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91화 (287/350)

제291화

9.

자욱한 화약의 연무와 잔해의 먼지가 좀 가라앉은 뒤, 남궁진아는 당당하게 공장 안쪽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곳곳에 너부러진 채로 쓰러진 무장 병력들, 이전에 한새벽을 데리러 왔던 놈들이었다. 방어구를 걸쳤지만 대부분 오폭한 총탄과 수류탄에 피를 줄줄 흘리며 빈사 상태, 게다가 서예린이 팔다리의 힘줄까지 모조리 끊어버렸다.

“철수 씨, 저 녀석들 한곳에 모아 두세요. 허튼짓하려 하면 쏴 갈겨버리고.”

“알겠습니다.”

고갤 까닥이고 곧바로 부하들을 움직이는 철수. 그렇게 보육원 소년병들이 흩어진 뒤, 남궁진아는 공장 한쪽에 위치한 바닥 철문 쪽으로 향했다. 그런 그녀의 뒤를 <투명화>를 푼 서예린이 뒤따르는 가운데-.

-파지지지직!

-텅! 터텅!

공장의 철조망을 뜯어내 내던졌던 것처럼 그녀는 전기로 자성을 만들어 바닥의 철문을 뽑아 던졌다. 퀴퀴한 냄새가 올라오는 지하 계단, 천천히 한 걸음씩 계단을 딛고 내려가자 좁은 지하실이 드러났고-.

“헤, 헤헤헤. 아가시…….”

“다가오…….”

그곳에 한새벽이 있었다.

도축장의 고기처럼 알몸으로 천장의 갈고리에 추욱 걸려 있는 상태, 그 앞에는 검은 복면을 쓴 남자가 한새벽의 목 앞에 날카로운 나이프를 들고 협박하듯 서 있었지만-.

-콰릉!

복면을 쓴 남자가 뭐라 다 말하기도 전에 남궁진아의 <전격>이 뻗어나갔다. 반응할 수 없는 속도로 내리꽂히는 전격, 그 강렬한 전기 충격에 근육이 오그라들어 협박범이 순간적으로 마비된 틈에 남궁진아의 뒤에 서 있던 서예린이 뛰어들었다.

-서걱!

나이프를 쥔 남자의 팔이 날아가고, 서예린은 오른쪽 팔뚝이 잘려 나가 바닥에 자빠진 남자의 목 앞에 장검을 겨눴다. 그 모습에 한새벽은 피와 타액을 질질 흘리며 환하게 웃었다.

“헤, 헤헤……. 미꼬 있었다고요.”

“…….”

“…….”

하지만, 반가워하는 한새벽과 달리 서예린과 남궁진아는 입을 꾹 닫은 굳은 얼굴로 한새벽을 바라보았다.

빛이라곤 남궁진아의 정전기 후광밖에 없는 상태, 그 희미한 빛으로 보이는 한새벽의 상태는 처참했다. 이빨은 모조리 다 뽑힌 입에선 수도꼭지마냥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상태, 코에선 쌍코피가 흐르고 왼쪽 눈에선 안구의 유리체가 분명한 걸쭉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결국, 남궁진아가 먼저 폭발했다.

“이, 이이……. 이 개자식들이!!”

-콰지지지직!

그녀의 머리를 뒤덮은 번개의 후광이 박살 나고 그 빠직거림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눈동자에서 번개의 스파크가 튀길 정도, 스파크가 튀기는 눈동자로 서예린의 칼 아래에 있는 놈을 응시하자 한새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타나요……. 좀. 푸러줘요.”

-스걱! 털썩!

곧바로 서예린이 칼을 휘두르고 갈고리가 잘려 나갔다. 그에 한새벽이 힘없이 바닥에 너부러지자 남궁진아는 재빨리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그리고, 더 자세히 그 몰골을 볼 수 있었다. 멀리서 볼 땐, 그냥 이빨을 뽑은 줄 알았는데…….

“이…….”

가까이서 보니 어금니 쪽 잇몸이 죄다 파헤쳐져 있고 전기에 지진 흔적이 있었다.

치아 신경에 전기를? 충치로 반쯤 썩은 신경도 아니고 쌩쌩한 치아 신경이다. 게다가 얼굴에 다이렉트로 연결된 뇌신경. 어떤 자극이 갈지는……. 오히려 전기를 다루기에 잘 알았다. 그냥 몸 안에서 만들어진 전기로 테스트만 해봐도 어느 정도 감이 오니까.

“포션…….”

“여기, 마셔.”

재빨리 품에 챙긴 포션을 꺼내 한새벽의 입에 조심스레 흘려 넣었다. 그렇게 포션 한 병을 모조리 마신 한새벽은 숨을 고른 후, 물끄러미 바닥 한쪽을 바라본다. 그에 시선을 돌리자 뽑혀 나간 치아가 보였다. 뽑혀 나간 즉시 포션으로 치료하면 완치됐겠지만…….

“괜찮아. 임플란트하면 돼.”

“아뇨, <연금술>로 치료할 수 있어요.”

이빨이 모두 빠진 채로 웃는 한새벽, 그 모습에 서예린은 쓰러진 남자에게 계속 칼을 겨눈 채로 입을 열었다.

“……왜 그럴 때까지 있었음.”

그에 한새벽은 어깰 으쓱였다.

“헤, 헤헤……. 이 목걸이하고 족쇄가 생각보다 엄청나요.”

“…….”

“제가 어리석었죠. 국정원이라고 순순히 끌려가다니…….”

지친 얼굴로 말하는 한새벽, 남궁진아가 ‘바드득!’ 이를 갈며 고문한 남자에게 살기를 뿜어내려 하자 그는 그런 그녀의 한쪽 어깨를 붙잡으며 고갤 저었다.

“목장으로 돌아가서 좀 쉬죠.”

“…….”

“하루 종일 이빨 뽑히고 고문당했더니 피곤하네요. 싫지만 좀 자야겠어요.”

그 말에 남궁진아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표정으로 복면 남자를 바라보다가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푹 내뱉었다. 그러곤 한새벽을 공주님 안기로 안었다. 이어서 한새벽이 ‘바닥에 떨어진 이빨 좀 주워주실래요?’라고 태연하게 서예린에게 요구하자-.

“쯧.”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서예린도 겨눈 칼을 거두고 바닥을 훑으며 떨어진 치아를 줍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팔뚝이 잘려 나간 고문관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건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잘려 나간 팔도 병원에 가면 붙일 수 있을…….

“……히.”

남궁진아의 팔에 안겨 있는 한새벽이 그를 향해 몰래 웃고 있었다.

이전에 항상 감고 있었던 것과는 살짝 가늘게 뜬 두 눈, 그의 귀이개가 긁었던 왼쪽 눈은 완전 핏빛으로 물든 가운데 그 속에 자색 홍채가 번들거렸다.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묘한 광기에 그는 직감했다.

……저건 이대로 곱게 넘어가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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