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00화 (295/350)

제300화

3.

“하아.”

한새벽을 보며 롄 웨이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대상의 무력이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상황, 뿜어내는 기세만으로 실력을 온전히 가늠할 수는 없다만 납치는커녕 싸우면 목숨을 걸어야 할 수준인 건 확실했다.

게다가 상대는 ‘죽여야 할 타깃’이 아니다.

본국에서 내려온 포섭·포획 대상, 하지만 그렇다고 살려두자니 ‘김완호’라는 중요한 정보 자산이 외부에 드러날 위험이 있다. 결국, 그런 혹시 모를 위험을 막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죽여야 한다. 납치하기 위해 자신들이 모습을 드러낸 게 악수(惡手)가 됐다.

윗선에 정황상 어쩔 수 없다는 것을 항변할 수는 있겠지만……. 커리어에 금이 가는 건 피할 수 없다.

“고객을 모시고 빠져나가라.”

그 사실에 짜증을 느끼며 롄 웨이는 한새벽이 서 있는 2층 계단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가면서 작정하고 기세를 뿜어냈다.

그의 몸에서 메마른 삭풍을 연상하는 살기가 뻗어나가며 한새벽의 것과 부딪쳤다. 두 사람의 마력이 잠식된 공기가 부딪치며 중화되자 김완호와 요원은 그제야 숨통이 트인 듯 숨을 고른다. 그에 한새벽의 시선이 롄 웨이를 향하는 가운데-.

“이쪽으로!”

요원은 롄 웨이의 시선에 곧바로 김완호의 팔목을 붙잡고 정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새벽은 섣부르게 움직이지 않고 무길 다잡으며 상대-롄 웨이를 주시했다. 그런 한새벽의 대응에 롄 웨이는 입맛을 다셨다. 주의가 흐트러졌으면 곧바로 치고 나갔을 텐데 역시 그러한 요행은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가운데, 한새벽이 먼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쪽이 김완호가 믿던 뒷배인가요?”

“…….”

“확실히, 만만찮아 보이시네요. 국정원 쪽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설마, 중국 쪽 사람인가요?]”

“……!?”

“[허, 반응을 보아하니 진짜군요. 이러면 좀 나가린데…….]”

한새벽의 입에서 돌연 유창하게 나오는 중국어, 짧지만 본토 사람 같은 ‘완벽한 발음’에 롄 웨이는 순간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 돌파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도 자국어로 입을 열었다.

“우리말을……. 대단히 잘하는군?”

“뭐, 기본 소양이죠.”

“후후, 그렇긴 하지.”

그 대답에 ‘그나마 안목이 있군.’이라 생각하며 롄 웨이는 한새벽의 평가를 플러스했다.

아직까진 익숙한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쓰이지만, 중국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차지한 만큼 미래엔 ‘중국어’가 영어를 완벽히 대체해 세계 공용어가 될 것이다. 그것이 중국 지도부가 예상하는 미래였다.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미래기도 하고.

어쨌든 이어지는 한새벽의 유창한 말에 롄 웨이는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나저나, 왜 ‘나가리’라고 했지?”

“이번 일을 벌이고 중국 쪽으로 몸을 의탁할까 생각 중이었거든요. 국적 불문하고 인재를 많이 영입한다고 들어서. 미국 쪽도 생각했지만 거긴 이종족이 너무 많아서 껄끄럽고…….”

“흠.”

“근데, 당신 같은 이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제가 당한 일’에 그쪽도 한 발 걸치고 있겠네요?”

한새벽의 ‘유창한 중국어’, 그리고 ‘중국 쪽으로 도망칠까 생각 중이었다.’는 발언. 그에 롄 웨이는 ‘어쩌면 한새벽을 포섭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보았다. 그래도 포섭할 수 있을진 불확실하지만, 이미 반쯤 최악의 상황인 만큼 시도는 해봐도 나쁘지 않았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후, 롄 웨이는 태연하게 어깰 으쓱였다.

“너무 자존감이 강한 거 아닌가? 그쪽이 대체 뭐길래? 이번 일이 터지기 전까지 우린 그쪽이 있는 줄도 몰랐어. 일과 관련해서 김완호를 만나고 있는데, 우린 휘말렸을 뿐이야.”

“흐음.”

“물론, 이 정도의 무력을 지녔다면 그런 자존감을 가질 만하지만……. 이번 일을 벌이기 전까진 이런 수준이란 걸 아무도 몰랐지.”

고갤 저으며 롄 웨이는 한새벽을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솔직히, 우리도 참 난감해. 대화 중인 상대방에게 외교적 빚을 지워두기 위해 ‘날뛰는 마법사’ 하나를 제압해주기로 했는데 이런 괴물일 줄이야? 우리로서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아.”

“그렇긴 하네요.”

순순히 수긍하는 한새벽, 하지만 이내 살기등등한 음성으로 속삭였다.

“그러면 좀 방해하지 말고 ‘비켜’주시겠어요? 난, 그놈을 족쳐야 하거든요. 그쪽 때문에 시간을 너무 지체했는데? 아, 설마 김완호가 그쪽 끄나풀이라서 안 비키는 건가요?”

“흐음, 뭐 비켜줄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먼저 제안을 하나 하고 싶은 게 있군.”

결국, 비키지 않겠다는 롄 웨이의 말에 한새벽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더 짙어진다. 그 질척한 감각에도 롄 웨이는 빙긋 웃으며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벌인 일을 보아하니 앞으로 한국에선 더 이상 살기 힘들 것 같은데, 우리에게 망명하지 않겠는가? 최상의 대우를 보장해주지.”

“……그쪽으로 오라고요?”

“그래.”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는 한새벽을 향해 롄 웨이는 살짝 고갤 숙이며 자기소개를 했다.

“난, ‘롄 웨이’라고 하네. 지금은 정확히 밝힐 수 없지만 본국에서 꽤나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지. 그쪽이 원한다면 바로 망명할 수 있도록 도와줄 정도의 권한은 가지고 있어.”

“허, 제가 그쪽 사람을 죽였는데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는 한새벽에 롄 웨이는 어깰 으쓱였다.

“물론, 우리 쪽 요원이 ‘안타깝게’ 죽긴 했지. 이대로 끝나면 요원의 죽음은 진짜 개죽음이야. 하지만, ‘자네’ 같은 인재를 건지면 개죽음은 아니지.”

“흐, 됐어요. 차라리 미국으로…….”

“미국? 진짜 그쪽으로 가려는 건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말투로 롄 웨이는 한새벽의 말을 끊었다. 그에 한새벽이 멈칫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미국으로 가려면 비행기나 배를 타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거야. 한국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진 않을 테니까. 반면에 우리 쪽은 그냥 붙어 있지. 망명은 훨씬 쉬워.”

“흐음.”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을 위해서라도’ 우리 쪽으로 와라.”

“……인간?”

“그래, 인간.”

손에 쥔 무기를 살짝 내려놓으며, 그러면서도 대비할 수 있도록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롄 웨이는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다들 외면하고 있지만 미궁이 부상한 뒤에 ‘인류’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다. 이전까지는 ‘인간’만이 지구의 주인-만물의 영장이었지만 이었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위협하는 미궁의 ‘지적 괴물’들이 등장했지. 오크, 엘프, 드워프, 용족…….”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경쟁에서 결국에 네안데르탈인이 쇠퇴한 것처럼 ‘인류’ 또한 그들과의 경쟁에서 쇠퇴하고 있다. 잡탕이 된 미국만 봐도 알 수 있지. 현재 인구 증가폭으로 추정 시, 앞으로 20년만 지나면 오크가 인구의 30%를 차지할 거야. 30년 뒤엔 80%가 넘을 거고. 거의 모든 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지.”

“그걸 과연, ‘미국’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현 인류가 가진 근원적인 공포 중 하나.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딱히 뾰족한 대책 없이 방관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했다. 딱 ‘한 곳’을 제외하면. 그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며 롄 웨이는 침묵하는 한새벽을 향해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오직 중화만이 제대로 ‘인류’를 보호하고 있다. 우리만이 인간을 버리지 않았고,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주장하는 괴물들과 손을 잡지도 않았지. 이것이 우리가 정의로운 이유야.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협력하는 이유기도 하고.”

“…….”

“한새벽, 우린 지금 너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한국에서 받던 것 이상의 대우를 약속하지. 인간을 위해, 대의를 위해, 우리에게로 와라.”

그 제안에 살기를 누그러트리고 곰곰이 생각하는 듯한 한새벽, 그걸 보면서 롄 웨이는 느긋하게 대답을 기다렸다.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롄 웨이는 순순히 길을 비켜줄 용의도 있었다. 이미 시간은 충분히 끌었고 김완호는 피신했을 테니까. 김완호를 죽이겠다고 계속 날뛰어도 적당한 구실로 구슬릴 자신이 있었고. 거절하면? 그때는 처음 계획대로 싸우면 되는 일이다.

고민하는 듯한 한새벽은 이내 입고 있던 전투 조끼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고-.

“지랄을 하네, 짱깨 새끼를 믿느니 차라리 쥐쟁이를 믿는다.”

싱긋 웃으며 한국말로 쌍욕을 날렸다.

4.

“지랄을 하네, 짱깨 새끼를 믿느니 차라리 쥐쟁이를 믿는다.”

내 진심을 담은 대꾸에 살짝 벙찐 표정을 짓는 녀석을 바라보며 난 영상통화를 정지했다. 그러곤 서서히 얼굴이 일그러지는 녀석을 향해 생글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전, 김완호 그 새끼를 엿 먹이는 것 외에는 관심 없어요. 근데, ‘왜’ 그걸 방해하는 그쪽이랑 태연하게 대화를 했을까요? 곧바로 그쪽을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

“그건 말이죠, ‘김완호’에게 좀 더 ‘엿’을 먹이기 위해서랍니다.”

김완호가 짱깨들과 내통하고 있단 걸 파악한 뒤, 난 생각을 좀 바꿨다.

화풀이로 김완호를 죽이면 난 그냥 미친놈이다. 하지만, 김완호가 짱깨 새끼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면?? 어느 정도 정상참작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김완호를 좀 더 ‘나락’으로 떨어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죽이더라도 순교자와 배신자는 다르잖아!?

그렇게 서서히 일그러지는 얼굴의 짱깨를 향해 난 스마트폰을 흔들었다.

“여기에 들어오기 전부터 영상통화가 돌아가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지금 방금까지 영상을 보던 사람은 ‘국정원 5차장님’이고요.”

“…….”

“과연, 김완호가 그쪽이랑 만나는 게 정상인지는 나중에 한번 따져보도록 하죠! 캬~ 이렇게 걸리네!”

실실 웃으며 녀석을 향해 조롱했다. 그에 녀석의 얼굴에 걸려있던 가식적인 웃음이 완전히 사라지고 좀 더 생생한 표정이 떠오른다. 그래,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이.

“들어올 때부터……. 그걸 촬영했다는 거냐?”

“네! 김완호를 죽이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촬영해서 보내려고요.”

“도대체 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녀석. 하긴, 국정원 요원에게 같은 국정원 요원을 죽이는 걸 실시간으로 보내겠다니……. 상식적으론 미친 짓이지. 나야 김완호가 배신자라는 것을 파악하고 또 식당에 중국 쪽 요원이 대기하고 있단 걸 파악하고 촬영을 시작했지만 말이지.

하지만, 이런 사실을 말해줄 수도 없으니…….

“그야……. 재미있으니까?”

“…….”

“우리 차장님이 김완호에게 X 같은 감정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보면서 대리만족이라도 하시라고 보내드렸지. 근데, 대박이 걸렸…….”

내가 미처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가공할 속도로 내게 돌진하는 녀석, 동시에 놈의 무기에서 칼바람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도 놈이 움직이기 전부터 <눈>으로 기색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흡!”

온전하지 않고 ‘르피너스가 준 선물-레벨업 부산물’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내 영혼. 그 불완전하고 누더기 같은 영혼의 일부를 <강령술>의 힘으로 쪼갰다. 정확히 말하면 ‘르피너스가 준 선물’ 부분을. 그래도 극심한 상실감이 밀려오지만……. 괜찮다.

진짜 영혼과는 달리, 이건 한번 푹 자고 나면 ‘회복’되니까.

소환 : 검은 독기의 분신 (Summon : Black miasma Clone)

레벨 6 독(연금술)/강령술

시전 소음 : 0

주문 소음 : 0

최대 SP : 200

지속시간 : 최대 300+2d(SP) sec.

소모 재화 : Mp 5, ‘영혼의 영액’, 한새벽의 영혼 조각(모조품), 현재 Hp의 50%

설명 : <소환 : 검은 독기의 망령>에서 한층 더 나아간 한새벽의 오리지널 강령술 마법. 가공된 영혼의 증기들을 흡입, 영혼의 결손된 부위에 결합-감정을 복사해낸 뒤에 ‘자신의 영혼 일부분-르피너스가 주입한 영혼의 모조품’을 쪼개서 주입하여 자신의 기억과 행동은 물론이고 착용한 장비까지 어느 정도 모방하는 ‘자신의 망령’을 만들어낸다.

한새벽의 영기로 만들어진 분신은 ‘영혼을 가진 모든 존재’에게 치명적인 독기를 띠고 있다.

‘검은 독기의 망령’처럼 영혼이 온전한 존재들에게 ‘격렬한 증오와 질투심’을 품고 있지만, 영혼 조각이 들어간 덕분에 어느 정도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다만, <강령술>로 스스로의 영혼 일부를 쪼개는 과정에서 영체-육신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흠.

영혼이 불완전한 한새벽만이 가능한 마법이다.

지금 혼자라면 저놈을 상대할 자신 없지만…… 두 명이라면 다르지.

마치 포개졌었던 홀로그램처럼 ‘뭉클거리는 검정색 형상’이 내 몸에서 뻗어나가 창을 휘두른다. 각자 칼바람을 피하고 막아내면서 들어오는 녀석을 향해 창을 내지른다.

“……!?”

그에 기겁하며 놈이 물러서고 난 ‘내 분신’이랑 함께 서며 잠시 숨을 골랐다.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던 ‘검은 독기의 망령’과는 다르다. 검은 영기로 이뤄져서 좀 뭉그러졌다는 것뿐 완벽하게 나와 똑같은 형상, <죽음의 영매술>로 만들어낸 망령처럼 장비 또한 현재 내 것을 모방했다. 영혼을 쪼개는 반동에 영체가 많이 욱신거리지만……. 역시, 최고란 말이지?

“히, 히히히.”

그에 웃음을 흘리며 난 내 분신과 함께 놈을 향해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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