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화
막간. 지금, 만나러 갑니다!
1.
평양엔 사치를 부릴 만한 곳이 거의 없다.
북쪽에서 제일 잘사는 200만 명의 대도시, 그만큼 부자들도 많아야 정상이지만 ‘진짜 부유층들’은 전부 남쪽으로 빠져나갔다. 자연스레 부유층들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들은 평양에서 사라졌고, 오히려 북한이었을 때보다 더 사치품을 보기 힘들어졌다.
식당만 봐도 그러한 경향은 또렷이 드러났다.
평양에서 근무하는 남쪽의 공기업 직원이나 공무원들이 꽤 되기에 그들을 대상으로 하는 괜찮은 식당은 흔히 찾을 수 있지만 진짜 비싼 ‘고급 식당’은 손에 꼽았다.
“그쪽이 하란 대로 하긴 했지만……. 이번 일은 좀 내키지 않더군.”
그러한 평양에 얼마 없는 고급 중식당의 VIP용 프라이빗 룸, 대동강변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회색 양복 차림의 30대 근육질 남성, 베이징덕 껍질을 젓가락으로 집으면서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이를 바라보았다.
“덕분에 본부에 호출돼서 조사도 받았어. 그땐, ‘괜히 그쪽과 손을 잡은 건가?’ 생각도 들더군.”
“그 부분에 대해선 저희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회색 양복의 불평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남자는 꾸벅 고갤 숙였다.
긴 머리카락을 포니테일로 묶고 있고 있는 20대 중반의 남성,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묘하게 섬뜩한 느낌을 주는 그는 고갤 다시 들곤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충분한 그럴 만한 명분이 있지 않았습니까? 정황상, 한새벽이 상장을 죽인 건 확실하고요. 그리고, 여기서 용의자를 고문하는 건 별로 이상한 것도 아니지요.”
“…….”
“무엇보다, 국정원 내부에서도 별다른 징계 없이 넘어갈 것 같다고 하던데요?”
말해주지도 않은 국정원 내부의 일을 언급하는 젊은 남자, 은연중에 국정원 내부에도 끄나풀이 더 있다는 걸 과시하는 말에 회색 양복의 남성-김완호는 가볍게 혀를 차곤 음식을 입 안에 집어넣었다.
“그렇긴 하다만 내 목표와는 더 멀어졌지. 안 그래도 몇 달 전에 ‘스너프 비디오’ 스캔들 때문에 커리어에 크게 흠집이 났는데, 이번 일까지 겹쳤으니…….”
“걱정 마시죠. 저희가 그런 걸 만회할 공적(功績)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살짝 짜증이 깃든 김완호의 말에 남자는 살살 달래듯 대답하며 소홍주가 든 술병을 들곤 김완호의 앞에 있는 술잔에 채워 넣었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시술’받으신 건 좀 익숙해지셨습니까?”
“어느 정도는.”
남자의 질문에 김완호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왼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그 손아귀 안에서 흑색의 먼지 같은 것이 바람도 없이 휘몰아친다. 딱히, 정해진 명칭은 없지만 중국 암부(暗部) 요원들이 사용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마법. 왼손에 휘몰아치는 기운을 보며 김완호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드러내놓곤 쓰지도 못하지.”
“그래서 이번에 ‘쓸 만한 마법’도 가져왔습니다.”
“오호?”
“꽤나 구하는 데 힘들었지요.”
반색하는 김완호의 모습에 남자는 빙긋 웃었다.
“일종의 광역 살상 마법이긴 한데, 위력은 그 흑회돌풍(黑灰突風)에 비하면 많이 떨어집니다. 아시겠지만 그 마법을 능가하는 효율을 지닌 건, 거의 없어서……. 그래도 다른 이들 앞에서 쓰실 수 있을 겁니다.”
“마음에 드는군.”
“하지만, 주의하십쇼. 아무리 저희와 연관이 없는 마법이라고 해도 그 독특한 기운은 숨기기 힘드니까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남자의 대답에 김완호도 왼손의 마법을 거두곤 남자에게서 소홍주 술병을 건네받았다. 그러곤 젊은 남자의 빈 술잔에 술을 따라주려는 순간-.
-♬♫♪♩
“이런 실례.”
회색 양복의 안주머니에서 벨이 울렸다. 얼굴을 찡그리며 휴대전화를 끄려 했지만, 액정에 떠 있는 번호를 확인하곤 김완호는 마주 앉은 남자를 향해 살짝 고갤 까닥여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지만 잠시 전화를 받아도 되겠나? 웬만하면 무시하겠지만, 당직을 서고 있는 우리 요원의 전화라서.”
“얼마든지요.”
웃으며 받으라는 듯이 손짓하는 남자, 그에 김완호가 전화를 받자 곧바로 씩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충성! 토요일 당직 요원 우민준입니다. 지부장님, 잠시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래, 민준이. 무슨 일이지?”
-다름이 아니라 한새벽 있지 않습니까? 그놈이 현재 우리 현지 협력자들을 습격해서 죽이고 있습니다!
“……뭐?”
상상을 초월하는 보고에 김완호가 살짝 얼빠진 소리를 내는 가운데, 부하 직원은 재빠르게 상황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한새벽을 고문한 ‘심문 기술자’가 살해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연이어서 한새벽을 포획하러 갔던 ‘전투조’가 입원한 병원에서 살해당했다. CCTV에 찍힌 범인의 몽타주와 여러 증언들을 보면 한새벽 확실하다고.
-그, 지금 새롭게 들어온 소식이 하나 더 있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우리 협력자들 중 하나가 살아남았는데 놈의 목적지가 이쪽 청사라고 합니다. 대북 통제단이 어디 있는지 말하라고 협박했다고…….
“…….”
그 말에 김완호는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국정원의 중요 협력자들을 죽인 것도 눈감아주기 힘든데, 놈은 자신들-국가기관을 노리고 쳐들어오고 있었다. 살짝 광증이 있다는 정신과 의사 소견과 그동안의 행적 등을 확인하며 미친놈인 건 알았지만……. 이건 미쳐도 제대로 미친 새끼였다.
잠깐 심호흡을 한 후, 그는 딱딱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살해.”
-그, 괜찮겠습니까? 이전에 다른 차장실하고 윗선에서 한새벽을 건드린다고 항의가…….
“놈은 정부가 봐줄 수 있는 선을 넘었다. 평양에서 국정원 협력자를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정부 청사를 노라고 접근하다니……. 내가 책임을 질 테니 죽…….”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손짓에 김완호는 말을 도중에 끊었다. 고갤 도리도리 저으며 손을 겹쳐 X 표시를 하는 남자, 그에 김완호는 작게 입맛을 다시곤 입을 열었다.
“아니, 사살까진 너무 나간 것 같군.”
-그러면…….
“포획해라. 청사에 있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도 된다. 병기고에서 장비들 다 사용해도 되고.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고생해라.”
-충성!
통화가 끝나자마자 김완호는 맞은편의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됐소?”
“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한새벽이 죽어선 좀 그렇거든요. 이번에 그런 요청을 한 이유가…….”
“타깃이 대한민국에 정을 떼려고 한 거겠지.”
남자의 술잔에 소홍주를 따라주며 대꾸하는 김완호, 그에 남자가 입을 다무는 가운데 김완호는 담담히 말을 이어 나갔다.
“심연 타락체를 감지하는 독특한 감각, 확실히 그쪽으로서도 조사해보고 싶었을 것 아니오? 게다가 강수영의 수제자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연금술사기도 하고. 그냥 고급 노동자로만 굴려도 이득이겠지.”
“역시, 다 알고 계시는군요.”
“바보도 아닌데 당연히 알지.”
술을 다 따른 후, 김완호는 자기 몫의 술잔을 들어 올리며 어깰 으쓱였다.
“내가 그쪽을 위해서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그에 걸맞은 합당한 대가’도 받을 수 있으니까. 너무 큰 걸 해주고 작은 걸 받을 수는 없잖나?”
“흐음…….”
“아무튼, 계속 섭섭지 않게 지원해줄 거라고 믿소.”
김완호의 대꾸에 남자도 빙긋 웃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확고한 협력자’를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지금처럼 최대한 잘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부디 국정원장까지 올라가셨으면 좋겠군요.”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힘들 거야. 그건, 대통령이 정하는 거니까. 그래도 듣긴 좋군. 그 건방진 년을 턱짓으로 부릴 생각만 해도 말이지.”
피식 웃으며 서로 가볍게 술잔을 부딪친 후, 두 사람은 술을 입에 털어 넣었다. 쌉싸름한 소홍주가 입에 착착 달라붙는 것 같은 느낌에 김완호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올리는 가운데, 맞은편의 젊은 남자는 술병을 쥐고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
“한새벽을 사로잡은 뒤에 사고로 죽은 걸로 처리해주셨으면 합니다. 놈이 지금 벌인 짓이 있으니 죽더라도 윗선도 항의를 못 하겠죠.”
그에 김완호는 왼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확실히, 지금 놈이 벌이고 있는 짓은 놈과 연이 있는 5차장도 커버를 쳐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아무리 강수영 연금술사의 협력자라고 해도, 이전에 아무리 큰 공을 세웠다고 해도 말이다. 도중에 죽었다고 해도 별말은 못 할 거다.
“끌고 가려고?”
“포섭해보려 합니다. 사실상 이번 일로 대한민국 정부와 척을 지게 됐으니 충분히 넘어갈 만하죠. 접근하는 건,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쪽엔 생각지도 못한 횡재로군. 아주 손쉽게 일을 처리하게 됐으니 말이야.”
“하하…….”
작게 웃으며 김완호의 빈 술잔을 따라주는 남자, 그런 그를 향해 김완호는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나저나 ‘박범기 상장’을 죽일 정도로 한새벽의 포섭을 중요하게 생각할 줄은 몰랐군. 좀 의외였어.”
“저흰 상장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건, 저희도 즉흥적으로 계획한 일입니다.”
“흐음.”
“정말입니다. 이거, 억울하네요. 진짜 박범기를 치울 예정이었으면 이전에 연락을 드렸을 겁니다.”
김완호의 ‘퍽이나.’하는 시선에 앓는 소리를 내는 젊은 남자. 그 뒤로 두 사람은 앞으로 북쪽의 정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간간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
“이거, 벌써 사로잡았나 보군.”
다시 울리는 휴대전화, 번호를 확인하니 한 시간 전에 보고가 왔던 부하 직원의 것이었다, 다시 양해를 구하면서 김완호는 전화를 받았다.
“그래, 우민준 요원. 포획은 완료했나?”
곧바로 들려오지 않는 대답, 그에 김완호가 살짝 얼굴을 찡그리려고 할 때 스피커에서 생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김완호 씨 되시나요?
“……누구지?”
-한새벽이라고 한답니다.
그에 김완호는 물론이고 앞에 앉은 남자의 얼굴마저 놀라움이 번져나간다. 이 전화로 한새벽이 전화를 걸었다는 것은……. 잠시 숨을 고른 뒤 김완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건, 우민준 요원의 전화번호인데…….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그 사람은 지금 제 앞에 있어요. 청사에 남아 있는 유일한 마력 각성자 주제에 꼴사납게 혼자 도망치다가 제게 걸렸죠. 그나저나 그쪽은 김완호 맞죠? 이름에 ‘단장님’이라 적혀 있는 거보니.
“…….”
-X발, 그쪽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전화하는 꼬라지를 보니 여기에 없나 보네요.
“하아.”
일이 더 복잡해지는 느낌에 깊은 한숨을 내뱉은 후, 김완호는 나지막이 이를 갈았다.
“너, 지금 네가 뭔 짓을 저지르는지 알고 있나?”
-네, 아주 잘 알아요. 사람 실컷 고문하라고 해놓고, 무고한 게 밝혀지니 ‘유감’하고 끝내려는 새끼에게 엿을 처먹이는 중이죠.
“…….”
-X발, 날 억울하게 병신으로 만들 뻔하고 고작 ‘견책’? ‘감봉’ 정도로 끝난다고?? 난, 도저히 못 참겠거든요?? 이 X새끼야.
“흐, 후후후후…….”
그 목소리에 맞은편에 앉은 젊은 남자는 작게 실소했다.
그에 김완호는 얼굴을 구겼다. ‘대북 통제단’의 단장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중인데,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소년 한 명에게 뚫리다니……. 자신의 가치가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체면 또한 완전히 구겼다.
하지만, 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건 말건 한새벽의 선전포고는 이어졌다.
-넌, 내게 뒤질 테니 기대해도 좋아요. 내가 만든 ‘특제 물약’이 있거든요? 지금까진 아까워서 안 쓰고 있는데 너에겐 꼭 먹여줄게. 숨어보세요. 어디에 숨든 간에 넌 내가 조질 거야.
“하, 하하하하.”
이어지는 그 말에 젊은 남자는 결국 폭소했다.
그에 김완호가 똥 씹은 표정으로 스마트 폰의 마이크를 손가락으로 막는 가운데, 남자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으며 재미있다는 듯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하, 진짜 제대로 미친놈이군요. 오히려 너무 참신해서 재미있어요.”
“…….”
“그리고, 그런 미친놈에겐 매가 약이죠.”
자기 몫의 술잔을 입에 털어 넣은 후, 남자는 김완호에게 싱긋 웃었다.
“이쪽으로 오라고 하시죠.”
“뭐?”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포섭하는 게 최고긴 하지만…….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를 정도로 다혈질이니 포섭은 힘들 것 같군요. 그냥 잡아서 실험용 생쥐로 써먹는 수밖에요.”
담담히 말하는 젊은 남자, 그에 김완호은 얼굴을 찡그리려 했지만…….
“……!”
그의 몸에서 흉악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에 새롭게 북쪽에 온 대국의 ‘공작관’, 이전에 있던 지긋한 중년 남자와는 달리 새파랗게 어려서 이번에 ‘시술’을 받기 전까진 ‘설마, 자신을 꼬리 자르기 한 건가?’ 생각도 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아니다.
나름 초창기 마력 각성자로서 여러 경험을 쌓았기에 잘 알았다. 고위 악마를 연상케 하는 흉흉한 기세, 저 정도의 기세는 이전에 봤었던 ‘오무혁’과도 비견될 만했다. 애써 얼굴에 경악을 숨기면서 김완호는 천천히 마이크를 막았던 손가락을 떼고 입을 열었다.
“괜히 불쌍한 밑에 애들을 들들 볶지 말고 내가 있는 곳으로 와라.”
-……네?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날 조져야겠으면 말이지. 물론, 네 목숨은 장담할 수 없지만.”
생각지도 못한 말인 듯, 멈칫하는 한새벽. 하지만 이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흐, 흐흐흐……. 좀 치나 보죠? 실력에 자신 있으시나?
“왜, 너야말로 자신 없나?”
-너, 어디야.
즐거움이 가득한 어조로 질문하는 한새벽, 그에 김완호는 여유로움을 연기하며 대답했다.
“‘동아명주’라는 식당이다.”
-동아명주?
“이르지만 저녁 식사 중이거든. 이 구질구질한 평양에서 그나마 제대로 하는 레스토랑이지. 베이징덕도 맛있고……. 스마트 폰으로 검색하면 나올 거야. 광명망의 내부 지도에도 나와 있는 곳이니까. 그럼 기다리고 있지.”
전화를 끊은 후, 김완호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연기하며 자신 앞에 있는 젊은 청년을 바라보았다. 웨이터를 불러서 중국어로 뭐라 말하는 청년. 그 말이 끝난 뒤, 김완호는 이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시군?”
“그만큼, 윗선에서도 북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거죠.”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젊은 남자는 말을 이어 나갔다.
“먹는 걸로 감염되는 ‘심연 타락체’와 향후 대한민국의 ‘오크 병력 배치’까지……. 솔직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당연히, 무력이 필요한 순간도 많을 테고요.”
“그렇긴 하지.”
김완호가 살짝 고갤 끄덕이는 가운데, 그는 옷장 옷걸이에 벗어놨던 검정색 양복 상의를 걸치곤 같이 넣어뒀던 커다란 서류 케이스 가방을 꺼내 김완호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번에 드리는 ‘대가’입니다. 요구하신 대로 ‘골디안 주화’로 준비했고요. 괜찮은 마법 장비와 익히실 만한 마법서도 넣었습니다.”
“고맙군.”
넘겨주는 그 서류 가방을 김완호가 조심스레 받는 가운데, 젊은 남자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놈은 ‘김완호’ 씨가 사살하거나 쫓아낸 걸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제 근처에 있어야 하니, 밤 접대는…….”
“나중에 받도록 하지.”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완호가 순순히 고갤 끄덕이는 가운데, 그는 옷장 바닥에 놓인 바이올린 케이스 같은 상자를 꺼내 열었다. 그 안에서 나온 톤파(拐) 형태의 한 쌍의 칼날 무기, 보기에도 흉흉한 마법적 아우라를 뿜어내는 장비를 양손에 하나씩 착용하는 모습에-.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질문해도 되나?”
“네?”
김완호는 문득 든 생각에 입을 열었다.
“그쪽은…… 대국에서 얼마나 강하오? 그 정도라면 대한민국에선 5차장실 1급 공무원……. 아니, 그 불구 년 빼고는 가장 강할 것 같은데.”
“흐음.”
그 질문에 살짝 미간을 찡그리는 젊은 남자, 혹시 심기를 건드렸나 싶어서 김완호는 황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불쾌하다면 내 사과하지.”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좀 애매해서 말이죠.”
가볍게 어깰 으쓱이며 그는 김완호를 향해 빙긋 웃었다.
“솔직히, 짐승도 아니고 싸움으로 서열을 매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세상이 세상인 만큼 중요하긴 하지요. 묘하게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것도 있고요.”
“그렇긴 하지.”
“아시겠지만 저희 대국엔 15억 인구의 정점에 있는 실력자들 오성(五星)이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가리죠.”
오성이란 단어의 언급에 김완호의 두 눈이 살짝 휘둥그레진다. 정보기관인 만큼, 그도 오성은 들어본 적은 있었다. 설마, 지금 앞에 있는 남자가 오성이라는……. 그런 김완호의 반응에 남자는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전 오성이 아닙니다. 그치들은 진짜 괴물이죠. 그러한 오성을 가릴 때, 꽤나 수많은 후보가 모여서 경합을 치릅니다. 전, 그 후보 중 하나로 뽑혔고요. 우리끼린 오성홍기에 있는 5개의 별을 감싸고 있는 붉은색을 따서 ‘적색’으로 부르죠.”
“적색이라…….”
“한 160명 정도 됩니다. 솔직히, 5성을 돌려가면서 차지하는 7명은 진짜 규격 외고 나머지는 고만고만해서 그날의 컨디션이나 구사하는 마법의 상성에 따라서 순위가 결정되곤 하죠. 전, 작년엔 152위였습니다. 좀 부끄럽네요.”
“그렇군.”
쑥스럽게 웃는 남자의 말에 덤덤하게 대답했지만 김완호는 속으로 경악했다.
저런 실력자가 160명이나 된다고? 역시, 대국(大國). 인간인 척하는 괴물-이종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세계 최강국의 지위에 선 나라다웠다. 동시에 그는 자신의 선택·보험이 옳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했다. 혼돈의 시대, 설령 대한민국이나 다른 나라가 망하더라도…….
중국은 굳건할 거다.
“그럼 부탁드리겠소.”
이전보다 한층 더 공손해진 말투로 김완호는 남자를 향해 고갤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