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자를 위한 연중작은 없다-313화 (307/350)

제313화

5.

미리 경고했음에도 한국 정부가 ‘은폐·조작’에 들어가자 국안부는 어쩔 수 없이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한국의 정권이 바뀔 만한 사건, 국안부 혼자서 처리하다가 잡음이 발생할 수도 있었기에 국안부장-페이진펑은 ‘당 중앙위’에 허락을 구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시작된 보복은…….

“……실패할 것 같다고?”

3일 만에 실패로 끝나가고 있었다.

전혀 생각하지 못한 소식, 명치끝에서 올라오는 쥐어짜이는 듯한 통증 신호에 페이진펑은 가슴팍을 붙잡으며 항상 가지고 다니는 위장 물약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곤, 고갤 떨구고 있는 ‘대외보 방정찰국’의 국장을 바라보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왜지?”

“…….”

“아니, 이건 실패하는 게 힘든 거잖아!”

대꾸 못 하는 국장에게 페이진펑은 약병을 바닥에 내던지며 소릴 질렀다.

작전에 들어갈 때만 해도 국안부는 성공을 자신했다. 한국은 아직도 다수의 정당을 허용하고 직접 투표로 권력을 잡는 ‘서구식 민주주의’를 취하고 있었으니까. 그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 체계’의 특성상, 야당은 건수를 잡으면 여당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설령 ‘국가적으로 해가 되는 것’이라고 해도.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다른 정치인들이, 그 밑의 지지자들이, 줄을 댄 후원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권력이란 건, 그런 것이니까. 똑같이 권력 투쟁을 하더라도 외부에 드러나는 게 없이 당 안에서 조용히 끝나는 그의 조국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나, 이번 건은 야당에게 아주 매력적인 선물 보따리였다.

정부가 ‘진짜 범죄자’를 숨겨주기 위해 국정원을 동원해 사건을 조작하려는 짓, 야당으로서는 다음 대선과 총선 승리의 열쇠였다. 별다른 공작 없이 약간의 진실만 흘려도 야당이 알아서 대한민국 정부를 박살 낼 사안이었건만…….

그런 페이진펑의 반응에 국장은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국에 깔아놓은 휴민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휴민트가 작동 안 해?”

“중요한 곳부터 국정원에서 먼저 손을 썼습니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박살 내고 있습니다.”

그 대꾸에 페이진펑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국안부에서 평가하는 ‘국정원’의 능력은 고작 2류 수준, 이미 그 내부에 깊숙이 스파이도 심어놓았을 정도로 허술하다. 그런 놈들이 이번 사태를 진압했다고? 그에 국장은 손에 쥔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저희 쪽과 줄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정치 사안’으로 키워 보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뭔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당 내에서 좀 미적지근하게 반응했다 하더군요. 게다가 다른 국회의원들이 갑자기 묘하게 자신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답니다.”

“…….”

“서울 가리봉동 쪽에 세운 비밀경찰서가 돌연 압수수색이 들어왔습니다. 밝혀지면 위험한 자료들도 있었기에 부득이하게 건물을 통째로 전소시켰다 합니다. 게다가 저희의 통제를 따르던 방송인과 인플루언서들이 속속 경고를 받고 자숙하거나 구속되고 있습니다.”

“…….”

“뭔지 모르지만……. 이번에 우리 쪽 정보가 대규모로 넘어간 게 확실합니다.”

“허, 허허허허…….”

태블릿 PC에 정리된 보고서를 보며 페이진펑은 허탈하게 웃음을 흘렸다.

보고서를 보니 더 가관이다. 직접적으로 포섭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들이 고작 일주일 만에 당내에서 왕따가 되거나 돌연 한직으로 좌천되었고, 그나마 투표로 뽑히는 선출직 공무원들은 아직 살아남았지만 그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있었다. 한발 더 나아가 국정원에 협박을 받고, ‘약점을 잡혔다.’면서 이쪽에 도움을 요청한 이들도 몇몇 있었는데…….

그 약점의 내용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국안부가 수집한 것과 똑같다.

-퍽! 퍽! 퍽!

“하아, 후우우욱. 후우우…….”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느낌에 페이진펑은 주먹으로 몇 번 가슴팍을 쳤다. 그렇게 잠시 거칠게 숨을 헐떡인 그는 좀 이성을 되찾은 눈으로 국장을 올려다보았다.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실패지?”

“아직, 저희가 컨트롤할 수 있는 노조와 시민단체가 있기에 좀 더 시도해볼 수는 있지만……. 그들만으론 이슈를 만들기엔 부족합니다. 게다가 여론이 관심을 가지는 시기도 좀 지났고요.”

“망할, 빵쯔 놈들 따위에게…….”

자신들이 조종·선동당하는지도 모르고 움직이는 질 낮은 ‘꼭두각시’들은 남아있지만, 그들만으로 여론을 형성하기엔 화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국정원이 아직 남겨둔 것이겠지. 국장의 대답에 페이진펑은 얼굴을 감싸 쥐며 이전에 봤던 기묘한 소년을 떠올렸다.

그놈과 관련해서 뭔가 마(魔)가 낀 것 같다.

새로운 기생 타락체, 유능한 ‘적색’의 죽음, 한국에 깔아놓은 방첩망의 붕괴……. 이걸 주석께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미 대한민국 정권을 바꿀 것처럼 당당히 말해놨는데 말이다. 자칫 경질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가 초조하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

-Rrrrr!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기에 찍힌 번호는 당 중앙정법위원회 ‘저우칭’ 서기의 전화번호, 이전에 모셨던 상관이자 24인으로 이뤄진 당 중앙정치국 의원이었다. 침을 꿀꺽 삼키며 페이진펑은 국장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제스처를 보낸 뒤 조심스레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저우칭 서기님.”

-그래, 페이진펑. 국안부장 노릇은 잘 하고 있나?

“…….”

-끌끌끌……. 말이 없는 걸 보니 어떤 꼴인지 예상이 간다. 내가 말했잖냐? 아주 거지 같은 자리라고. 어휴, 나도 거기 계속 앉아있으라고 했으면 던지고 나왔을 거야. 실무진도 아닌데, 그렇게 신경 써야 할 게 많다니…….

쾌활한 저우칭 서기의 목소리에 페이진펑은 한숨을 내뱉었다.

확실히, 처음에 라이벌들을 물리치고 이 자리에 앉았을 땐 마냥 좋았다. 하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보니 받는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권한도 막강하긴 했지만 책임이 너무 컸고. 덕분에 위경련이 위궤양 수준으로 진화하고 탈모까지 오기 시작했다. 그런 옛 상관의 놀림에 페이진펑은 씁쓸하게 웃었다.

“……안 그래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흐흐, 다음번 당대회(黨大會)까지 버텨봐. 잘하면 다른 자리로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예. 버텨봐야죠. 그나저나 어쩐 일로 전화하셨습니까? 뭐 처리해야 할 일 있습니까?”

-아, 그게……. 한국에서 조치하고 있는 것들 있잖아?

설마, 상황을 파악하고 질책하려는 것인가? 평소엔 유쾌한 사람이지만 일과 관련해서 매우 냉혹한 사람인 걸 알기에 페이진펑은 잔뜩 긴장했다. 어쨌든 페이진펑이 침을 꿀꺽 삼킨 가운데-.

-그거, 한번 접어볼 수 있겠냐?

“……네? 접으라는 겁니까?”

-그 외교 채널을 통해서 하루 전에 빵쯔 대통령의 연락이 왔는데…….

이어지는 저우칭 서기의 설명, 미르 유혈 사태 당시에 발견한 얼마 없는 ‘마력 각성제’를 화해의 표시로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에 페이진펑은 살짝 넋을 놓았다.

“확실한, 마력 각성제를 말입니까?”

-그래. 그 빵쯔 대가리, 어지간히 사고를 많이 쳤잖아? 자기 지지율 방어한다고 새로운 심연 기생체를 상의도 안 하고 냅다 공표한 것 하며……. 자신에 대한 공격을 물러주면 ‘화해의 표시’ 겸해서 보내겠다는 거지. 참, 나.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어.

“…….”

-어지간하면 콧방귀 뀌고 무시하겠는데, 보낸 영상 자료를 보고 연구소에서 좀 흥미롭다나 봐. 인간의 피가 섞인 쇼우런(獸人, 오크)에게 테스트한 자료인데, 우리가 확보한 다른 각성 유도제의 메커니즘과는 현저하게 다른 것 같다더군. 마력 각성제 개발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도 있으니 한번 연구해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 그에 주석께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셨고.

“허어…….”

페이진펑의 탄식에 저우칭은 작게 한숨 소리를 내뱉었다.

-웬만하면 우리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알잖나? 마력 각성을 일으키는 물질은 귀하기도 귀하거니와 보이는 족족 먹어 치운다는 걸. 어떻게 탈취하기 전에 사라질지도 몰라. 안전하게 100% 받는 방법은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그렇긴 합니다만…….”

페이진펑도 동의했다. <마력 각성>이란 것은 그만큼 매력적인 것이니까. 그렇게 페이진펑이 살짝 말끝을 흐리듯이 대꾸하자 저우칭은 씁쓸한 어조로 말을 이어 나간다.

-역시, 힘들겠지? 하긴, 그 창창한 적색 녀석도 죽었고, 여당을 끌어내리겠다고 날뛰는 빵쯔 정치인들 하며……. 그냥, 혹시나 해서 한번 물어본 거다. 힘들다고 보고를…….

“아, 아닙니다. 접는 것 가능합니다!”

-어? 진짜로?

실패를 어떻게 포장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 믿기 힘들다는 저우칭의 대꾸에 페이진펑은 허겁지겁 대답했다.

“예, 롄 웨이의 죽음이 분하지만……. 그 복수는 나중에 하면 되니까요. 일단, 최대한 조직의 이득을 챙겨야죠.”

-허, 허허허……. 이젠 나보다 일 더 잘하는데?! 이야,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어! 그래, 그럼 그렇게 보고하지. 그리고, 나중에 같이 술이나 한잔……. 아니, 요즘 위궤양 걸렸다고 했지? 그냥 식사라도 같이 하지.

“그럼 곧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끊어지는 전화, 그에 페이진펑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앞에 서 있는 국장 또한 마찬가지. 이로써 어떻게 체면은 살린 듯했다. 목이 잘릴 일도 사라지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페이진펑은 찬찬히 국장을 향해 고갤 끄덕였다.

“최대한 지원을 몰아줄 테니, 빵쯔 쪽에 다시 방첩망을 만들도록 하게. 그리고, 어떻게 이런 꼴이 됐는지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복구하도록 하겠습니다.”

“망할, 국정원 쪽의 라인도 끊겼다고 했으니 확인도 더럽게 힘들겠군.”

턱을 괸 채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을 거듭하던 페이진펑은 이내 국장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미국 쪽에서 진행 중인 일의 상태는 어떻지? 슬슬 마무리 단계일 텐데? 그쪽에서도 이런 꼴 나면 진짜 큰일 나. 이번처럼 얼렁뚱땅 운 좋게 덮을 수도 없을 거야. 그쪽은 중앙에서 직접 주시하고 있어.”

“직접 확인 중입니다. 보고드렸다시피 핵심 인물의 포섭은 다 끝냈고 석 달 뒤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국장, 그에 페이진펑은 태블릿 PC를 다시 되돌려주며 이만 가보라는 듯이 손짓했다.

6.

“…….”

새벽 3시, 서울 가리봉동 내부의 차이나타운. 왠지 어수선한 분위기의 거리 속에서 한 남자는 완전히 전소된 5층 건물을 보며 작게 이마를 짚었다. 외부에 알려지기엔 작은 여행사 건물이었지만 남자는 그 진짜 정체-‘국안부의 지원 센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머무를 때, 쏠쏠하게 정보를 얻어내던 원천.

구하려던 심연 기생체는 그 어디에도 없고, 좀 울적한 마음에 예전 행복했을 당시 누나와 누이와 함께 있었던 추억의 장소를 며칠 방문해서 돌아보고 왔더니……. 이렇게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는 건물 위로 도약했다.

무게가 없는 것처럼 ‘둥실~’ 떠올라 순식간에 건물 위에 서는 남자, 새벽이라도 시선이 쏠릴 만하건만 신기하게도 거리의 사람들은 그를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건물 옥상에 선 후, 남자는 뒤집어쓴 백색의 후드 안쪽 타오르는 듯한 주황빛 눈동자로 거리를 훑었다. 그가 가진 마안(魔眼)이 거리에 숨어있는 ‘마력 각성자’ 몇 명을 포착했지만…….

“젠장.”

그가 찾는 이들이 아니었다.

중국 쪽 요원들의 ‘세례를 받은 특징’도 없을뿐더러, 착용하고 있는 마법 장비들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다. 아마, 이렇게 산통을 깬 한국 놈들이겠지. 짜증에 신경질적으로 엄지손톱을 이빨로 뜯다가 그는 결정을 내렸다.

일단, 자신이 좀 쉴 동안에 뭔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해야겠다.

저 숨어서 염탐하는 놈들의 뒤를 따라가 보면 알 수 있겠지. 조용히 지상에 내려선 후, 남자는 근처에 숨어있는 이들의 뒤를 유령처럼 따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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