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9화
5.
짐짝처럼 트렁크에 쑤셔박힌 뒤, 차량은 목장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온몸이 속박당한 채 끌려가는 상황, 일반인이라면 공포에 질렸겠지만 내겐 <눈>이 있었다. 그 덕분에 겁에 질리지 않고 침착하게 차량 안쪽을 엿볼 수 있었다. 차량이 출발하자 군복 차림의 인원들은 방독면을 벗는 가운데, 조수석에 탄 요원은 스마트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부장님.”
-그래, 일은 잘 끝났나?
휴대전화 안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에 요원은 작게 고갤 끄덕였다.
“예, 용의자 포획 완료했습니다. 별다른 저항 없이 잡혀서 준비해간 ‘반마법 무기’와 ‘마법사 포획 장비들’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좋아, 사리원 쪽에 있는 ‘거처’ 알지? 그쪽에 사람들 배치해뒀으니까 그쪽으로 옮기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보고할 사안이 있습니다만…….”
-뭔가?
뭐냐는 질문에 요원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용의자를 체포하는 곳에 5차장실 인원이 있었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그쪽 라인과 용의자가 꽤나 친분이 있는 것 같더군요. 보아하니 어떤 형태로든 개입해올 것 같습니다.”
-쯧, 제대로 취조하는 건 물 건너갔군. 그래도 그쪽으로 옮겨. 내 선에서 최대한 개입을 막아볼 테니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는 요원, 보아하니 조금만 버티면 될 것 같네.
그렇게 차량은 도로를 타고 2시간가량 움직여 낙후된 공장 지역으로 들어섰다. 외곽 쪽 폐공장에 차량이 멈춰 서자, 전투복 인원들은 밖으로 나와 트렁크에서 날 꺼내 폐공장 내부의 지하실로 질질 끌고 갔다.
나무 의자와 탁자밖에 없는 삭막한 콘크리트 지하실.
천장에 도축한 고기를 거는 데 쓸 법한 쇠갈고리가 걸려 있다. 의자에 앉아서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던 두 남자가 요원이 들어오는 인기척에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서고, 이어서 요원이 모습을 드러내자 ‘꾸벅’ 고갤 숙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게 요리할 ‘돼지’입니까?”
건장한 체격의 남자와 깡마른 체격의 남자, 말 자체는 남쪽 말투지만 ‘북쪽 억양’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에 요원이 고갤 돌려 전투원들이 끌고 온 날 응시한다.
“그래, 이 녀석이다. 심문해야 할 내용은 미리 받았지? 그리고, 이놈이 어떤 놈인지도?”
“다 읽어 봤습니다.”
고갤 끄덕이는 2인조, 뭔가 심상찮아서 <눈>으로 탁자 위에 있는 커다란 가방을 보아하니……. 뭔 치과에서나 쓸 법한 각종 도구들과 회복용 포션이 있다. 딱 봐도 고문용인데? 게다가 파일도 하나 있기에 읽어 봤는데-.
뭔가 잘못됐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뭘 추궁해야 할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는 서류인데, ‘답변’을 사실상 정해 놓고 있었다. 게다가 내 정보도 많이 누락됐어! 고작해야 신체 사항과 ‘박범기 상장을 암살한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마법사’ 정도가 끝이야!
난 국정원 입장에서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기업 생산성 증가’를 위해 매달 1억이라는 거액의 특활비까지 쥐여 주면서 굴리는 고급 노예! 게다가 신안 사태 때 일을 처리한 1등 공신이다! 설령 내가 ‘상장을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국정원이 심하게 대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순순히 잡혔는데…….
뭔가 심하게 X됨을 느끼고 등골에 식은땀이 맺히는 가운데, 요원과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예상보다 취조 가능한 시간이 많이 줄어들 것 같다. 하루·이틀 정도? 어쩌면 더 짧을 수도 있고.”
“고작 그 정도입네까? 마력 각성자는 한 일주일 정도 잠 안 재우고 시작해야 제대로 되는데…….”
“사정상 어쩔 수 없다. 그럼 부탁하지.”
살짝 고갤 까닥이고 밖으로 나가는 계단을 오르는 요원. 남자들이 그 등을 향해 90도 폴더 인사를 하는 가운데, 방독면을 쓴 전투원들은 날 고대로 구석에 내동댕이치고 요원의 뒤를 따라서 나갔다.
-투웅.
그렇게 철문이 닫히고 난 뒤, 남자들 중 하나-퉁퉁이가 날 내려다보며 손을 비빈다.
“흐으, 그럼 이 ‘돼지’를 어떻게 요리할까?”
진짜 요리사가 재료를 보며 뭘 할지 고민하는 듯한 모습, 그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절로 소름이 돋으며 나도 모르게 몸을 꿈틀거렸다. 그 와중에 다른 한 남자-비실이는 자기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야, 우리 아무래도 좀 골치 아픈 일에 낀 것 같다.”
“음? 뭔 소리 하는 기래?”
“남쪽 애들의 파벌 싸움에 낀 것 같어.”
퉁퉁이가 얼굴을 찡그리자 비실이는 보란 듯이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며 한숨을 내뱉는다.
“저 방독면 쓴 애들 있잖네? ‘전투조’라는 곳인데, 같은 고향에서 친하게 지내던 내 딱친구가 거기에 있다. 걔가 내게 몰래 문자 보냈디.”
“뭔데?”
“이 돼지, 잡으러 갔는데 다른 국정원 사람이 있었다더군. 5차장실 사람이라는데……. 그쪽이 잡으려는 걸 막으려고 했단다. 하디만, 이 돼지가 순순히 잡혔다고 하고. 배포받은 자료에 따르면 저 돼지, 꽤나 치명적인 마법사라고 하더군.”
“……마법사란 거 빼면 우리가 받은 서류철엔 없는 사실 아니네?”
얼굴을 구기는 퉁퉁이, 그에 비실이는 스마트폰을 끄며 고갤 주억였다.
“길티, 아무래도 수상해. 나중에 독박 씌워질 수도 있다.”
“하, 제기. 남쪽 간나 새끼들. 참 지랄도 지랄이구만. 안 그래도 새벽부터 불려 나와서 기분 더러운데…….”
한탄하며 신경질적으로 목제 의자의 등받이를 꽈악 붙잡는 퉁퉁이, 나무에 손가락 자국이 새겨지는 광경을 보며 침을 삼켰다. 다행히, 그냥 무작정 고문을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잘하면 이 사실로 구슬려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열심히 머릴 굴리는 사이, 고민하던 비실이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뭐, 다른 방법이 있간? 하라는 대로 해야지. 남쪽에 있는 자식 새끼들 생각하면 독박 쓰더라도 어쩔 수 없지.”
“하, 다 북쪽에 태어난 우리 업보구나야.”
‘빠득!’ 이를 갈며 손가락 자국이 남은 의자에서 손을 떼는 퉁퉁이, 이어서 좀 신경질적으로 비실이를 향해 말한다.
“누가 먼저 할 거네? 그리고 교대는? 12시간 아니면 하루?”
“……하루 간격으로 하지. 운이 좋다면 한 사람만 독박 쓸 테니까.”
“그럼 순서는 공평하게 동전으로 하디?”
퉁퉁이의 말에 고갤 끄덕이는 비실이, 이어서 서로 동전의 앞뒤를 정하고 비실이는 동전을 꺼내 튕긴다. 그리고 비실이가 당첨됐다.
“제기.”
짧게 욕설을 내뱉곤 옆에 둔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여는 비실이, 그러는 동안 퉁퉁이는 내게 다가와서 손목을 속박한 족쇄를 쥐더니 천장에 걸린 갈고리에 그대로 걸어 버린다. 그래, 여기까진 이해했지만-.
-찌이이익!
“읍……!! 읍읍!”
그 뒤에 내 옷을 칼로 찢어발겼다.
아니, X발!? 어떻게 발버둥 쳤지만 내 근력으로 팔에 걸린 족쇄를 풀어내는 것은 무리. 꿈틀거리는 내 모습에 퉁퉁이는 피식 웃곤, 음흉하게 손으로 내 몸을 훑는다.
“키야, 피부가 매끄러운 게……. 이것만 아니라면 기냥 가슴 없는 기집애라고 해도 믿갔서. 사진 보니 얼굴도 곱상하던데. 한번 해주면 고분고분해지는데 말이지.”
‘이것만 아니라면’이라 말하는 부분에서 내 ‘소중이’를 모욕적으로 탁 검지로 튕기는 퉁퉁이의 짓거리에 치를 떨었다. 감히……. 감히……. 내 그곳을?! 그리고, X발. 그게 끝이 아니라 슬금슬금 내 엉덩이를 만지면서 ‘구멍’ 쪽으로 향한다!
그런 퉁퉁이의 모습에 복면을 쓰고 가방에서 장비들을 꺼내고 있는 비실이가 입을 연다.
“먼저 할 거냐?”
“흐음, 앙탈 부리는 꼴이 보고 싶긴 한데……. 그래도 좀 기리티.”
“그럼 비키라.”
“그래도 얼굴은 건드리지 마라. 혹여 내 차례가 오면 한번 써보고 싶거든.”
입술을 훑으며 아쉬움을 드러내는 퉁퉁이는 찢겨진 내 옷가지와 소지품을 바구니에 넣고 밖으로 나간다. 그 뒤, 비실이가 다가와서 내 얼굴에 뒤집어쓴 두건을 ‘팍!’ 걷어낸다. 그에 난 재빨리 그동안 생각해뒀던 말을 내뱉었다.
“그, 그만! 그만하세요!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난…….”
-퍼억!
그리고,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비실이의 주먹이 무방비인 내 복부에 스트레이트로 꽂힌다.
내장이 뒤틀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위액이 그대로 입으로 올라온다.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그 신물을 삼키며 난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뭔지 모르겠지만 국정원 5차장님…….”
-퍼억!
“우웁…….”
또 한 번 주먹을 내지르는 비실이, 한 번 더 정통으로 복부에 작렬하는 주먹질에 난 버티지 못하고 입까지 올라오는 아침 식사 내용물을 쏟아냈다. 그러자 놈은 소매를 걷더니 탁자 위에 펼쳐둔 트렁크 가방에서 쇠 파이프를 하나 꺼낸다.
“자, 잠깐……!”
그리고, 쇠 파이프가 날 향해 떨어졌다.
6.
한새벽이 끌려간 뒤, 전찬휘 사무관은 곧바로 ‘증거를 제출할 테니 기다려라.’는 말과 함께 서둘러 남쪽으로 복귀했다. 그에 남궁진아는 곧 해결될 거라는 생각에 나름 느긋하게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흐으으음……!”
점심이 지나 저녁, 심지어 자정에 가까워질 때까지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본관 최상층에 있는 한새벽의 사무실. 남궁진아가 미간을 찡그린 채로 이리저리 방 안을 서성이는 가운데, 엉겁결에 같이 있게 된 서예린은 심기가 불편한 절친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 잘 거임?”
“……넌, 잠이 오냐? 새벽이 걱정이 안 돼?!”
발걸음을 멈추고 살짝 뾰족하게 반문하는 남궁진아, 그에 서예린은 살짝 움찔하면서도 그 생글생글 웃는 한새벽의 얼굴을 떠올리곤 천천히 고갤 끄덕였다.
“전혀 걱정 안 됨.”
“뭐?! 야, 아무리…….”
“걔가 죽을 것 같음? 미르가 유혈에 잠겼을 때도 수월하게 헤쳐 나온 애임.”
이어진 말에 남궁진아가 입을 다무는 가운데, 서예린은 어깰 으쓱였다.
“걔 무지 셈. 직접 한번 싸워보면 절대 죽을 거란 생각 안 들 거임. 그러니 안심하셈.”
“…….”
“자고 일어나면 알아서 오지 않겠음?”
살살 눈치를 보는 서예린의 말, 반박하고 싶었지만 어찌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기에 남궁진아는 신경질적으로 소파에 앉았다. 그러곤 잠시 고민하다가 테이블에 올려놨던 자기 휴대전화를 집어 들곤 한 전화번호를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됐다.
-전화 받았습니다.
“저예요. 전찬휘 사무관님. 늦은 밤에 전화해서 죄송해요.”
-아.
“아직 새벽이가 어떻게 됐다는 소식이 없는데 궁금해서요.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를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전찬휘 사무관, 그녀가 아는 거의 유일한 국정원 관련 인맥이었다.
그래 봤자 실권은 없는 중간 공무원이기에 전화하는 걸 자제했지만 이젠 참을 수 없었다. 그 말에 전찬휘 사무관은 멈칫하더니 이내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내부 사정을 말하는 건 금지지만……. 그게 좀 난항을 겪고 있다.
“자세히 말해 주실 수 있나요.”
-대북 공작을 전담하는 3차장실 쪽의 반발이 엄청 강해. 정확히 말하면 ‘북쪽 지부’ 쪽에서. 북쪽 개척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박범기 상장이 죽은 거니 대충 넘어갈 수 없다면서 말이야. 명확한 증거는 없지만 심증으론 한새벽이 가장 유력하니까.
남궁진아의 이마에 핏대가 하나 솟구치는 가운데, 전찬휘 사무관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래도 우리 차장님과 1, 2차장실 경제 쪽 파트 애들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중이다. 너희들이 넘겨준 USB와 세뇌 관련 증언도 제출했어. 계속 잡혀 있지는 않을 거다. 곧 석방이 될 거야.
“……그럼 새벽이와 잠시 통화라도 할 수 있나요?”
짜증을 가라앉히며 꺼낸 말, 하지만 전찬휘 사무관은 몇 초 동안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전화 너머에서도 느껴지는 망설임에 남궁진아의 미간에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그의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도 연락 못 했다. 차장님이 직접 연락해 보려고 했는데도 말이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그러니까 문제지. 3차장실 휘하, 북쪽에 있는 지부에서 심문 중이라는데 그것밖에는 몰라. 차장님이 어떻게 언성을 높이는데도 요지부동이다.
“…….”
-차장님의 말로는 일종의 권력 싸움이라고 하더군. 젊은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놈들이 지랄한다면서 말이야.
남궁진아가 아무런 말도 못 하는 가운데, 전찬휘 사무관의 한숨 소리가 이어졌다.
-자세한 내용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여기도 사내 정치가 있다. 오히려 심한 편이지.
“…….”
-그래도 너무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 한새벽은 매우 중요한 인재니까. 꼬장을 부려도 결국 풀려날 수밖에 없어. 명확한 증거도 없고.
그 말에 남궁진아는 천천히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들이켰다. 그러곤 이내 사납게 눈을 치켜뜨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럼 우리가 나서도 되죠?”
-음, 무슨…….
“새벽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스마트폰으로 추적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어차피 풀려난다면서요? 좀 일찍 가서 상태 좀 봐도 되겠죠?”
한새벽의 스마트폰은 남궁진아가 직접 부품들을 사서 조립해줬다. 시중에 판매하는 스마트폰에는 너무 비싸서 들어가지 못하는 마력 가공 제품이 대폭 들어간 명품, 그 기능도 그녀가 몇 가지 추가했는데 그중엔 ‘추적’ 기능도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기겁한 듯한 숨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속사포처럼 말을 이어 나갔다.
“최소한 연락이라도 주고받을 수 있으면 곱게 기다리겠는데 그러지 못하겠네요. 사무관님도 보셨잖아요! 팔다리 속박하고 두건 씌워서 연행하는 거! 아무리 봐도 이상해요! 우리 새벽이가 어떤 사람인데!!”
-…….
“차장님에게 말해줘요. 구하러 간다.”
사무관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린 후, 그녀는 소파에서 일어서며 스마트폰 추적 기능을 켰다. 그 위치는 몇 시간 전에도 확인했듯이 ‘사래원’, 그걸 보면서 그녀는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쓰읍, 다음 버전에는 강제 ‘영상 촬영’과 ‘도청 기능’도 넣어야겠어.”
“……그거 범죄 아님?”
“들키지 않으면 범죄가 아니잖아? 너도 갈 준비해. 그 빚은 한새벽에게 청구하고.”
떨떠름한 표정이었다가 이어지는 남궁진아의 말에 반색하며 일어서는 서예린, 그렇게 두 사람은 사무실을 박차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