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8화
2.
도망치는 국정원 직원이 들고 있던 휴대 전화. 그 연결된 통화에서 흘러나오는 ‘포획을 했냐?’는 질문에 난 곧바로 빼앗아서 대답했고…….
-……그럼 기다라고 있지.
“…….”
짧은 대화를 끝으로 통화가 끊어졌다.
크게 숨을 내뱉으면서 놈과 나눴던 대화를 복기한 후, 난 살짝 이를 갈며 내 앞에 선 요원을 바라보았다. 저항을 하지도,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놈을.
“단장을 본 적 있나요?”
“…….”
-스걱!
대답을 하지 않기에 손에 쥔 단검을 휘둘렀다.
요원의 왼팔을 훑는 전격의 칼날, 뻣뻣하게 굳어있던 요원의 손이 팔뚝부터 잘려 나가고 나서야 억눌린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곧바로 놈의 목덜미에 번개가 ‘파직!’거리는 칼날을 들이밀며 난 계속 추궁했다.
“본 적 있어요? 없어요?”
“보, 보보……. 본 적. 이, 이있습니다. 하, 하항상…… 자주…….”
피가 철철 흐르는 절단된 부위를 붙잡은 채, 벌벌 떨며 대꾸하는 요원. 그에 거침없이 놈의 <과거>를 살폈다. 분량은 대략 하루 정도, 요원이 어떤 30대 중반의 남자에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이 보인다.
회색 정장을 입은 남성.
170 중반의 키에 근육이 잔뜩 부풀어있었고, 안경을 쓰고 있는 얼굴은 중앙에 칼자국도 있는 게 꽤 험악하다. 한마음 보육원 방문 첫날에 마주쳤던 이름도 생각 안 나는 근육 돼지를 10년 정도 삭히면 저렇게 될 것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허, 허허헣. 이 새끼들이?!”
현피 신청한 ‘김완호’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 본 요원의 <과거>. 거기서 보이는 녀석은……. ‘중국 쪽 요원’들과 똑같았다. 그래, 차장님의 <과거>와 철수의 <과거>에서 봤었던 중국 스파이들에게서 보이던 신체를 개조한 것 같은 특징들이 보인다. <과거>를 보는 상태에선 <감정>을 쓸 수 없지만 확실해!
“스읍, 하아아…….”
곧바로 심호흡을 했다.
김완호라는 놈은 중국 쪽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그 목적은……. 아무래도 국정원에게 적대감 심기? 혹은 대한민국에 정 떨어트리기 정도 되지 않을까? 차장님이 중국에서 날 노리고 있다고 했으니 말이야. 그래, 나에 대해 안다면 다짜고짜 고문 같은 거 못 하지!!
지금 보니까 괜히 엉뚱한 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실금(失禁)한 채, 덜덜 떨고 있는 국정원 요원, 방금 전까지는 이놈을 ★모양으로 잘라볼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별다른 생각이 안 든다. 좀 미안함? 그렇게 벌벌 떠는 요원에게 난 최대한 부드럽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했다.
“미안해요. 어쩌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됐네요.”
“…….”
“제가 국정원 많이 좋아하는 거 알죠?”
안타까워서 즉흥적으로 친한 척했는데……. 생각해보니 좀 사이코 같네.
요원의 목덜미를 전기 충격 단검으로 지져서 기절시킨 후, 난 요원의 <과거>에서 본 김완호에 대해 생각했다. 대략적으로 가늠한 놈의 실력-육체적 기교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뛰어난 오크 기사 정도? 만나면 별 모양으로 쪼개줄 수 있어. 하지만…….
“흐음, 동아명주라.”
놈이 오라고 한 곳이 다른 곳도 아니고 중식당이다.
이번 일은 짱깨 새끼들이 꾸민 일이다. 근데, 중식당으로 오라고 한다? 뭔가……. 뭔가 꺼림칙해. 내가 청사에서 대기 중이던 전투원들을 모조리 죽이고 연락한 걸 알 텐데도 자신만만하게 오라고 하다니? 함정의 스멜이 진~하게 풍긴다. 그렇다고 안 갈 수는 없는데 말이지.
싸장님네 작업장에 두고 온 장비들을 떠올리며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급한 대로 서예린의 마법 장비들을 빌리긴 했지만 정작 내가 쓸 수 있는 장비는 별로 없었다. 체형이 달라서 갑옷이나 장갑도 못 가져오고 고작해야 신기한 스카프와 반지·목걸이가 끝이었어. 물론, 이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됐지만.
“하아, 어쩔 수 없…….”
‘죽은 요원들이 입은 것 중에서 쓸 만한 거 회수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떠오른 생각에 청사 지하의 공간을 <눈>으로 훑었다. 마법 장비들을 보관했다가 불출한다는 창고, 남쪽에서 봤었던 것들에 비하면 떨어지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쓸 만한 게 몇 개 보인다.
“히히.”
요원의 품 안에서 특수한 금속 카드를 꺼낸 뒤, 난 청사 지하의 마법 창고를 향해 움직였다.
3.
누구든 간에 휴일은 소중하다.
그건, 나세영 차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아침에 출근해서 남은 잔업을 후딱 끝낸 뒤에 그녀는 곧바로 자주 찾는 온천 휴양지로 향했다. 그녀만을 위해 만들어진 사유지 별장, 뜨뜻한 노천온천에 몸을 담근 채로 서서히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는 걸 보며 몸과 마음의 피로를 풀고 있는데-.
-위이이잉~
옆에 둔 스마트폰이 울렸다.
그에 그녀는 얼굴을 찌푸렸다. 특히나, 일과 관련된 전화번호만 수신할 수 있도록 설정해둔 상태였기에 더더욱 짜증 났다. 작게 한숨을 내쉰 후, 그녀는 사지(四肢)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오른손을 뻗어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차장님! 한새벽이 일을 저질렀습니다!
“……뭐?”
그런 나세영의 대꾸에 전화를 건 전찬휘는 빠르게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TV 뉴스 채널을 보시면 그에 관한 내용이 속보로 나가고 있을 겁니다!
“잠깐, 끊지 말아봐라.”
그에 그녀는 스마트폰으로 생방송 TV 뉴스 채널을 확인했고-.
“하, X이파아알…….”
생방송 속보로 나가는 영상을 보곤 얼굴을 숙였다.
뉴스 채널 하단에 떠 있는 ‘긴급 속보’ 문구는 ‘평양 정부청사 습격’이었고, 마침 나오던 영상은 청사를 습격한 ‘테러리스트’가 촬영된 스마트폰 영상이었다. 근데, 그 체형이나 두 사람만 아는 특징적인 마법을 보니……. 딱 봐도 변장한 한새벽이 확실했다.
“아니, 이 미친 새끼는 어떻게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사고를 치냐?”
-…….
“저기에 국정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나름 대외비인데!”
흰둥이가 ‘이대로 넘어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은 하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대형 사고를 쳐버릴 줄은 몰랐다. 북쪽의 막 나가는 군벌도 평양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데, 이놈은 그냥 막 갈긴다. 그런 그녀의 한탄에 전찬휘는 조심스레 말을 이어 나갔다.
-그것에 대해서 지금 정보 분석과에서 정확한 피해 상황과 사건 개요에 대해 보고가 올라왔는데…….
“말해봐.”
이어지는 보고에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경청했다. 자신을 고문한 ‘취조 전문가’를 살해하고, 병원으로 가서 자신을 체포했던 이들을 추가로 살해했다. 병원에서 4명 중 1명은 살려뒀는데 그에게서 파악한 목적지가 바로 ‘대북 통제단’이 있는 청사였다.
-……당직을 서고 있던 생존자 요원의 말에 따르면 당시에 제압을 위해 운용할 수 있는 모든 재원을 투입해서 함정을 팠지만 모두 몰살당했다고 합니다. 현재, 정부가 평양에서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히트맨들과 무장 병력은 없습니다.
“…….”
-촬영된 영상을 기준으로 판단, 경찰이나 군대의 ‘기존 대응 병력’으론 사살·제압 힘들다고 판단되어 저희 쪽에 처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하아.”
이 골치 아픈 상황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딱 봐도 대도시에 저런 짓을 벌일 만큼 눈이 돌아간 상태, 누가 오든 간에 일단 칼부터 꺼낼 게 분명하다. 지하 송파구에서 촬영된 녀석의 무력을 생각하면……. 역시, 자신밖에 없다. <부양> 마법이 걸린 팔찌로 몸을 온천에서 띄우면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내가 직접 나설 테니 밑에 애들에겐 요청이 들어와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해라. 괜히 끌려들어 갔다가 시체만 더 치울 거야.”
-알겠습니다. 차장님 전파 사항이라고 문자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원장님하고 대통령 쪽엔 뭐라고 보고가 올라갔냐?”
-그건…….
“확인해 봐. 3차장실이 자기네 영역에서 벌어진 일이랍시고 먼저 보고했으면 분명 사건 축소했을 거야. 이 개새끼들, 말을 무시해서 이 지랄 났으면 대가는 치러야지.”
나세영의 이죽거림에 수화기 너머의 전찬휘가 어딘가로 전화한다. 스마트폰을 스피커 모드로 하고 바닥에 내려놓은 후,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고 있을 때 다시 대답이 들려왔다.
-……진짜네요. 그 내용은 모르지만 3차장실 쪽에서 자기네들 일이라고 가장 빨리 사건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역시, 공무원이 그럼 그렇지. 아마 내용도 축소했을 거야.”
전찬휘의 대답에 나세영은 실소했다. 역시, 공무원의 기본 성향은 어디 가지 않지. 하지만, 다행히 이쪽도 지난 사흘 동안 대북 통제단의 개삽질을 공격하기 위해서 1·2 차장실 경제 파트와 협력해서 만든 자료가 있었다.
“원장님에게 우리 쪽 자료도 함께 올려드려라. 이전에 이미 한번 보고가 올라가서 어떤 상황인지 대충 아시니까, 우리 자료도 올리면 대통령실에 상황 보고할 때, 그것도 같이 올리시겠지.”
-알겠습니다.
전찬휘의 대답을 들으며 그녀는 왼손 의수를 착용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전찬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차장님?
“왜?”
-혼자만 가실 겁니까?
“그럼 다른 애들 끌고 가라고?”
살짝 퉁명스런 그녀의 대꾸에 전찬휘는 진지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현재, 한새벽은 비무장이 아닙니다. 총사 지하에 있는 ‘마법 장비 보관소’에 들어가서 몇 가지 물품을 가져갔다 합니다. 북쪽 협력자들에게 대여하고 있는, 대부분 마법 처리로 몇 가지 기능을 증폭한 ‘공산품 마법 장비’긴 하지만…….
“괜찮아. 내가 제압할 수 있어.”
-하지만, 그 예상을 뛰어넘는다면 어쩌실 겁니까?
전찬휘의 말에 나세영은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뭔 개소리냐고 반박하기엔……. 지금까지 보여준 한새벽의 실력은 심상찮았다. 그래, 양파처럼 볼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튀어나왔다.
-볼 때마다 녀석은 우리 상상을 초월하지 않았습니까? 신안에서 타락체가 섞여 있는 무장 연대 병력을 혼자서 몰살시킨 것 하며, 이번에 지하 송파구에서까지……. 물론, 차장님의 힘을 잘 알지만 혹시 모릅니다.
“…….”
-역시, 추가 병력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박할 수 없는 그 말에 나세영이 침묵하는 가운데, 전찬휘의 주장이 계속 이어졌다.
-어차피 지금 당장 헬기 타고 가봐야 3~4시간 뒤에나 도착합니다. 외부 협조를 요청을 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
-최소한 강수영 연금술사에겐 도움 요청이라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순간, 나세영은 의족을 착용하던 것을 멈추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사실대로 고백하면 이 사건을 들을 때부터 강수영을 떠올리긴 했다. 하지만, 일부러 외면하고 있었을 뿐.
그렇게 잠시 말이 없던 그녀는 이내 천천히 납덩이같이 무거운 입술을 뗐다.
“그래, 수영이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맞겠다. 찬휘야, 네가 직접 가서 요청해라.”
-제가 말입니다?
“그래, 뒷사정도 그냥 싹 다 설명해줘. 포섭 조건은……. 좀 과해도 좋아. 차장 선에서 가능한 모든 걸 해주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장비와 강수영 연금술사를 픽업한 뒤에 그쪽으로 헬기 타고 이동하겠습니다.
통화가 끊어진 뒤, 그녀는 한숨을 내뱉었다.
14년 동안 외면했던 이와의 재회, 생각만 해도 가슴에 납덩이가 들어찬 것 같고 찝찝하다. 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당장이라도 요청을 물릴까 싶었지만…….
“제기랄.”
결국,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로 겉옷을 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