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03화 (326/350)

제303화

64화. 사법거래, 참 쉽죠?

1.

시간 차로 날아간 <맹독의 말뚝>은 그대로 말총머리의 대가리를 꿰뚫었다.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휘청거리더니 그대로 픽 쓰러지는 녀석, 그에 손을 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투사체 방어>가 걸린 마법 장비에 <음파 시야>까지 쓰고 있어서 안 통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마법만으로 끝냈다. 하긴, 인간이 그 폭발 속에서 살아나온 것 자체가 반쯤은 기적이지.

“후우우…….”

크게 한숨을 내쉰 후, 난 근처의 공원 벤치에 주저앉아서 잠시 숨을 골랐다.

이제 도망친 그 X새-김완호를 추적해서 조지는 일만 남았다. 상공에 띄워둔 <눈>으로 도망친 경로는 어느 정도 파악했으니, 적당히 그 경로를 따라 추적하면서 그 공간의 <과거>를 확인…….

“……X발.”

힘들어 죽겠네.

긴장이 쫙 풀리면서 한꺼번에 몰려오는 피로, 단순히 육체적·정신적인 피로가 아니다. ‘근원적인 것’이 소진된 느낌. 마력으로 이뤄진 ‘영체’도 아니고 더 근원적인 ‘영혼’을, 모조품 부분이라지만 쪼갰는데 부작용이 없을 리가 없다.

상태이상 목록에 반짝이는 ‘유출된(Drain)’이라는 보랏빛 문구.

영혼을 쪼갠 부작용이다. 일종의 레벨 하락, 클릭하면 ‘숙련도’와 ‘신체 능력’ 등이 하락했다는 플레이버 텍스트가 떠오른다. 잠을 자면 회복된다고는 하지만……. 역시, 너무 피곤해. 이 상태에서 공간의 <과거>를 연달아 보면서 추적한다는 건 힘들다.

……그럼 이제 뭐하냐.

피로에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통을 열심히 굴려봤다. 일단은……. 놈이 한국에서 도망을 못 치게 하는 게 우선일 듯하다. 녀석이 중국의 간첩이란 걸 밝히면 확실하게 정부도 가만히 있진 않겠지. 그에 난 느릿하게 전투 조끼 안쪽에 넣어뒀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역시, 튼튼해서 좋아요.”

은빛의 스마트폰, 전투의 여파로 액정 부분은 깨지고 금속 동체는 파편에 맞아 살짝 찌그러졌지만 버튼을 누르니 정상으로 켜졌다. 아가씨에게 비싼 돈 주고 산 보람이 있어.

어쨌든 난 곧바로 통화 목록을 눌러서 차장님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2.

나세영의 허락이 떨어진 뒤, 전찬휘는 곧바로 강수영과 접촉했다.

갑작스런 연락에 강수영은 ‘대단히 언짢은 기색’을 팍팍 내뿜었지만 한새벽과 관련된 사정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하니 한숨을 내쉬면서 협조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에 급한 불은 껐다고 한숨을 돌렸는데-.

“…….”

“…….”

인천에 있던 나세영 차장이 합류하면서 ‘불편한 기색’이 흐르기 시작했다.

평양으로 향하는 초음속 헬기, 미궁의 재료와 마법 공학이 적용된 덕분에 그 안은 기존 헬기와는 달리 아주 조용했다. 그 안에서 전찬휘는 근처에 앉은 두 사람의 눈치를 봤다.

팔짱을 낀 채, 불퉁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강수영.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반대쪽 창밖을 바라보는 나세영.

정확한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서로 시선을 피하는 게 빤히 보였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전찬휘가 뻘쭘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던 와중-.

-♫~♬~

나세영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그에 움찔하며 주섬주섬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그녀는 액정에 떠오른 이름을 보곤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 새끼는 도대체…….”

“왜 그러십니까.”

“흰둥……. 아니, 한새벽의 전화야. 영상통화.”

그에 강수영도 슬쩍 시선을 돌린다. 처음으로 세 사람의 시선이 한곳에 모인 가운데, 나세영은 조심스럽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오는 건, 한새벽의 얼굴이 아니라 높게 떠올라서 촬영되는 영상. 강변에 섬처럼 지어진 작은 유리 건물인데-.

-JAR!

-푸후우우우욱!

스마트폰 스피커에서 쩌렁쩌렁한 한새벽의 외침과 함께 시커먼 타르 같은 것이 단숨에 커다란 건물을 휘감는다.

“여보세요? 흰둥아? 젠장, 이 녀석 아예 소리를 끈 것 같은데?”

곧장 낙하해 건물을 휘감은 검은 연무를 뚫고 들어가는 한새벽, 영상이 끊긴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소리만큼은 생생히 들려왔다. 유리가 박살 나는 소음, 소름 끼치는 괴물들의 기성, 거대한 벌 떼가 지나가는 듯한 소음, 수많은 동전이 부딪치는 소음……. 다시 카메라가 환해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허. 미친놈. 미친놈…….”

꼬치에 꿰인 고기처럼 창에 머리부터 항문까지 꿰뚫린 남성이었다.

그에 나세영은 혀를 내둘렀다. 감히, 국정원 차장에게 살인 장면을 보내다니……. 이 녀석은 진짜 돌아도 잔뜩 돌아버렸다. 이어서 카메라의 구도가 움직이며 다른 이들을 비춘다. 김완호를 비롯한 3인, 한새벽이 대놓고 선전포고를 하자 한 말총머리 남성이 남고 김완호와 여자는 허겁지겁 도망치고…….

“……너 뭐라 떠드는지 알겠냐?”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영상 녹화 중이니 나중에 번역가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유창한 ‘중국어’로 쏼라쏼라거리는 한새벽과 말총머리 남자, 그에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강수영이 입을 열었다.

“설마 중국 쪽 사람이냐. 반응 보아하니 중국 사람이네. 이러면 곤란한데.”

“어?! 강수영 선생님 설마…….”

“대충 번역하는 거야.”

전찬휘에게 대꾸한 뒤, 강수영은 담담히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대화를 번역했다. 그렇게 이어지는 대화를 다 듣고 한새벽이 마지막으로 한국어로 조롱하는 것을 끝으로 영상은 끝났다. 다시 걸어봤지만 받지 않는 전화, 그에 나세영은 녹화된 영상을 다시 한번 돌려봤고-.

“……김완호, 이 새끼 중국 국안부 쪽과 함께 있었네.”

얼마 안 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이죽였다.

“예? 국안이요? 그, 중국어를 하긴 했지만…….”

“여기 김완호를 호위하고 있는 여자를 봐봐. 건물 내부에 떠도는 검은 연무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몸 주위에 검은 재가 풀풀 흩날리는 거 보이냐? 그러면서 옷은 펄럭임도 없고.”

영상을 멈추고 검지로 톡톡 가리키는 나세영, 그에 전찬휘도 얼굴이 심각해지는 가운데 그녀는 한숨을 내뱉었다.

“빼도 박도 못해. 이거, <흑회 돌풍>이야, 지금 들어 보니 이 ‘동전 부딪치는 듯한 소리’도 알겠다. 그쪽 암부 소속 요원이 구사하는 마법 중 하나야. 이건 내가 직접 경험해보진 않아서 100% 확신은 못 하겠지만 동전이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고 보고가 올라왔어.”

“그럼, 설마 김완호 지부장이…….”

“100% 확실해진 것도 아니니 그렇게 말하진 마라.”

건조하게 말하는 나세영. 그제서야 전찬휘가 그 의혹이 가진 무게를 깨닫고 입을 다무는 가운데, 그녀는 자기에게 온 영상통화를 국정원 자료 분석팀 쪽에 보내곤 슬쩍 시선을 돌려 강수영 쪽을 바라봤다.

다시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는 강수영.

하는 대화를 들었을 텐데, 그녀의 얼굴은 딱히 변화가 없었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에 작게 한숨을 내쉰 후, 나세영은 스마트폰을 끄고 헬기의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다시 헬기 내부는 적막-.

-♫~♬~

해졌지만, 10분 정도 지나서 다시 나세영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국정원 쪽에서 영상 관련해서 연락한 건가 해서 그 액정을 다시 보는 순간, 나세영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국정원 내부에선 ‘괴짜’ 혹은 ‘또라이’ 취급받고, 그녀 자신도 어느 정도 그렇다고 인정하지만……. 이 미친놈에 비하면 자신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다시 시선이 쏠리자 그녀는 고갤 끄덕였다.

“한새벽이다. 이번엔 그냥 전화 통화네.”

“…….”

“받는다.”

나세영이 전화를 받자-.

-여보세요?

“이번엔 대답하는구나?”

들려오는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앳된 목소리, 나세영이 살짝 비꼬는 듯이 대꾸하자 한새벽은 난처하다는 듯이 웃음소리를 흘렸다.

-하, 하하하……. 이전 촬영 때는 좀 급박해서요. 그, 조금 전에 보낸 영상통화는 보셨나요? 김완호를 족치러 갔다가 중국 쪽 녀석들하고 같이 있는 거 촬영됐는데.

“그래, 뭔가 심상찮은 것 같긴 하더라. 중국 암부 요원과 함께 있다니…….”

-암부요?

“중국 ‘국가안전부’의 하위 부서란다. 걔네들이 쓰는 마법은 좀 특징적이거든. 네가 찍어서 보낸 영상 중에 그게 찍혔어.”

-오. 생각지도 못한 대박이네요.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 중이었는데.

반색하는 한새벽의 목소리, 그에 나세영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왜 전화한 거니? 설마, 우리를 조롱하려는 거니?”

-아뇨아뇨아뇨. 설마요. 제가 감히 차장님을…….

“그럼 왜 이런 짓을 벌이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세영이 되묻자 한새벽은 오히려 언성을 높였다.

-아니, 그럼 날 일부러 물 먹인 새끼를 냅둬요?!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 뻔해놓고선??

“처벌을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러고선 받는 처벌이 견책? 감봉? X발! 다 X 까라고 그래요! 그럴 바에는 내가 직접 조지지!

“…….”

-그리고 좀 전에 전화한 건, 차장님을 위해서요.

“뭐?”

-김완호가 ㅈ 같은 새끼라고 하셨잖아요?? 어차피 제 손에 죽을 거, 실시간으로 박살 나는 김완호를 보면 좀 기분이 풀어지실까 해서……. 대신에 전혀 엉뚱한 게 찍혔지만.

“하아아…….”

한새벽의 말에 나세영은 이마를 짚었다.

영상을 보낸 게 그런 이유에서였다고?? 국정원 블랙 옵스로 수많은 미친놈을 만나봤지만 이런 유형의 미친놈은 또 처음이었다. 생각 자체도 말이 안 될뿐더러, 자신의 범죄 증거가 될 뻔한 걸 보내주다니……. 그렇게 나세영이 이마를 짚는 사이에 한새벽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김완호, 그 녀석 중국 쪽 스파이예요. 이제 정정당당히 조져도 되는 거죠?

“……흰둥아, 법치주의 국가에서 사적 제재는 범죄란다. 그것도 꽤나 죄질이 좋지 않은 걸로 판단하는 범죄.”

-X발, 스파이 짓 해도 처벌을 안…….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지. 보낸 영상 말고 더 증거가 있냐? 좀 더 확실한 증거가.”

도중에 말을 끊는 나세영의 질문, 그에 한새벽은 멈칫하더니 이내 담담히 대꾸했다.

-예, 제시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어요. 그럼요!

“좋아, 그럼…….”

“언니.”

한새벽의 말에 대답하려는 순간, 옆에서 들리는 ‘언니’란 말에 나세영은 멈칫했다. 14년 전, 그 당시의 외모 그대로인 강수영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말문이 막힌 가운데, 강수영은 손을 뻗어 까닥였다.

“나도 바꿔줘요.”

전화를 하겠다는 강수영, 그에 나세영은 굳어 있다가 천천히 고갤 끄덕이며 스마트폰을 넘겼다. 그렇게 전화를 받자마자 강수영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래, 도비야. 나다.”

-에? 싸장님?? 지금 차장님 곁에 있나요?

“그래, 널 설득·제압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이 와서 말이야. 지금 초음속 헬기 타고 함께 평양으로 날아가는 중이지.”

담담히 대꾸하는 강수영, 그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강수영의 말이 이어졌다.

“덕분에 내 소중한 휴일이 날아갔네? 정말 고맙다, 도비야.”

-아, 아니. 이게 다 사정이 있어서 그랬어요! 저 진짜 억울해요! 그냥 다짜고짜 끌려가서 고문당했다니까요? 이빨 다 뽑히고 치아 신경에 전기 고문당하고 심지어 강간…….

“됐고. 지금 어디냐?”

횡설수설하는 한새벽을 말을 단숨에 끊는 강수영, 그에 한새벽의 쭈뼛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그게 동아명주라고……. 근데, 건물은 다 박살 났어요. 적이 너무 세서 그냥 통째로 건물째로 날렸거든요.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괜히, 귀찮게 왔다 갔다 말고.”

-서, 설마? 절 넘기…….

“지랄하지 말렴, 이미 사정은 어느 정도 들었어. 너랑 싸울 일 없다. 괜히, 갔다가 너 찾는다고 며칠 동안 북쪽에 있으면 발주물량 밀릴 거 짜증 나서 그런 거야.”

-네, 넵넵.

“아무튼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하자.”

그 말을 끝으로 강수영은 통화를 종료하곤 뒤늦게 멈칫했다. 습관적으로 통화를 껐지만 자신의 스마트폰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세영이 통화 중이었고. 전찬휘가 ‘큼큼.’ 헛기침을 하는 가운데, 나세영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돌려받곤 품 안에 집어넣었다.

다시 내려앉은 침묵, 하지만 훨씬 나아진 분위기로 헬기는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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