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88화 (322/350)

제288화

3.

역시나, 의심을 안 할 리가 없지.

그 뽀글이 새끼, 나약하게 주사 한 방에 죽어 가지곤 끝까지 사람을 물 먹이네. 이 엿 같은 상황에 자연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난 경감을 향해 따지듯이 언성을 높였다.

“아니, 제가 그놈을 왜 죽여요?!”

“서로 원한 관계가 있잖나?”

백미러로 날 바라보며 경감은 날카롭게 추궁했다.

“넌, 상장의 수하들을 죽였지. 특히, 푸른 형제단의 ‘박원석’은 상장의 친자식이었다. 사생아지만 그의 핏줄 중에서 유일한 마력 각성자, 성품이나 성격 때문에 군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상장이 특별히 아낀 걸로 알려졌다.”

기억난다. 북쪽 나이트클럽에서 죽였던 조폭 두목 말하는 거구나. 어쩐지 <과거>를 볼 때, 상장의 집 안에 들어가서 비디오를 꺼내거나 혹은 상장에게 가야 할 비디오를 아무렇지도 않게 도중에 빼돌리더라니……. 어쨌든 간에 전찬휘 경감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너도 상장을 죽일 이유는 충분하지. 그가 ‘네 영상’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추측되니까.”

“하아.”

‘진짜 한새벽’이 찍은 비디오, 상장이 죽은 것 때문에 잠시 생각 안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난감하기 그지없구만. 정말 첩첩산중이야. 막막함에 잠시 한숨을 내쉰 후, 어쨌든 간에 난 계획한 대로 대답했다.

“경감……. 아니, 사무관님. 고백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 없겠네요.”

“역시, 네가 죽였나?”

“아니, 저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왜 아까부터 제가 죽였다고 하는 건가요?!”

계속 날 범인으로 몰아가는 전찬휘 경감의 추궁에 좀 찔끔해서 발끈했다. 설마, 내가 증거를 남겼나? 나름 신경 써서 지웠는데? 그런 내 대꾸에 전찬휘 경감은 백미러로 날 바라보며 고갤 젓는다.

“미안하지만 ‘마법 사용자’라면 어쩔 수 없다. 용의선상에 올라간 이들 중에 마법사가 연관된 것이 확인되면 무조건 의심부터 하는 게 정석적인 수사 방법이거든.”

“뭔…….”

“국가의 ‘수사력과 치안력’은 어디까지나 ‘상식과 과학’ 위에 성립하는 것이다.”

내 말을 도중에 끊으며 말하는 전찬휘 경감, 내가 백미러를 바라보는 가운데 그는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

“상대가 ‘상식과 과학’으로 해명될 수 없는 영역의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수사는 의미가 없게 되지. 그리고 ‘마법’은 아직 완전히 상식과 과학의 영역에 있지 않아. 무조건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고, 법적으로 물리적인 증거가 부족하더라도 체포할 수 있다.”

“허.”

상식을 부정하는 말에 자연스레 입이 벌어지자, 경감은 쓰게 웃으며 고갤 젓는다.

“형사소송 특별법 제2조 3항-마법 사용자는 그 행위가 의심될 시, 그 물증과 관계없이 긴급체포를 할 수 있다.”

“허, 허허허.”

“이 법이 제정됐을 때엔 마법에 대해 훨씬 더 무지하고 미지의 수단에 대해 두려움이 가득했거든. 지금은 마법의 대략적인 특징이 밝혀지며 조금씩 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진 이렇지.”

마법사 탄압, 진짜 너무하네.

증거도 없이 사람을 체포해? 21세기 마녀사냥 아니냐?? 거, 성질 뻗쳐서 증말……. 하지만, 좀 이해는 된다. 삼엄한 군벌의 저택에 몰래 잠입해서 죽이고 나온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영역에 속하긴 하니까. <투명화>도 그렇고.

씁쓸함에 한 번 입맛을 다신 뒤, 난 고갤 저었다.

“고백할 건, 비디오에 관한 거예요.”

“비디오?”

“저도 놈의 영상을 가지고 있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이기에 난 얼굴을 찡그렸다.

“박범기 상장의 스너프 비디오! 다른 애들처럼 억지로 찍은 게 아니라 즐기면서 한 걸!”

“……!”

내 말에 경감의 얼굴이 꿈틀거린다. 이전에 이곳 관련해서 내게 질문했던 양반이니 뭘 말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설명해 보라는 눈치에 적당히 ‘여기의 보스였던 마력 각성자 녀석이 몰래 보관하고 있던 걸 따로 빼돌렸다.’고 대충 축약해 대답했다.

“……그러니까, 만약 놈이 제 비디오 가지고 협박했다면 저도 그 비디오 가지고 협박할 거였어요. 목장에 사본도 있으니 지금 사무실 가서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왜 그걸 빼돌렸지?”

추궁하는 경감에 난 손으로 뒷좌석의 시트를 팡팡 후려쳤다.

“경……. 아니, 사무관님도 제 입장에서 생각해 보세요!! 그걸 순순히 넘기겠어요?! 넘기면 어떻게든 국정원은 그걸 써먹으려고 하겠죠?! 거기서 제 프라이버시 같은 거 신경이라도 썼겠어요?? 제 비디오 퍼져나가면 전 막말로 사회적으로 죽는 건데?”

“…….”

“양씨에게 나 좀 살려달라고 부탁해서 저 혼자만 가지고 있기로 했죠. 에이씨, 생각해보니 더 꼬였네요. 다른 놈이 내 비디오 가져가면 이젠 가지고 있는 비디오로 협박 못 하니까.”

전찬휘 경감이 말을 못 하는 가운데, 난 한탄하듯이 소리쳤다.

“저는요, 더 이상 북쪽이랑 얽히기 싫어요. 전 이미 제 능력을 검증했어요! 남쪽에서 풍족하게 살 수 있죠! 게다가 부자 여친도 생겼고요!”

“…….”

“이번에 북쪽에 온 이유도 이 목장을 지금 밑에 있는 애들에게 넘기려고 온 거에요. 더 이상 여기에 신경 쓰기 싫어서! 아니, 제가 녀석을 죽일 이유가 없다니까요?”

그렇게 최대한 어필한 뒤,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붙잡으며 아가씨가 ‘꺼내 보라고 했던 사안’에 대해 자연스레 언급했다.

“진짜 북쪽에 올 때마다 일이 터지는 느낌이에요. 철수는 세뇌에 걸려있고, 난데없이 군벌 수장이 뒤지고…….”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뭐가요?”

“세뇌……라고 하지 않았나?”

지나가듯이 흘린 말인데 경감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다. 아가씨의 예측처럼 ‘세뇌’라는 단어에 되게 민감하게 반응하네. 그에 난 천천히 미리 아가씨와 짜뒀던 말을 입에 담았다.

“제가 ‘마력의 기척’에 되게 민감한 거 아시죠?”

“그래, 알고 있다.”

“이번에 목장에 왔는데, 제가 없는 동안에 여길 관리하던 철수의 머리 쪽에서 묘한 마력이 느껴지더라고요? 뇌 속에 스며든 것 같은 희미한 마력이었는데, 절 볼 때마다 어떤 작용을 하는 듯이 보였고요.”

“자세히 말해봐라.”

그에 철수에게 들었던 것들을 말했다. 날 볼 때마다, 그리고 다른 조선족 사업가 놈을 떠올릴 때마다 반응하는 머릿속의 마력. 경감이 진지하게 경청하는 가운데 난 한탄했다.

“……철수의 말로는 절 볼 때마다 ‘질투’ 같은 부정적 감각이 강해진 반면에 그 사업가를 떠올릴 때엔 점차 ‘친근’해지는 것 같았다고. 그리고 술자리에서 너무 쉽게 마음이 풀어져서 저에 대해서 떠들었다고 하고요.”

“왜 이 상황을 알리지 않았지? 내 직통 번호까지 줬는데?”

연이은 추궁에 난 어깰 으쓱이며 고갤 저었다.

“증명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증명할 방법이 없다?”

“마력 자체가 너무 희미한 데다가 이 상황에 대해 의심을 품자 번쩍거림이 눈 녹듯이 사그라졌어요. 괜히, 전화해봤자 위험하니 돌아오라 할 게 뻔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중에 한번 정한솔 선생에게 검진받아 보려고 했어요.”

“푸흐으으…….”

그 말에 골치 아프다는 듯이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는 전찬휘 경감, 하지만 이내 손을 내리곤 고갤 끄덕였다.

“좋아. 일단, 말한 것들은 윗선에 보고하겠다. 그 증거로 박범기 상장의 비디오를 좀 받고 싶군. 추가로 세뇌를 당했다는 그 아이와도 한번 대화를 해보고 싶고.”

“USB는 제 본관 사무실에 있어요. 철수도 본관에 있고요.”

철수와도 입을 맞췄으니 문제없다.

내 대답에 고갤 끄덕인 경감이 다시 차에 시동을 걸려는 와중에 식당 안에서 내게 소식을 전했던 무전기를 든 아이가 허겁지겁 나온다. 차량을 보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 내가 창문을 열자 아이는 반색하며 다가왔다.

“대, 대장! 입구에 국정원 요원이라는 사람이 또 왔어! 그,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데?”

그에 난 운전석의 전찬휘 경감을 바라봤는데……. 이 양반도 모르는 눈치다.

“또 오게 했어요?”

“난 모르는 일이다. 네 소식이 들려오자 곧바로 처리하러 왔지.”

“그럼, 사칭범…….”

“아니, 아마도 진짜 국정원일 거다.”

고개를 저으며 전찬휘 경감은 굳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간다.

“국정원은 거대한 조직이야. 다른 부서에서 네게 사람을 보냈을 수도 있어. 아마도 3차장실 휘하일 것 같군. 그쪽이 ‘북쪽 공작’을 전담하고 있거든. 사실, 따지고 보면 그쪽이 오히려 공식적인 것에 가까워. 내가 온 건 일종의 비선(秘線)이지.”

“하아, 들여보내요. 이쪽으로 오라고 하고.”

내 말에 무전을 보내는 아이, 그에 또 다른 국정원 요원들이 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차량에서 내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장 입구 쪽 도로에서 검정색 트럭이 나타났다.

-부르릉! 부릉!

전찬휘 경감이 타고 왔던 검정색 세단과는 다른 군용에 가까운 튼튼한 험비 차량, 곳곳에 총탄을 맞은 흔적이 있었다. 그렇게 거칠게 여기까지 달려온 험비가 멈춰 서고 이어서 사람들이 내렸다.

총 5명.

전부 ‘마력 각성자’들이었는데, 그중 4명은 특수한 마법적 재질이 섞여 있는 전투복에 방독면을 썼다. <감정>해보니 하나같이 ‘독·부식 저항’이 붙은 장비들.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낸 30대 중반의 남성은 국정원 요원들이 착용하는 정장 형태의 방호구를 착용했다.

-처적!

-척!

전찬휘 경감이 험비 쪽으로 다가가려 하자 전투복 차림의 인원들이 빠르게 권총을 꺼내 겨눈다. 그에 경감은 천천히 품 안에서 백금색의 ‘금속 명함’을 꺼낸다. 그 명함을 보고 정장 차림의 남자가 그만하라는 듯이 손짓하자 전투복 인원들이 권총을 내린다.

“반갑습니다. 5차장실 소속 계장, 전찬휘라고 합니다.”

얼굴을 드러낸 남자에게 다가가 명함을 건네는 경감, 볼우물이 움푹 파여 좀 냉막해 보이는 남성은 그 명함을 받아 들고 훑어보더니 돌려주면서 똑같은 재질의 명함을 꺼내 경감에게 내밀었다.

“3차장실 소속 과장, 최민호다.”

무뚝뚝한 어조로 말하는 남자, 딱 봐도 경감보다 더 높은 사람인 것 같네. 전찬휘 경감이 명함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반납하자 최민호라는 남자는 무뚝뚝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간다.

“5차장실 인원이 왜 여기에 있지?”

“한새벽은 저희 쪽 주요 관찰 대상 중 하나입니다. 현재, 한새벽과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터졌다는 말에 긴급하게 와서 심문 중이었습니다.”

조심스럽게 대답하는 전찬휘 경감, 그에 최민호라는 요원은 살짝 미간을 찡그린다.

“아무리 그쪽의 주시 대상이라고 해도, 여긴 우리 쪽 관할이야.”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전찬휘 경감이 마지못해 동의하자 냉막하게 생긴 남자는 날 바라보며 무덤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용의자를 체포해.”

4.

그 말과 함께 4명의 전투원들이 내게 다가온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아가씨와 서예린이 밖으로 나와 내 양옆에 서자 다가오던 4명도 발걸음을 멈춰 선다. 그러곤, 묘하게 생긴 원통을 꺼내 겨눈다. 그렇게 4명 vs 우리 일행 간에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자 전찬휘 경감이 다급하게 입을 연다.

“과장님! 체포까지는…….”

“현장에서 ‘타살’이라는 물증이 발견됐다.”

타살 물증이라는 말에 경감의 입이 다물어진 가운데, 냉막해 보이는 얼굴의 과장은 날 바라보며 눈가를 좁혔다.

“박범기 상장은 금으로 만들어진 ‘힘과 체력’을 올려주는 액세서리 형태의 마법 장비를 항상 착용하고 있었다. 근데, 남겨진 시신엔 그 흔적이 없어. 조사 과정에서 누군가 몰래 금붙이를 가져갔다고 보기엔 손가락 부분의 뼈에 녹은 금붙이 흔적이 아예 없다.”

그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박범기 상장이 낀 마법 장비는 나도 봤다. 힘 +1 같은 저열한 것들, 그래도 비싸긴 하다만 사라지면 강도·살인을 의심할 것 같아서 그냥 내버려두고 나왔는데…….

“…….”

그때, 서예린이 미미하게 ‘움찔’한다.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정도로 작은 들썩임, 그러고 보니 가장 마지막에 방에서 나온 사람이 얘였지? 범인이 누군지는 뻔하구만……. 유혈 사태 때도 식인종들이 착용한 금붙이 회수한다고 열을 올렸던 녀석인 걸 잊어먹고 있었어.

괜히 바라봤다가 산통을 깰 것 같기에 속으로 이만 갈고 있는 와중, 냉막해 보이는 남자의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공관의 지하에 박범기 상장이 가지고 있던 ‘스너프 컬렉션’의 보관고가 발견됐다. 여기도 침입자의 흔적이 있더군. 그 철문 비밀번호 패널은 지문 하나 없이 깨끗하고, 그 안쪽 바닥은 먼지 하나 없어. 누군가 침입해서 청소한 흔적이다.”

“하지만…….”

“그리고, 그 컬렉션 중에서 ‘한새벽’의 것만 없더군.”

뭐라 반문하려던 전찬휘 경감이 입을 다무는 가운데 난 쓰게 웃었다.

청소하긴 했다. 근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서 발자국 같은 게 드러났거든. 혹시 모르니 없애는 게 옳지. 게다가 내 비디오를 없애는 건 당연한 거고. 내가 쓰게 웃자 냉막해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더더욱 냉담하게 변한다.

“웃어?”

“……네?”

“공권력이 우습나?”

아무래도 웃은 걸 비웃는 걸로 착각한 듯하다.

앞을 막아선 전찬휘 경감을 밀어내며 그는 착 가라앉은 얼굴로 품 안에서 묘한 아우라가 일렁이는 새카만 고풍스런 나이프를 꺼낸다. <감정>해보니 다름 아닌 ‘반마법’ 속성이 달린 무기다.

“너 같은 놈들이 제일 위험하지. 마냥 제 잘난 줄 알고 법을 무시하며 날뛰는 마력 각성자.”

“과장님! 한새벽은 그렇게 함부로 대할…….”

“그만.”

경감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깡마른 남자는 어떻게 말려 보려는 경감을 향해 시커먼 단검을 겨누며 싸늘하게 경고한다.

“이건, ‘개척 부서’의 공식 요청이다. 이번 일 때문에 계획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으니 정확한 사고 경위를 알아봐 달라고.”

“…….”

“아무래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저 녀석에게 사전에 경고하러 온 것 같은데, 더 이상 딴지 그만 걸어라.”

이어서 그는 내 양옆에 선 서예린과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저쪽은 현재 유력 용의자다. 그리고 우린, 지금 공무를 집행하는 중이고. 조사를 하려는 거니 ‘범법자’가 되기 싫으면 비켜라.”

그에 미간을 찡그리는 서예린과 마빡에 핏줄 하나 솟아오르는 아가씨, 하지만 뭐라고 하지는 못한다. 그에 난 양손을 뻗어 옆에 선 두 사람을 뒤로 약하게 밀며 속삭였다.

“괜찮아요. 좀 잡혀가서 있다가 나오죠.”

“……조금만 기다려. 곧바로 항의할 거니까!”

“하하, 넵.”

공권력에 반항해봤자 손해를 보는 건 나다.

조금만 버티면 국정원 차장님이 어떻게 해주겠지. 전찬휘 경감에게 살짝 고갯짓을 한 뒤, 난 순순히 양손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그렇게 순순히 잡히겠다고 했지만-.

-철커덕!

-철컥!

“윽!? 좀 살살…….”

그 대우는 매우 거칠었다.

방독면을 찬 전투원들이 곧바로 양팔을 붙잡더니 무릎을 꿇리고, 옷소매를 걷어 가져온 수갑을 채운다. 일종의 저주템, <감정> 결과 착용 시에 근력과 민첩성을 저하시키는 종류다. 연이어서 목에도 커다란 족쇄를 채웠는데……. 이건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는 거네.

하지만, 고작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야! 너희들 뭐하는 거야!”

얼굴에 검은 자루까지 뒤집어씌운다. 이건, 착용자에게 시야와 소리를 차단하는 동시에 ‘미약한 혼란’을 가하는 종류의 저주템이다. 맞아서 뇌 손상으로 생긴 착란은 걸리는데, 순수하게 ‘정신 공격’으로 취급돼서인지 내겐 통하지 않는구만. 이런 취급에 아가씨가 발끈하며 한 발자국 나아가려 하지만 서예린이 막아선다.

“참으셈. 풀려날 거임.”

“……제기랄.”

‘빠득!’ 이를 가는 아가씨,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뭐라 말도 못 하는 가운데 난 질질 차량 안으로 끌려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