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06화 (300/350)

제306화

6.

“……뭐?”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다는 말에 차장님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하는 가운데, 싸장님은 어깰 으쓱였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재생 석유 사업’과 관련해서 로비할 예정이었거든요. 뉴 송파구 안으로 몇몇 핵심 장비가 들어가는 걸 허락해달라고 말이에요. 거기에 추가로 우리 도비에 대한 건을 +하는 거죠.”

“흐음, 대통령의 비선을 아나 봐?”

“아뇨, 제가 아니라 뉴 송파구 시장-제롬이 만날 거예요.”

그 대답에 차장님은 잠시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갤 젓는다.

“돈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건 많이 힘들 거야. 나중에 정권 바뀌면 드러날 확률이 높아서 웬만큼 안전하지 않은 이상 받질…….”

“마력 각성제예요.”

‘마력 각성제’란 말에 입을 다무는 차장님. 전찬휘 경감도 흠칫하는 가운데, 싸장님은 마력 각성제에 대해 부득이하게 말할 상황에 처했을 때를 대비해 만들어놓은 ‘거짓 설명’을 털어놓았다.

“미르 유혈 사태 당시에 오크들은 일종의 ‘마력 각성제’를 몇 개 얻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복용하면 식인 괴물이 되는 약물을. 저와 도비가 어찌어찌 성분을 분리해내서 만들어냈죠. ‘약간의 부작용’이 있지만, 어쨌든 최종단계까지 하면 100% <마력 각성>이 돼요.”

“…….”

“각성자가 되고 싶다면 협력하겠죠.”

“하, 하하하. 엄청난 걸 가지고 있었네?”

그에 실소를 흘리는 차장님, 하지만 이번엔 힘들다고 말하진 않는다. 어쨌든 싸장님은 물고 있던 전자 담배를 입에서 떼어내면서 한숨과 함께 연무를 내뱉는다.

“언니를 믿어서 말하는 거니까……. 이건, 비밀로 해주세요. 괜히 소란스러워지는 건 싫어.”

“걱정 마. 나도 이제 그때처럼 순진하진 않으니까.”

씨익 웃으며 말하는 차장님, 이어서 전찬휘 경감에게도 눈짓한다. 경감이 떨떠름한 얼굴로 고갤 까닥이는 가운데, 차장님은 가볍게 손가락을 틱틱 튕기며 고갤 주억인다.

“좋아, 정치적인 분야에서 해결된다면……! 국정원 윗선도 설득될 가능성 있어. 하지만, 최대한 빨리 대통령을 설득해야 할 거야. 말했다시피 이미 ‘정치적인 사안’이라서 국정원도 독단적으로 움직이기 힘들거든.”

“걱정 마세요. 이쪽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테니까.”

고갤 끄덕이는 싸장님, 사이가 껄끄럽던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것 같아서 보기가 좋구만. 그렇게 흐뭇하게 웃고 있는데 싸장님이 시선을 돌려 날 바라본다.

“그리고 도비야.”

“넹, 싸장님.”

“이번 일로 소모되는 경비는 나중에 청구할 테니 갚아라.”

“넷?!”

갑자기 돈을 내라는 말에 움찔하자 싸장님은 전자 담배를 쥔 손을 휘두르며 삿대질한다.

“쉐끼야! 그럼 그냥 넘어가려고 했냐? 니가 벌인 짓이니 최소한의 책임은 져야지!”

“그, 그렇긴 하죠? 네! 네! 갚을게요, 갚을게.”

“그래도 넌 행운아야. 나하고 세영 언니까지 도와주니 말이야! 다른 사람이었으면 잘해야 타국 망명이었어!”

호통을 치는 싸장님, 확실히 대통령에게 로비하다니 일반인에겐 불가능한 영역이긴 하지. 내가 곱게 찌그러지자 싸장님은 한숨을 내뱉는다.

“참고로 기름칠이 많이 필요할 테니, 백억 이상 깨질 각오해둬라. 운이 나쁘면 더 깨질 수도 있고.”

“으으윽…….”

엄청난 액수에 가슴팍을 붙잡았다. 김완호를 조지는 값으로는 너무 비싼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싸장님네 집에 있는 금괴로 끝냈으면 좋겠구만. 그렇게 괴로워하자 싸장님은 손에 쥔 전자 담배를 입에 물며 타박하신다.

“아무튼 당분간 북쪽에서 자숙하고 있어라.”

“……넹.”

“아, 혹시라도 일이 좀 틀어지면……. 그냥 곱게 해외로 갈래? 아니면 좀 ‘무리’해서 일을 진행할까?”

“그냥 진행해주세요.”

‘무리해서 진행한다.’는 말, 저것도 마력 각성제 관련 이야기다. 마력 각성제를 만들 수 있단 걸 말해주는 순간, 난 절대로 버릴 수 없는 중요 인물이 될 테니까. 그런 내 말에 싸장님은 알았다는 듯이 고갤 까닥이곤 내렸던 헬기 쪽으로 다시 걸어간다.

그렇게 싸장님과 의견 조율을 마친 후, 난 국정원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차장님.”

“그래, 나중에 연락해줄 테니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라.”

“걱정 마세요. 누군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전 아주 얌전히 있으니까. 그리고……. 경감, 아니 사무관님?”

아까 전부터 굳은 얼굴로 차장님 뒤에 서있는 전찬휘 경감, 그런 그를 향해 다가가서 난 창대로 그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저 마음에 안 들죠?”

“하아.”

내 말에 한숨을 내뱉는 경감, 차장님도 그에 쓰게 웃는 가운데 난 빙긋 웃었다.

“그래도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제가 선물 하나 드릴게요.”

“됐다. 난, 그런 거 필요 없…….”

“기획 조정실의 김대진 처장, 2차장실의 박재준 과장은 중국 쪽에 포섭된 스파이랍니다. 정보를 흘리는 대가로 금품을 받고 있죠.”

내 선물에 멈칫하는 경감, 차장님의 표정도 굳어진 가운데 난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금품으로 받는 게 아니라 주기적으로 ‘주가조작 관련 정보’로 받아요. 중국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는 ‘주가조작 세력’의 목표에 대한 정보를 일부 받고 그걸로 재산을 합법적으로 불려나가는 거죠. 그러한 정보의 전달 과정은…….”

말총머리의 <과거>를 훑어보면서 파악했던 것들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말하진 못했을 거다. 한 사람의 일생을 세세하게 보면서 파악한다는 건 엄청난 피로를 유발하니까. 하지만, 말총머리는 작년 8월 말에 부임했고 그와 관련해서 요약된 인수인계 파일을 받았다. 덕분에 나도 파악이 쉬웠어.

그렇게 선물을 전달한 후, 난 빙긋 웃었다.

“어때요, 제 선물이 마음에 드나요?”

“……어디서 이런 정보를 들었지?”

“그건, 말해줄 수 없답니다.”

좀 약 올리듯이 대꾸해주자 경감의 표정이 찌그러지는 가운데 난 피식 웃었다.

“국정원이 뭐가 이쁘다고 말해줘요? 열심히 협조해도 ‘개’같이 취급하는데. 아니, 개도 이런 취급당하진 않겠다.”

“…….”

“이번 선물은 내부정보 단속하라는 의미에서 준 거예요. 이번 일을 덮으려고 하면 중국 쪽에서 곧바로 태클 걸 거 뻔하니까. 김완호에 대한 처벌 수위도 이미 녀석들은 다 알고 있더라고요? 참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

“괜히, 가만히 있는 사람 더 건들지 마시고 그런 ‘진짜 배신자’들이나 잡으세요.”

굳어있는 전찬휘 경감을 뒤로한 채, 난 말총머리의 시신으로 다가가 <아가리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어찌 됐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젠, 그저 일이 잘 풀리기만으로 기도하며 기다릴 수밖에.

“그럼 나중에 봐요.”

차장님과 경감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난 <투명화>를 사용하며 평양 도심 속을 향해 움직였다.

7.

빠르게 도심 속으로 향하는 투명한 일렁임.

일반인도 뭔가 이상함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미숙한 <투명화>였지만, 전력난으로 어두컴컴한 평양의 밤거리가 합쳐지니 별문제가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한새벽의 흔적이 사라진 뒤, 나세영은 작게 혀를 차곤 품 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본부와 연락했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나세영 차장님.

“그래, 중간 보고 하러 연락했다. 일단, 타깃과 접촉했지만……. 제압은 보류했다.”

-네?

의아한 듯이 되묻는 5차장실 오퍼레이터, 그에 나세영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직접 와서 확인한 결과, 녀석의 무력은 나라도 쉽게 제압이 불가능할 정도다. 단장급보다 더 강해. 자세한 내용은 본부에 가서 말하겠다. 일단, 제압을 실패했다고 알려라.”

-아, 알겠습니다. 제압은 실패했다고 연락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3차장실 소속의 김완호-대북 통제단 단장에 대한 긴급수배를 요청한다.”

‘제압에 실패했다.’ 했을 때부터 당황하던 오퍼레이터는 이어지는 요청에 말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나세영은 담담히 말을 이어나갔다.

“대북 통제단장이 중국 쪽에 포섭된 ‘확실한 증거’를 확인했다.”

-즈, 증거……. 아, 알겠습니다! 곧바로 기획 조정실에 긴급수배 요청을…….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둥지둥거리면서 대답하는 오퍼레이터, 기획 조정실에 연락하겠다는 말에 나세영은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니, 아니아니아니. 생각해보니까 아니다. 요청하지 마라.”

-네?

“여기서 우연찮게 얻은 정보인데, 기획 조정실에 중국 쪽의 스파이가 하나 더 있어. 괜히 알렸다간 정보가 흘러나갈 수 있다. 김완호가 곧바로 중국으로 도망치면 곤란해.”

-허헉!

또 국정원 내부의 스파이가 있다는 발언에 오퍼레이터가 헛숨을 들이켜는 가운데, 잠시 생각을 정리한 나세영은 다시 지시를 내렸다.

“곧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진 않을 테고, 피의자를 피해 남쪽으로 갈 것 같은데……. 일단, 우리 5차장실 인원들만 투입해서 김완호를 제압한다. 국경 쪽에 전투 요원 7~8명하고 1급 애들 하나를 배치시켜 놓으면 될 거야.”

-아, 알겠습니다. 곧바로 가까운 단장급을 호출하겠습니다!

“그리고, 일을 맡은 1급에겐 ‘김완호는 개조를 받았다.’고 언급해줘라. 내가 그러라고 했다고 말하면 뭔 뜻인지 알아들을 거야. 그럼 이만 끊는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것들을 정리한 후, 나세영은 시선을 돌려 전찬휘를 바라보았다. 굳은 얼굴로 한새벽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고 있는 전찬휘, 뭔가 생각이 많은 듯한 후배의 모습에 그녀는 입을 열었다.

“왜 그러냐, 찬휘야. 좀 생각이 많아 보이는데.”

“아, 아닙니다.”

“좀 회의감이 드나 보지?”

침묵하는 전찬휘, 그에 나세영은 피식 웃으며 고갤 저었다.

“어쩔 수 없어. 흰둥이는 ‘일개 개인’으로 취급하기엔 너무 강하니까. 강압적으로 나갈 수가 없지. 게다가 걔가 받은 취급도 좀 억울하기도 하고.”

“압니다. 하지만……. 후우.”

나세영의 말에 뭐라 말하려고 하다가 한숨을 내쉬는 전찬휘.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있던 그를 향해 나세영은 가볍게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이 복잡하겠지. 이렇게 되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겠고.”

“…….”

“우린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면 되는 거야.”

몸을 돌려 헬기 쪽으로 걸어가는 나세영, 그에 전찬휘도 시선을 떼고 그녀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8.

차장님 일행과 헤어진 뒤, 난 목장으로 향했다.

쏟아지는 피로, 그렇다고 아무 곳에서나 너부러져서 수면을 취하기엔 좀 찝찝했다. 평양·개성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차량 하나에 몰래 달라붙어서 개성까지 도착한 뒤, 시내에서 차량 하나를 탈취해서 목장까지 향했다.

그렇게 목장에 도착하니 자정이 조금 넘는 시각이었다.

“대장 괜찮으신…….”

내가 복귀했다는 무전에 건물에서 마중을 나오던 철수가 차량에서 내리는 내 모습을 보곤 식겁한다.

얼굴 가죽으로 만들어진 기괴한 회색 로브, 그 안에 있는 붉은 안광이 속에서 넘실거리는 악귀 해골. 내가 봐도 적으로 만나면 기겁할 분위기야. 목장 입구 초소에서 경계를 서던 애들에게 총 맞을 뻔했으니 말 다 했지. <투명화>로 먼저 접근해서 소총을 빼앗지 않았으면 100% 맞았을 거다.

“그 장비들, 왜 여기 있음?”

철수의 뒤를 따라서 어슬렁거리며 나온 서예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이미 한번 봤던 장비들이기에 그다지 놀라진 않는구만. 어쨌든 그 질문에 난 어깰 으쓱였다.

“싸장님이 가져와 주셨어요. 덕분에 완전히 무장했죠. 아, 그리고 장비 잘 썼어요.”

“흐음.”

빌렸던 스카프와 반지, 목걸이를 빼서 반납했다. 고갤 끄덕이며 장비를 받은 서예린은-.

“이걸로 이제 빚 완전 탕감?”

돌려받은 장비들을 몸에 끼며 태연하게 물어본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갤 끄덕이자 주먹을 꽈악 쥐면서 ‘예스!’라고 쾌재를 부르는 서예린, 좀 띠껍지만……. 어쩔 수 없다.

장비를 빌려준 건, 서예린으로서도 ‘엄청 위험이 따르는 행동’이었다.

내가 죽거나 제압됐으면 서예린은 장비를 다 잃어버리는 거였으니까. 장비를 되돌려 받기는커녕 ‘왜 당신 장비를 한새벽이 쓰고 있었냐?’며 추궁을 받았겠지. 반쯤 장비까지 포기하면서 빌려준 건데 쩨쩨하게 나오기도 그래.

어쨌든 그렇게 한 번 쾌재를 부른 서예린은 다시 날 보며 질문을 쏟아냈다.

“그나저나 거하게 일을 벌임? 그, 평양 중앙 청사에서 테러가 벌어졌다고 TV와 인터넷에서 뜸. 사람도 많이 죽거나 다쳤다고.”

“대북 통제단이 그쪽에 있었거든요. 절 죽이려고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충돌해야 했죠.”

내 대답에 묘한 표정을 짓는 서예린. 옆에 있는 철수는 많이 긴장한 표정이다. 하긴, 일반인의 시선으로 보면 저래야 정상이겠지. 어쨌든 내 대답에 서예린은 의아하다는 듯이 말을 이어나간다.

“근데, 너무 태연한 거 아님? 정부에서 군대를 보내 죽이거나 하겠다고 할 텐데? 설마, 지금 도망치는 중?”

“안 그래도 차장님이 절 잡으러 왔었죠.”

“……그 팔다리 없는 괴물?”

떨떠름 표정을 짓는 서예린에게 고갤 끄덕였다.

“그래도 좋게 끝났어요. 절 고문하려고 명령한 놈에게서 스파이 혐의가 발견됐거든요. 중국 쪽에서 절 포섭하려고 꾸민 정황이 확인돼서……. 아마, 적당히 넘어갈 것 같아요.”

“흐음.”

“아무튼 전 이만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요. 아가씨는 아직 자고 있죠?”

“별장에서 나온 적 없음.”

어깰 으쓱이는 서예린, 그에 가볍게 고갤 까닥이고 곧바로 걸어서 별장 쪽으로 향했다. 불빛 하나 없이 꺼진 별장, 다가가서 내부를 살펴보니 아직도 아가씨가 곤히 침대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수면제를 왕창 먹인 보람이 있구만?

-우적! 우적! 우적!

<아가리 주머니>에서 말총머리의 시체를 꺼내 투구에 쑤셔 넣은 후, 그대로 별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장비들을 하나씩 벗었다. 저주 걸린 로브도 쉽게 벗었다. 로브에 걸린 저주는 벗으면 일종의 <공포>와 <혼란>에 걸리는 것인데, 내겐 그러한 효과는 면역이지. 좀 짜증 날 뿐.

“하아.”

마지막으로 벗은 해골 투구를 개켜놓은 장비 위에 올려놓은 후, 난 침대 위에 있는 아가씨의 따뜻한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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