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86화 (286/350)

제286화

막간. ‘콕’하고 찔렀는데……

1.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대기해둔 낡은 픽업트럭을 타고 개성 도심으로 향했다.

“저기야?”

“넵.”

“흐음, 군부대가 시내에 있다니 좀 신기하네.”

박범기 상장이 있는 ‘북쪽 2군단 사령부’, 남쪽의 군부대와는 달리 2군단 군부대는 개성 시내 외곽 쪽에 바로 붙어있었다. 정문에서 한 발자국만 나가도 시내 근처, 어째선지 모르겠다만 덕분에 염탐은 쉬웠다.

창문 밖, 건물 4층 높이의 담벼락을 보며 아가씨는 살포시 미간을 찡그렸다.

“근데, 거기에 있는 거 확실한 거야?”

“……아마도요?”

“…….”

“6개월 전의 자료라서 확신할 수가 없어서 그래요. 헤헤.”

내 대답이 못 미더운지 아가씨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지만, 이내 백미러로 뒤쪽에 팔짱 끼고 앉아 있는 서예린을 보며 고갤 주억였다.

“뭐, 일이 좀 틀어져도 예린이가 있으니 어떻게 되겠지.”

평범한 옷차림인 나와 아가씨완 달리 서예린은 유혈 사태 당시처럼 ‘완전 무장’ 중이었다.

‘전투용 마법 장비들’의 지상 반출은 굉장히 민감한데, 특별히 국정원에서 신경 써줘서 이곳에 가져올 수 있었다. 서예린을 경호원으로 고용했으니 좀 특혜를 받을 수 있냐고 차장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바로 ok하셨거든.

“혹시 일 틀어지면 말해.”

“걱정 마세요.”

아가씨가 내민 이어마이크를 착용한 후, 적당히 인적이 없는 골목에서 서예린과 함께 트럭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서예린의 등에 찰싹 달라붙듯이 업혔다.

-스스스…….

이어서 서예린이 낀 ‘유령의 반지’에서 묘한 질감의 에너지가 그녀는 물론이고 그 등에 업힌 나까지 뒤덮는다.

<눈>으로 제3자 시선으로 보니……. 내가 반지를 쓸 때와는 차원이 다르네. 묘하게 굴절되던 나완 달리 가시광선 영역에선 완벽할 정도로 투명하다.

“꽉 잡으셈.”

그리고, 서예린은 군부대 쪽으로 소리 없이 질주했다.

근처에 사람도 지나갔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군부대 담벼락을 10m가량 남기자 목에 걸린 스카프의 에너지가 서예린의 몸에 스며든다. 동시에 폭발적으로 도약, 높이 솟구쳐서 담벼락의 위 철조망까지 가뿐하게 넘어서며-.

“읏차.”

아주 부드럽게 군부대 안쪽으로 착지했다.

곧바로 서예린의 어깨를 두드려 방향을 가리켰다. 군부대 내부에 있는 50m 정도의 작은 산, 그 중턱에 있는 바위 절벽 아래에 한옥 스타일의 거대한 저택이 있다. 청기와가 올라간 것이 꼭 ‘축소된 청와대’ 같은 저택, 북한 2군단의 지배자 ‘박범기 상장’의 공관이었다.

그리고, 저 집 아래 벙커에 기록보관소가 존재하지.

내 방향 지시에 서예린이 움직인다. 폐쇄된 교도소처럼 높은 담벼락에 곳곳에 높은 초소까지 있는 북한 군부대, 하지만 작정하고 은신한 서예린을 막기엔 한참 부족했다. 그렇게 어둠 속에서 쾌속 전진한 서예린은-.

“숲으로 들어가긴……. 왠지 낌새가 이상함?”

‘움찔!’하며 야산 앞에서 멈춰 섰다.

철조망을 제외하면 한산한 산, 그러나 <눈>으로 보면 기계에서 뻗어 나온 각종 적외선·자외선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다. 인력으로 관리하는 외곽과는 달리, 여기서부터는 진짜 경보장치가 깔려있다. 지면 아래도 훑으니 지뢰 같은 것도 몇 개 보이는구만.

“그냥 정문 쪽으로 뚫고 가죠.”

“사람 죽여야 댐? 그럼 추가 위험 비용이…….”

“필요 없어요. 철통 보안이니 뭐니 해도 결국엔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제가 신호하는 대로 움직이세요.”

곧바로 산을 삥 돌아서 정문 초소로 향했다.

산으로 들어가는 정문을 지키는 초소, 초병이 나름 삼엄하게 감시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전자 장비가 없다. 초소장으로 보이는 ‘마력 각성자’ 군인은 그 수준이 떨어져 서예린의 기척을 파악할 정도는 아니었고. 게다가 부하에게 다 맡겨놓고 폰 게임 하기 바쁘시네.

-타닥!

내 지시에 따라 서예린은 초소 쪽을 향해 도약-그 지붕을 밟으며 아주 간단하게 뒤쪽으로 넘어간 후,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공관까지 올라갔다. 그 불 꺼진 공관 앞에서 서예린은 또 미간을 찡그렸다.

“여기도 좀 꺼림칙함…….”

“집이니까 비싼 경보장치로 도배한 거예요. 밤이니까 장비를 작동한 거고.”

<눈>으로 보이는 공관엔 전자 장비뿐만 아니라, ‘마법’이 어느 정도 가미된 첨단 장비가 돌아가고 있었다. 그 기척이 사방에서 보여. 그런 내 대꾸에 서예린이 속삭인다.

“아침까지 기다림? 그럼 추가 비…….”

“거! 추가 비용 타령 좀 그만해요!”

내 타박에 서예린은 입술을 삐죽인다.

서예린이 자꾸 이렇게 ‘추가 비용 어쩌구~’ 타령하는 것은 내게 진 빚 때문이다. 뉴 송파구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세 자루의 칼-‘부정한 삼위일체’, 그걸 보자마자 서예린은 완전히 매혹되어 내게 달라붙어 외상으로 받아 갔거든.

값은 3자루에 60억.

쓸 만한 ‘전투 마법 장비’ 하나 값이 70~80억 정도인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싼 값이지. 정식 처분은 힘들고 해서, 그냥 서예린의 수중에 있던 6천만 원을 받고 나머지는 빚으로 달아뒀다. 그리고, 이번에 경호원으로 끌고 오면서 칼 하나 값-20억 가량을 깎아주기로 했고.

참고로, 지금 들고 있는 건 예전 무기다.

우리나라는 총기 관리하는 것처럼 마법 장비도 ‘취득 증명서’, ‘장비 감정’, ‘무기 등록’, ‘세금’ 같은 행정 절차를 거쳐야 하거든. 때문에 기껏 사놓고 뉴 송파구 안에서만 쓰고 있지.

어쨌든 서예린을 재촉해 저택을 한 바퀴 삥~ 돌며 <눈>으로 그 구조적 약점을 파악했다.

“여기, 이 벽을 칼로 찌르세요.”

“?”

“이쪽 벽 내부에 전선이 있어요. 끊어버리면 경보가 무력화될 겁니다.”

그에 서예린이 장검을 뽑아 든다.

강화 콘크리트를 간단히 꿰뚫는 칼날, 그 속의 마력선이 잘려 나가고 뒤에 난 철문으로 향했다. 지문인식으로 열리는 전자 장비, 하지만 결국 문을 열고 잠그는 것은 조그마한 쇳조각이다. 내부의 구조를 살핀 뒤 <독침>을 조형해서 흘려 넣었고-.

-끼리리릭…….

손쉽게 문짝을 열고 들어갔다.

집 내부는 조명이 켜져 있지만 어두컴컴했다. 딱히 깨어있는 사람도, CCTV도 없기에 느긋하게 서예린에게서 내려 지하실 벙커 쪽으로 향했다. 방공호처럼 아주 단단한 철문으로 밀폐된 벙커, 이건 <독침>으로 내부를 건드리기엔 쇳조각이 너무 컸지만……. 난 비밀번호를 알거든.

-띠리릭!

번호를 누르자 철문이 열린다.

그 안으로 들어서서 내 영상이 담긴 USB와 CD를 찾았다. 년도 별로 분류하고 이름까지 적혀있어서 찾기 쉽네. 곧바로 ‘한새벽’이라고 쓰인 CD 쪽으로 다가가 집어 들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CD의 <과거>를 한번 훑어보니…….

“하아.”

“왜 그럼? 이상함?”

내가 한숨을 내쉬자 고갤 갸웃하는 서예린, 과거의 한 부분에서 이 파일 CD에 손에 대더니 그 내용을 USB에 복사한 것이 눈에 보였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겠다만 분명 여름방학 이후야. 복사한 건, 어디로 가져갔는지는 모르겠고.

하지만, 분명 누군가에 넘기려는 기색이었다.

“물건에 묻은 지문을 보니, 최근에 한번 만진 것 같아요.”

“……다른 것도 그런 거 아님?”

“아뇨, 다른 건 만진 흔적이 없어요. 한번 깨워서 추궁해봐야겠어요.”

<연금술>로 CD와 USB를 녹여버리며 고갤 저었다.

만지지 않았다면 그냥 탈출하고 나중에 놈을 만나서 협박하겠지만, 이젠 왜 이 영상을 복사를 했고 그걸 어디에다 뒀는지 확인해봐야겠다. <과거>를 또 훑어보는 걸로 끝낼 수도 있겠다만……. 감히 내 치부를 다른 곳에다가 흘린 게 ‘괘씸’하니까 그냥 깨워서 추궁해야지.

그런 내 말에 서예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그랬다가 일이 커질 수 있음. 경보 울리면 억지로 사람들 뚫고 가야 함. 설령, 성공적으로 빠져나와도 남쪽 가면 나중에 지상 사람들이 찾아와서 괴롭힘. 무슨무슨 법이라고 말하면서.”

“걱정 마요. 아마 쉽게 말 못 할 테니까. 저도 놈의 ‘치부’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리고 이럴 때를 대비해서 준비물도 챙겼고.”

품 안에서 챙겨둔 2개의 약병을 꺼냈다.

푸른빛의 액체는 비싸디비싼 수제 포션이다. 우리 싸장님이 만든 명품, 신경 부위를 집중 치료하는 약물이지. 그리고 자줏빛 광채와 함께 시커먼 구정물 같은 게 뒤섞인 액체는……. 내가 만들어낸 ‘혼합 독극물’이다.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아닌 ‘통증을 주는 데 주력한 물품’.

CRPS의 통증 기전을 <눈>으로 한번 본 뒤, 싸장님의 신경치료 약물을 토대로 내가 직접 설계한 약물이지. 해로운 내 마력이 들어간 물품답게 ‘아주 끝내주는 효능’을 자랑한다. 내 몸으로 테스트도 해봤는데, 장담컨대 일반인 수준으론 못 버틸 거야.

“놈을 만나는 건 저 혼자 처리할 테니 밖에서 기다리세요.”

“흠, 일이 틀어지면 추가 비용…….”

“알았어요! 소란 커지면 칼값 하나 더 깎아줄게요! 됐죠?! 그렇다고 일부러 소란 일으키면 얄짤 없어요?!”

또 ‘추가 비용’ 타령을 하다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짓는 서예린, 왠지 일부러 소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걸로 보이면 내 착각인가?

한숨을 내쉬며 나는 벙커 밖 계단을 향해 움직였다.

2.

독재자는 필연적으로 바쁘다.

어떠한 ‘권한을 내어주는 것’은 ‘권력을 쪼개어주는 것’과 동일하다. 당연히, 독재자에겐 모든 권한이 집중된다. 독재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일처리’만 한다 하더라도 CEO를 능가하는 업무량을 감당해야 한다.

개성의 지배자인 박범기 상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러 부서에서 들어오는 서류를 보며 바쁘게 일하고, 때때로 반동분자들에 대한 기선제압을 위한 엄격한 모습-총살과 숙청을 하는 것까지. 쌓이는 스트레스에 새벽까지 술 마시는 게 일상이고, 그러고도 쉬지 못하고 숙소에 돌아와 서류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력’은 좋은 것이었다.

수만 명이 그의 앞에서 행진하며 그 손짓 하나에 두려워하고 감격한다. 일이 너무 힘들고 피곤해도 그 광경을 떠올리면 하체가 꼿꼿하게 된다. 고작 4~5시간만 자도 힘이 넘친다. 그것이 권력이 지닌 마력이었다.

그렇게 상장은 오늘도 힘든 일과를 마치고 곤히 자고 있었지만-.

“안녕하세요. 장군님.”

“음, 푸허어억!”

얼굴에 쏟아지는 차가운 위스키에 기겁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야 했다.

코에 들어간 독한 술에 잠시 콜록거리던 그는 이내 ‘빠득!’ 이를 갈며 감히 자신에게 술을 끼얹은 새끼를 보기 위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조명 아래에 생글거리고 웃고 있는 백발의 소년-원수를 발견했다.

“한새벽……!”

여러 자식들 중에 유일한 마력 각성을 한 ‘박원석’.

사생아에 품성이 군인을 하기엔 부족해서 ‘정식 후계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믿을 수 있는 부하이자 혈육이었다. 그런 소중한 아들을 죽인 고아 새끼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곧바로 베개 밑에 넣어둔 권총을 쥐려고 했으나…….

“침입자! 침입자다!”

없었기에 박범기는 대신에 주먹을 휘둘렀다.

마력 각성자라고 한들, 160cm대의 그보다 더 작은 체구의 남자애. 게다가 그는 반지와 목걸이 등 힘을 상승시켜주는 마법 장비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쓰러트리진 못해도 최소한 밀쳐낼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큭……!”

한새벽은 그의 예상보다 더 강했다.

주먹을 뻗은 그의 오른 손목을 낚아채고 강하게 팔을 당겼다. 그에 자연스럽게 상장은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그래도 팔과 다리를 뻗어서 다가오려는 한새벽을 쳐내려 했지만-.

-뚜둑! 뚝! 뚜둑!

“……허어억!!”

한새벽의 손이 가볍게 닿을 때마다 그 팔과 어깨, 턱, 무릎 관절이 ‘두뚝!’ 소리와 함께 탈골됐다.

마치 수십 번 관절을 해체해본 것처럼 정확하게 근육을 누르고 힘을 주자 뽑혀 나갔다. 그 고통에 반사적으로 비명을 질렀지만 소년의 손은 목울대를 절묘하게 주무르며 소리가 나오는 것을 막는다. 이어서 품 안을 뒤적이며 자줏빛 약물이 잔뜩 든 주사기 하나를 꺼낸다.

“일단, 10분만 시작합시다. 그 뒤에 대화를 해보자고요.”

“……!”

“어디 보자……. 처음엔 팔다리가 좋겠네요. 아, 비명을 계속 막는 것도 귀찮으니 목도.”

즐거운 듯이 속삭이던 놈이 그 정체불명의 용액이 든 주사기를 ‘콕콕!’ 상장의 몸에 찔러 넣었고-.

“꺼어어……!!”

그때부터 상장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단언컨대, 지난 60 평생 경험했던 그 어떤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었다. 찔린 부위를 중심으로 작열감, 날붙이에 베이는 듯한 느낌, 전기에 감전되는 듯한 느낌이 복합적으로 밀려온다. 얼마나 고통이 큰지 근육이 수축하면서 뼈와 경추가 삐걱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 지옥의 고통이 있다면 이럴 것 같았다.

고통에 실금하면서도 어떻게 이걸 멈춰달라고 하려 했지만-.

“어디 보자~”

놈은 얄밉게 그를 보지도 않으며 탁자 위에 널브러진 서류들을 훑는다. 그 등 돌린 모습을 보며 박범기는 절망했다. 그렇게 한동안 고통에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그 꿈틀거린 움직임에 더 큰 고통을 받는 고통의 연쇄에 빠져있을 때-.

“……!!”

갑자기 가슴팍에 칼날이 ‘콱!’ 들어박힌 듯한 통증이 밀어닥쳤다.

하지만,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주사기를 찌른 곳에 느껴지는 고통보다는 덜 아팠고 무엇보다……. 그때부터 주사기에 찔린 부위에서 느껴지던 고통이 무뎌지기 시작했으니까.

“어, 어어어! 죽으면 안…….”

놈의 당혹스런 음성을 끝으로 박범기 상장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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