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7화
65화. 장붕이가 잠든 동안……
1.
동아명주에서 벗어난 뒤, 김완호는 곧바로 중국 쪽 요원과 찢어졌다.
예상치 못한 한새벽의 무력, 그 소름 끼치는 기세는 롄 웨이의 것에 못지않았다. 누가 이길지 모르는 만큼, 일단 확실하게 안전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었다. 그에 공원 주차장에 주차해둔 차량에 탑승한 후, 곧장 남쪽을 향해 움직였다. 그렇게 3시간가량을 전력 질주한 끝에-.
“휴우우…….”
개성의 국경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삼엄한 국경 톨게이트, 남쪽으로 향하려는 차량이 길게 줄을 선 모습에 김완호는 잠시 차를 멈추곤 핸들을 붙잡은 채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 미친놈이 뿜어내던 소름 끼치는 살의에 계속 심장이 벌렁벌렁했는데, 이렇게 안전한 남쪽이 코앞에 보이니 좀 진정이 됐고…….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개 같은 북쪽 거지 새끼가!!”
-빠앙! 빠앙! 빠~~~아앙!
뒤이어 치밀어 오르는 짜증에 연거푸 핸들의 클랙슨을 후려쳤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허겁지겁 몸을 피하긴 했지만, 미래를 생각하니 막막하기 그지없다. 아무리 남쪽에 단물이 다 빨렸다곤 해도 고작 한 놈에게 ‘대북 통제단’ 본부가 털리고 궤멸당하다니?! 국정원 내부에서 평가가 대폭 깎일 게 분명했다. 최소한 놈을 제압한 것처럼 보였어야 했는데…….
“지금 뭐하는 겁니까!?”
그렇게 김완호가 연거푸 클랙슨을 울리자 초병이 다가와서 소리친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감히 자신을 추궁하는 태도에 김완호는 창문을 열고 으르렁거렸다.
“뭐라고??”
“당신, 지금 초병 위협하는 겁니까?”
곧바로 메고 있는 소총을 겨누려고 하는 초병, 탈북하려 악다구니를 쓰는 이들을 상대하기에 고압적이고 날카로운 대응이었다. 그에 김완호는 바드득 이를 갈았다.
“너, 직속상관 누구야?”
“하, 됐고. 지금 톨게이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툭!
으름장을 놓으려는 병사를 향해 김완호는 품 안에서 ID카드를 꺼내 던졌다. 그에 얼굴을 팍 구겼던 초병은 이내 자신의 몸에 맞고 떨어진 ID카드를 확인하곤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네 직속상관 누구냐고. 새끼야.”
“그, 그게…….”
카드에 있는 국정원 마크, 게다가 카드의 형상을 보니 보통 카드가 아니다. 고위 공무원. 이어서 김완호의 몸에선 마력 각성자의 기세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초병이 어버버거리고 있을 때-.
-철커덩!
-철컥!
“?!”
톨게이트 아스팔트 바닥 곳곳에 뚫려 있는 금속 구멍들에서 굵직한 볼라드(Bollard)-차량 진입 방지용 말뚝들이 일제히 올라온다. 다른 곳은 그대로 두고 김완호가 있는 차량 근처에서만. 그에 김완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하. 어처구니가 없구만.”
“아니, 그…… 그것이……. 야! 도대체 뭘 한 거야! 이분이…….”
그렇게 차단기 초소에 있던 초병들이 허둥지둥할 때-.
-그건, 저희가 한 일 입니다.
‘울림통’처럼 쩌렁쩌렁 메아리치는 음성이 들린다.
왠지 익숙한 목소리에 김완호는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톨게이트 옆에 위치한 건물에서 나오는 한 무리의 남자들, 그 선두에 ‘거한’이 있었다. 2m 20cm는 될 듯한 체격에 헐렁한 사제복임에도 드러나는 근육질의 몸, 넓은 챙의 사제용 모자 아래에 평평하고 각진 이목구비……. 꼭 인간이 아니라 강철로 빚어진 동상 같은 남자였다.
저런 사람은 국정원 내에서도 딱 하나밖에 없다.
“정의율 국장.”
“반갑습니다. 김완호 단장님.”
김완호가 알아보자 고갤 숙이는 정의율, 그에 김완호는 살짝 얼굴을 찡그리며 차량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군.”
“긴급 출동 요청을 받아서 말입니다. 피의자의 남하를 막기 위해서 나왔죠.”
다가와서 말하는 정의율, 그에 김완호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자신의 처지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고작 한 명에게 털리고 황급히 도망치고 있는 신세라니……. 다가온 정의율을 향해 김완호는 한숨과 함께 변명과 충고가 뒤섞인 조언을 건넸다.
“한새벽에 대한 경계를 상향 조정해야 할 거야. 나도 제압해보려 했는데, 놈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고위 전투원들론 힘들고 나세영 차장 정도는 되어야…….”
“죄송하지만 제가 잡으라고 지시를 받은 피의자는 한새벽이 아닙니다.”
그 대꾸에 뭔가 싸함을 느끼고 김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의율과 함께 나왔던 8명의 국정원 요원들. 그가 정의율과 말하는 동안, 그들은 그가 타고 왔던 차량을 빙 둘러쌌고 그 손에는 전격 3단봉 혹은 소총이 있었다.
“……이게 뭔 짓이지?”
“제가 받은 지령은 ‘김완호 단장’을 체포하라는 겁니다.”
정의율은 딱딱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한새벽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촬영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찍었던 영상을 그대로 저희 쪽에 보냈고요.”
“…….”
“단장님과 함께 있던 이들, 한새벽의 공격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흑회 돌풍>을 쓰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도대체 중국 쪽 암부 요원들과 뭘 하고 있던 겁니까?? 김완호 단장.”
생각지도 못한 말에 김완호가 굳어진 가운데, 정의율은 오른손에 쥔 커다란 법전을 꽈악 쥐면서 죄인을 내려다보는 인왕처럼 위압감 있게 김완호를 내려다보았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잠시 말문이 막혔던 김완호는-.
“후우.”
이내 크게 숨을 내뱉고는 정의율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내가 중국 쪽과 만나고 있던 건 ‘일’ 때문이었다.”
“……일 때문이라고요?”
“그래.”
얼굴을 찡그리는 정의율을 향해 김완호는 고갤 주억이며 당당히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맡은 업무 특성상, 중국 쪽 정보기관과 계속 부딪칠 수는 없어. 몇 달 전에 있던 새로운 형태의 ‘기생 타락체’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서로 협의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일’이 꼭 필요해. 이번에 만났던 것은 그러한 협상의 현장이었고.”
“하지만, 상부엔 아무런 보고도 없었던 것 같더군요.”
“일일이 만날 때마다 보고할 정도로 난 피라미가 아니야. 북쪽 전역의 방첩·첩보를 담당하는 ‘대북 통제단장’ 정도면 자율적으로 만나는 것도 가능하지.”
당연히 보고하지 않았다. 자신이 만났던 것은 그러한 정보 협상이 아니었으니까. 그 대답에도 정의율은 고갤 젓고, 이어서 근처에 있던 국정원 요원이 들고 있던 가방에서 각종 부정적 효과가 작용하는 ‘족쇄’들을 꺼낸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체포가 먼저입니다.”
그 모습에 김완호는 속 입술을 깨물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그냥 체포당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말을 들어보니, 영상 빼면 딱히 명확한 증거도 없는 것 같으니까.
하지만, 지금 차량 조수석엔 ‘가방’이 있었다.
이번 일의 대가로 받은 것들, 저게 걸리면 뭐라 변명할 수도 없다. 별다른 검문 없이 남쪽으로 넘어갈 거라고 생각해서 가져온 게 최악의 판단이 됐다. 김완호가 대꾸하지 않고 서 있자 차량을 둘러싼 요원들이 하나둘 긴장하는 가운데…….
“하아……. 좋아, 순순히 따라가도록 하지.”
김완호는 항복하겠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그에 ‘족쇄’를 든 요원이 다가오려 했지만-.
“하지만, 그 ‘족쇄’들은 차지 못하겠네.”
가볍게 손을 들어서 거부의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에 다가오던 요원이 멈칫하고 정의율은 미간을 좁혔다.
“아실 텐데요, 마력 각성자의 체포는 무조건 ‘구속구’를 차야 한다는 걸?”
“난, 25년가량 국정원에 헌신했어. 그리고, 초창기 마력 각성자로 자네들의 선배기도 하고.”
위협하는 정의율에게 대꾸하면서 김완호는 국정원 요원들을 훑어보았다.
“뭔가 오해가 있어서 체포되는 것 같다만, 난 이런 취급 받을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일은 정식으로 공문이 내려온 건 아닌 것 같군. 아닌가?”
“…….”
“역시.”
말이 없는 정의율에 피식 웃는 김완호. 역시, 자신을 함부로 의심할 리 없었다. 그 되먹지 못한 불구년이 지랄을 한 것이겠지. 그에 요원들도 멈칫한 가운데, 김완호는 사납게 웃었다.
“5차장실에서 단독으로 날 어찌해보려 하는 것 같은데, 아무리 내가 그쪽 차장과 불화가 좀 있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화풀이해선 안 되지.”
당당하게 나서는 김완호의 모습에 정의율이 얼굴이 찡그려진 가운데, 다른 전투 요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살피며 눈치를 본다. 그 순간, 정의율은 문득 차량 조수석에 있는 가방을 포착하곤 입을 열었다.
“차량 안에 있던 저건 무엇이지요?”
“내 서류 가방일세, 그 미친 살인귀를 피해 도망치면서 챙긴 자료들이 들어있지.”
“영상에서도 나왔던 가방인 걸 보면 중국 쪽과 교환하려 했던 자료들이겠군요? 한번 봐야겠습니다.”
다짜고짜 말하는 정의율, 그에 김완호는 날카롭게 소리쳤다.
“무례하군, 그쪽이 관여할 건은 아닐 텐데?”
“어차피 한번 본다고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질서와 규율’의 이름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면 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쪽만 보게.”
반박할 수 없는 정의율의 대답에 김완호는 굳은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그에 차량 조수석 방향에 있던 요원이 차량 문을 열고 각진 금속제 서류 가방을 꺼내고 정의율에게 다가와 가방을 건넨다. 그에 정의율은 조심스레 가방을 열었고-.
-철커덕!
“……!?”
가방 안에서 쏟아진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황금빛’ 광채에 순간적으로 흠칫했다. 그 틈을 노리고 있던 김완호가 곧장 움직였다.
“큭!”
김완호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 잿더미가 바람 한 점 없이 휘몰아친다.
<흑회 돌풍>. 그 검은 잿더미에 휩쓸린 정의율이 순간 흐트러지고, 김완호는 거침없이 잽·스트레이트 연계를 그 턱에 날린다. 그 돌발 일격에 정의율이 살짝 비틀대는 사이, 김완호는 호랑이처럼 차량 지붕 위로 튀어올랐다.
“빠져! 빠지면서 쏴!”
정의율 근처에서 <흑회 돌풍>에 휩쓸렸던 요원 두 명이 진이 빠진 것처럼 후들후들거리는 가운데, 차선임자의 호령에 소총을 가진 요원들은 곧장 김완호를 향해 거침없이 사격했다.
-타다다다다당!
-다다다다당!
대괴물용 마법 탄환이 장전된 소총이었지만 김완호를 막진 못했다.
그의 몸을 뒤덮은 <흑회 돌풍>, 비밀공작을 하는 첩보 기관이 쓰기엔 ‘너무 잘 알려진 마법 기술’이건만 중국 암부가 그럼에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성능’이 굉장히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퉁! 투투퉁!
마법의 범위 내에 들어온 총탄은 그 위력이 대폭 줄어들었고, 김완호가 입고 있고 양복 형태의 고급 방어구는 그렇게 위력이 줄어든 총탄을 충분히 막아냈다. 드러난 얼굴을 가리면서 김완호는 차량들 사이로 질주했다.
「그분의 규율 아래, 나의 몸과 영혼은 순결할지니!」
그리고, 그런 김완호의 뒤를 제정신을 차린 정의율이 달려들었다.
<신의 권능 : 활력>을 사용하며 신체의 능력을 끌어올린 후,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날렵함으로 순식간에 김완호의 뒤를 따라잡고 <흑회 돌풍> 속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암부 요원이었다면 곧바로 다른 마법을 연계해서 대응했겠지만……. 김완호가 얻은 마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크으으윽!”
「나는 질서를 집행하는 주먹이 될지니-.」
파고든 정의율이 짧게 호흡하며 외운 ‘힘이 깃든 말’에 오른손에 쥔 법전이 은빛으로 번쩍이고 어떻게 저항하려는 김완호를 향해 내리꽂혔다. 가드를 올린 김완호의 팔을 뼈째로 뭉개버리고-.
-콰직!
그대로 김완호를 톨게이트 밖 화단 쪽으로 날려버렸다. 벽에 처박히는 김완호. 기절한 듯, 그 몸 감싸고 있던 <흑회 돌풍> 사라졌고 얼굴은 한쪽 눈이 튀어나온 채로 반쯤 무너져있었다.
“쯧.”
한 방에 김완호를 날려버린 정의율은 내리친 법전을 툭툭 털곤 고갤 돌려 바닥에 떨어진 가방과 거기서 나온 내용물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바닥에 흩뿌려진 커다란 파란 보석이 박힌 금빛 주화-‘골디안 코인’.
거기에 불길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붉은 표지의 서적과 푸른 결정체로 만들어진 단검도 보인다. 우왕좌왕하는 전투 요원들을 보며 정의율은 작게 한숨을 내쉬곤 <흑회 돌풍>에 휩쓸렸던 두 요원을 바라보았다.
“괜찮나?”
“괘, 괜찮습니다.”
“저도.”
지친 표정으로 대꾸하는 요원들, 다행히 민간인 피해도 별로 없는 것 같았다. 그에 정의율은 어수선해진 톨게이트를 둘러보며 고갤 끄덕였다.
“좋아, 빨리 뒷수습하고 철수하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