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94화 (289/350)

제294화

3.

북쪽의 치안은 객관적으로 막장이다.

‘젊은 령도자 동지’가 돌연 사라지고 어처구니없이 통일된 후, 정부는 협조적인 북한 군벌들이 북쪽을 나눠서 지배하는 것을 용인했다. 그 당시, 정부는 남쪽을 안정시키는 것만으로도 거의 모든 행정력을 쓰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평양’만큼은 양보하지 않았다.

북한의 수도이자, 조선시대엔 서울과 함께 ‘양대 도회’라고 불리던 땅. 지금은 방치한다지만 언젠간 복속시켜야 할 땅이기에 정부는 평양은 그 어떤 군벌이 차지하게 두지 않고 직할령으로 직접 관리했다.

그 덕분에 평양은 다른 북쪽 지역과는 사뭇 달랐다.

정부의 인프라 투자로 CCTV가 곳곳에 깔렸고, 군벌엔 없는 체계적인 치안도 있었다. 게다가 북쪽의 광산이나 희토류를 캐는 한국 공기업의 지사와 정부 기관, 심지어 군대도 들어서 있어서 약간 낙후된 남쪽 도시라고 봐도 될 정도로 형편이 좋았다.

북한 시절에도 그랬지만 이런 평양에 산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아반(아버지), 정말 괜찮으신 겁네까? 병원에서 보호자 맞냐고 연락이 들어와서 깜짝 놀랐습네다! 전화도 안 받고.

“하하, 별것 아니다. 전화를 못 받았던 건, 손전화가 망가져서 그랬던 거야. 그래서 이번에 새로 하나 장만했다.”

북한 시절, 고위층들의 거주지로 지어지던 보통강 강변의 테라스형 공동 주택 단지. 전(前) 북한 보위부 요원이자 현재는 ‘특수한 직종’의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김관우는 부엌 홈바 위에 놓인 크리스털 잔에 위스키를 따르면서 통화를 계속했다.

“병원에 입원했던 것도 너무 과한 거였다. 그러니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 없다.”

-근데, 병원에선 팔이 잘렸다고…….

“하, 마력 각성자는 초인이다! 초인! 당연히, 이 아버지도 초인이고! 아무리 아파도 물약 하나 먹으면 툭툭 털고 일어난다니까? 지금 내가 팔 움직이고 있는 거 보면 너도 아무런 말도 못 할 거다. 수술 잘 받고 이 아바지는 벌써 집에 돌아와서 쉬고 있어!”

자식의 걱정에 김관우는 웃으며 호언장담했다.

심신이 피폐해지는 북쪽에서 일, 하지만 자식새끼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그 피로도 싹 사라지는 것 같다. 아마, 나중엔 자신처럼 마력 각성을 하진 않을까? 내심 흡족하게 고갤 주억이며 그는 병을 내려놓고 위스키가 든 크리스털 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니 내 걱정하지 말고, 오마니 말 듣고 공부 열…….”

-삐빅!

말하는 도중에 들려오는 현관문 도어록의 소음, 그에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던 김관우가 멈칫한 가운데-.

-삑!삑!삑!삑! 삐리릭~♬ 철커덕!

“……!?”

집주인인 것마냥, 도어록의 비밀번호가 빠르게 눌리는 것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는 기척이 들렸다. 그에 김관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집의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지금 통화 중인 가족뿐, 하지만 남쪽에 있어야 할 이들이 여기에 있을 리 없었다.

곧바로 입가로 가져가던 위스키를 내려놓고 급한 대로 집 안에 보관해놓은 비상 무기-권총을 꺼내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푸슈슛!

그보다도 먼저 현관 쪽 복도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손가락만 한 검은 물체들, 그것들은 돌연 부엌에 있는 그를 향해 꺾어지더니 ‘파파팡!’하고 터져나가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몸 곳곳에 날아와 꽂혔다. 다급하게 얼굴에 꽂히는 것들은 양손으로 막았지만 검은 것은 그대로 팔뚝과 가슴팍, 허벅지 등에 꽂혔다.

“크윽……!”

-쩅그랑!

-아버지? 뭔 일 있습네까?

맞은 부위를 중심으로 올라오는 타오르는 듯한 통증, 몸이 뻣뻣하게 굳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다가 부엌 홈바 위 크리스털 잔을 건드려 바닥에 떨어트린 가운데-.

“안녕하세요! 우리 3일 만이죠? 선생님?”

“!?”

현관 쪽에서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나타난다.

메이커 추리닝에 검은색 야구모자, 거기에 커다란 알의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중성적인 소년. 선글라스를 살짝 들어 올리며 자색의 홍채를 드러낸 채 웃는 모습에 김관우는 얼어붙었다.

못 알아보는 것이 이상하다.

불과 3일 전, 의뢰를 받아서 고문했던 타깃. 그의 주특기인 ‘치아 교정’으로도 꺾이지 않았던 독종이었다. 오른팔이 잘려 나가서 수술받기 위해 입원했던 것도 저놈 때문. 뭔가 보복할 것 같은 낌새를 풀풀 풍기긴 했었다만…….

“이 미친……!?”

-아바디, 무슨…….

‘암살’ 혹은 ‘음흉한 괴롭힘’ 같은 걸 예상했지, ‘이렇게 대놓고 쳐들어오는 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스마트폰을 힘껏 내던지며 김관우는 뒤로 쭈욱 빠졌다. 소년이 머리로 날아온 스마트폰을 왼손으로 가볍게 낚아채는 사이, 그는 연거푸 손을 뻗어 부엌의 식칼 수납장에 놓인 중식도를 뽑아서 전력으로 투척했지만-.

-착!

“……!?”

소년은 빈 오른손을 뻗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오는 중식도의 손잡이도 단숨에 낚아챘다.

그러곤 곧바로 그를 향해 내던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반격, 그에 김관우는 다급하게 <독침>에 맞아 타오르는 것 같은 왼손을 들어 몸통에 날아오는 중식도를 막아냈다.

-스걱!

“큭!”

하지만, 소년과 같은 묘기는 부리지 못했다.

왼손 팔뚝의 뼈까지 박힌 식칼, 한층 더 강렬하진 통증에 김관우가 억눌린 신음을 흘리며 뒤로 빠지는 가운데 소년은 어느새 그의 코앞에 접근해 있었다. 그러나, 김관우도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으아아아-악!”

비명과도 같은 기합을 내지르며 그는 왼 팔뚝에 박힌 중식도를 뽑아 들고 휘둘렀다.

마력 각성자의 피지컬로 휘두르는 중식도, 궤적에 닿는다면 소년의 얄팍한 사지 따윈 단숨에 절단할 위력이었으나 소년은 뒤로 빠지더니 근처에 떨어진 포크를 하나 주워 들곤-.

“RA-TI-AM!”

능숙하게 스텝을 밟으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죽어! 죽어-!!”

“히히, 들리나요? 그쪽 아버지가 많이 화났나 봐요?”

-너, 너 누구야!

몇 초가량의 짧은 공방(攻防), 하지만 김관우는 패배를 직감했다.

소년의 움직임은 그리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미리 짜고 합을 주고받는 것처럼 그의 중식도는 절묘하게 소년의 몸을 피해 갔고 동시에 소년의 포크는 그의 몸 어딘가(주로 허벅지와 왼쪽 어깨)에 내리 찍혔다.

보위부 시절, 격투기도 배워봤기에 더더욱 잘 알았다.

이런 건, 압도적인 고수가 하수를 상대할 때에나 보여줄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보란 듯이 왼손은 자기가 던진 스마트폰을 쥐고 통화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자신은 자줏빛으로 번들거리는 포크에 찍힌 탓인지 허벅지와 왼쪽에 벌써부터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잠시 간의 공방이 이어진 뒤-.

“흡!”

소년은 돌연 4m가량 거리를 벌렸다.

허벅지의 부상 때문에 그가 따라가지도 못하고 헐떡이는 가운데, 소년은 왠지 ‘육중해진 분위기’를 풍기며 자세를 잡더니 다시 뛰어들면서 왼쪽 발꿈치를 축으로 몸을 비틀어 회전한다. 김관우도 잘 아는 동작이었다.

태권도식 뒤돌려차기.

동작이 크기에 허점투성이지만 허벅지가 집중적으로 찍히고 기동성이 상실된 덕에 피하기가 애매했다. 피할 수 없다는 걸 예감한 김관우는 중식도를 양손으로 쥐며 날아올 발바닥을 찔러 보려 했지만-.

-콰-앙!

“……!!”

그 발차기는 식칼을 깨트리는 것도 모자라 어떻게 막아 보려던 그의 양 팔뼈는 물론이고 가슴팍의 흉골과 갈비뼈까지 모조리 박살 냈다.

톤 단위의 무게가 내리꽂히는 것 같은……. 마치, 공사용 장비에 후려 맞은 것 같은 감각. 그 무지막지한 힘에 몸이 그대로 붕 날아가 벽에 내동댕이쳐지고 그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몸속에서 흐르는 아드레날린 덕분인지 그리 아프지는 않았지만-.

“커흑! 커허어……. 켁!”

방금 전 발차기로 내장이 상한 듯, 기침과 함께 피와 토사물이 왈칵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렇게 그가 바닥을 기며 꿈틀거리는 동안, 소년은 느긋하게 걸어오더니 보란 듯이 밑창이 깊게 파인 신발로 그의 머리를 짓밟았다.

“제가 착용한 신발은 ‘안전화’랍니다.”

“…….”

“바닥과 발등 부분이 철판으로 덮여있어서 허접한 식칼로는 베어내지 못해요.”

이어서 엎어진 그의 몸을 발로 뒤집곤 가슴팍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 그동안에도 소년의 왼손에 있는 스마트폰은 시끄럽게 울렸다.

-아바지! 뭔 일 있습니까! 아버지! 말 좀 해보시라요!

“흠, 얘는 즈그 애비가 사람 고문하고 죽이는 ‘인간 백정’인 건 아나요?”

-너, 너! 우리 아바디에게 뭐하는 짓이야!

“개인적인 일이에요. 개인적인 일.”

스마트폰에 들리도록 일부러 소리를 높인 비아냥에 김관우는 고통과 분함이 뒤섞인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고문할 때부터 느꼈지만……. 저놈은 미친놈, 아주 제대로 미친놈이었다. 감히, 평양 시내에서 이딴 짓을 하다니?! 하지만, 지금 놈의 심기를 거슬러선 목숨이 위험했다.

거칠게 숨을 고르며 그는 다 죽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위에서 하라니까…….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거다.”

“뭐, 그렇긴 하죠. 제가 그쪽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거예요.”

의외로 순순히 수긍하는 소년, 그에 김관우는 피가 섞인 기침을 콜록이곤 다시 입을 열었다.

“흐으, 내게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나는……. 나는 그저 깃털일 뿐이다.”

“저도 깃털에게 화풀이하긴 싫어요. 제가 원하는 건, 몸통이죠.”

“너……?”

“이번 일을 시킨 놈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세요. 정확히 말하면 국정원 ‘대북 통제단’의 본거지나 그 요원이 어디에 있는지.”

“…….”

“그럼, 살려는 드릴게. 가족도 생각하셔야죠?”

왼손에 쥔 스마트폰을 흔들며 말하는 소년, 그 요구에 김관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국정원의 정보를 달라고? 다짜고짜 자신을 고문한 놈의 집을 습격한다는 것도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놈은 진짜 국정원에 복수하려는 건가? 아니, 이런 짓을 한 걸 보면 하고도 남을 놈이다. 하지만, 이건 가르쳐줘도 문제다. 가르쳐주는 순간, 남쪽에 있는 자신의 가족들은…….

“몰라요?”

망설이는 듯한 그의 모습에 소년이 박살 난 흉골 위에 올려둔 오른발을 살포시 지르밟는다. 고작 50kg도 안 될 것 같은 체형, 하지만 이전처럼 뭔가 ‘육중해진 느낌’이 풍기더니-.

“크흡……!”

발에서 말이 안 될 정도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쇳덩이를 올려놓은 것처럼 점점 무거워지는 느낌에 그는 일단 살기 위해 다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무게가 살짝 해소되자 허겁지겁 대답했다.

“나, 나도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른다! 연락을 받으면 불려가는 것뿐, 돈도 통장에 입금으로 받…….”

-뿌득!

“커헉! 케흑!”

한층 더 강하게 무게가 느껴지는 흉곽의 압박.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찌르는 듯, 연신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한 후 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널 잡아 온 전투조에 있는 녀석들은……. 알지도.”

“걔들은 어디에 있죠?”

“아, 아직 병원에 입원해 있을 거다. 나와 같은 병원에 입원했었는데, 몸에 폭발 파편이 많이 박혀서 제거하는 데 좀 걸린다고…….”

그 대답에 입맛을 다시는 소년. 다행히 만족스런 대답인 듯, 흉부를 압박하는 압력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폐에 피가 고이는 듯 점점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그가 고통과 통증에 숨을 헐떡이는 동안, 소년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어 나간다.

“퉁퉁이는 어디 있어요?”

“퉁……퉁이?”

“고문실에서 내 옷 벗긴 놈이요. 당신이 수용소 간수 출신이라고 했던 녀석.”

그 질문에 김관우는 멈칫했다.

같이 페어로 일하는 직장 동료, 하지만 어디에 사는지는 몰랐다. 직종이 직종인 만큼, 깊게 어울리기엔 꺼림칙했기에 자신이 적당히 거리를 벌렸으니까. 그에 소년의 발에서 느껴지는 압박이 다시 강해진다.

“몰라요?”

“케흑…….”

“이거, 오늘 어느 고아원에 자리 하나가 더 늘어나겠네요.”

-오마니! 아바디가!

“아, 아직 엄마는 있으니 고아원은 아니구나?”

즐겁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생글생글 웃는 녀석, 그 협박에 김관우는……. 이 미친놈이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걸 ‘직감’했다.

삼엄한 평양 시내에 있는 자신의 집을 습격하고, 무려 국정원을 상대로 복수하겠다고 날뛰는 놈이다. 게다가 나중에 증거가 될지도 모르는 스마트폰도 대놓고 켜두고 있었다. 살려주겠다고 구슬리고 있지만……. 냉정히 말해 직접 고문을 한 자신을 살려둘 리가 만무하다.

“케흑, 숨이…….”

김관우는 헐떡이며 말하겠다는 듯이 입을 뻥긋거렸다. 그에 발의 압박이 줄어들자 숨을 어느 정도 가다듬은 후-.

“한새……!”

소년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향해 필사적으로 미친놈의 신상에 대해 소리치려 했고-.

-콰득!

“푸헉! 케흐흐…….”

그 이름을 다 내뱉기도 전에 소년의 발이 그의 가슴팍을 ‘완전히’ 짓밟았다.

흉골을 박살 내고, 그 아래의 폐와 심장을 짓누르며, 결국엔 척추까지 바스러지는 감각. 피뿐만 아니라 내장 일부도 입에서 왈칵 튀어나온다. 몸을 꿰뚫은 발을 내려다보며 김관우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곧바로 쇼크사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마력 각성자의 질긴 생명력은 잠시 의식을 이어가게 해줬다.

-여보? 여보!

애타게 그를 찾는 가족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스마트폰을 놈이 종료하는 모습을 끝으로 그의 의식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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