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90화 (324/350)

제290화

7.

난 ‘고통’을 싫어한다.

고통을 피하는 것은 생명체의 본능이고, 나도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느끼는 감각도 다르지 않은데 당연히 싫지. 그럼에도 다른 이들에 비해 ‘고통을 감내하는 선택’을 많이 하는 건…….

막장 인생이 ‘이미 인생 X된 김에 막 나가는 것’과 비슷하다.

영혼이 반쯤 박살 나서 병신이 된 상태, 겉으로 티가 나지 않게 잘 숨기고 있지만 그로 인한 끔찍한 공허함과 박탈감이 시시각각 날 괴롭힌다. 그리고, 잠잘 때마다 그 ‘르카스를 또 보지 않을까?’ 등의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런 극심한 ‘영적 고통’에 시달리니 ‘육체적 고통’이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느껴지는 거다.

전신이 석유에 뒤덮여 불타고 있는데, 발에 쬐끄만 가시가 박힌다고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고통 자체는 똑같이 받는다. 그래, 어찌 보면 다른 사람들보다 ‘쬐~금’ 인내심이 더 강한 것이라고 볼…….

아니, 지금 보니 인내심도 강한 건 아닌 것 같아.

“으극, 으그그극!”

입을 억지로 벌리게 하는 기구, 그 안을 파고든 귀이개 같은 것이 움찔거릴 때마다 내 몸이 알아서 바람 빠지는 비명과 함께 움찔거린다. 어금니가 뽑힌 구멍의 살이 파헤쳐지고, 그 밑에 자리한 치수와 검붉은 실 같은 신경 조각이 갈가리 찢겨진다.

“끅, 꺽……. 꺼걱……. 꺼억!”

치통, 그것도 충치로 썩어 들어간 신경이 아닌 멀쩡한 신경을 건드리는 고통. 팥죽 같은 땀을 쏟아지고, 전신 근육은 팽팽하게 수축해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다. 물론, 냉정하게 신경을 쓴다면 이런 자연스런 반응을 통제하고 움직일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소용이 없었으니까.

-드르륵……. 까득까득…….

신경 조각을 긁어내면서 귀이개가 턱뼈까지 다다르자 비실이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을 꺼낸다. 난 ‘딱딱이’라고 알고 있는 정전기가 튀기는 장비, 잇몸에 박힌 그 귀이개 틈에 딱딱이의 전선을 넣고 가볍게 버튼을 누르는 순간-.

-틱!

“……!!”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눈앞이 하얗게 되는 감각, 진짜 뇌까지 찌릿찌릿해지는 느낌이야. 내가 만든 CRPS 약물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네. 그냥 몸뚱이가 알아서 꿈틀거린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눈물·콧물을 질질 흘리면서 축 늘어졌는데-.

“눈 떠.”

“…….”

“안 떠?”

-틱! 틱! 틱! 틱! 틱!

비실이가 연이어서 딱딱이를 딸깍거리고, 그에 몸이 척수반사하는 고깃덩이처럼 꿈틀거렸다.

남이 내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니……. 참 굴욕적인 경험이다. 그것도 진짜 사슬만 없다면 1초 만에 목숨을 날려버릴 수 있는 놈에게 말이다. 그래, 지금에서야 확실하게 알겠다. 난 고통에 내성이 없다.

남에게 받는 고통엔 더 민감한 편이다.

이미 아파 뒤질 것 같은데, 그 환부를 가볍게 나뭇가지로 콕콕 찌르면서 괴롭히는 새끼에게 진지하게 살심(殺心)이 안 들까? 당장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니, 지금은 ‘참아야만’ 했다. 진짜, 내 살기를 뿜어내며 경고했다간 놈이 날 죽일 테니까.

어리석었다.

뭘 믿고 그냥 국정원이라기에 따라왔는지……. 족쇄가 채워지면서 안 그래도 정교함 빼면 시체인 육신은 병신이 됐고, 저주받은 목걸이가 룬문자의 형성을 방해하면서 마법 또한 무력화됐다. 그냥 난 곱게 고통을 견디며 참는 것밖에 못 하는 약자가 되었다.

“하, 이거 장난 아니네.”

그렇게 치밀어 오르는 짜증과 분노를 곱씹고 있을 때, 내 피와 타액이 뒤섞인 귀이개가 내 한쪽 눈꺼풀을 강제로 들어 올린다. 이어서 비실이 녀석은 내 입을 강제로 벌리게 만든 기구를 벗겼다. 그에 이빨 몇 개가 빠져서 발음이 정확하진 않지만 난 질문했다.

“왜, 이러는 거죠?”

“…….”

“말하라는 대로 다 했을 텐데……. 틀리지 않고.”

처음엔 이러지 않았다.

두들겨 패기에 적당히 겁에 질린 척하면서 서류 안에 있는 내용대로 말해줬는데, 그럼에도 고문의 강도가 점점 에스컬레이터 오르듯이 강해져서 이빨을 뽑고 그 안의 신경을 지지는 단계까지 왔다. 벌써 6개나 뽑혔어.

“허, 이 꼴이 되고도 질문할 깡따구가 있다니…….”

그런 내 질문에 비실이는 헛웃음을 흘리더니 내 눈꺼풀 아래에 집어넣은 귀이개를 뽑는다. 날을 세운 그 쇳조각에 긁혀 피와 안액이 흐르는 가운데, 뭔가 말하면 항상 폭력으로 일관하던 놈은 이전과는 달리 내 질문에 대답했다.

“너, 나가자마자 딴말할 거잖아.”

“…….”

반박을 못 하겠네.

적당히 질문에 원하는 대로 대꾸해준 뒤, 나가자마자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지. 그런 내 침묵에 비실이는 날카로운 귀이개를 보며 복면 속의 얼굴을 찡그렸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북쪽 ‘보위부’ 출신이다. 나이가 어리니 잘 모르겠지만 북쪽이 아직 ‘북한’이라는 나라였을 때의 국정원이라고 보면 된다. 거기서 ‘취조 전문가’였고.”

“…….”

“그래서, 사람을 보면 잘 알아. 이 인간이 나중에 딴말할지, 안 할지. 넌……. 진짜 너 같은 독종은 처음이다. 자랑해도 좋다. 20년 넘게 이 짓 하면서 너 같은 놈은 없었거든.”

고갤 젓는 비실이, 이어서 놈은 이빨을 헤집던 귀이개를 곱게 트렁크 가방 안에 집어넣곤 망치를 꺼냈다.

“그러니 나도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겠어.”

“…….”

“웬만하면 몸에 티가 나는 짓은 하지 않는 편인데……. 몸이 박살 나고 병신이 되어도 그럴 수 있는지 보자. 마력 각성자라고 해도 병신이 안 되는 건 아니거든.”

사실이긴 하다. 아무리 영체라는 청사진대로 돌아가려는 성질이 있다곤 하지만 너무 과한 변화는 결국엔 따라잡지 못하니까. 그런 육체의 변화에 결국 영체도 뒤틀리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협박하는 녀석을 향해 난 피식 웃었다.

“그래도 돼요?”

“…….”

“자랑은 아니지만 저 대단한 사람이랍니다? 국정원 부서 사이의 알력 다툼 때문에 꼬여서 이렇게 끌려왔…….”

어금니가 죄다 빠져서 볼이 움푹 들어간 채로 웃어주자 놈이 어지간히 빡쳤는지 망치를 휘두른다. 그대로 내 왼쪽 볼을 타격하는 녀석, 어금니는 다 빠졌지만 나머지는 남아 있는데, 그 일격에 몽땅 박살 나 입 밖으로 흩어진다.

“퉷, 어흐. 아바라.”

입 안에 남은 이빨 파편 2~3개를 뱉어내곤 바람 빠지는 목소리로 웃어줬다.

그런 내 모습에 흠칫하는 녀석, 망치를 쥔 놈의 손에 핏줄이 솟구치지만 휘두르진 못한다. 방금 전 망치질도 반쯤은 충동적으로 한 거거든. 망치를 휘두른 뒤에 복면 속의 얼굴이 질겁했으니까.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더 이상은 못 하겠지.

그런 내 모습에 놈은 한숨을 내쉬며 탁자에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래, 니가 이겼다. 내가 가진 밑천까지 써봤는데도 못 꺾는군. 하지만 내 친구는 다를 거야.”

“흐?”

“걔는 정치범수용소 간수 출신이거든.”

의자에 앉으면서 비실이는 날 올려다보며 피식 웃었다.

“사실, 좀 언짢긴 하디. 수용소 간수나 하는 간나 새끼하고 나같이 보위부 출신의 엘리트가 같이 엮이니……. 그래도 그놈이 꽤 한다. 나처럼 기술이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인간을 막 다루지.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예쁘장하면 범하거든.”

“…….”

“어디, 한번 보여도 봐라. 옆에서 나도 자지 않고 볼 테니.”

그 비웃음이 내 가슴팍에 꽂힌다.

혈관에 피 대신에 염산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 저것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살심(殺心)과 마력이 뒤섞이려고 한다. 이를 드러내선 안 되건만……. 참기 힘들어. 내 안의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

-파직!

“음?”

녀석이 든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천장에 달린 형광등도 꺼졌다.

순식간에 내려앉은 어둠, 그 명백히 부자연스러운 상황에 나는 <눈>을 움직여 밖을 바라보니 당당히 공장 철문을 박살 내며 들어오는 아가씨가 보였다. 그 뒤를 따르는 서예린과 철수, 그리고 보육원 애들도.

“흐, 흐흐흐……. 제 친구들이 온 것 같은데요?”

그에 난 남자를 향해 활짝 웃었다.

8.

“여기야. 멈춰.”

한새벽의 스마트폰이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냈던 지점에서 남궁진아는 차를 멈춰 세웠다. ‘사리원’이라는 지명의 낙후된 공장 지역 외곽, 철망이 둘러져 있는 폐공장을 보며 그녀는 천천히 조수석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룬문자를 만들어냈다.

생체전기 탐지 (Detect bio-current)

레벨 2 전기/부여

시전 소음 : 5

주문 소음 : 0

최대 SP : 100

지속시간 : 18 + 2d(Spell power) 턴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2P

효과 : 일시적으로 시전자에게 ‘생체전기’를 탐지하는 감각을 부여하는 마법, 상어가 가진 감각기관-로렌치니 기관을 모방하는 것과 비슷하지만 생명체가 품은 극미량의 마력 또한 함께 탐지하기에 생명체만을 빠르게 구분할 수 있다. 익숙하지 않으면 혼란에 빠지기 쉬우며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소음과 빛에 자신의 위치 또한 노출된다.

‘생체전기’가 없는 몇몇 존재(언데드와 정령, 특수종, 악마)는 탐지하지 못한다.

밝은 갈색 머리칼이 부드럽게 떠오르며 머리 주위에 ‘지직! 지지지직!’ 거리는 스파크가 번쩍였다. 어둠을 밝히는 정전기의 후광에 감싸인 채, 남궁진아가 돌연 땅 밑을 응시하자 뒷좌석에서 내린 서예린이 입을 열었다.

“찾음?”

“어, 이 건물이 확실해. 스마트폰의 신호가 끊긴 것도 여기였고 무엇보다 지하에서 인간으로 보이는 생체전기가 느껴져. 총 9명…….”

생체전기의 움직임과 그 곁에 있는 전자기파를 뿜어내는 장비, 그에 남궁진아는 공장 안에 있는 인원이 전화를 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하곤 곧바로 한 번 더 마력의 형상을 뒤틀어 룬문자를 만들어내 오른손을 뻗었다.

전자기 펄스 (E.M.P)

레벨 4 전기

시전 소음 : 10

주문 소음 : 0

최대 SP : 200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4P

효과 : 마력을 이용해 강력한 ‘전자기파 펄스’를 뿜어내는 마법, 그 마력 파장에 노출된 도체(導體)의 전자를 진동시켜 전압과 전류를 유도-전기 신호를 발생시킨다. 생명체나 기타 마법적인 존재에겐 별 효과가 없으나 ‘전자 기기’의 회로엔 극도로 치명적인 위력을 발휘한다.

-!!

그 오른손에서 ‘희미한 광채가 섞인 충격파’와 함께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기묘한 소음이 밤거리를 갈랐다. 그렇게 혹시 모를 연락까지 모조리 차단한 뒤, 그녀는 당당하게 닫힌 철조망 문 앞으로 향했다.

“내가 앞장…….”

“아니, 내가 먼저 갈게.”

앞장서려는 서예린을 살짝 뒤로 밀치며 남궁진아는 가볍게 철문을 향해 손짓했다. 그에 전격이 뻗어나가며 자력이 발생, 철망을 그대로 양옆으로 쥐어뜯듯이 날려버린다.

“내 마법들은 모두 ‘현대전’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들이거든. 이런 건, 내 전문이야.”

작정하고 들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폐공장 안에 있는 생명체의 반응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에 남궁진아는 담담하게 앞으로 한 발자국 걸어갔다.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르는 공장 안쪽 부지, 공장 안으로 들어서기 전에 그녀는 손아귀에서 번개를 만들어냈다.

-푸스스스슷!

수많은 정전기 덩어리가 뭉친 것 같은 기묘한 형상을 오른손에 쥔 채, 그녀는 공장 안쪽에서 숨죽이고 있는 자들에게 경고를 날렸다.

“국정원 5차장실에서 알린다. 잡고 있는 인질을 풀어주고 순순히 투항하고 나오도록. 순순히 나오면 선처하도록 하겠다.”

아무런 대답도 없는 안쪽에 남궁진아는 얼굴을 찡그렸다.

“5초 안에 반응하지 않으면 적대적으로 간주하겠다.”

“…….”

“5, 4, 3, 2, 1.”

끝까지 아무런 대답이 없는 모습에 그녀는 오른손 아귀에 쥔 정전기 덩어리를 방출했다. 그와 함께 ‘지직지직!’거리는 정전기들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공장 전역을 뒤덮었다.

정전기 방전 (Static Discharge)

레벨 3 전기

시전 소음 : 2

주문 소음 : 2

최대 SP : 100

최소 소모 재화 : 마력 1P

효과 : 독특한 마력 파장을 방출, 닿는 모든 물체에 정전기를 일으키는 마법. 원본(原本) 마법은 테이저건 같은 강렬한 전기 자극을 대상에게 가하는 살상 마법이었으나, 사용되는 룬문자를 일부 변경하면서 그 위력이 ‘장난’에 가까울 정도로 대폭 약해졌다.

그 대신에 훨씬 더 ‘정교한 조작’과 ‘광범위한 장악력’을 얻었다.

이 마법은 살상력이 0에 가깝지만, 그 진가는 전자장비와 화기(火器)를 상대할 때 드러난다. 전자기기는 내부회로에 정전기를 일으켜 망가트릴 수 있으며, 수류탄과 탄약 같은 경우엔 내부의 화약에 정전기를 발생시켜 강제로 터트릴 수 있다.

-타탕! 타탕! 타타타타타!

-콰-앙!

정전기가 뒤덮이는 순간, 공장 안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불길이 없는 폭발, 그 충격파에 공장의 정문 철문이 날아가고 자욱한 먼지가 사방에서 흘러나온다. 보아하니 총과 수류탄뿐만 아니라 크레모아도 몇 개 터진 것 같았다. 그 광경에 뒤에 서 있던 서예린과 철수 일행이 질겁하는 가운데, 남궁진아는 살짝 고갤 돌려 서예린을 바라보았다.

“예린아.”

“?”

“죽이지만 마.”

“오키.”

가볍게 처리하라는 듯이 턱짓하는 남궁진아, 그와 함께 서예린의 모습이 투명하게 어둠 속에 녹아들며 앞쪽으로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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