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83화 (283/350)

제283화

2.

국정원 차장님의 경고를 듣고 난 뒤, 난 나름 철저히 준비를 하고 북쪽을 방문했다.

“오, 여기야?! 되게 목가적인 풍경이네!”

“…….”

고급스런 검정색 SUV 승합차 안, 고원에 진입하자 창밖에서 펼쳐지는 새하얀 풍광에 아가씨가 감탄한다. 소복하게 눈이 내린 산, 고원지대에 펼쳐진 새하얀 평원은 꼭 그림의 한 폭 같았다. 반쯤 억지로 끌려와서 뚱한 표정의 서예린도 말은 없지만 혹한 모습이다.

“헤헤, 이전에 있던 곳보다 좋죠?”

“응, 사진으로 보긴 했는데 실물이 훨씬 낫다.”

“아무튼. 저기가 입구랍니다.”

고원까지 올라간 산악 도로의 끝에 커다란 초소와 철문이 있었다.

북한, 개성 외곽의 대덕산 고원에 위치한 거대 양목장. 이전의 소동 끝에 아가씨와 국정원 아저씨들의 편의를 받아서 정식적으로 최종적으로 접수한 ‘양의 낙원’이다. 그 값으로 북한에서 폭력조직 털면서 얻은 현물들을 싹 다 바쳤지만.

“저예요! 저!”

-끼이이익…….

미리 연락을 해뒀기에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자 곧바로 철문이 열린다. 그렇게 목장 안에 새롭게 이사한 ‘한마음 보육원’-중앙 막사 건물 앞에 멈춰 서자-.

“새벽이 형!”

“새벽 오빠!”

“넵! 잘 지났나요? 여러분?”

안에서 애들이 우르르 마중을 나온다.

그에 나도 차에서 내리며 활짝 웃었다. 환대해주니 반갑고 고맙긴 한데……. 기다리고 있던 게 눈에 보여서 꼭 ‘북쪽의 아바이 수령’이 된 것 같아 좀 그렇네. 그렇게 속으로 쓴웃음을 짓고 있는 동안 아가씨와 서예린도 훌쩍 내렸다.

“괜찮네. 건물도 꽤 세련되니 좋고.”

“음.”

하얀색 롱코트 차림에 ‘높으신 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고아한 분위기의 아가씨, 한겨울과는 어울리지 않는 힙한 스타일의 얇은 옷에 후드티를 걸친 이질적인 외모를 가진 서예린. 두 사람의 등장에 아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아가씨를 알고 있는 보육원 출신 애들은 살짝 기대하는 표정이구만.

“오셨습니까? 대장.”

그렇게 쏟아져 나온 애들을 헤치며 보육원의 대장격 아이들-도시아와 김철수가 다가온다. 그에 내가 대꾸하기도 전에 아가씨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시아 양! 잘 있었나요? 철수 씨도.”

“아, 예. 반갑습니다. 진아 님. 근데, 저분은…….”

맨살이 드러나는 탱크탑에 얇은 후드티를 걸친 서예린, 여름 방학 때 빡센 다이어트 이후로 몸이 좀 여성스럽게 가늘어졌지만(지금 입고 있는 60억짜리 명품옷의 핏을 유지한다고 기어코 몸매 유지를 했다) 여전히 범접하기 힘든 분위기를 풍긴다. 게다가 뚱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그에 난 빙긋 웃으며 소개했다.

“제 친구 ‘서예린’ 양이랍니다.”

“친구가 아니라 임금 노예 아님?”

입을 삐죽이며 대꾸하는 서예린, 그에 헤헤 웃었다.

“하하핫, 그럼 이번 고용 취소할까요?”

“……무르기 없기.”

임금을 가지고 말하자 구시렁거리면서 대답한다. 차장님의 말을 듣고 내가 좀 서예린을 갑자기 포섭했거든. 근데, 그거 가지고 되게 툴툴대네. 어차피 할 일도 없었으면서. 어쨌든 그렇게 통성명을 하고 있는데-.

-부우우웅…….

좀 늦게 우리 뒤를 따라서 온 컨테이너 트럭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전에 아가씨가 노트북을 뿌렸던 걸 기억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가운데-.

“저 트럭은…….”

“아, 전파 증폭기와 송·수신기를 실은 트럭이랍니다.”

철수의 질문에 아가씨가 빙긋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곤, 잘 이해 못 하겠다는 아이들을 보며 말을 이어나가신다.

“어차피 근처에 전파를 받을 사람도 없는 고산지대잖아요? 그런 김에 남쪽의 인터넷도 되게 바꾸려고요. 남쪽과 거리가 가까우니까 쉬울 거예요.”

“……괜찮겠습니까? 남쪽의 방송이나 인터넷은 법적으로…….”

“개성에선 암암리에 전파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북쪽에 지부를 둔 기업들도 인터넷망을 쓰고 있답니다. 그쪽이랑 연동하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아무튼, 저거 설치되면 인터넷 교육 방송이나 Tv프로그램 같은 걸 볼 수 있을 거예요.”

아가씨의 말에 아이들의 표정도 확 밝아진다.

북쪽의 것은 통제가 됐기에 좀 밋밋한 감이 있거든. 그렇게 애들이 기대에 찬 표정을 지으며 떠드는 가운데, 난 <눈>으로 아이들을 한번 훑었다. 역시, 이전에 파악했던 대로 ‘마력 각성’에 가까운 아이는 철수, 시아, 젤랴 3명밖에 없…….

“……?”

“왜 그러십니까?”

내가 갑자기 빤히 바라보자 고갤 갸웃하는 철수, 그러건 말건 나는 철수의 머리 쪽에 있는 ‘희미한 마력의 흔적’을 보았다.

룬문자로 가공된 종류,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두 종류다. 정한솔 선생님의 정신 마법과 비슷하네. 혹시나 해서 <감정>을 사용하자 철수의 과거가 쭈욱 펼쳐지며 언제 당했는지 분석에 들어갔고, 그 결과는-.

최면술 : 미약한 현혹 (Mesmerism : weak attraction)

레벨 2 정신/악마술

시전 소음 : 0

주문 소음 : 0

최대 SP : 50

최소 소모 마력 : 1

효과 : 뇌의 중추에 마력을 투사하는 마법, 투사된 마력은 마법의 대상자를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자극을 가한다. 섬세하고 미약한 그 자극은 인간의 친밀도를 느끼는 뇌 영역을 자극하며 대상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과 사고를 품게 만든다.

최면술 : 미약한 부정 감정 (Mesmerism : weak negative emotions)

레벨 2 정신/악마술

시전 소음 : 0

주문 소음 : 0

최대 SP : 50

최소 소모 마력 : 1

효과 : 뇌의 중추에 마력을 투사하는 마법, 투사된 마력은 특정 대상자를 보거나 생각할 때마다 자극을 가한다. 섬세하고 미약한 그 자극은 인간의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뇌 영역을 자극하며 대상에 대한 ‘질투와 시기’ 등 부정적 생각과 사고를 증폭시킨다.

마법이 걸려 있었다.

<최면술 : 미약한 부정 감정>은 날 보면서 작동하고 있어서 곧바로 눈치챘다. <감정> 과정에서 스쳐 지나간 ‘과거의 영상’을 보니 철수와 한 남자가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 남자가 몰래 저 마법들을 걸었네.

보아하니……. 중국 쪽의 요원인 것 같다.

신안에서 차장님의 무구를 <감정>했을 때, 그때 스쳐 봤었던 중국 측 요원들의 특징이 보여. 하나같이 살벌한 마법을 구사했는데, 그들의 몸에서 풍기는 기척이 딱 저랬다. 다른 감각엔 몰라도 <눈>에는 팍 띄어. 몸에 개조를 한 것 같은데 말이지?

어쨌든, 그 심상찮은 결과에 난 곧바로 입을 열었다.

“철수, 시아. 잠시, 저랑 이야기 좀 하죠. 그리고, 아가씨? 저 잠시 애들이랑 대화 좀 하고 있을 게요.”

“응, 그래라. 어차피 난 전파수신기 설치하는 거 조정 좀 해야 하니까. 그리고……. 알지?”

뒤에 온 컨테이너 트럭을 보며 말하는 아가씨, 끝에 ‘알지?’는 바람피우지 말란 이야기다. 거참, 혜영이 때 한 번 말한 것 가지고 되게 그러시네. 쓰게 웃으며 고갤 끄덕인 뒤, 난 시아와 철수 두 사람을 이끌고 건물 꼭대기의 내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문을 닫으며 <눈>으로 주위를 훑었다.

딱히, 도청기 같은 건 없다. 고갤 끄덕인 후, 나는 소파 상석에 앉았고 두 사람은 내 양옆에 앉았다.

“철수, 그리고 시아.”

“네. 대장.”

“왜?”

각각 철수와 시아의 대답, 그에 난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 모두 제가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단 거 알고 있죠? 그것 덕분에 걸출한 연금술사의 제자로 들어갔다고도 말했고요.”

찬찬히 고갤 끄덕이는 두 사람, 여름 방학 때 내가 <연금술> 장비를 들여온 걸 본 아이들이다. 실제로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많이 봤고. 게다가 사실상 두 눈을 감고 다니는 것도 잘 알지. 그에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제가 곧바로 여기 올라가자고 한 건 다른 게 아니에요. 철수 씨의 머릿속에서 독특한 마력이 느껴져서 그런 거예요.”

“……저 말입니까?”

“예. 제가 정신병동에 갇혔을 때에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쓰던 ‘정신 마법’의 패턴과 유사해요. 지금도 작용해서 뇌를 자극하고 있죠.”

내 말에 흠칫하는 두 사람. 특히나 철수는 식겁한 얼굴로 정수리를 쓰다듬는다. 그에 시아가 당황하며 내게 되묻는다.

“지, 진짜야?”

“네, 시아 양에게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철수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렇게 강한 건 아니고 ‘감정 유도’에 가까워 보이니까. 며칠 뒤엔 자연스럽게 풀릴 것 같고.”

“…….”

“혹시 따로 활동하다가 마법에 노출될 만한 일이 있었나요?”

내 말에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기는 철수, 그러다가…….

“잠깐.”

“……?”

“방금 전에 무슨 생각 했어요?”

철수의 머릿속에 깃든 마법 <최면술 : 미약한 현혹>이 작동한다. 그에 난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지금 보니 걸린 마법이 한 종류가 아니네요. 방금 전에 또 철수의 머릿속에서 마력이 번쩍였어요. 네, 지금 또 번쩍이네요. 어떤 생각에 트리거처럼 작동하는 것 같네요. 그 생각에 ‘어떤 감정’을 추가해 주는 것 같고.”

그에 철수가 혼란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짚는다.

자신의 감정들이 진짜가 아니라니 혼란스럽겠지. 그렇게 철수가 의심의 감정을 품는 순간, 뇌를 자극하는 마법의 마력이 굉장히 빠르게 힘을 잃는다. 이어서 철수는 입을 열었다.

“여기 목장의 사업과 관련해서 만났던 사람입니다. 최근에 제품의 판매에 도움을 받았죠.”

“아, 설마……?”

아는 사람인 듯, 두 눈을 크게 뜨는 시아. 철수가 고갤 끄덕이고 난 계속 말해보라는 뜻에서 턱짓했다. 그에 철수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았는데-.

“……목장의 품목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고요?”

“예, 9월 이후로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는 돌연 거래를 끊어버리거나 먹튀하려 했습니다. 심지어 이곳까지 오는 운송업체도 없었죠. 아는 업체 사람에게 ‘강하게 물어보니’ 조폭들에게 위협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최근에 목장의 사업에 방해가 들어오기 시작했단다. 그것도 조폭들을 이용해서. 그 뒷배가 누군지 알면 뻔하지. 그에 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제게 연락하지 그랬어요.”

“맡은 일도 못 하는 것 같기에…….”

내 말에 고갤 숙이며 말끝을 흐리는 철수, 하긴 염치가 없어 보였겠지. 자기가 무능해 보이기도 할 테고. 이어서 철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고생한 지 한 달 정도 만에 해결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조선족 사업가가 우리와 거래를 하기로 했고, 물품들을 대략 80% 값에 팔아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것마저도 감지덕지해야했고요.”

“흐음.”

“이 주마다 물량을 가져가겠다고 했기에 이 주일에 한 번씩 술을 마시게 됐는데, 그때 걸리게 된 것 같습니다.”

……내가 없는 동안에 목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진짜 세뇌 같은 걸 쓸 줄은 몰랐어. 아마 나를 볼 때마다 작용하는 걸 보면, 나를 대상으로 하려는 수작의 일부겠지. 작게 한숨을 내쉰 뒤에 난 고갤 숙이고 있는 철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철수.”

“……예, 대장.”

“지금은 딱히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 상대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품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입을 굳게 다무는 철수를 향해 난 고갤 저었다.

“그래도 일단 한번 검진부터 받아 보죠. 제 담당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있거든요? 그분에게 연락해볼게요. 대한민국 최고의 정신과 의사예요. 실력은 확실하니 믿어도 돼요.”

“감사합니다, 대장.”

고갤 꾸벅 숙이는 철수에게 난 고갤 저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아마, 이런 수작을 뻗친 이유는……. 저 때문일 테니까.”

“너 때문이라고?”

휘둥그레 두 눈을 뜨며 질문하는 도시아를 향해 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갤 끄덕였다.

“여기 오기 전에 국정원에서 연락을 받았거든요. 중국 쪽에서 절 포섭하기 위해서 물밑 작업하고 있는 게 포착됐으니 조심하라면서요.”

“…….”

“설마, 이렇게 제 근처의 사람을 세뇌하려 들 줄은 몰랐네요.”

내 언급에 두 사람의 얼굴에 공포와 두려움이 스친다.

이 세상에서 내가 원래 있던 세계의 ‘미국의 위상’에 해당하는……. 아니, 미국보다 훨씬 강압적이고 무자비한 초강대국이 자신들에게 마수를 뻗쳤다니 당연한 거겠지. 어쨌든 난 고갤 저으며 품 안을 뒤적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국정원에서 일에 협조하는 대가로 몇 명을 남쪽 국적으로 바꿔줄 수 있다고 확답을 얻었거든요. 두 분 모두 남쪽으로 살 수 있도록 조치할게요.”

“…….”

“하지만, 그런 약속보다…… 더 확실한 게 있죠.”

가져온 작은 목제 케이스를 탁자에 내려놓고 그 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탁구공만 한 6개의 구슬이 총 3종류, 검붉은 것-새카만 것-선홍빛 광채를 흩뿌리는 것이 2개씩 있었다. 도시아는 뭐냐는 듯이 바라봤지만-.

“설마……?”

철수는 내가 했던 약속을 떠올린 듯, 두 눈이 서서히 커지며 입이 살짝 벌어진다. 그에 나도 고갤 끄덕였다.

“넵, 예전에 ‘약속했던 물건’이랍니다.”

“뭔 소리야? 되게 신기해 보이는 거긴 한데.”

뭔 소리하냐는 듯이 바라보는 도시아를 향해 난 빙긋 웃었다.

“마력 각성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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