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81화 (281/350)

제281화

4.

혜영이의 복귀 축하 기념 파티가 끝난 뒤, 난 우그 타람으로 복귀했다.

혜영이에게 목걸이를 전달하는 동안, 사실상 일에서 손을 놓아버린 것이니 열심히 일해야지. 오랜만에 오크 마법사들에게 유기물질 분해에 필요한 <연금술>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싸장님에게서 끝나고 사무실로 오라는 호출이 왔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사무실로 향하자-.

“그래, 도비야. 밖의 일은 잘 끝냈냐?”

싸장님이 사무실 접대 테이블에 앉아서 날 반겨주셨다.

근데, 싸장님뿐만 아니라 웬 정장 차림의 남자 오크도 하나 있었다. 안경까지 낀 것이 꼭 ‘인텔리 오크’ 같았는데, 싸장님이 앉은 자리 옆 소파에 앉아 있어. 지금 보니 탁자 위에 웬 서류들이 널려 있다.

어쨌든 그런 싸장님의 안부 질문에 난-.

“히히! 짠!”

곧바로 반지를 낀 왼손을 보여줬다. 그런 내 자랑에 싸장님의 얼굴이 묘하게 굳는다.

“뭐냐?”

“커플링이요~ 헤, 헤헤헤. 저 아가씨랑 사귀게 됐슴다.”

내 대답에 싸장님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변한다.

아니, 저렇게 얼굴을 일그러트릴 사안인가? 연애 한 번 못해본……. 아, 못 하셨겠구나. 싸장님은 외모는 동안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초딩 3~4학년 수준이니까. 자숙하자. 나도 며칠 전까지 모솔이었으니까. 뒤늦게 내가 상황파악하고 입을 닥치자 싸장님은 손을 까닥인다.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그런 짓하면. 염산 넣은 드럼통에 쑤셔 박아주마.”

“네, 네넵…….”

“어휴, 이럴 것 같긴 했다. 거, 니가 없다고 하니 눈물이 그렁그렁한 게……. 이런 놈이 도대체 뭐가 좋다고 그런 건지.”

푸념하며 고갤 젓는 싸장님. 솔직히 나 정도면 꿀리지 않는데 말이지? 어쨌든 조심스럽게 안경을 쓴 오크 쪽을 향해 고갤 돌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깍듯이 고갤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뉴 송파구의 변호법인 ‘오람’ 소속의 변호사 오수혁이라고 합니다.”

“아, 넵…….”

오크 변호사님이시구만? 근데, 도대체 왜 여기 있냐. 싸장님은 소파에 앉으라는 듯이 손짓하고, 내가 조심스레 맞은편에 앉자 서류를 몇 장 뒤적이더니 내미신다.

“자, 여기 사인하고. 이곳 사인해. 지장 찍고.”

“뭐, 뭔가요!? 저 보증 안 서요!”

갑자기 사인하라고 서류를 내민다?! 아무리 내가 이런 걸 잘 몰라도 함부로 사인하면 안 된다는 것 정돈 안다. 그런 내 거부에 싸장님은 피식 웃더니 전자 담배를 품 안에서 꺼내며 고갤 젓는다.

“그런 거 아니다. 새끼, 내가 너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할 급수인 것 같아?”

“그, 그렇긴 하죠……? 그럼 뭔가요?”

“이번에 설립되는 회사의 ‘니 몫’이지.”

내 몫? 그에 내가 두 눈을 끔뻑이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턱짓한다.

“너, 이번 일에 X나 열심히 했잖아? 사업에 들어갈 ‘인력들의 교육’이며 또한 나랑 같이 사용되는 ‘룬 문자의 연구’도 했고. 실제로 많이 개량하기까지 했지.”

“그, 그렇죠?”

“게다가 이번에 사업을 방해하는 ‘커다란 장애물’도 치웠고.”

싸장님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나, 진짜 기여한 게 엄청 많네? 그런 내 모습에 싸장님은 탁자 위의 서류를 쭈욱 내민다.

“그래서 네게도 회사 지분을 주려는 거야. 이미 제롬에게 허락도 맡았다. 그 양반 말로는 이번 일에 대한 ‘자그만 선물’이라던데?”

“아, 그, 그렇군요. 그, 그럼 얼마나…….”

“3%.”

살짝 기대하면서 지분 비율을 물어봤다가 팍 식었다. 에계, 고작 3%? 그런 내 표정이 드러났는지 싸장님은 피식 웃으며 내 뒤통수를 후려갈긴다. 그 폭력에 내가 뒤통수를 붙잡고 눈물을 찔끔하고 있을 때,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까닥인다.

“이 새퀴, 우리가 얼마나 큰 걸 주는지 모르네. 야! 3%가 우습게 보이냐? 지금 구상하고 있는 이 사업이 최하 ‘중견기업’ 이상이거든?”

“중견기업이요……?”

“자산총액 5천억 이상, 5조 이하 기업.”

“케흑! 켁! 켁!”

“잘하면 준대기업이 될지도 몰라. 참고로 준대기업 기준은 5조 이상, 10조 이하란다.”

그 말에 뭐 먹지도 않았는데 사레가 들렸다.

5천억? 5조? 3%라고 하면……. 최하 150억? 잘되면 1,500억? 개인으로는 생각지도 못할 숫자 단위에 내가 압도당해 있을 동안 싸장님은 고갤 까닥인다.

“이 시설이 만들어지는 데 들어가는 기술과 자본, 정부와의 의견 조율 같은 것들을 나와 오크들이 다 처리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엄청 퍼준 거야.”

“그, 그렇군요!”

“하지만, 무턱대고 네게 주는 건 아니야.”

말하면서 싸장님은 보란 듯이 서류를 내밀고 손가락으로 항목을 조목조목 짚는다.

“일단, 이 서류를 봐봐. 니 지분은 우리의 ‘우호 지분’이여야 해. 팔 때도 우리 측에게만 팔 수 있지. 그 값은 그 시점의 주식시장에 올라간 값의 100%, 한마디로 제값을 쳐줄 테니 우리에게만 팔라는 거야. 하지만 우리가 자금이 부족할 시, 10년 상환으로 갚을 수 있고. 네 과실로 인해 주식이 정부에 압류될 시…….”

뭐라고 떠드는 싸장님, 사업에 대해 문외한인 나는 그냥 멍하니 고갤 끄덕이기만 했다. 그렇게 몇몇 조항들을 설명한 뒤에 싸장님이 입을 다물자,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오크 변호사가 서류를 내밀며 말을 이어나간다.

“특별 자본 시장법, ‘이종족’과 관련된 개별 기술 기업의 주식 3% 이상을 보유할 시 금융감독원의 공시대상이 되기에 증빙서류가 필요합니다. 그에 관련된 서류는 주민등록증서와…… 그냥, 이곳에 사인하면 됩니다.”

“아, 네네.”

도대체 뭔 소리하는지 몰라서 멍하니 있으니 오크 변호사는 살짝 눈치를 보더니 사인하고 지장을 찍어야 할 부분을 체크해주신다. 그에 열심히 사인과 지장을 찍고 나니 오크 변호사는 테이블에 있던 서류를 하나 내미신다. 일종의 마법적인 아우라가 서린 종이다.

“총 5,000만 주 중에서 150만 주를 지급하겠다는 증서입니다. 아직 회사가 정식으로 상장하진 않았지만, 시장님과 강수영 연금술사님의 지장과 서명이 있으니 충분히 법적 효력을 발휘할 겁니다. 저희 측에서 전부 알아서 등록하겠지만 혹시 모르니 잘 보관해두시길.”

“네, 넵.”

그 종이 하나를 받아들고 멍하니 그 숫자를 바라봤다.

150만 주……. 정말 무지막지한 양이다. 개당 천 원만 해도 이게 얼마람? 15억? 오크 변호사가 테이블 위의 서류들을 주섬주섬 모으곤 고갤 깍듯이 숙이곤 먼저 물러나는 가운데, 싸장님은 날 향해 말을 이어나간다.

“배당은 별로 안 떨어질 거야. 애초에 이 사업 자체가 직업이 없는 마력 각성자들 직업을 주기 위해서 설립된 ‘공익 목적’에 가깝거든.”

“네, 네넵.”

“그래도 본격적으로 회사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매달 1억 배당은 나올 거다. 아직은 먼 이야기지만.”

그, 그럼 달마다 1억? 가지고만 있어도 매달 1억?

행복사할 것 같다. 드디어, 돈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인이 되는 건가! 평생 놀아도……. 아니, 놀진 못하겠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난 돈으로 해결 못 하는 족쇄-영혼의 결손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히, 히힣.”

“그렇게 좋냐?”

“네! 최소한 돈으로 할 걱정은 대부분 사라졌잖아요! 뭐, 그래 봤자 제 치료를 위해서 쉬진 못하겠지만.”

“후후, 그렇겠지. 아무튼, 난 할 일 좀 마저 하고 가볼 테니 먼저 연구실 가서 ‘지하에서 얻은 성과’에 대해 설명할 준비해둬라. 그, 마력 각성을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단 것들 말이야.”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말하는 싸장님, 가보라는 듯이 손짓하는 그 자비로운 모습에 난 꾸벅 고갤 숙이곤 방 밖으로 나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참으려 했지만 서류를 보니 광소가 그냥 입 밖으로 나온다. 아, 이것이 돈의 마력인가!?

이제 나도 부자다!

5.

-히힣! 히히히! 헤헤헤!

“어이구, 좋댄다. 쯧쯧.”

밖에서 들리는 경박한 웃음에 혀를 찬 뒤, 강수영은 조용히 사무실 안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시장실과의 직통전화, 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서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그래, 제롬 선생님.”

-일은 잘 됐습니까?

강수영인 걸 확인하자마자 묻는 제롬, 그에 그녀는 전자 담배 연무를 뱉으며 싱긋 웃었다.

“그래, 잘 됐지. 지분 3%, 증여 완료했어. 그쪽으로 변호사 가고 있으니까 확인하라고.”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전자 담배를 뻐끔거리며 그녀는 사무실 탁자에 걸터앉아 말을 이어나갔다.

“그나저나 그쪽에서 우리 도비에게 지분을 주자고 제안할 줄은 몰랐어.”

-해결한 일을 보면 그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런 미친놈이 여기에 왔을 줄이야.”

킬가레스의 방문. 정부 측에서 지하 송파구에서 벌어진 일을 외부로 공표하진 않았지만, 도비에게 ‘썰’과 오크들로부터 ‘보고’를 들었기에 그녀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딱히 그녀가 관심 가지는 분야가 아니었기에 한번 검색해보니 괴물 같은 놈이란 걸 알게 됐고.

그녀의 말에 제롬 또한 긍정했다.

-사실상 뉴 송파구가 박살날 뻔한 걸 막아준 겁니다. 그걸 생각하면 오히려 조그맣죠.

“따지고 보면 그렇긴 하네.”

-오히려 저희 쪽에서 놀랐습니다. 저희 쪽 지분을 양도하려고 하니까 흔쾌히 동의하는 것도 모자라서 자기 지분까지 양보하시다니…….

“사업적으로도 우리 도비에게 그 정돈 줄 만하거든.”

그녀의 대꾸에 제롬은 살짝 의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에게 교육을 받는 마법사에게 ‘매우 뛰어난 마법교육자’라고 듣긴 했습니다…….

“물론, 마법도 배우지 못한 초보자들을 우리 도비가 무지막지한 속도로 조련하고 있지. 하지만, 도비의 능력은 그 정도가 아니야.”

손톱을 다듬으며 그녀는 방금 전까지 싱글벙글하던 한새벽을 떠올렸다.

“내가 부려먹고 있긴 하지만 그 녀석의 재능은 말이 안 돼. 공정에 사용될 <연금술>의 룬문자 최적화도 같이 연구하고 있는데, 녀석 덕분에 난이도를 거의 ‘숙련공’ 수준으로 떨어트렸어. 아마 일반 마력 각성자도 3~4개월만 교육 받으면 작업에 투입할 수 있을 거야.”

-……대단한 겁니까?

“국가에서 지난 10년 간 계속 투자했어도 거의 진척이 없던 일이야.”

마법에 사용되는 ‘룬 문자’, 3차원적인 형상을 넘어서는 그 형태는 인간의 인지력으론 정확하게 관측할 수도 없다. 괜히, 마법이 극소수의 전유물이 된 게 아니다. 인간의 인지를 넘어서는 영역이니 개인의 감각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

하지만, 한새벽은 다르다.

정확하게 룬문자를 느끼며 어디가 틀렸는지 지적을 해준다. 그에 숙련에 따른 최적화 작업이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룬 문자의 작용 범위에 대해서도 착착 연구가 되면서 십수 년 단위의 연구가 거의 몇 개월 안에 끝났다.

“난, 이제 걔가 진짜 인간인지도 모르겠어. 이번엔 악마화된 전쟁 군주도 죽였다고 하니까 할 말이 없더라. 어휴, 처음 볼 땐 비리비리한 놈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

-…….

“아무튼 이번에 지분 줄 때 녀석 반응 보니까 아주 좋아 죽어! 아마, 사업 쪽에 일이 터지면 눈 돌아가서 해결하려고 할걸? 싼값에 대단한 경호원+연구원을 고용한 셈이지. 크크크.”

자고로 자기 밥그릇이라 생각하면 신경을 더 쓰는 법, 사실 주식을 증여한 것엔 그러한 목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의 웃음에 제롬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다음번엔 이런 일이 벌어지면 상담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결과가 좋긴 했다만, 저희가 대비할 수도 없게 몰래 내려 보내시면…….

“상담했으면 오히려 위험했잖아? 스파이가 곳곳에 파고들었는데. 오히려 협조를 구했으면 그 오혜영이라는 애 못 구했을걸?”

-그렇긴 합니다만.

“그러고 보니 걔는 어떻게 됐냐?”

-……미궁으로 갈 거라 합니다. 자기 손으로 킬가레스를 죽일 무력을 쌓겠다더군요.

씁쓸한 어조로 대꾸하는 제롬, 그에 강수영도 씁쓸한 표정으로 전자 담배를 뻐끔거렸다.

“쯧, 안타깝구만. 미궁 내려갈 때, 포션이라도 몇 개 챙겨줘야겠네.”

-……저도 몇 개 선물을 줄 예정입니다. 아무래도 무르굴의 친자식이라니 신경을 좀 써줘야죠.

작게 한숨 소리를 내쉰 후, 제롬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나저나 ‘지상 쪽’은 어떻습니까?

“지상 쪽? 뭔 말이야?”

-이번 일에 관해서 말입니다. 설명 드렸지만, 이번 일을 계획한 게…….

“아. 아아. 그거.”

제롬의 질문에 강수영은 어깰 으쓱였다.

“국정원이 조사 중이야. 내 인맥을 동원해서 개인적으로도 조사 중이고. 근데, 그쪽 말대로 진짜 국내외 정유 업체들이 합작한 것 같아.”

-하아, 인간의 기업이 끼었고, 지상에 일도 터지지 않았으니 대충 흐지부지되겠군요. 또 쉬지 않고 방해공작 들어올 걸 생각하면…….

골치 아프다는 듯한 그 음성에 강수영은 피식 웃었다.

“아니, 흐지부지되진 않을 거야. ‘무기 밀수 및 유출’은 우리 기준으로도 많이 선 넘었거든. 게다가 핵폐기물의 처리 과정과도 연관됐으니 쉽게 넘어가지 못해. 시원찮으면 정부 여당 공격하고 싶은 야당에 정보를 좀 흘려줘도 되고.”

-그렇습니까?

“걱정 마. 정 흐지부지되면 나도 나설 테니. 국내 정유 업계도 내가 만든 약품을 쓰는데, 다음부터 계약 끊어버리고 경쟁업체에 물량 몰아줘야지. 좀 ‘보복’을 당해야 이런 짓 할 생각이 안 들 테니까. 그러니 걱정 말고 그쪽 일이나 열심히 해.”

-후후,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끊겠습니다. 일이 많아서.

“그래, 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강수영은 가볍게 기지개를 쫙 편 후, 탁자에서 내려와서 느긋하게 연구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