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6화
“하루에 2건이라니, 오늘 아주…….”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하려다 요원은 문득 든 생각에 보고한 직원을 바라보았다.
“피해자는 누구지?”
“경찰서에서 이첩된 내용 중엔 없습니다. 그냥 살인 사건이라는 것밖에는…….”
“당장 병원에 전화해서 혹시 피해자가 우리 ‘협력자’인지 확인해. 범죄자의 몽타주와 마법의 유형도 확인하고. 그리고, 인근에서 5분 대기 중인 대응팀을 불러와라.”
그 지시를 받은 직원은 얼마 지나지 않아 A4용지 한 장을 제출했다.
“확인 결과, 사건이 발생한 위치는 이번에 부상을 입고 입원해있는 4인조 ‘검은 들개’가 있는 병실이었습니다. 마법 유형은 당장 확인되지 않았지만 CCTV 영상에 찍힌 범인의 사진을 전송받았습니다. 검은색 추리닝 차림에 선글라스와 모자를 쓴 13~14세가량의 소년이라 합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구만.”
프린트된 CCTV 사진을 보곤 요원은 헛웃음을 흘렸다.
추리닝 차림에 선글라스, 머리카락이 검고 한데 묶었지만 그 작은 체형과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숨길 수 없다. 진짜 ‘한새벽’이었다. 첫 번째 사건을 신고한 북쪽 협력자가 평양 종합 병원에 입원해 있던 것을 떠올리곤 설마했는데…….
미간을 찡그리며 요원은 사진이 인쇄된 A4용지를 구겼다.
김관우는 한새벽을 고문했던 놈이고, 병원에서 습격당한 이들은 한새벽을 잡으러 갔던 이들이다. 한마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건은 모두 놈의 ‘사적 보복’, 그것만으로도 경악스러운데 이 미친놈은 대낮에 대놓고 사람을 쳐 죽이고 있었다.
그것도 ‘감히’ 국정원의 협력자들을.
“‘검은 까마귀’에 연락해라.”
“아, 알겠습니다!”
전문 암살자-히트맨 조직인 ‘검은 까마귀’의 언급에 직원들이 허둥지둥 움직이는 가운데, 요원은 싸늘한 얼굴로 수화기를 들어 올리곤 ‘꾹! 꾹!’ 번호를 눌렀다.
북쪽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사실 그리 큰 범죄가 아니다. 군벌이 차지한 구역에서 사람이 죽는 건 일상이고, 정부도 귀찮으니 그리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려고 하니까. 큰 논란이 없고 정부에 피해가 없다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정부가 차지한 ‘평양’에서 ‘국정원의 협력자들’을 ‘대놓고 죽이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연결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되자 요원은 곧바로 씩씩하게 입을 열었다.
“충성! 토요일 당직 요원 우민준입니다. 지부장님, 잠시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 민준이. 무슨 일이지?
“아, 다름이 아니라 한새벽 있지 않습니까? 그놈이 현재…….”
6.
병원에 입원해 있던 놈들은 ‘대북 통제단’이 어디에 있는지 대략 알고 있었다.
여기서도 남한에서처럼 마력 각성자가 ‘강력한 전투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것에 대해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녀석들이 착용하는 중요 장비들은 무기고에 보관하고 필요할 때마다 불출해서 나눠준단다. 거기서 국정원 요원을 봤다고 말해 주더라.
그 친절한 답변에 난 약속을 지켰다.
참고로 답변을 하지 못한 사람은 비실이의 친구였다. 나중에 들어와서 그런지 내가 뭘 말하라고 하는지를 아예 모르더라고? 하지만 어쩌겠나? 약속은 약속인데. 그래도 별 고통 없이 깔끔하게 보내드렸다.
“흐음.”
근처 갓길에 무단 주차한 뒤, 난 차에서 내리고 목적지를 바라보았다.
남쪽의 광화문 광장을 연상케 하는 형태의 거리,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커다란 대로가 있고 그 양옆에는 북쪽치고는 대단히 잘 지어진 건물이 쭉 늘어서 있었다. 평양시 중구역 ‘해방산동 거리’, 운전하면서 검색해보니, 북한 시절 로동당 산하 전문부서들이 있는 곳이란다. 현재는 전부 정부 건물로 쓰고 있고.
그 대로 끝에 기다란 3층짜리 건물이 떡하니 있다.
북한 수령들이 근무했다는 건물, 지금은 ‘평양 관리 본부 청사’로 저곳에 국정원 요원이 있다는 게 전투조 인원의 증언이었다. 아마, 국정원 놈들 중 하나를 붙잡고 추궁하면 그 김완호라는 새끼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지.
“히, 히히히…….”
그 X새끼한테 ‘내가 당한 것과 똑같은 짓’을 해줄 생각에 실실 웃으며 대로를 따라서 청사에 접근하는데…….
“……어라?”
사방에 배치한 내 <눈>이 이상을 포착했다.
일반인인 것처럼 연기하는 마력 각성자가 곳곳에서 보인다. 좀 더 범위를 넓혀서 스캔하듯이 보니 수상한 이들이 더 있다. 저 건물 창가에도 살짝 삐죽 튀어나온 거……. 저격 소총 아니냐?
……아무래도 내가 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놈을 살려둔 게 실수였나? 뭐, 후회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눈치채지 못한 것처럼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날 노리는 놈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숫자, 수준, 무장의 정도, 민간인들, 매복한 저격수의 총구가 향하는 방향…….
그렇게 머릿속에 3차원 조감도를 그리며 어떻게 대응할지 시뮬레이션을 해본 뒤-.
“스으으읍……!”
다시 한번 혀 밑에 넣어둔 도핑제를 깨물며 크게 숨을 빨아들인 후, 뒤쪽에서 접근하는 중년 남자를 향해 몸을 돌려 튀어올랐다.
“!!”
내 돌발행동에 몰래 접근하던 이는 당황했지만 이내 뒤로 빠지면서 호주머니의 권총을 꺼내 든다. 돌진해서 거릴 좁힌 덕분에 놈과 나의 사이는 고작 10m가량, 그 사이에 민간인들이 있었지만 놈은 냉정하게 권총의 방아쇠를 연거푸 당긴다.
-타당! 탕! 팅!
아무리 지금 내가 장비발이 부족하다 한들 그 총을 당기는 방아쇠와 궤적을 <눈>으로 코앞에서 보는데 그 궤적을 파악해 피하는 건 쉽지. 피할 수 있는 두 발은 피하고, 피할 수 없는 한 발은 호주머니에서 꺼낸 과도로 쳐내며 접근했다.
“!?”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인 듯,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뜨는 남자. 놈이 쥔 권총의 방아쇠가 다시 당겨지기 전에 난 몸을 낮추면서 과도를 휘둘렀다. 내 마력에 의해 강화된 과도가 권총을 쥔 놈의 손목을 날려버리는 가운데-.
“이크!”
-티잉!
뭔가 ‘찝찝한 느낌’에 재빠르게 옆으로 무빙하자 내가 서 있던 자리의 바닥 화강암이 돌조각을 튀기며 부서진다.
저격수의 저격, 지면에 박힌 총탄을 반사적으로 <감정>해보니 마법 재료를 써서 만든 탄환이다. 통증을 유발해서 마비를 일으키는 종류구만. 곧바로 폐에 빨아들였던 숨을 모조리 <독숨결>로 치환하며 다시 팔목을 자른 놈에게 돌진했다.
“초, 총이다!”
“꺄아아아악!”
이 일련의 과정이 고작 2~3초 남짓. 그제야 토요일 오후 대로변을 돌아다니던 수많은 민간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가운데, 난 도망치는 놈을 향해 <독숨결>을 연막처럼 내뿜으며 과도를 내리찍었다.
-푸화아아아악!
“커흑!”
막판에 왼팔로 보조 무기를 꺼내려 했지만 그대로 내 과도에 목이 반쯤 잘려나가는 전투원. 놈을 처리한 후, 그 피 분수를 맞으면서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짙은 타르 같은 연무에 가려진 상황, 아주 쬐~끔 시체의 살점을 먹어도 티는 안 날…….
“타깃이 눈치챘다! 플랜 B로!”
“……후우.”
연무 밖에서 떠드는 놈들의 외침, 유혹을 참으며 난 방금 전에 날 쐈던 저격수를 향해 왼손을 뻗었다. 그리고 <맹독의 말뚝> 주문을 외웠다.
-쓰가아아아각!
주위의 공기가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요동치며 내 손바닥 위에서 압축되고, 자연스레 <독숨결> 또한 걷힌다. 내 왼손에 떠오른 치명적인 독의 말뚝, 저격수가 반응하기 전에 놈을 향해 그 마법을 발사했다.
-부우우우웅!
벌 떼가 날아가는 소음과 함께 포탄처럼 살짝살짝 궤도를 바꿔가면서 날아가는 그것은 그대로 300m 밖에 저격수가 숨어있는 건물에 내리꽂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모르겠다만 총은 확실하게 박살 낸 것 같다.
-파지지직!
그사이에 연막 밖에 서 있던 20대 중반의 여자가 단검을 쥐고 내게 돌진했다.
방금 전 남자와는 달리 ‘마력 각성자’, 손에 쥔 것은 전기 충격기와 마법적 요소가 혼합된 ‘마법 단검’이다. 달려드는 품새를 보아하니 나이프 파이팅에 꽤나 일가견이 있으신 분 같은데-.
“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과도를 내던졌다.
얼굴에 쏘아진 흉기에 기겁하며 몸을 뒤틀어 피하는 여자, 그사이에 난 그녀에게 접근해서 오른손을 뻗었다.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내게 전격 단검을 휘두르지만 그 궤도는 불안정하고 너무 ‘뻔했다’.
“크으윽!”
가볍게 피하고 단검을 쥔 손목을 낚아채서 내 쪽으로 당겼다.
나보다 체격이 컸지만 균형이 무너진 상태라 아주 쉽게 비틀거리며 내 손짓에 끌려온다. 스카프로 내 체중을 좀 늘린 감도 있고. 어쨌든 곧바로 그 끌어당긴 팔의 팔꿈치에 니킥을 차올려 관절을 반대쪽으로 꺾어버렸다.
-툭!
맞은편에서 접근한 또 다른 전투원이 내 등판에 마법 단검을 내리찍으려 하지만, 몸을 튕기면서 왼손 팔꿈치로 그 단검을 쳐냈다. 절묘한 타이밍과 강한 힘이 어우러져 궤적이 비틀어지는 가운데, 난 여자 암살자의 꺾어진 팔에서 떨어지는 전격 단검을 낚아채서-.
-서걱! 촤학!
단숨에 팔을 꺾어버린 여자와 내 뒤쪽에서 등판을 찌른 놈의 모가지를 훑었다.
1~2초 정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첫 번째 남자처럼 순식간에 목에서 피 분수를 쏟아내며 쓰러지는 두 전투원, 정면에서 순식간에 마력 각성자 두 사람이 당하자 나머지 전투원들이 멈칫한다.
“에휴.”
그 모습들을 보니 한숨이 나왔다.
도시 한복판에서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놈들을 죽이고 있자니……. 좀 후회가 돼. 날 ‘고문한 놈’이나 ‘잡아간 놈’을 족칠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말이지.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기왕 벌인 일을 즐겨야 하지 않을까?
“흐, 흐히히힣.”
허겁지겁 거리를 벌리며 권총을 꺼내는 전투원들, 난 <독침> 마법을 왼손에 띄우며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7.
병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에게서 ‘한새벽의 목적지’를 알게 된 뒤, 대북 통제단 요원-우민준은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 포획 작전을 짰다.
우민준은 자신 있었다.
대량 살상 능력을 지닌 ‘특급 경계 대상’으로 분류되면서 한새벽은 이미 국정원에서 한번 철저하게 분석됐다. 그러한 여러 분석 중에서는 어떻게 대상을 ‘제압 혹은 사살’해야 할지에 대한 매뉴얼도 있었다. 사실상 공략법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놈은 이쪽-평양 관리 본부로 오고 있었다.
그 덕분에 마력 각성자 범죄에 대응하는 기존 5분 대기조는 물론이고, 청사를 지키는 마력 각성자들과 군부대의 병력들까지 동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투입된 전투 병력의 숫자만 거의 50명
통상 마력 각성자 제압에 투입되는 팀의 7~8배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비각성자들이 그 숫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들 또한 나름 전문가에다가 특수 탄환이 든 소총으로 무장했기에 충분히 전력으로 취급할 만했다. 이렇게 대북 통제단의 준비는 철두철미했지만-.
드러난 한새벽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소년의 제압을 위해 맨 처음 투입된 ‘습격조’, 베테랑 히트맨으로 명성을 떨치던 ‘검은 까마귀’들은 그 명성이 무색하게 소년에게 순식간에 썰려 나갔다. 그에 제압을 포기하고 광장 옆 건물에 숨어있던 병력들, ‘사살조’가 나와 사격과 전기 철그물을 투척하고 소총의 발포를 시작했지만-.
한새벽은 그들 또한 무서운 속도로 죽여 버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다다당!
-콰득!
-아아아악!
-쏘지 마! 쏘지 마! 아군……. 케흑!
-나가! 빨리 연막 밖으로 나가!
-마법! 마법이…….
시체에서 폭발하듯이 피어오른 거대한 독가스, 1월의 칼바람에도 흩어지지 않는 타르 같은 독무(毒霧)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여 사살조를 덮쳤다. 이미 방독면에 각종 독 저항 장비를 착용한 이들, 하지만 그 안쪽에서 한새벽이 날뛰었다.
“미친……!”
창밖에 가득한 검은 연무, 그리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절망적인 비명.
우민준은 같이 사무실에 있는 이들에게 뭐라 말하지도 않고 창백한 얼굴로 복도로 뛰쳐나왔다. ‘마력 각성자 전투병’을 관리하는 게 일이었기에 그는 지금 한새벽이 보여주는 수준이 어떤 정도인지 아주 잘 알았다.
저건, ‘규격 외 강자’다.
인력으로 제압하는 것이 아닌 ‘전투 헬기’ 같은 전쟁병기가 동원되어야 잡을 수 있는 괴물들. 최소 5차장실의 1급 공무원들이 출동해야……. 아니, 나세영 차장이 나서야 확실하게 제압될 수준이다! 파악하고 있던 정보가 완전히 틀렸다!
-챙그랑!
복도의 3층 창문을 박살 내며 그는 정문 반대쪽 지면에 뛰어내렸다.
전투 훈련을 받은 마력 각성자답게 유연하게 지면에 착지한 후, 그는 곧바로 건물 후문으로 내달리며 스마트폰으로 상관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한새벽의 제압에 실패한 상황, 어서 빨리 그에 대해 보고하고 새롭게 대처해야 한다. 그렇게 전력으로 건물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부우우우우웅!
벌 떼가 날아드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음과 함께 그의 발 쪽에 섬뜩한 무언가가 내리꽂혔다. 그에 요원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서는 가운데,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낭랑한 목소리가 뒤쪽에서 들려왔다.
“건물 내의 유일한 마력 각성자가 맞서 싸우지 않고 도망이라니……. 실망이 커요.”
고개를 돌리자 피 칠갑을 한 한새벽이 오른손에 ‘파직!’거리는 전격 단검을 쥔 채로 그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다. 그에 우민준은 반사적으로 품 안에 있던 권총을 꺼내려 했지만-.
그 순간, 한새벽의 몸에서 ‘기세’가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의지에 감응하는 마력, 그걸 이용해 감정을 실어서 순수하게 방사하는 기교인 기세(氣勢). 마력 각성자인 만큼, 그도 이런 게 있다고도 알고 있었다. 그 기세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의 ‘의지와 감정’은…….
상상을 초월했다.
‘살인적인 증오’라고 표현해야 될 것 같은 감정,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썩어 문드러지는 것 같은 질투와 악의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다. 북쪽에서 나름 험악한 꼴을 많이 봤다고 자부하는 그도 그 저주와 같은 살기에 굳어버린 가운데-.
-그래, 우민준 요원. 포획은 완료했나?
그의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이 연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