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1화
5.
오무혁의 딸배가 되어 혜영이에게 배송을 마친 후, 난 뉴 송파구에서 <눈>으로 봤었던 수많은 영체에 대한 현상을 탐구했다.
‘레벨업’에 대해서도 연구했는데, 위험을 무릅쓰고 <강령술>로 그 부분의 내 영혼을 쪼개보기까지 했다. 시도한 순간, <고문> 계통의 마법에 직격당한 듯한 타격에 휘청였지만 그래도 ‘영혼의 모조품 조각’을 뜯어낼 수 있었지.
그 ‘모조품 조각’을 연구하고 또 어떻게 써먹을까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소환 : 검은 독기의 분신> 마법을 고안해냈다.
살인적인 질투와 시기에 미쳐 날뛰는 기존 망령과는 달리, 이 녀석은 어느 정도 그 감정을 억제할 수 있다. 덕분에 ‘생각이나 판단의 기준’이 나랑 거의 똑같다. <눈>이라는 사기적인 능력까진 없었지만 대신에 ‘소환수’답게 나와 마법으로 이루어진 연결이 있지.
그걸로 내가 보는 이미지를 공유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내 곁에 있다면 이 분신은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은 전투 방식’을 구사한다. 사실상 ‘하나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두 개의 몸’, 그래서 이 마법을 만들고 난 뒤엔 합공(合攻)하는 전투 스타일까지 연마했다. 그래도 실전은 처음이다만…….
지금까진 아주 수월하다.
-끼! 끼기기기긱!
분신이 짙은 타르 같은 <독숨결>을 뿜어내며 창을 내지른다. 시야를 교란했음에도 왼손에 착용한 ㅏ자 톤파 형태의 칼날 무기를 들어서 가뿐히 흘리는 말총머리, 이어서 오른손의 칼날 무기의 손잡이를 돌려 역수(逆手)로 잡고 분신을 향해 칼날을 박아 넣으려 하지만-.
-챙!
내 창이 한발 먼저 찔러 들어가면서 반격의 맥을 끊는다.
말총머리가 내 공격을 막아내는 사이에 분신은 창을 회수하면서 연거푸 찔러나간다. <독숨결>에 의해 가려진 시야, 하지만 말총머리 녀석이 스스로에게 건 <음파 시야>라는 마법은 우리의 움직임을 정확히 녀석의 머릿속에 전달한다.
-챙! 챙챙챙! 챙!
양손의 칼날 무기를 팔목 보호대처럼 쥐고 우리들의 창질을 정신없이 막아내는 말총머리, 그러면서 기습적으로 닿지도 않을 거리인데도 돌연 발차기를 날린다. 평범한 발차기라면 스스로의 균형을 흔들리게 하는 멍청한 행동이지만, 놈이 착용한 구두를 <감정>하고 만들어지는 룬 문자의 형상을 본다면 뭘 노리는지 대충 파악된다.
-파앙!
풍선 터지는 소음을 수십 배로 키운 듯한 소음과 함께 구두에서 공기의 충격파가 뻗어 나와 우리의 자세를 무너트리려고 한다. 동시에 놈은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바람의 힘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파-앙!
연거푸 지면에 닿고 있는 구두 쪽에서도 똑같은 충격파를 내뿜어 폭발적으로 창의 안쪽으로 파고든다. 몰랐던 상태에서 당했다면 좀 당황스러웠을 움직임, 하지만 예상하고 있던 사람에겐 당연히 통하지 않는다.
“큭……!”
-챙! 챙!
충격파에 흔들리는 ‘척’하다가 역으로 우리의 창이 맹렬하게 찔러오자 말총머리는 당황하며 창날을 막는다.
곧바로 빠지기엔 깊숙하게 파고든 상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우린 말총머리를 향해 연거푸 창을 찔러가면서 동시에 마력을 꼬아 각자 ‘룬문자의 형상’을 만들어 공명했다.
-쓰가가가아악!
-부우우우웅!
주위 공기가 돌연 한순간에 압축, 분신이 휘두르는 창날 부분에 빨려 들어가 뭉쳐지더니 순식간에 시커멓게 물들며 쏘아진다. <맹독의 말뚝>, 그러나 창날에서 뻗어나가는 직선적인 공격에 말총머리는-.
-퍼엉!
발밑에 공기를 압축·터트리며 손쉽게 피한다.
마법이 쏘아질 때부터 심상찮은 전조 현상이 보이는데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우리도 그 정돈 예상한 바다. 분신이 <맹독의 말뚝>을 날리는 동안, 나도 만들어 놓은 룬문자의 형상을 공명시키며 마법을 완성했다.
3위계 <독의 연소> 주문
하지만, 이전의 주문과는 달리 개량을 거듭한 방식이다. 주문의 힘은 이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 손끝에서 한 줄기 빛처럼 뻗어나갔다. 그 목표는…….
분신이 쏘아낸 <맹독의 말뚝>이다.
<눈>의 힘을 빌려 빠르게 날아가는 투사체를 향해 정확히 맞췄다. 그 순간, 개조된 <독의 연소> 주문은 화학 반응이 일어나듯이 말뚝 내부의 내 마력을 연료 삼아-.
-콰-앙!
“……!?”
폭발했다.
이미 피한 투사체가 등짝 뒤에서 폭발한 상황, 그 충격파에 말총머리의 균형이 단숨에 무너지고 우린 날아오는 놈을 꿰기 위해 창을 뻗었다. 절호의 기회, 하지만 균형을 잃었으면서도 놈은 정말 만만찮았다.
-챙! 챙!
바람의 힘으로 기어코 몸을 곡예하듯이 뒤틀면서 무기를 들어 찔러오는 창을 막는다.
하지만, 이전처럼 완벽하게 피하진 못했다. 심장을 노리다가 옆구리 쪽으로 튕겨진 내 창은 정장 형태의 방어구에 막혔지만, 머리를 노리던 내 분신의 창은 놈의 왼쪽 뺨을 길게 찢었다. 좀 아쉬운 결과야. 힘을 강화해주는 내 뼈 장갑만 있었다면 옆구리를 꿰뚫었을 텐데 말이지.
-파-앙!
연이어서 놈은 마법 구두에서 충격파를 터트려서 최대한 뒤쪽으로 물러서더니-.
-파앙! 펑! 퍼퍼퍼퍼퍼퍼-ㅇ!
양쪽 구두에서 충격파를 연거푸 뿜어내며 말총머리는 ‘월등한 기동력’을 선보이며 우리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고속철도를 연상케 하는 엄청난 속도, <눈>으로 가늠하니 대충 지하철 속도 7~8배 정도다.
전후·좌우·상하……. 직선적이지만 매우 빠르다.
대신에 녀석의 몸에 있는 마력도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구만. 스스로도 움직임을 완전히 통제하진 못하는 듯, 녀석은 우리 쪽으로 가까이 들어오진 못했으나 대신에 입체적으로 움직이며-.
-스걱! 스걱! 스거거거걱!
<진공 칼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양손에 쥔 칼날 무기에서 정신없이 나오는 <흡수> 속성의 칼바람, 직접 저 칼날에 찔리는 것보다는 약하지만 유리 몸인 우리에겐 똑같이 한 방이다. ‘혼자’였다면 피하기 급급했을 흉험한 궤적들이지만-.
-펑! 퍼펑! 펑!
-스걱! 스걱! 스거거거걱!
‘우리’라면 저 폭풍을 뚫고 가는 것도 가능하다.
분신과 등을 맞대고 서로 몸을 교차해 피격 면적을 최소한으로 줄이며 움직였다. 쏟아지는 <진공 칼날>들을 피하고, 피하기 힘든 것들은 창을 휘둘러 흩어버렸다. 서로가 막기 힘든 궤적을 대신 막아주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함께라면 가능하다.
생각을 공유하면서 우린 주위에 날아다니는 말총머리를 향해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6.
한 명이 여러 명을 상대하는 건, 그 수준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매우 어렵다.
인간은 연약하기에 날붙이에 급소 한 번 잘못 찔리면 죽는다. 한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위험이 따르는데, 그 숫자가 늘어나면 난도는 급격하게 올라간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다수 쪽의 합(合)이 서로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면 어떨까?
한새벽을 상대하는 롄 웨이는 그 위력을 아주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후우우……. 후우우욱!”
한차례 폭풍처럼 몰아친 뒤, 롄 웨이는 좀 떨어져서 살짝 숨을 골랐다. 정신없이 공격을 받아내던 한새벽도 어지간히 지쳤는지 곧바로 반격하는 대신에 서서 숨을 고르며 품 안에서 꺼낸 금속 생수통을 꺼내 들이켰다.
“푸하아……. 거, 너무 방정맞게 뻉글뻉글 왔다 갔다 거리는 거 아닌가요? 가만히 서 있는 것도 힘들 정도네.”
“…….”
“그나저나 뺨은 꽤 멋지네요. 꼭 할로윈 분장 같답니다.”
-끼긱! 끼기기기긱!
한새벽의 비아냥에 놈의 분신까지 기괴한 웃음소리를 흘린다.
왼쪽 뺨에 난 커다란 상처, 맹독이 서려 있는 창인 듯 심상찮은 독기가 올라오기에 롄 웨이는 놈의 주위를 돌면서 그의 무기로 뺨을 통째로 뜯어내 던져버렸다. 덕분에 왼쪽의 잇몸과 이가 고스란히 드러나 보였다.
그 조롱에 롄 웨이는 한 번 크게 심호흡했다.
기세에 비해 한새벽의 무력은 보잘것없었다. 매우 정교하긴 했으나 그것뿐, 무기에 실린 힘은 약하고 그 속도는 자신에 비해 매우 느렸다. 혼자라면 몇 합 만에 죽여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 하지만 저 분신이 난입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압박해오는 한새벽과 분신
다대일 싸움을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니지만, 한새벽과 분신이 보여주는 합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서로의 동작이 교묘하게 맞물리면서 드러난 약점을 보완하는데, 꼭 하나의 생각을 가진 두 개의 몸뚱이 같았다.
그에 롄 웨이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부드러운 미소를 만들었다.
“확실히, 분신이랑 함께 싸우니 상상을 뛰어넘는군.”
“……?”
-끼긱?
예상치 못한 대응인 듯, 한새벽의 미간이 찡그려지는 가운데 그는 느긋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느껴지는 기운을 보니 <강령술>로 만든 듯한데, 외형이나 움직임이나 완전히 똑같아. 심지어 마법도 구사하다니? 스스로의 유령을 만들어낸 건가?”
“……쯧.”
“정말 놀라워. 살아있는 사람에게서 유령을 뽑아내다니…….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뛰어난 강령술사도 그런 짓은 못하는데 말이지.”
중요 정보자산이 드러났다는 빡침에 달려들었지만, 어느 정도 진정된 후에 녀석의 분신을 보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니, 솔직히 탐심(貪心)이 솟구쳤다.
‘강자’는 언제나 부족하다.
그건 중화도 마찬가지다. 정보 관련 직종에서 일하기에 롄 웨이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유럽 대륙보다 넓은 땅, 30개가 넘어가는 지하 토굴. 전 세계의 인재와 기술을 빨아들이며 막강한 힘을 투입하고 있지만 지금도 중화의 곳곳에서 막대한 소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령술>은 아주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죽은 이를 사역하는 기술, 수준 낮은 <강령술>은 그저 느릿한 좀비를 일으킬 뿐이지만 수준 높은 <강령술>은 생전의 기억과 기술을 구사하는 존재 또한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자를 키워내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싸게 먹히고 즉각적인 전력 보충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중화는 진지하게 <강령술>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집트를 반장악하고 있는 지성체 언데드 집단과 교류하고, 사살한 강력한 괴물의 시체는 활용하기 위해 회수·보존하며, 첩보망을 동원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강령술> 관련 마법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지금 한새벽이 보여주는 마법은……. 아주 이상적인 기술이었다.
스스로의 ‘망령’을 만들어서 사역하는 마법
그 실력 또한 본체에 떨어지지 않는다. 만약, 저 마법을 모든 이들이 익힌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익히긴 쉽지 않을 거다. 아무리 ‘증강 시술’을 받는다 하더라도 마법이란 게 익히기 쉽다면 개나 소나 다 익혔을 테니까. 그래도 연구 소재로서 가치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얼굴을 구긴 한새벽을 향해 롄 웨이는 다시 여유롭게 말을 걸었다.
“다시 한번 제안하지. 우리와 함께하자.”
“거 되게 구질구질하게 구시네. 김완호가 그쪽…….”
“원한다면 김완호를 족치는 걸 도와주지.”
그에 한새벽은 입을 다문다.
롄 웨이로서는 당연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미 단물이 다 빠진 김완호보다는 한새벽이 훨씬 더 매력적인 선택지니까. 빈 껍데기를 주고 마법을 연구하는 데 협조를 얻는다면 남는 장사다. 입을 다문 한새벽을 향해 그는 미소를 지었다.
“네 재능이 아쉬워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됐네요.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꼴을 보니 오히려 정이 떨어지네.”
-끼기기기긱!
분신 또한 동의한다는 듯이 소리를 내자 롄 웨이는 피식 웃고 여유롭게 무기를 다잡았다.
“좋아. 그럼 좀 거칠게 제압할 수밖에 없겠군.”
“제압? 하하하, 지금까지 제압 안 하고 뭐했나요?”
분신과 함께 무기를 다잡으며 비아냥대는 한새벽, 그에 롄 웨이는 피식 웃었다.
“확실히, 너희 두 명의 맹공은 나로서도 대처하기 힘들더군. 하지만 너흰……. 너무 느려. 내가 피하기만 하면 너흰 잡지도 못하지.”
한새벽과 분신이 보여주는 콤비네이션은 확실히 대단했다.
하지만, 움직임 자체는 그가 월등하다. 중화의 최고위 능력자 ‘적색’ 중에서도 순위권에 속하는 기동력을 살려 피하기만 한다면 한새벽과 분신은 그를 따라잡을 수도 없다. 그 말에 한새벽이 뭐라 반박하려 했지만-.
“난 <강령술>을 못 쓰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 너처럼 유령을 만들어내는 놈도 상대해봤어. 그러한 고차원적인 유령은……. ‘특별한 수단’이 없는 이상,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흩어지더군.”
-끼기기기기……!
이어지는 지적에 한새벽의 얼굴이 더더욱 찌그러지고 분신은 위협적인 소음을 낸다. 그에 롄 웨이는 씨익 웃었다.
“물론, 유령을 한 마리 더 뽑으면 되겠지만 지금 한 마리가 한계인 것 같군. 없으면 몇 마리를 더 뽑아댔을 테니 말이야.”
“…….”
“지금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군. 시간을 허비해줘서 정말 고맙고…….”
자세를 다잡으며 그는 냉혹한 살기를 뿜어내며 한새벽을 향해 소름 끼치게 웃었다.
“마지막 제안을 거부했으니 그 팔다리는 예쁘게 잘라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