 터졌고 혜영이는 이빨이 부러지며 광대뼈 일부가 내려앉은 상태다. 그렇게 물건이 날아다니며 동아리방이 ‘작살’나는 가운데-.
“로세툼이시여, 당신의 권능 아래에 붉은 생명이 깃드니.”
이경은 태연하게 창가에 진열한 화분들 중 하나에 가서 ‘신의 권능’을 사용한다.
독특한 미궁 식물을 급성장시킨 후, 그 꽃잎을 따서 가방에서 꺼낸 마법의 약사발로 갈기 시작한다. 독특한 제약 <연금술>, <눈>으로 보니 신의 권능으로 특정 성분을 증폭·성장시킨 식물이 필요하기에 내가 따라할 수 없는 종류였다.
어쨌든 갑작스런 싸움의 최종 승자는-.
“후, 내겐 상대가 안 됨다. 아라.”
오혜영이였다.
양팔이 부러진 채로 바닥에 너부러진 지아라를 향해 빙긋 웃은 뒤, 오혜영은 부러진 어금니를 찾아 붙인다. 그에 이경이 다가와 약사발을 건넨다. ‘나중에 10만 원.’이라고 말하는 것 보면 자주 이런 것 같구만.
“마시십쇼.”
몇 모금 마신 뒤, 바닥에 쓰러진 지아라에게 사발을 내미는 혜영이. 그에 양팔이 부러진 지아라가 먹여달라는 듯이 입을 쫙 벌리자 피식 웃곤 무릎을 꿇어 직접 약을 먹여준다. 이어서 혜영이가 그 부러진 팔을 맞춰주는 와중에 지아라가 입을 열었다.
“야, 오혜영.”
“왜 그럼까?”
“자살하러 가는 것처럼 말하지 마라. 킁!”
코에 고인 핏덩이를 ‘팽!’하고 풀어낸 뒤, 지아라는 오혜영을 향해 퉁퉁 부어올랐지만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간다.
“차라리 ‘반드시’ 해낼 거라고 말해. 진짜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지랄하지 말고.”
“흐, 당연한 거 아님까? 저 죽으러 가지 않슴다.”
그에 오혜영은 피식 웃으며 지아라의 등짝을 후려친다.
“나도 웬만해선 너 따라가고 싶은데 힘드네.”
“알고 있슴다. 비슷한 처지 아님까?”
일반인이 저렇게 대판 싸우면 완전히 사이가 끝날 텐데, 쟤들은 훌훌 털고 서로 웃는다. 역시, 이해할 수 없어. 그렇게 서로 화기애애해지는 모습에 ‘정상인’인 나와 아가씨가 서로 바라보며 고갤 젓고 있을 때, 지아라가 돌연 기억났다는 듯이 내 쪽을 향해 턱짓한다.
“아참, 너 못 들었지? 대박 뉴스 있다. 저 새끼랑 진아 언니랑 사귄단다.”
“……오?”
“믿겨지냐? 저 비리비리한 놈이 재벌가 아가씨를 낚아챘어.”
나와 아가씨의 커플 소식에 주의가 다시 우리 쪽으로 쏠리는 가운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우릴 바라보던 혜영이는 이내 납득된다는 듯이 고갤 주억인다.
“근데, 새벽 오빠 정도면 훌륭한 남자 아님까?”
“……뭐!?”
“아님까?”
오히려 혜영이의 반문에 놀라는 혼혈 아이들, 그에 맞춰서 난 우리 싸장님의 당당한 포즈처럼 허리춤에 양손을 대고 있는 힘껏 흉곽을 부풀렸다. 그래, 나 정도면 훌륭한 남자지! 능력 좋고! 외모 되고! 이어서-.
“나도 미르에 계속 있었으면 고백했을지도?”
“…….”
“…….”
혜영이가 날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그에 묘한 침묵이 감돈다. 은근슬쩍 아가씨와 혜영이 사이에 눈치 보는 아이들. 아가씨가 위기감을 느끼는 눈으로 바라보며 내 옆에 가까이 서자 혜영이는 피식 웃으며 ‘저, 임자 있는 사람은 안 건드림다.’하고 장난스럽게 말한다.
나에게 쏠리는 혼혈 애들의 시선에 살짝 당혹스럽지만 웃었다.
“하, 하하하……. 갑자기 인기가 많네요. 저.”
“…….”
“그, 저도 혜영 양이라면 OK했을지도?”
쏠리는 시선에 엉겁결에 대답했는데, 분위기가 더 가라앉는다. 마, 말을 잘못했나? 그에 아가씨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내 뒤로 가서 목을 팔로 꽈악 감아서 짓누른다.
“야, 지금 바람피우겠다고 선전포고하는 거냐?”
“아, 아아뇨! 아가씨! 그, 그냥 그렇다는 거죠! 저같이 모자란 사람을 수, 순수하게 좋아한다는데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게다가 저렇게 예쁜데.”
“…….”
“제 성향, 성향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나름 내 사정을 아가씨에게 설명했기에 한 변명, 하지만 내 사정을 모르는 혼혈 애들은 각각 ‘어휴, 쓰레기 새끼.’, ‘진아 언니가 아까워요.’, ‘…….(말없이 경멸의 표정)’라는 평을 쏟아냈다. 혜영이는 의외로 그냥 빙그레 웃을 뿐 아무런 말도 안 하고.
그에 아가씨가 내 목을 살벌하게 옥죄며 이를 간다.
“야, 한새벽.”
“네, 네넵?”
“딴 년이랑 바람피우면……. 넌, 그날로 제삿날이 되는 거야. 나는 부당거래는 질색이거든. 응? 내 처음을 줬으니 이제 넌 내 거라고.”
이어진 아가씨의 말에 혼혈 애들-이번엔 혜영이까지 경악한다.
“무, 뭣……!?”
“해, 했어?!”
“정말요!?”
“……!!”
서예린이 팔짱을 낀 채 심각한 표정으로 고갤 주억이면서 ‘첫날, 하루 6시간 동안, 짐승처럼, 체격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것으로.’라는 첨언까지 하자 완전히 뒤집어진다. 쏟아지는 혼혈 아이들의 시선에 우리 아가씨의 얼굴이 달아오른다. 거, 부끄러워할 거면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어쨌든 아가씨는 헤드락으로 거칠게 내 머리통을 옆구리에 끼며 선언한다.
“아무튼! 이건 내 거다! 그러니 넘보지 말 것!”
“켁, 전 물건이 아닌…….”
“아냐! 내 거니까!”
“넵.”
얼굴에 붉은 코피의 흔적이 가득한 지아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썰 좀 말해줘요.’라고 아가씨를 재촉한다. 다른 혼혈 애들 또한 마찬가지. 말은 없지만 찰싹 달라붙어서 반짝이는 눈망울로 재촉한다. 그 쏟아지는 시선에 난 도저히 못 버틸 것 같아서-.
“하, 하하. 남자는 빠질게요. 전 밖에 있을 테니, 마음 편히 걸즈 토크를 하시길!”
“야, 한새…….”
아가씨에게 맡겨놓고 잽싸게 동아리방 문밖으로 나왔다. 아가씨가 살짝 발끈했지만 그래도 따라 나오진 않는다. <눈>으로 안쪽을 몰래 살피니 혼혈 애들의 요청에 못 이기는 척 자리에 앉는다. 그러면서 썰을 푸는데……. 부끄러워하면서도 시시덕거리는 게 보기 좋구만.
“에휴.”
고갤 저으며 난 품 안에서 전자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안 자고 버텨야 하는데 열심히 약물의 힘을 빌려서 버텨봐야지. 그렇게 마약성 성분이 가미된 대마초 오일을 뻐끔거리니 정신이 멍해지며 시간 감각이 무뎌진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끼이이익.
돌연 문이 열리고 혜영이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음, 벌써 이야기 끝났나요?”
“아뇨, 아직임다. 침대 위에서의 새벽 오빠에 대한 썰이 끝나고, 왜 반하게 된 건지에 대해 말이 나오는 중이죠.”
“하, 하하하…….”
하긴, 사랑 이야기만큼 좋은 가십거리가 없지. 그에 난 혜영이에게 고갤 저었다.
“아, 근데 우리 둘만 있으면 아가씨에게 오해 살 수 있으니…….”
“괜찮슴다. 양해 구했고요. 그 새벽 오빠 덕분에 목숨을 구했으니 개인적으로 감사인사를 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리고 이야기할 것도 있고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온 혜영이는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에 대해 말해줬다.
오크 측 말고도 나중에 인간 측의 조사를 받았는데, 그다지 크게 추궁당하지는 않고 잘 끝났다고 한다. 나에 관한 이야기도 물어봤는데, 그냥 모른다고만 대꾸했다고. 내게 개인적인 조사가 들어오지 않는 걸 보면……. 안 들킨 것 같네. 아니면 모르는 척하거나.
그에 고갤 끄덕이며 난 혜영이가 오늘 말한 미궁행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근데, 진짜 미궁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게 가장 빨리 강해지는 방법 아니겠슴까? 혹시 강해지는 데 조언이라도 해주실 수 있슴까?”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저는 좀 특이 케이스라서요.”
혜영이의 질문에 머릴 긁적였다. 강해지는 것에 대해 내가 조언을 하기엔 좀……. 그랬다. 난, 르피너스가 넣어준 <게임 시스템> 덕분에 좀 어처구니없이 강해졌으니까. 그에 혜영이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살짝 망설이는 듯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새벽 오빠?”
“넵?”
“그……. 장비들 남겨주신 거 있잖슴까? 그거…….”
“쓰세요.”
뭐라 하기 전에 선수 쳐서 말했다.
혜영이에게 입혔던 장비들은 그냥 하프 오크 마을에 남겨놓고 왔다. 동포들을 잃고 멘탈이 깨진 혜영이에게 말해서 뺏어가기도 뭣해서. 그런 내 대꾸에 혜영이가 놀라는 가운데, 난 빙긋 웃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 아니. 그것들 굉장한 보물인데, 너무 쉽게…….”
“어차피 밖에선 그다지 쓸 필요가 없거든요.”
대단한 보물이긴 하지만……. 내가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처분하는 것도 힘들다.
너무 눈에 띄지. 칠흑의 용갑주라니! 밖에 나와 봤자 정부 단속에 걸릴 게 뻔해. 불법 마법장비라는 딱지로 압류당할 가능성 99%에 덤으로 내 정체까지 드러날 확률이 높다. 뭐, 그래도 돈이 급하다면 처분해보겠다만 달마다 통장에 꽂히는 1억하고 금괴도 70kg이나 있다. 난 이미 부자야.
그런 내 웃음에 혜영이는 어깨를 쭈그러트린다.
“하, 면목 없슴다. 그냥 도움받기만 해서…….”
“뭔 소리에요? 공짜 아니랍니다?”
그런 혜영이를 향해 난 씨익 웃었다.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되돌려 주세요.”
“…….”
“갚을 때까진 죽지 말기?”
설마, 성자인 오무혁 선생님의 딸이 죽겠어? 내가 보기에 이건 떡상 100%……. 아니, 혹시 모르니 99.9%라고 하자. 어쨌든 풀매수 들어가야 하는 코인이야. 그러니까 과감하게 투자하는 거지. 나중에 혜영이 덕을 볼지 몰라.
그에 혜영이가 빙그레 웃더니 허릴 숙이며 기습적으로 내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큼큼, 저 이러면 곤란해요. 전, 임자가 있다구요?”
“헤헤, 갚겠다는 계약서 대신임다.”
내 대꾸에 빙그레 웃는 혜영이, 거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것도 나쁘지 않구만. 그렇게 헤헤 웃고 있는데, 다시 동아리방 현관문이 열린다. 나타난 사람은 서예린, 이어서 그녀는 혜영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궁 들어가는 준비, 제대로 하고 있음?”
“어,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슴다. 도와주는 분이 있어서…….”
“혼자서 들어가는 건, 매우 힘듦. 잠을 제대로 못 잠. 무리를 짓는 게 필수적임. 불침번을 돌아가면서 서야 함. 컨디션 조절도 힘들고.”
덤덤한 표정으로 조언하는 서예린, 그에 혜영이도 고갤 끄덕인다.
“마을에 살아남은 하프 오크 애들도 같이 들어가게 됐슴다. 그리고, 베테랑 오크 기사분도 함께 가게 됐는데 생존법에 대해…….”
“애들 데리고 우리 집에 함 오셈. 내 노하우, 전수해줌.”
그 말에 혜영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는 가운데, 서예린은 고갤 까닥였다.
“전투에 관한 것도 다듬어 주겠음. 도움될 거임.”
“……감사함다.”
고갤 꾸벅 숙이는 혜영이, 서예린은 그런 혜영이에게 팔짱을 끼면서 빙긋 웃었다.
“그 전에. 오늘은 일단 놀러 가고.”
그에 오혜영도 활짝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