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299화 (294/350)

제299화

63화. 공작관 롄 웨이

1.

북한 인트라넷을 검색해본 결과, ‘동아명주’의 위치는 내가 맨 처음 조지러 갔던 놈의 집 인근이었다.

북한 시절에 고위층들이 쓰던 요트 선착장을 개조한 식당이라는데, 다리로 이어진 인공섬 위에 세련된 3층 유리 건물이 세워진 형태였다. 곧바로 그곳으로 쳐들어가는 대신에 난 인근에 차를 세우고 한 건물 옥상 위에 올라 <눈>으로 정찰했다.

“흐음.”

식당 건물 내부에 보이는 ‘생명체 반응’은 고작 5명, 여자 두 명에 남자 셋, 전부 ‘신체 개조’의 흔적들이 보이는 녀석들이다. 남자 중 하나는 내가 조지러 온 김완호고 나머지 4명은 중국 쪽 요원인 것 같은데…….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일단, 전원 ‘마법 사용자’다.

마법을 자주 쓰게 되면 영체에 그 룬의 형상이 흐릿하게 남는다. 일종의 ‘특화’가 이뤄지면서 그 계통의 마법을 점점 더 능숙하게 쓸 수 있지. 중국 요원들은 전부 악마와 관련된 룬 형상이 영체에 흐릿하게 남아있었다. 아니, 신체 개조 자체가 마법과 연관된 것 같아.

게다가 무장 또한 훌륭하다.

겉보기엔 캐주얼한 옷 같은 마법 방호구, 국정원 요원들이 비슷한 방어구를 착용했던 걸 봤지만 저게 더 질이 좋아 보여. 그래, 신안에서 봤었던 국정원 요원들보다 거의 모든 면에서 ‘상위호환’이다. 전투란 것이 변수가 많다지만 중국 쪽 요원 1명이 국정원 요원 4~5명은 상대할 것 같구만.

그래도 여기까진 어느 정도 예상 범위긴 한데…….

“……저건, 너무 강한데요?”

4명 중 1명이 ‘엄청난 강자’였다.

말총머리에 생글생글거리는 여우상 얼굴의 남자, 건물 정문 쪽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데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력이나 영체의 형상이 다른 요원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 뉴 송파구에서 만났던 ‘거대 쥐쟁이’를 연상케 하는 형태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장비도 다른 요원들에 비해 더 좋아 보이고.

“흠, 이걸로 죽일 수 있으려나…….”

오른손에 쥔 3m 남짓한 강철창을 보며 관자놀이를 긁적였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으면 좀 힘들지만 승리를 장담했을 거다. 3달 전, 뉴 송파구에 기어들어 갔던 당시보다 난 더 강해졌으니까. 마법과 병기술이 조화되지 못하고 서로 따로 놀던 부분도 여러 방식으로 개선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평범한 오크 전쟁 군주라면 1:1을 떠도 60~70%의 승률로 죽일 자신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상대에 비해 장비발이 너무 딸려.

서예린에게 빌린 장비 몇 개를 제외하고 전부 청사의 창고에서 가져온 것들. <감정>을 해보니까 미궁 사태 초창기에 시험적으로 만들어진 공산품 마법 장비들이었는데, 특수한 것 몇 개 빼곤 대부분 구색 갖추기로 보관해놓은 것들이었다. 내가 쥐고 있는 창만 하더라도 그냥 마법 재료가 들어간 민짜 창이고.

“……그래, 여기까지 온 거 못 먹어도 고죠.”

크게 숨을 내쉰 후, 목에 걸린 스카프로 몸을 가볍게 하고 높이 도약했다. 그와 함께 여기까지 오면서 폐 속에 모아둔 ‘영혼의 영액’을 가공했다.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가는 영체들, 이어서 난 혀 밑에 넣어둔 ‘용숨결 물약’을 하나 씹으며-.

“JAR!”

쩌렁쩌렁한 포효와 함께 <검은 독기의 망령> 열댓 마리를 식당을 향해 힘차게 토해냈다.

2.

한새벽을 초대한 뒤, 공작관-‘롄 웨이’는 차근차근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그의 실력만으로도 웬만한 이들은 가뿐하게 제압 가능하지만 그는 방심하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본토 공작원’을 긴급 호출로 부르는 한편, 김완호의 협조를 얻어서 청사를 습격한 한새벽에 대한 자료들을 확인했다.

“어떻소?”

옆에 있는 김완호의 질문에 롄 웨이는 스마트폰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확실히, 심상찮군요. 놈이 자신만만해할 만합니다.”

액정에 나오는 것은 청사 앞 CCTV 영상, 한새벽이 벌인 살인은 대부분 새카만 독무(毒霧) 속에서 이뤄졌지만 초반엔 접근한 이들을 죽이는 모습이 있었다. 그렇게 보이는 녀석의 몸놀림은 확실히 심상찮았다.

“과연, 독완동(毒顽童)의 제자라더니……. 스승에게 근접전도 만만찮게 훈련받았나 보군요. 센스가 탁월합니다.”

“독완동?”

“아, 강수영 연금술사를 말하는 겁니다. 저희는 그렇게 부르죠.”

김완호의 질문에 대답하며 스마트폰을 돌려준 뒤, 롄 웨이는 가볍게 의자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정찰국에서 넘겨준 자료로 확인했던 타깃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지금 CCTV를 통해 파악된 정보를 합쳐서 생각하면…….

“[최악을 가정해도 별문제 없겠군.]”

“……무슨 말이요?”

“아,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김완호가 물어보자 롄 웨이는 빙긋 웃으며 고갤 숙였다. 암부의 ‘평요원’들만 있었다면 확실히 힘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직접 나선 이상 제압엔 별문제가 없었다.

“일단, 확인된 수준은 대단합니다만 그래도 충분히 제압할 수…….”

김완호에게 대꾸하다가 롄 웨이는 ‘섬찟한 감각’에 고갤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의 끝, 40~50m 위에 떠오른 작은 형체가 보였다. 한새벽, 올라온 자료대로 무기고에서 탈취한 걸로 보이는 장창을 들고 있었는데-.

-JAR!

돌연, ‘쩌렁쩌렁한 호령’과 함께 ‘새카만 타르 같은 폭류’가 이쪽으로 쏟아졌다.

독완동의 성명절기인 ‘용의 포효’, 어떤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롄 웨이는 곧바로 그의 애병을 쥐고 일어섰다. 식당 곳곳에서 은신하고 있던 요원들도 대비하는 가운데, 한새벽이 뿜어낸 거대한 검은 연무는 순식간에 건물 외벽을 질척하게 감쌌고-.

-캬! 캬캬캬캬캬!

-죽여! 주욱! 여!

“뭐, 뭔……!”

그 유리로 된 외벽 밖에서 자색의 안광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살의에 찬 찢어지는 괴성을 내지른다. 그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섬찟함에 나머지 요원들과 김완호가 긴장하고-.

-쩌적, 쩌저저적……!

-쿵! 쿵! 쨍그랑!

-파앙!

그 자색의 안광들이 생겨난 곳을 중심으로 유리로 된 외벽에 금이 가더니 이내 거칠게 부서지며 검은 연기로 이뤄진 괴물들이 쏟아졌다.

“난 놈을 요격하겠다. 너희들은 김완호 씨를 보호해라!”

흑색 연무를 흩뿌리며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악귀들, 그에 롄 웨이는 요원에게 호령하며 양손에 쥔 애병을 들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양손에 하나씩 쥔 칼날로 이뤄진 괴(拐,톤파), 그 주위에서 공기가 묘하게 일렁이고 이어서 그는 손잡이를 돌려 칼을 쥔 것처럼 휘둘렀다. 그와 함께 칼바람이 사방으로 뻗어나가 돌진해오는 악령을 갈랐다.

-서걱! 서걱!

-쾨직!

물리적인 공격에 강력한 내성을 지닌 악령들, 하지만 칼바람에 담긴 강렬한 마력은 악령을 이루는 마력 패턴을 그대로 붕괴시켰다. 그렇게 정문 쪽 방향에서 침입한 열댓 마리의 악령을 모조리 베어 가르며 그는 식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동안, 식당 안에 있는 나머지 요원들도 다른 방향에서 오는 악령들을 막아냈다.

“a͔͍͔͚ C҉͎͎̮͊͌͒͛͌h͕͇͉͇̖́͌͑a͓͈͍͔̜͋́͗̓͌ R҈͖́́a͇͕͗͗͛…….”

“a͔͍͔͚ R҈͖́́a͇͕͗͗͛……C҉͎͎̮͊͌͒͛͌h͕͇͉͇̖́͌͑a͓͈͍͔̜͋́͗̓͌.”

그르렁대는 듯한 악마어를 내뱉자 ‘지독한 유황 냄새’가 피어오르며, 그들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 잿가루가 바람 없이 흩날리며 휘몰아친다. 중국 암부(暗部)의 상징으로 통하는 <흑회돌풍>, ‘특수한 시술’을 받은 이들에겐 그 잿가루는 전혀 피해를 입히지 않았지만-.

-끄끄그극!

-퀴이이익……!

악령들에겐 달랐다.

그 영역에 들어가는 순간, 몸이 깎여나가고 토해내는 <독침>과 <독숨결>은 힘을 잃었다. 반면에 요원들의 톤파는 무자비하게 악령을 후려쳐서 떨쳐냈다. 롄 웨이처럼 단숨에 박살 내지는 못했지만, 세 명의 요원은 수월하게 다른 악령들 상대로 우위를 점했다.

“쯧.”

그사이, 정문 밖으로 나간 롄 웨이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연무 속에서 얼굴을 찌푸렸다.

몸을 휘감은 ‘유황 냄새 섞인 바람’이 흑색의 연무를 몸에 닿지 않게 차단했지만, 왠지 피부에서부터 저릿함이 올라왔다. 뭘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만 상상 이상으로 지독한 맹독, 이 정도면 평요원들은 버티기 힘들 정도였다.

……한새벽은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독과 정보에는 없는 수준 높은 <강령술>까지. 불쾌한 변수였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작전 범위 내였기에 그는 자신의 마법을 사용해 ‘공기의 흐름과 진동’을 포착했고-.

“……?!”

이내 정문 쪽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미 놈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그 순간, 롄 웨이는 곧바로 몸을 돌려 악귀들에게 공격받는 김완호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그보다도 먼저 한새벽의 공격이 시작됐다.

-콰-창!

-부우우우웅!

식당의 뒤쪽, 강변 방향의 2층 계단 유리 외벽이 박살 나며 새카만 투사체가 자기 몫의 악령을 마무리하던 두 명의 여자 요원 중 하나를 꿰뚫었다. 범위에 들어온 적에게 피해를 입히고 사용자에겐 ‘마법적 방호력’까지 제공해주는 공방일체의 마법인 <흑회돌풍>이었지만-.

“커허-?!”

“잉시아!”

날아온 투사체는 그러한 마법적인 방호막을 관통하는 것도 모자라서 요원이 착용한 장비까지 꿰뚫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뻥 뚫린 자신의 가슴팍을 보며 쓰러지는 요원. 그런 동료를 보며 다른 여자 요원은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남자 요원은 우악스럽게 톤파를 휘둘러 달라붙는 악귀 두 마리를 떨쳐낸 뒤에 투사체가 날아온 2층 계단을 향해 달려들었다.

-챠르르르륵!!

그 몸을 휘감던 <흑회돌풍>이 사그라지고 남자의 양손에 쥔 톤파에서 불쾌한 소음과 함께 기묘한 마력의 파장이 뻗어나간다. 그리고, 그 뻗어나간 마법의 파장에 잠식된 주위 공기의 질감이 아교처럼 끈적끈적하게 바뀐다.

몇몇 암부 요원들이 익히는 비살상 마법인 <감속파>.

시끄럽게 소음을 뿜어내는 톤파를 든 요원만이 그 끈적끈적해진 공기 속에서 정상적으로 움직였다. 이어서 그는 몸을 낮추며 바닥을 휩쓸듯이 톤파를 휘둘렀다. 동료를 죽이긴 했다만 생포해야 하는 대상, 자칫 즉사할 수 있는 머리통이나 몸통은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나-.

-콰득!

자줏빛이 넘실거리는 빛의 궤적이 그보다도 먼저 남자 요원의 머리를 정수리부터 꿰뚫었다.

그에 남은 악령을 찢어 죽이던 롄 웨이도 순간 멈칫했다. 요원을 꿰뚫은 섬광의 정체는 자줏빛이 넘실거리는 창날, 꼬치처럼 정수리부터 항문까지 꿰뚫린 요원은 잠깐 꿈틀거리다가 축 늘어진 가운데-.

-저벅.

그 창의 주인이 박살 난 유리 파편을 즈려 밟으며 식당 안쪽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찰국, 이 자라 새끼들. 보내준 정보가 틀려도 어느 정도까지여야지…….”

2층 계단 쪽에 선 상대방을 보며 롄 웨이는 살짝 식은땀을 흘렸다.

녀석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후광처럼 식당을 가득 채운다. 그가 작정하고 뿜어내는 것과 비견될 만한 위압감, 하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건 훨씬 더 저열하고 끔찍했다. ‘질투’가 마음속에 쌓이고 쌓여서 맹독이 된 것 같은…… 살의(殺意), 그 기세에 몸이 서서히 썩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김완호 씨?”

빙긋 웃으며 김완호를 바라보며 인사하는 한새벽, 이어서 창을 휘둘러 꿰인 요원의 몸뚱이를 쓰레기 버리듯이 내던진 뒤에 녀석은 하얀 이를 드러냈다.

“뒤질 준비는 됐습니까? 이 X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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