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87화 (321/350)

제287화

61화. 나……. 나는 결백합니다!

1.

바닥에 너부러진 놈의 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절로 흘렸다.

지금까지 내 손에 묻힌 피가 엄청 많긴 한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이를 죽인 것은 처음……. 아니! 아직 죽은 게 아니지! 허겁지겁 포션을 꺼내 주입하고 심장 마사지를 하려 했지만…….

“X, X발…….”

몸속 꼬라지를 보곤 포기했다.

겉으로 볼 때부터 좀 안색이 안 좋구나 했는데, 그 내부를 살펴보니 ‘혹사한 느낌’으로 많이 망가져 있었다. 과로에 치이다 죽은 사람 같은 느낌? 자연사에 가까워서 회생 가능성은 글렀어. 어쩐지 침실에도 서류가 널려있더라니…….

-덜컥!

“머, 머임?”

밖에서 내 외침을 들은 건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서예린, 이내 그녀는 바닥에 널부러진 늙은 남자의 시신을 보곤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안 죽일 거라 하지 않았음?”

“그, 그게 사고예요! 의료 사고!”

“어케 할 거임!”

“자, 잠시만요! 생각! 생각 좀!”

심호흡을 하면서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그냥 시체를 내버려두고 복귀해? 아니, 시신에 타살의 흔적이 있다. 주삿바늘 자국은 물론이거니와 그 부위의 근육이 과도하게 수축-모세혈관이 터져있어. 곧 피멍이 들 거야. 내가 <연금술>로 정교하게 ‘저 고깃덩이’를 주무른다고 해도 티가 날 수 있다.

“진아에게 연락하셈. 진아가 그런 거 생각 잘함!”

“아! 네네…….”

서예린의 충고에 재빨리 귀에 낀 이어마이크를 켜자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뭔 일이야!

“그, 그게 인질이……. 주, 죽었거든요?”

-뭐?! 아니, 말했잖아! 짜증 나겠지만 죽이면 안 된다고! 정부의 북한 진출 계획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인간이라고!!

“사, 사고라고요! 사고! 그것이 어떻게 된 거냐면…….”

당황해서 좀 횡설수설했지만 그래도 사정은 다 설명했다. ‘비디오’를 회수해서 보니까 최근에 만진 흔적이 있었고, 그에 대해 추궁하려고 챙겨온 ‘자백제’를 썼는데, 이전부터 몸이 쇠약해져 있던 터라 돌연 심장마비로 죽어버렸다. 이건, 진짜 어쩔 수 없었다고.

“어쩌죠…….”

-하아, 진짜…….

그런 내 말에 아가씨가 한탄했지만 이내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일단, ‘타살 증거’부터 없애자. 우리가 온 다음 날 돌연 죽었다는 것과 창고에 네 비디오만 없다는 것 자체가 꽤 ‘강한 심증’이지만……. 어쩔 수 없지. 시체에 있는 흔적을 지울 수 있어?

“아뇨, 좀 힘들 것 같아요. 작정하고 부검하면 티가 날 거야.”

-……그럼 그냥 싹 다 태워버려야겠네. 그 시간 차로 불 지를 수 있어?

“시간 차요?”

-그래, 지금이 자정이니까 아침쯤에 불이 붙게. 일종의 실화(失火)로 꾸며서.

“어, 가능해요!”

각종 물질에 독특한 성질을 부여하는 <연금술>, 거기에 화학 지식이 결합하면 불붙이는 것 정도야 쉽다. 몇 시간 뒤에 불이 붙게 하는 것은 약간 다른 이야기긴 한데……. 그래도 나 정도면 어떻게 할 수 있지. 그런 내 말에 아가씨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좋아, 그러면 아침경에 불이 붙게 해놔. 돌아가서 그 시간대에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들 거니까. 그리고, 어차피 불 지를 거니까 정보나 자료 같은 것들을 한번 훑어보고! 특히, 그 비디오를 누가 가져갔는지!

“넵!”

-그럼 빨리 움직여!

아가씨의 말에 난 재빨리 <눈>으로 방 안의 서류들을 싹 훑었다. 그리고, 제목이 뭔가 중요하다 싶으면 일단 <메모장>에 복붙했다. 사업부지 관련, 군 인사 숙청 관련, 간부들의 도청 관련, 중국과의 무역 관련……. 그렇게 내가 자료 수집에 여념 없는 사이-.

“나, 간식 좀 먹고 옴.”

“장갑 끼고 다녀요. 혹여 지문 묻지 않게.”

서예린은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으니 대놓고 집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차라리 저게 낫지. 그렇게 1~2분 만에 방 안에 있는 수천 장의 중요해 보이는 문서들을 확인-복사한 후, 난 마지막으로 박범기의 시신을 보며 <과거>를 응시했다.

난잡하게 흘러가는 영상들

빠르게 흘러가는 그 영상에서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외형은 좀 달라졌지만 그 몸에서 보이는 중국 쪽 요원 특유의 독특한 기척은 숨길 수 없었다. 순진한 우리 철수를 속여먹은 중국의 스파이야.

놈이 보이는 부분을 자세히 응시하자 그 내용이 파악됐는데, 철수의 목장 사업을 방해해달라는 부탁과…….

“제기랄……!”

내 비디오 복사본이 놈에게 흘러갔다!

뇌가 혹사당한 반동으로 쌍코피가 주르륵 흘러나오는 것을 닦으며 이를 갈았다. 중국의 손에 비디오가 흘러갔으니 내 약점을 없애는 건 영영 요원하겠네. 솔직히, 나만 있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생활할 수 있지만 문제는…….

우리 아가씨다.

물론, 협박거리니 만큼 쉽게 공표하지는 않을 테지만, 만약 그 추악한 영상이 퍼져나간다면 아가씨가 지금처럼 당당히 나와 사귄다고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조리돌림할 텐데? 지금이야 아가씨가 나 없이는 못 산다고 난리지만 혹시 모른다.

“후우, 나중에 생각하죠. 나중에.”

살인적으로 짜증 나지만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라앉힌 후, 호주머니에서 폴딩 나이프를 꺼내 왼 손목을 긋곤 그 혈액을 근처 벽지에 있는 콘센트 전선에 흩뿌리며 <연금술>을 사용했다.

마력은 기본적으로 ‘휘발성’을 지닌다.

<연금술>로 물질에 다른 성질을 부여한다고 한들, 특별한 조치와 재료가 없는 이상 금방 흩어진다. 하지만, ‘술자의 육신’에 서린 것은 좀 다르다. 그 자신의 마력에 가장 영향을 잘 받는 물질인 자신의 육체, 거기엔 생각보다 더 강하게 마력이 깃들 수 있고 변성에 용의하다.

천천히 물질이 변성하게 하는 것도 쉽지.

골고루 흩뿌리며 시간에 불이 붙게 조작한 뒤, 이어서 전선 일부분의 피복을 <연금술>로 녹였다. 마지막으로 놈이 술 먹다가 잠든 것처럼 그 손에 위스키 술병을 쥐여 줬다. 그래. 합선 때문에 너부러진 서류에 불이 붙었는데, 이 인간은 술 먹고 못 일어나서 뒤진 거다!

이것 말고도 30분가량 집 안을 훑고 다니며 ‘침입의 증거’가 될 법한 것들을 지운 후-.

“예린 씨! 돌아갑시다!”

내 호출에 쿠키를 씹으며 느릿하게 시체가 있는 방 쪽에서 나타나는 서예린, 내가 곧바로 그 등에 업히자 그녀는 <투명화>를 쓰고 집 밖으로 향했다.

2.

성공적으로 빠져나간 뒤, 우린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는 트럭으로 복귀했다.

트럭을 운전하면서 아가씨는 ‘왜 부주의하게 어쩌구~ 저쩌구~’하며 날 구박했지만 그래도 내가 꾸민 상황과 침실에서 본 자료에 대해 듣곤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목장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아가씨의 지휘 아래에 ‘완전 범죄’를 위해 움직였다.

우리들끼리는 물론이고 몇몇 아이들을 깨워서 입을 맞췄고, 목장 내 CCTV를 확인한 뒤에 시간을 조작했으며, 화재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아침 7시에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들을 만들었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잘 끝난 듯?”

사고를 친 다음 날에서 또다시 하루가 지나 ‘이튿날 아침’이 밝았음에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아침 배식으로 나온 양젖 크림 스튜(우리가 왔다고 식사에 힘을 빡 줬다)를 크게 한입 쑤셔 넣으며 느긋하게 말하는 서예린, 그에 아가씨도 살짝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있다가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용의선상에 있다면 어제 연락이라도 했을 텐데,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까.”

“그럼 오늘 돌아감?”

서예린의 말에 난 대답 대신 아가씨를 바라봤다.

사실, 엊그제 새벽에 곧바로 남쪽으로 복귀할까 생각했지만 아가씨가 반대했거든. 불나기 직전에, 그것도 새벽에 서둘러서 복귀하는 건 너무 부자연스럽다고 말이야. 돌아가자는 말에 아가씨도 좀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어쨌든 잘 지나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 중이었는데…….

“허억, 허어억. ……대장!”

무전기를 든 한 녀석이 식당에 들어오더니 내게 달려온다. 이름은 기억에 없지만 철수가 ‘전투조’라고 말하면서 운용하는 소년병, 다급해 보이는 반응에 뭔가 X됐음을 짐작하는 가운데-.

“정문 초소에서 국정원-전찬휘 사무관이라는 사람이 대장을 찾아왔다고 하는데?”

“에휴.”

나와 아가씨는 동시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넘어가나 싶었는데, 역시 아니다. 전찬휘 경감, 그 골치 아픈 인간이 오다니……. 그 면상을 떠올리니 식인 투구를 사용한 이후로 의무적으로 쑤셔 넣는 것에 가까운 식사가 더 얹히는 느낌이야. 반사적으로 얼굴을 찡그리며 복부를 붙잡자 옆에서 아가씨가 내 등을 토닥였다.

“쫄지 마, 연습한 대로 알겠지?”

“넵!”

아가씨의 응원에 마음을 가다듬은 후, 난 곧바로 통과시키라고 고갤 까닥였다.

5분 정도 지나자 연회장 밖에서 차량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며 검은 선글라스에 정장 차림의 남자가 들어온다. 잘 훈련된 사냥개 같은 느낌을 풍기는 전찬휘 경감, 그는 식당 안쪽을 한번 훑더니 날 포착하고 절제된 동작으로 또각또각 걸어왔다.

그리고, 내 테이블 앞까지 온 경감님을 향해 난 활짝 웃었다.

“어, 안녕하세요? 전찬휘 경……. 아니, 사무관님?”

“…….”

“왜 방문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식사라도 하실래요? 양젖과 치즈로 만든 크림 스튜인데. 맛있답니다.”

그런 내 권유에 경감의 얼굴이 살짝 찌그러진다. ……음, 좀 껄끄러운 인간이긴 해도 내 비밀을 숨겨주고 있는 양반이라서 부드럽게 권유했는데 왜 저러지? 어쨌든 내 권유에 경감은 곧바로 고갤 젓는다.

“아니, 괜찮다. 그보다도 지금 당장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군. 되도록 다른 사람이 듣지 않게 차 안에서.”

“흐음, 그럼 잠시 이야기하고 올게요.”

같은 테이블의 아가씨와 서예린을 향해 말한 뒤, 전찬휘 경감과 함께 밖으로 나가 식당 앞에서 대기 중인 검정색 차량 안으로 들어섰다. 경감은 운전석에, 그리고 나는 뒷좌석에. 음, 별다른 장치는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지.

네가 차에 앉자마자 전찬휘 경감이 곧바로 말을 쏟아낸다.

“너, 도대체 뭔 짓을 벌인 거냐?”

“……뭔 말이에요? 밥 먹고 있었는데?”

“어제 아침에 벌어진 일.”

“??”

시치미 떼는 내 모습에 경감이 얼굴을 찡그렸지만 난 당당하다.

솔직히, 공권력은 무섭다만……. 확실한 증거는 없는걸! 게다가 개인의 무력 또한 태도의 당당함에 보정이 됐다. 이젠 전찬휘 경감 ‘따위’는 내가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어. 저렇게 무장했어도 말이지! 그런 내 반응에 전찬휘 경감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어제 아침 7시경에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 사고요?”

“그래, 개성 2군단 내의 박범기 상장의 공관에서 불이 났지. 아직까진 공표되지 않았지만 그 사고로 박범기 상장이 죽었다.”

그에 난 ‘연습한 반응’을 취했다.

“하, 하하하! 잘 죽었네요! 그 새끼! 어휴, 속이 뻥!”

약간 억지웃음이었지만 평소에도 ‘르카스’의 후유증에 항상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라 위화감은 전혀 없다. 그런 내 웃음에 전찬휘 경감의 얼굴이 찡그려지고 난 뒤늦게 ‘큼큼!’ 헛기침하고 입을 열었다.

“크흠, 뭐. 그래서요?”

“솔직히 말하마. 우린 사고가 아닌 ‘살인’으로 의심 중이다. 게다가 네가 여기에 오고 난 뒤에 다음 날에 박범기 상장이 죽으니 너무 공교로운 상황이지.”

“…….”

“국정원은 주요 용의자로 널 올려놓고 있다. 나도 오늘 새벽에 정보 입수하고 바로 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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